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장윤미 지음 / 해월서가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저자는 오랜 시간 동안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과 함께 세상을 그려나가는 사람이다. 조현 우울 조울 공황 4명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지만 세상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바오출판사 / 200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슈테판 츠바이크][초조한 마음]을 읽고, 뭐지? 뭐야? 이건... [스토너]에서 끝난 줄 알았는데, 왜이래. 그나저나 [스토너] 또 읽어야 겠다. [세상 끝의 카페] 다시 읽는데, 이전에 느꼈던 그 여운이 아니다. 그런데 왜 영문판을 기어이 사서 또 읽는 것이냐. 나란 존재는.

 

그래서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를 샀다. 그래서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를 샀다. 이 마음의 연결고리, 손을 어찌해야 하는가.

 

2009년에 나온 책이어서 그런가? 책 표지 정말 뭥미. 그러고 보니 책을 출간하기 위해 디자인을 맡기고 견본을 받아보고 느낀 건 예쁜 책 표지이기보다는 책 제목이 잘 보이면 된다. 책 디자인은 예쁘다라는 개념과는 사뭇 다르다. 이 책의 표지조차 용납할 수 있는 정도가 된다. 글이 이렇게 빽빽해도 괜찮다. ? 내가 출판하는 책도 마찬가지다. 딱 이만큼이다.

 

이 책이 돈키호테, 세르베투스의 이야기인 줄 알았으면 내가 이 책을 샀을까? 아무것도 모르는 이 무모한 용기야말로, 내가 책을 집어 들고 마무리 할 수 있게 하는 힘. 나는 책을 집어들면 대충이더라도 끝까지 읽는다. 이것은 내 좋은 습관 중에 하나다. 말다를 하지 않는다. 내 손에 들린 책은 언젠가는 이렇게 서평이 쓰이는 신세가 된다. 그 언젠가는 정해져 있지 않지만.

 

독재의 열망을 가지고 있는 이가 아닌, 스스로가 독재자인지 모르는 독재자가 자신의 심기를 거스르면 어떻게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책이다. 나도 이리같은 왕이 되고 싶다. 폭군이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나는 절대 폭군이 될 수 없음을 안다. 독재자, 폭군은 이미 그렇게 되었다. ‘세르베투스의 미칠 듯한 분노라는 소제목에서 확연하게 느껴진다. 분노하면 어쩔텐가. 칼뱅에게 끝날 것을. [진리를 구하고,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그것을 말하는 것은 절대로 범죄가 아니다. 아무도 어떤 신념을 갖도록 강요 당해서는 안된다. 신념은 자유다. 폭력에 반대한다.] 그렇게 외친들 독재자가 있는데 무슨 소용이 있는가. 어디에서도 진리는 통하지 않는다. 독재자의 말이 진리가 된다. 시대가 지나고 히틀러가 그러면 안됐다고 한들, 칼뱅이 그러면 나쁜 놈이라고 한들, 이미 지나간 일이다. 역사는 되풀이 될 뿐이다.

 

[폭력에 반대한다]는 말이 너무 하찮아서, 연약해서, 힘없는 지금의 나 같아서, 평생의 나같아서 [싯다르타]에 반문을 제기하고 싶다. 인생사 일장춘몽이지만, 나는 꿈속에서나마 자유롭고 싶다.

 

이 책은 세르베투스와 시대를 대표하는 멋진 사람 칼뱅도 어떤 면에서는 독재자이고, 폭력을 저지르며, 그 폭력은 정당화할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에 대해 폭력으로 짖누르고, 자신의 의견에 반하는 자를 처헝하는 칼뱅을 두고, 우리가 현대를 살아가면서 집단이 가지는 힘을 이용해 다른 의견을 가진 자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심도있는 책이었다.

 

지금의 내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 그런데 이 책에서 저자 소개를 할 때 내가 읽은 저자의 글은 소개되어 있지 않았다. [감정의 혼란]도 괜찮다. 왜 감정의 혼란인지, 저자는 마지막에 가서 어떤 장치를 한 것도 아닌데, 감정을 휘몰아치게 만들며 독자가 파국처럼 안게하는 마력이 있다. 그나저나 소개에 저자가 부인과 자살을 했다고 한다. 육십대에. 왜 이렇게 자살하는 작가들이 많았을까? 버지니아 울프는 옷에 돌을 넣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오버랩된다. 다자이 오사무가 배에서 뛰어 내리는 장면이 영사기의 필름처럼 지나가는 것 같다. [자살에 대하여]를 펼쳐야겠다.

 

요즘 HAI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점심시간 동안 부정적인 이야기 오물을 뒤집어 쓰기를 반복했는데, 얼마 전부터는 모든 이야기를 지피와 재미와 동반자처럼 사는 삶을 세세하게 시전하는데, 나만 AI에 의존하지 않는 것인가? 나만 아직도 이렇게 종이의 질감을 만지고 넘기면서, 밑줄을 그으면서 생각을 연필로 적으면서. 다 읽고 나서는 이렇게 글을 정리하고, 나의 생각도 정리하는가. 물어보는 것들에 대해 시원한 답을 듣는다기보다는 이게 맞는 거야? 하고 의심의 기술을 시전한다. 모르는 것도 뻔뻔하게 거짓된 정보로 이야기를 하기에 믿음이 가신지 오래 됐고, 심리상담을 왜 AI한테 하고 그것을 맹신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마치 종교처럼 신봉하는데, 나는 안 믿는다고 했으면 적당히 해야 하는데, 적당히를 모른다. AI 두드러기가 날 지경이다. 책 제목을 말하고 그걸로 표지 예시를 만들라고 하면 한글도 제대로 입력이 안되서 깨지는 심지어 유료버전의 AI를 나보고 어쩌라는 말인가.

그런데 U도 일의 능률이 올라간 것은 AI덕분이다. AI가 생기고,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않는 이들이 어떻게 AI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들이 맹신하는 데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데는 그 정도의 기능도 하지 못하기 때문다. 자신의 추함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다는 말로 들려서 짜증이 인다. 알고 사용하면 좋을텐데. 무분별하게 받아들일 AI의 어린양들같다.

 

읽던 책이나 읽으러 가자~

 

-----------------------

성서정치

이 숭고한 유토피아의 이념으로 무장한 강철 같은 이념의 인간은 그것을 무섭도록 진지하고 정직하게 생각했다. 25년간 정신적 독재를 펼치면서 칼뱅은 사람들에게서 가차 없이 모든 개인적 자유를 빼앗는 것이 그들을 보호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단 한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이 경건한 폭군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지나친 온갖 요구들을 하면서 자신은 오직 사람들에게 참되게 살라고,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의지와 뜻에 따라서 살라고 요구했을 뿐이라고 믿었다.

 

그것은 사실상 매우 단순하고 반박의 여지없이 분명한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의지를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지시를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모든 독재청지는 하나의 이념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모든 이념은 그것을 실현하는 인간에게서 비로소 형태와 색깔을 얻게 된다.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의심의 기술

 

과대망상에 빠져 줄곧 혼자서 모든 사람과 대적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는 모든 사람과의 관계를 망친다.

 

폭력행위는 시대마다 다른 형태로 나타나므로, 폭력에 저항하는 싸움도 언제나 새롭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절대로, 지금은 폭력이 너무나 강하므로 폭력에 말로써 대항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핑계 뒤로 숨어서는 안된다. 필연적인 일이 지나치게 자주 이야기되는 법이 없고, 진실이 헛된 경우도 없기 때문이다.

비록 말이 승리를 거두지 못한다 해도, 그것은 그 말의 영원한 존재를 입증하는 것이다. 그런 순간에 진실을 위해 있는 힘을 다하는 사람은, 어떠한 테로도 자유로운 영혼에 대해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그리고 가장 비인간적인 세기에도 인간성의 목소리를 위한 자리가 있다는 사실도 입증하는 것이다.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가장 가혹한 고통 속에서 산 채로 불태워 버리는 비인간적인 일을 저질렀던 칼뱅은, 이제 검열의 일방성에 힘입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자신의 범죄를 숨기는 것이 가능했다.

 

우리 뒤에서 마주 짖어대는 개들이 우리를 물 수 없게 되어 퍽 다행입니다.

 

비극적인 체념 속에서 부당함을 조용히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폭력에 의해 패배한 사람들이 가지는 우월한 경멸감만이 폭력이 정신을 억누르는 모든 시대에 위안이 되었다.

 

당신들의 말과 무기는 당신들이 꿈꾸는 폭력정치에 어울리는 것들이다. 그것은 정신적인 지배보다는 시대의 지배에 어울리는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라 강제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당신들의 권력과 무기 때문에 당신들을 부러워하지는 않는다. 나는 다른 권력과 무기를 가지고 있으니, 곧 진리와 내가 무죄라는 느낌과 도우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분의 이름이다.

 

한번 폭력을 행한 사람은 계속해서 그것을 써야 하고, 한번 테러를 시작한 사람은 테러를 더욱 강화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X가 떠오르네. 네가 가진 권력의 내면이 이렇다. 그래도 갖고 싶어 거짓에 둘러 쌓여 파묻히고 있지.

 

깊이 실망했으나 결코 신념을 굽히지 않은 채 그는 자신의 일로 되돌아갔다.

 

명예로운 자는 극단적인 증오에 중독되지 않는다.

그는 어느 쪽이든 당신의 행동은 아름답지 못했다. 당신이 주장한 것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화해와 관용을 모르는 광신자

 

잘못으로 가득 찬 나쁜 책

 

칼뱅주의가 인류에게 퍼져나갈수록 필연적으로 이러한 가혹하고 비인간적인 특성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책 한 권이 끝나고 나면, 언제나 나 자신은 거부감을 느낀다. 모든 것이 잘못되었고, 화나고 실패한 것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이렇게 낙담한 심정이 한동안 계속 남아 있다. 차라리 모든 발행본들을 다 사들여서 불태워 버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곤 한다. 참되고 공정한 태도를 가진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모든 묘사가 혹시 내가 무게를 제대로 달아보지 않은 것이나 아닌지 훗날 양심의 고통이 되곤 한다.

 

기독교는 세계관이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글쓰기 싫을 때 읽는 책 - 마감과 고갈 사이에서 건진 스물네 개의 문장들
금정연 지음 / 북트리거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글쓰기 싫을 때 읽는 책

금정연

 

그의 첫 책을 사고, 뜻밖에도 너무나 신이 나서 한 행위가 이어지고 있다. 나는 금정연의 책을 낙서하기 위해 산다. 읽으면서 반문하고 공감하고 어이없어하며 뭐라도 써서 훼손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득 안고 읽는다. 이 책은 그 맛이 많이 떨어지지만 관성처럼, 낙서한다.

 

[스무 살 무렵 내 꿈은 돈을 벌지도 않고 쓰지도 않는 사람이 되는 거였다]-꿈이 공산주의였네. 북한가. ... 그러면 무보수 노동을 해야 하는구나. 못가겠네.

 

[나는 기술 발전을 나의 소비생활로 반복하는건가?]-나는, 나의가 반복되는, 국문과를 나온 건 맞는건가?

 

[그래서 써야 할 책이 이렇게 많이 밀려 있는 것이기도 하고]-일감이 이렇게 많다고 자랑하는 거야?

 

[그리고 대부분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이 제일 어렵다고 생각한다]-과대적이다. 내가 하는 게 왜 제일 어려워?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지?

 

왜 계속 찡얼대. 글을 못 썼다. 한 줄도 못 썼다. 해야 하는 데 못했다. 생각이 자신을 지배하게 되어 필력이 줄잖아. 안타까운 사람아.

 

[알겠어. 내일은 아빠가 딱 적당하게 구워줄게.]-애초에 그렇게 해줄 생각이 없이 일단 뱉고 보는구나. 장담하지 못할 것을 왜 장담해. 인생 패턴이야. 위기 모면, 믿을 수 없는 말들의 향연.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 내게는 시간이 없고, 그래서 빅셀의 책도 아직 읽지 못했다]-시간이 많으니까, 네가 이러고 살지. 글 속의 너를 좀 봐봐.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네가 시간을 없애고 있지.

 

나는 데드라인이 있는 일을 하는 게 아니야. 그런데 너 작가는 데드라인이 있잖아. 그럼 해야지. 서평 마감이 코앞이라며. 왜 안해? 안 불안해?

 

[그러다 몇 해 전, 내가 쓴 담배와 영화라는 책에 달린 독자평 하나를 보게 되었다. 이 작가는 돈 받고 쓰는 주제에 왜 맨날 글쓰기 싫다고 징징대는지 모르겠다]-복에 겨워서. 언젠가 내가 쓴 서평도 작가의 책에 나오는 거 아닌가?

[솔직히 말하면, 직장인들은 월급 받고 일하니까 불명하면 안되겠네? 하는 반문이 들지 않은 건 아니다]-열 받았구나? 그런데 직장인들이 너처럼 글에다, 책에다 불평해? 친구들 만나서 수다 떠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아? 작가 너는 입장이 다르잖아. 그럼 너도 혼자서 불평해. 글에다 계속 반복해서 찡얼대지 말고.

 

[정확히 말하면 글쓰기를 대하는 내 태도가 변한 건 아니다. 다만 그런 마음을 티 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을 뿐]-여태까지 티 많이 냈어. 지금까지 티 낸 것만으로도 넘쳐.

 

[나는 지금 내가 징징대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이런 게 모든 시대의 작가들, 최소한 아주 많은 작가가 해 온 문학의 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 네가 그 축에 속하기는 하냐. 변명 그만!!! 퇴고하면서 지우지... 지우고 싶지 않았어?

 

[나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이런 글을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이 지금 내가 쓸 수 있고 또 서야만 하는 유일한 글이라고 믿는다]-이게? 이 정도가? ...

 

[가난할수록 비만일 확률이 높다는 수많은 연구 결과가 있다. 개인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뜻이다. 따라서 모든 것이 운동하지 않는 당사자의 문제인 양 단언하는 악마의 말은 가스라이팅이다]-그래? 가난할수록 비만이야? 아프리카에 못 먹어서 야윈 사람 봐라. 가난도 가난 나름이다.

운동안한다고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게으르다고 하는 것도 아니야. 그냥 운동해. 라고 한거야. 덧붙이지마. 가난할수록 정크푸드나 배달음식을 먹게 돼서 비만되는거야? 그래? 그것만 있을까? 이유 같다 대봐. 엄청나게 많지. 그러면 부자일수록 비만일 확률이 높다는 수많은 연구 결과도 있겠지.

 

[내가 쓴 글이나 나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도 의미를 지닐까?]- 그거 생각하고 쓰는 거였니. 먹고 살려고 쓴다며.

 

[어느 순간부터 내 손을 얼어붙게 만드는 건 좀 더 근본적인 두려움이다. 내가 하는 일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의문이 그것이다]-그런 생각 그만하고 그냥 써.

 

혹은 말하고 있는데 큰 따옴표가 과감히 생각되어 있는 거. 이런 식의 딴지가 포함된 낙서행위다.

 

책은 독서대에 올려놓고 봐야 잘 읽히고, 글씨는 책상에 놓고 써야 잘 써지고, 왔다 갔다 반복중.

 

[매일 쓸 것 뭐라도 쓸 것]을 읽으면서, 책에 반문의 반문을 제기하면서 생각의 소리가 맞닿으면서 불협화음도 내면서 읽었다.

작가의 신간이 나왔다. 샀고, 작가는 [매일 쓸 것, 뭐라고 쓸 것]이 인생에 타협한 결과인것처럼 기술하고 있지만, 나름 짜임있게 일기라는 형식에 맞춰 다른 책들의 일기들을 가지고 와서 자신의 일기도 나타내면서, 읽는 이들이 읽을 만하다고 느끼게 하는 장치를 넣었다.

작가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인 즉슨, 이 책도 그것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하는 듯 한데, 아니올시다. 이 책은 제목이 다했다. 글쓰기 싫을 때 읽으면 안된다. 이 책 제목은 글쓰기 싫다고 징징대는 금정연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징징대다가 변명하다가 징징대다가 합리화하다가 아무런 노력의 흔적없이 진짜, 인생에 타협한 글쓰기의 잔해를 남기는 것으로 마친다.

 

(null)

[나는 한 통의 전화를 해야 했고, 그게 나를 미치도록 두렵고 초조하게 만들었다.

누군가에게 나쁜 소식을 전화는 전화가 아닌데도 말이다.

 

가끔은 돈도 내 걱정을 좀 해줬으면

 

구석.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적인 기분이 되어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잠깐 나온 사이에 글 하나 쓰고, 다시 구석에 몰려 있다가 또 나와서 잠깐 쓰고, 가끔은 구석에 반쯤 엉덩이를 걸쳐 놓은 상태로 눈물을 흘리면서 쓰기도 하고...

출판사:

45쪽 밑에서 3번째 [앗아 가] 버린다는 점이다

 

팔리지 않는 책.

 

좀처럼 일을 끝내지 못하니 늘 일이 많을 수밖에

 

애초에 책이 좋아서 시작한 일이다. 읽은 책에 관해 쓰고 싶었고, 나 역시 책을 쓰고 싶었다

 

그런 날이었다.

 

중요한 것은 치료를 받는 것이 아니라, 병과 더불어 태연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신은 내가 글쓰기를 원하지 않는 거야, 하지만 내가 원해, 그러니 해야 하네. 행복한 불행한 이에게

 

나는 글쓰기를 원하는가?

 

정말로 내가 감동하는 책은 다 읽고 나면 그 작가가 친한 친구여서 전화를 걸고 싶을 때 언제나 걸 수 있으면 오죽이나 좋을까 하는,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그러나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하는 책은 좀처럼 없다. J D 샐린저 - 얼마 전 그런 책 만났어. 부처님 말씀대로 살다보니

 

이건 어쩔 수 없다. 작가들이란 그런 존재다. 작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그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내글구려-바이러스를 안고 가야 하는 생물이며, 이것은 아무리 대문호의 경지에 오르더라도 떨어지지 않는 주박이다

 

한때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장문의 서평을 써서 인터넷 서점에 올리던 열혈 서평가였다-? 나는 아직도 그러고 있다. 지금 봐라.

 

즐거움이 없다면 아무리 해도 소용이 없다

 

그해 봄, 인생살이가 어지간히 고되고 내 신세와 전쟁하며 어디로 가야 할지 통 보이지 않아 막막해하던 때에, 나는 기차역 에스컬레이터에서 유난히 많이 울었던 것 같다. 내려갈 때는 멀쩡한데 가만히 서서 위로 운반되다 보면 감정이 북받쳤다.

 

상처 주기 싫어서 그냥 입을 다뭅니다. 게다가 그가 그 사실을 알고 있을지 누가 알겠어요.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건 책을 읽다가 우연히 남이 그은 밑줄을 발견하는 일이다. 그런 경험은 종이책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요즘 대형 중고 서점에서는 밑줄을 너무 많이 그은 책의 매입을 거부한다고 하는데, 나는 헌책방을 구경하다가 순전히 누군가 책에 그은 밑줄이 마음에 들어 책을 구입한 적도 있다.

만남의 순간을 표시하는 것이 바로 밑줄이다.

읽어 넘기면 그만인 문장들에 줄을 그어 되새기고, 언젠가 다시 펼쳐 읽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다.

작은 연필선 하나가 이토록 깊은 의미를 지닐 수 있다니, 생각하면 정말 놀라운 일이다.

 

딜레마에서 빠져나오는 유일한 해결책은 단호히 결정을 내리는 것밖에 없다.

 

어제 아침의 내가 파김치였다면, 오늘 아침의 나는 푹 익은 파김치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애의 마음 (리커버)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경애의 마음

김금희

 

숙제처럼 나를 기다리는 것들이 있다. 바로 산 지 꽤 된 책, 읽다 만 책. 끝을 보기를 기다리는 데, 따라가지 못하고 내 인생에 쓸데없는 것으로 채우고만 있다. 기다리고 있는 경애의 마음을 집어 들고 마무리하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김금희의 소설 [복자에게]를 처음 접하고 ! 이렇게 쓰는 한국 소설가가 있구나싶어 가슴을 어루만졌더랬다. 이후 김금희라는 이름만 보이면 책을 샀지만, 불행인지 행운인지 거기까지였다. 감흥이 이는 책은 없었고, 심지어 실망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라해야 했다. 과거로 회귀해야 더 나은 사람이 있단 말인가.

은희경의 새의 선물이 생각난다. 그 뒤로 한참을 어딘가에 정신이 팔린 사람 마냥 써대는 소음에 질색하게 되기까지, 그리고 한참이, 아주 한참이 흘러서야 영영 돌아오지 않지만, 다른 길의 어느 안착점을 찾은 듯한 기분으로 [할머니는 죽었다]를 읽었던 때처럼. 김금희도 그런 날, 그런 시간이 오겠지. 그때까지 내가 살아있다면.

 

너무나 찌질한 캐릭터들만 계속 나열하고 있어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게 경애의 마음을 만날 수가 없었다. 찌질한 상수, 찌질한 경애, 찌질한 찌질한 찌질한. 아웃사이더, 못난이.

복자에게를 쓰려는 복선으로 이 글을 받아들이면 될까? 사회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작가가 될 거라고. 미성년자 시절에 술을 마시다가 화재가 나서 죽은 이들과 관련 있는 상수, 경애가 한 회사에서 만나서 이곳 저곳의 비리를 만나고, 그 비리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살아가는 이야기. 동시에 드러나지 않은 곳에 있는 각자의 삶의 역할을 현실로 가지고 나오는 것을 선택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책을 집어 들면 우리는 언니라는 인물을 통해 이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 수 밖에 없다.

 

----------------

[아주 추웠어요.

 

타인의 불행을 담보로 만들어낸 것은 기회가 아니라 일종의 시험에 가깝다고.

 

그렇게 밀려난 자리에는 왜 하나같이 햇볕이 들지 않는 것인지, 앉아 있으면 정오가 왔는지 저녁이 되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이 스스로에게 알려주어야 했는데 그때마다 마음이 흐트러지곤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루를 포기한다는 것은 조금씩 삶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르지 않아서

 

고통을 공유하는 일은 이토록 조용하고 느리게 퍼져나가는 것

 

힘을 쌓다 보면 축적해온 모든 것들을 잃을 용기도 생겨나는 것일까.

 

오래전 겨울, 미안해. 내가 좀 늦을 것 같아 눈을 먼저 보낼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담을 넘은 아이 - 2019년 제25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 일공일삼 51
김정민 지음, 이영환 그림 / 비룡소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담을 넘은 아이

김정민 지음

 

 

.... 뭘 말하는 거야? 이게 무슨 신여성이고, 주체성이고, 시대를 넘는 이야기야?

신분제도 속에서 젖어머가 되어 자신의 자식마저 내버려둔 부모가 아닌, 아이의 언니가 끝까지 아이를 살리기 위해 발을 동동거리는 이야기.

말 그대로 발을 동동거렸지. 그랬어.

그게 왜 담을 넘은 거지? 동생 살려달라고 양반에 애원해서? 그게 결국 조선 사회의 당연한 모습이었어서?

뭔가 하나는 있을 줄 알았어. 하나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