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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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시끄러운 고독

브후밀 흐라발 지음

 

글자 하나하나가 밀착되지는 않는데, 전체 줄거리로는 분명 생각해 볼 만한,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주제를 가지고 있다. 주제가 전부인 것 같은데, 그것만으로도 괜찮은 것 같은. 필력은 어딘가 이상하기도 한데, 짜임은 괜찮은 것 같은. 읽는 내내 안이 시끄러웠고, 쉬이 고독하지 못했다.

 

글을 압축하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압축기로 책을 압축하는 업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탸, 거기에 나치 시대의 배경이 들어가 있고,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사랑하는 행위를 가진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제 3자의 역할을 독자가 하고 있다는, 무언가 뷰로 바라보는 화자가 있을 것 까지 정해놓은 듯한 느낌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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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문턱까지 다다른 남자의 모습이다. 그것들은 국수 그릇처럼 여기, 우리 곁에 놓여 있다.

 

단단히 동여맨 한 보따리의 개념에 기꺼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살고 있다. 우리는 올리브 열매와 흡사해서, 짓눌리고 쥐어짜인 뒤에야 최상의 자신을 내놓는다.

 

독서로 인해 영원히 내 잠을 방해받고 독서로 인해 섬망증에 걸리기 위해서다. 한번 책에 빠지면 완전히 다른 세계에 책 속에 있기 때문이다. 내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는 건, 가방에 책들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녁이면 내가 아직 모르는 나 자신에 대해 일깨워줄 책들. 그렇게 나는 스스로에게 소외된 이방인이 되어 묵묵히 집으로 돌아온다. 내 지하실은 언제나 사각대며 갉아먹는 소리와 눈짓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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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에 있다는 것
클레르 마랭 지음, 황은주 옮김 / 에디투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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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에 있다는 것

클레르 마랭 지음

황은주 옮김

 

사놓고 읽지도 않고 있다가, 이유가 있어서 부리나케 읽는 경우가 있다. 이유가 있어도 읽지 않았던 날들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건가. 시간과 공을 들여 밑줄과 글을 써가며 읽지 않았다. 그만큼 남는 것도 적었다. 정리가 되지 않은 기분이다. 책이 많은 양을 담으려고 동분서주하다보니 어수선한 것에 내 마음이 더해져 배가 되었다.

 

제자리에 있다는 건 뭘까? 외향적이어서 밖에 나가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집에 틀어박혀 있는 사람은 제자리에 있는 걸까? 머릿속으로 공상을 하고, 책을 읽으면서 향유한다면 과연 밖에 나가지 않았다고, 제자리에 있다고 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제자리에 있다는 건 좋을 것일까? 나쁜 것일까? 마치 외향적이지 않은 사람은 부족한 사람인 냥 말하는 것 같다. 외향성과 내향성이 좋고, 나쁘고를 논하게 되는. 범주일까? 제자리는 나쁜 걸까? 우리는 끊임 없이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할까? 매일 똑같은 루틴을 밟으면서 사는 사람들을 경시해야 할까?

 

내가 아는 K는 매우 루틴한 인간이다. 루틴하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매일 새벽 5시 30분에 기상한다. 일어나서 가족들의 음식을 차리고 짐으로 간다. 정해진 순서에 맞춰 운동을 하고 정해진 장소에 차를 파킹하고 출근은 한다. 출근을 해서 옷을 갈아입고 아침 운동을 20여분 한다. 그리고 마치 루틴이 없는 인간처럼 시간을 허비한다. 그리고 퇴근 후에 사람들을 만나 술을 한잔하고 귀가한다. 그런데 K는 여행을 좋아한다. 사람들과의 모임도 좋아한다. 모임이나 여행이 없을 때는 루틴 생활을 하지만, 여행이나 모임 중에는 이 루틴을 과감히 벗어던진다. K는 제자리에 있는 걸까? 그렇지 않은 걸까?

 

제자리에 있기 위해 우리는 집을 원한다. ‘저 많은 아파트 중에서 내 아파트는 한 채도 없네’ 라고 스물 여섯의 나는 버스 타고가며 중얼거렸다. 왜 우리는 나만의 공간을 원하는가? 그것이 왜 들어선 카페의 한 구석 자리일 수는 없고, 정해진 네모난 감옥 이어야 하는가? 중요한 것은 내 안의 자리를 만들고, 그 안의 소리를 듣는 것인데. 그것은 어디에서 들을 수 있을까?

 

나는 정리된 곳, 질서정연하게 고독을 즐기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머리가 명료해진다. 어수선할수록 내 마음 같아 짜증이 인다. 나는 그런 인간과 오랜 시간을 살았다. 남편이라면 내가 선택한 것이니 어찌할 수도 없다. 자식이라면 내가 배 아파서 원해 낳은 건데 뭐라 하기도 그렇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닌데 이리도 나를 힘들게 한다는 게 견딜 수 없다. 그런데 하는 행위마저 무질서하다. 바로 여기에서 그녀와 나의 간극이 한없이 벌어진다. 제자리에 있다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모든 것의 무질서를 몸소 보여주는 그녀의 행위가 이 책의 본질을 더 파고들었다.

 

그래서 제자리에 있다는 건 어떤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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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파티 드레스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창실 옮김 / 1984Books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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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파티 드레스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창실 옮김

 

왜 오 년 전 그때의 나는 이 책의 내용이 이리도 나를 휘저으면서도 담백하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왜 그때는 글자만 허공에 맴돌았을까? 읽으면서 너무도 내가 쓴 글같아서, 나이면서 당신인 그런 상태에서 읽었다.

 

옮긴이 이창실은 [보뱅의 글을 읽다 보면 때로 어떤 문장이 섬광처럼, 기적처럼 마음을 건드리고 가는 걸 경험하게 된다. 그러는 가운데 낯설지 않은 얼굴들이 문득문득 떠오르고, 작은 비눗방울처럼 가볍고 영롱한 터치의 글이건만 그리 읽기 편하지만은 않다]라고 한다. 옮긴이가 이런 의도를 가지고 번역을 한건지, 그런 의도를 알아차리고 기가 막히게 번역을 한건지, 나도 오롯하게 느꼈다. 외국의 언어와 감정과 생각이 한국어로 들어와 감정과 생각을 공유하는 일은 멋지다.

 

밑줄 그은 부분을 정리하는데, 밑줄을 긋지 않은 부분이 더 도드라져 보이는 기이한 현상을 경험하면서 타이핑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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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부모와 춤추는 아이

 

시작과 끝은 동시에 주어진다는 걸 우린 나중에야 알게 된다.

 

그는 자신이 종사하는 직업에 안주하는 만큼 도덕적으로도 불편함이 없고 애정 생활이나 은행 계좌도 안전하다.

 

세상에 무엇 하나 보태지도 감하지도 않는 사람이다. 그는 세상에서 물러난다. 자신이 세상에서 물러났음을 안다. 무용한 인간. 실현의 가망 없이. 멜랑콜리는 사방에. 스토리도 생명도 없이 자라났다.

 

집은 보호막이 되어주지도 않는다. 첫 페이지부터, 첫 문장부터, 검은 목소리에 의해 집어 삼켜진 집이다. 독서는 끝이 없다. 독서가 무슨 쓸모가 있을까. 전혀 혹은 거의 쓸모가 없다. 어느 독서라는 빈터에서

 

이 목소리는 결코 과장하고 있지 않다. 너무 높지도 크지도 않은 목소리다. 적확한 목소리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차가운 물질. 죽은 언어를 캐낸다. 단지 살기 위한 분노다.

 

당신은 금요일 저녁에 책을 읽기 시작해 일요일 밤 마지막 페이지에 이른다. 이제는 책에서 나와 세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어려운 일이다. 무용한 독서에서 유용한 거짓으로 건너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대작을 읽은 다음이면 어김없이 왠지 모를 불안과 불편한 감정에 빠진다. 누군가가 당신의 마음속을 읽을 것만 같다. 사랑하는 책이 당신의 얼굴을 투명하게 파렴치하게 만들어놓지는 않았는지. 그런 헐벗은 얼굴로는 행복이 고스란히 드러난 얼굴을 하고서는 길에 나설 수 없다. 잠시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 낱말들이 먼지처럼 햇빛 속에 흩어지기를 기다려야 한다. 책을 읽은 뒤 기억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한두 문장 기억이 날까?

 

우리 입술은 언제나 너무 많은 소음을 담고, 우리 가슴속에는 언제나 너무 많은 것들로 넘쳐난다. 희미한 소리다. 피폐해진 내 삶 속에 온전히 존재하는 내 생명 탓에 고통스럽다. 그곳에 얼굴을 갖다 대고 식힌다.

 

그녀는 글을 쓴다-시간이 날 때마다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이들. 난 폰에 오염되고.

 

황당한 의무감을 심어놓았던지, 그녀는 마지막 페이지까지 책을 놓지 않는다. 나쁜 남편을 버릴 수 없듯이 나쁜 책이라고 도중에 팽개칠 수는 없다. 그녀는 마지막 페이지까지, 시간이 소진될 때까지,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내가 책을 읽는 건, 고통이 제자리를 찾게 하려는 거예요-목, 금, 토, 일, 나흘의 내가 그렇다. 나는 이유도 모른채 읽는다. 마치 그래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오로지 부재 속에서만 제대로 볼 수 있고, 결핍 속에서만 제대로 말할 수 있다-그런게 작가의 삶이라면 슬프잖아. 풍요롭기만한 사람은 벙어리인가.

 

비가 몰아친 건 그다음 일이다. 눈에 띄지 않는 비, 시멘트와 돈 가루, 새 방마다 감도는 숨 막히는 공기-옷이 사고 싶을 땐, 필요한 게 아니고 인스타를 하릴없이 보다가 생기는 물욕. 옷이 사고 싶을 땐, 우선 책을 읽자. 나에게 물을 주고 그때 사고 늦지 않다. 어제 니트 3개 구매, 오늘 원피스, 치마, 반팔티, 반팔 남방 장바구니에 담음. 그리고 구매.

 

만사를 원상태로 봉하는 데서, 사회생활이라는 끝없이 반복되는 거짓과 하나 되는 데서 자신의 온전함을 찾는다. -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를 추구하며 모두 거지가 되자는 건가.

 

쉴 새 없이 여행을 다니지만 실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 한 발짝도 전진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무언가를 제대로 보려면 상반되는 대상을 접해야 한다. - 익숙한 곳이 아닌 낯선 곳을 다니라는 말인가. 돈이 아닌 다른 가치로 세상을 바라보라는 건가. 여행을 가도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고, 그 자리에 있으면 죽은 것이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말라는 것인가.

 

어둠 속에서 들리는 목소리다-새벽 1시, 2시, 3시, 나를 어둡게 물들이기로 작정한 밤. 잠을 자지 않는 밤.

 

더는 그럴 수 없다. - 대충 읽을 수 없는 책. 대충 읽으면 이 책의 의미를 알 수 없다. 난해하지 않지만, 천천히 읽으면 마음으로 들어오는 글. 카페 밖 의자에 앉아 있고, 비가 두어 방울 그리고 더 떨어지는 매미 여름, 햇빛 여름.

-->그런데 옮긴이도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외부의 소음과 사건들에 정신이 붙들려 있는 상태라면 발을 들이기가 쉽지만은 않은 책, 멈춰 서서 매 문장의 숨결과 향기, 떨림에 몸을 맡겨야 하는, 잦은 숨 고르기가 필요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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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에도 슬픔에도 아랑곳없이 - 박준의 시를 읽는 마음
박준 지음 / 난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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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에도 슬픔에도 아랑곳없이

박준

 


처음 펼쳤을 때는 내가 원했던 구조가 아니어서 읽지 말까? 고민했다. 서점에서 눈으로 보고 사지 않은지 꽤 되어 펼치고 나서 당황하는 일이 적지 않다. 덕분에 여러 방향의 책을 접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만약 직접 보았다면 사지 않았을 책이 내게 오고, 책 가격이 만만치 않기에 일단은 읽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펼치게 되는.

그런데 역시 박준이다. 사람은 학력으로 나이로 외모로 평가하기에는 진득한 간지러움을 가지고 글을 쓰는 이가 있다. 나에게는 그게 박준이다.

 

일제강점기 시작점에 태어난 시인부터 현대까지 있다간 시인을 순차적으로 나타냈다. 소리내어 읽게 만드는 마법.

 

[호수1, 정지용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려지지만

 

보고싶은 마음

호수 같아서

눈 감을밖에.]

아이들과 함께 시를 외우고, 낭송했다. 외운다는 건 잊혀진다는 거지만, 그래도 외운다는 건 기억하고 싶다는 마음. 아이들은 놀이로, 목적을 이룰 댓가로 외우고, 나는 아! 탄식과 감탄으로 외웠다.

 

언제까지 밖으로 나올지 모르겠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찬란했던 슬픔을 아직은 말로 간직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 마음만으로만 담아둘 수 있게 되어도, 이제 나는 모른 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지 오래된 사람이 되어 있을 게다. 가슴이 쪼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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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몽살구클럽
한로로 (HANRORO) 지음 / 어센틱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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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몽살구클럽

한로로 지음

 

[내 인생에서 아무것도 아닌 짐승이라고. 그러니 더 이상 상처받지 않아도 된다고.] 이게 이 글의 주제이다.

 

상처받은 10대 소녀 4명이 모여 살아보자며 클럽 활동을 한다. 정해진 20일 동안 살아남으면 계속 살아가는 거라며 서로의 삶을 하나씩 밟아간다. 이보현은 살고, 그러다가 한 명은 죽고(하태수), 하태수의 그녀 나유민은 살고, 그러다 나(소하)는 아버지의 가슴에 칼을 꽂고 학교로 달려가며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이렇게도 책이 나오는 구나. 뭐라고 해야 하나. 인터넷에 어느 어린 누군가가 글을 써봤다며 올린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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