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직 쓰지 않은 것 ㅣ 문학동네 시인선
최승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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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직 쓰지 않은 것

문학동네 시인선 001-199 시인의 말 모음집

 

여러 시인의 ) 글들, 그래서 조금은 편한 듯하면서도, 너무 했다 싶기도 하고. 그런데 이 책을 낸 의도는 뭘까? 뭐지?

어디 괜찮은 글 있나, 살폈다. 정작 시인의 성향만 진득하게 파악하고 말았다. 망상, 찌질, 독단, 거품. 시는 거울이다.

그리고 내 편견도 본다.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시인 이름을 보고 다시 찬찬히 읽는다. 기회의 불균형을 내가 먼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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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자신이 왜 피는지 모른다. 모르고 핀다. 어쩔 수 없이 아름답다.

 

올해로 마음 다섯이 되었다. 요즘은 구름이 너무 자주 얼굴을 만지러 온다. 그 눈이 빨갛다. 나는 내가 없는 곳으로 갈 것이다. 소소한 바람에도 필히 흔들릴 것. 그러나 목숨 걸지 않을 것. 나무 같을 것. 또한 마무 같이 않아서 당신에게 갈 것. 입이 없을 것. 입이 없으므로 끝끝내 당신으로부터 버려질 것.

 

상처를 받은 사람이면서 자신을 힐난하는 데 그토록 많은 시간을 바친다. 묻지 않고 오래 생각했다. 아무에게도 묻지 않고 혼자 오래 생각해 기어이 틀린 답을 구하는 어리석은 산수였다. 내가 아직 쓰지 않은 것들이 그립다.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쓰고 싶었다. 입 벌리는 일을 조금 줄이고, 귀 기울이는 일을 조금 늘렸다.

 

마당 가득 가난이 널려 있었다. 나는 삶이 턱없이 남루해 보일 때면 심배나무 아래 나를 세워놓고 그 텅 빈 마당을 떠올리곤 했다. 나쁜 습관이 있다. 중요한 것을 팔아서 덜 중요한 것을 사버린다. 참으로 무익했다. 어쩌면 나는 하찮은 것에 매혹된 자였고, 이 매혹이 나를 매일매일 놀라게 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세상의 중요한 약속들을 어기거나 포기하고 많은 것들과 결별할 때 시가 써졌다.]

 

여러 시인의 말 중 마음에 들어온 것들을 조합해 본다. 글이라는 건 오묘하고, 왜 피는지 몰라도 아름다워 마음을 빼앗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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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 ㅣ 난다시편 9
허수경 지음 / 난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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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

허수경

 

누군가에게는 그렇고,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유고 시집, 타향살이, 너무나 한국적. 시도 나이를 먹고.

 

만일 내가 나보다 먼저 가고 싶다면. 이 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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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ㅣ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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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비둘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2026년 10월 The April Bookclub

 

어떤 이유에서인가 이 책을 선택했다. 심혈을 기울이고, 기억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북클럽 책으로 선정을 하는데, 이제는 잠시 쉴 때가 되었나보다. 왜 이 책을 골랐는지 기억은 나지 않고, 책을 읽는 내내 너무나도 잘 골랐다는 생각이 든다. 읽어서, 읽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아주 오래전 좀머씨 이야기를 읽었다. 읽었었다.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작가의 향수라는 책이 유명하다고 하는데, 좀머씨 이야기에 와!까지는 아니었기에, 파트리크 쥐스킨트를 기억에 담지 않았었다.

 

그런데 왜 이 작가의 글이었을까?

 

아파트에 현수막이 붙은 데 이어, 방송이 연일 지속되고 있다.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내용이다. 수가 많아지고, 사람들이 지나 다녀도 도망가지도 않고, 어떤 비둘기는 뚱뚱해서 못 날게 되는 건 아닌가 싶은 지경이다. 수많은 똥이 아파트의 벽과 바닥을 훼손하고 있다. 그리고 나도 먹이를 왜 주지 말아야 하는지 경각심을 가지지 못한 하나의 인간이었다.

 

주인공 ‘조나단’이 비둘기를 만나면서 일어나는 일을 다루고 있는데, 조나단은 주체적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인물이기보다는 누군가에 의해 수동적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인물이었다.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곧 아버지도 집을 나간다. 어린 여동생과 얼떨결에 남쪽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었다고 대사 아닌 글이 나온다. 갑자기 아저씨의 농가가 등장한다. 농사를 짓는 것도, 군대에 가는 것도, 결혼을 하는 것도, 하라는 대로 했다. 그러다가 결혼을 했는데 4개월 만에 아내가 아이를 낳고, 그것도 모자라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나서 도망을 간다. 그때 조나단은 처음으로 선택이라는 것을 한다.

자금을 정리해서 그동안 조나단을 수동적으로 지시하던 대상에게서 벗어나 장소를 옮긴다. 그곳에서 은행경비로 취직을 하고, 자신이 선택한 집에서 오랫동안 세를 살다가 이제 조금 있으면 남들에게는 남루한 목욕탕도 없는 곳이지만, 자신에게는 호텔같은 아늑함을 주는 집의 잔금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데 그 행복을 비둘기 한 마리가 뿌리 채 뽑아버린다. 현관 앞에 있던 비둘기에 삶이 끝날 것 같은 공포를 느껴, 다시는 이 집에서 살 수 없을 거라고 결단을 하고, 짐을 싸서 나간다. 그리고 비둘기를 시작으로 머피의 법칙처럼 되는 일 하나 없는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자려고 간 호텔은 더할나위 없이 최악이었다. 조나단은 죽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불현 듯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집을 나오면서 관리하는 로카르 부인에게 비둘기로 인해 똥이 많다고 말했었는데, 돌아간 집은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말끔하게 치워놓았고, 비둘기가 들어오지 못하게 창문도 닫아 있었다.

 

작고 길쭉하고, 100쪽도 안되는 데 14800원이나 한다. 글 어디 하나 이상하지 않은 게 없는데, 기가 막히게 자연스럽다. 책 표지 또한 좋다. 내가 만든 책도 이렇게 표지에 정성을 들이고 싶다.

 

[불안한 세상 속의 안전한 섬 같은 곳이었고, 확실한 안식처였으며, 도피처였다.] 그런 안식처, 도피처가 한순간에 어떻게 변할 수 있는가. 인간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이것은 비단 비둘기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니다.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어제까지 사랑한다고 말하며 서로의 감정을 나눈 연인과 헤어져야겠다는 생각이 겉잡을 수 없이 일기도 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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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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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시끄러운 고독

브후밀 흐라발 지음

 

글자 하나하나가 밀착되지는 않는데, 전체 줄거리로는 분명 생각해 볼 만한,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주제를 가지고 있다. 주제가 전부인 것 같은데, 그것만으로도 괜찮은 것 같은. 필력은 어딘가 이상하기도 한데, 짜임은 괜찮은 것 같은. 읽는 내내 안이 시끄러웠고, 쉬이 고독하지 못했다.

 

글을 압축하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압축기로 책을 압축하는 업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탸, 거기에 나치 시대의 배경이 들어가 있고,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사랑하는 행위를 가진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제 3자의 역할을 독자가 하고 있다는, 무언가 뷰로 바라보는 화자가 있을 것 까지 정해놓은 듯한 느낌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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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문턱까지 다다른 남자의 모습이다. 그것들은 국수 그릇처럼 여기, 우리 곁에 놓여 있다.

 

단단히 동여맨 한 보따리의 개념에 기꺼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살고 있다. 우리는 올리브 열매와 흡사해서, 짓눌리고 쥐어짜인 뒤에야 최상의 자신을 내놓는다.

 

독서로 인해 영원히 내 잠을 방해받고 독서로 인해 섬망증에 걸리기 위해서다. 한번 책에 빠지면 완전히 다른 세계에 책 속에 있기 때문이다. 내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는 건, 가방에 책들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녁이면 내가 아직 모르는 나 자신에 대해 일깨워줄 책들. 그렇게 나는 스스로에게 소외된 이방인이 되어 묵묵히 집으로 돌아온다. 내 지하실은 언제나 사각대며 갉아먹는 소리와 눈짓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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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에 있다는 것
클레르 마랭 지음, 황은주 옮김 / 에디투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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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에 있다는 것

클레르 마랭 지음

황은주 옮김

 

사놓고 읽지도 않고 있다가, 이유가 있어서 부리나케 읽는 경우가 있다. 이유가 있어도 읽지 않았던 날들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건가. 시간과 공을 들여 밑줄과 글을 써가며 읽지 않았다. 그만큼 남는 것도 적었다. 정리가 되지 않은 기분이다. 책이 많은 양을 담으려고 동분서주하다보니 어수선한 것에 내 마음이 더해져 배가 되었다.

 

제자리에 있다는 건 뭘까? 외향적이어서 밖에 나가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집에 틀어박혀 있는 사람은 제자리에 있는 걸까? 머릿속으로 공상을 하고, 책을 읽으면서 향유한다면 과연 밖에 나가지 않았다고, 제자리에 있다고 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제자리에 있다는 건 좋을 것일까? 나쁜 것일까? 마치 외향적이지 않은 사람은 부족한 사람인 냥 말하는 것 같다. 외향성과 내향성이 좋고, 나쁘고를 논하게 되는. 범주일까? 제자리는 나쁜 걸까? 우리는 끊임 없이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할까? 매일 똑같은 루틴을 밟으면서 사는 사람들을 경시해야 할까?

 

내가 아는 K는 매우 루틴한 인간이다. 루틴하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매일 새벽 5시 30분에 기상한다. 일어나서 가족들의 음식을 차리고 짐으로 간다. 정해진 순서에 맞춰 운동을 하고 정해진 장소에 차를 파킹하고 출근은 한다. 출근을 해서 옷을 갈아입고 아침 운동을 20여분 한다. 그리고 마치 루틴이 없는 인간처럼 시간을 허비한다. 그리고 퇴근 후에 사람들을 만나 술을 한잔하고 귀가한다. 그런데 K는 여행을 좋아한다. 사람들과의 모임도 좋아한다. 모임이나 여행이 없을 때는 루틴 생활을 하지만, 여행이나 모임 중에는 이 루틴을 과감히 벗어던진다. K는 제자리에 있는 걸까? 그렇지 않은 걸까?

 

제자리에 있기 위해 우리는 집을 원한다. ‘저 많은 아파트 중에서 내 아파트는 한 채도 없네’ 라고 스물 여섯의 나는 버스 타고가며 중얼거렸다. 왜 우리는 나만의 공간을 원하는가? 그것이 왜 들어선 카페의 한 구석 자리일 수는 없고, 정해진 네모난 감옥 이어야 하는가? 중요한 것은 내 안의 자리를 만들고, 그 안의 소리를 듣는 것인데. 그것은 어디에서 들을 수 있을까?

 

나는 정리된 곳, 질서정연하게 고독을 즐기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머리가 명료해진다. 어수선할수록 내 마음 같아 짜증이 인다. 나는 그런 인간과 오랜 시간을 살았다. 남편이라면 내가 선택한 것이니 어찌할 수도 없다. 자식이라면 내가 배 아파서 원해 낳은 건데 뭐라 하기도 그렇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닌데 이리도 나를 힘들게 한다는 게 견딜 수 없다. 그런데 하는 행위마저 무질서하다. 바로 여기에서 그녀와 나의 간극이 한없이 벌어진다. 제자리에 있다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모든 것의 무질서를 몸소 보여주는 그녀의 행위가 이 책의 본질을 더 파고들었다.

 

그래서 제자리에 있다는 건 어떤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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