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소한 삶 - 적은 소유로 깊은 향유를 살아가는 사람들
스콧 새비지 엮음, 강경이 옮김 / 느린걸음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간소한 삶

스콧 새비지 외 글.

 

2026년 9월 The April Bookclub

 

약 300여 쪽으로 구성된 책 한권을 읽으면서 몰입도는 마치 여러 책을 읽는 듯이 바뀐다. 처음 읽을 때는 너무 재미있고, 감명 깊게 읽는다. 한 번에 다 읽지 않는 나 같은 경우, 읽다가 내려놓고 며칠이 지나 다시 책을 펼치면 영 머리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다가 드문드문 페이지를 넘기다가 또 어느 순간에는 몰입하는 듯 하다가 책을 마친다.

 

종교 이야기가 30퍼센트 정도 차지한다. 간소한 삶을 살기 위해 전자제품, 문명은 버릴 지언정 종교는 꼭 끌어 안아야 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절절하다. 고정관념, 짐도 내려놓으면 좋았을 텐데. [그것이 복음서의 뜻과 초기 교회의 본보기를 제대로 따른 방식이라고 생각한다]-간소한 삶을 사는 이유가 종교 교리를 따르는 것 중 하나인가. 그럼 간소한 삶을 사는 것은 자신의 종교를 믿는 한 행위인가. 종교라는 것 자체가 사람을 의문 없이, 생각 없이, 그저 하는 행위자로 만든다는 것을 모르는가. 문명을 받아들이지 말고 과거로 회귀해야 한다고 열 번을 토로하는 것이 어불성설이고, 불일치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인지 모른단 말인가. 나도 잘 모르겠다. 나는 그저 간소하게 사는 것, 그것이 알고 싶다. 그래서 종교 이야기에는 두 눈을 감았다. 글쓴이들이 종교에만 눈을 떴다면, 누군가는 종교에만 눈을 감는 이도 있어야지.

 

------

[좋은 삶을 살기 위해 중요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이것이 필요한가? 필요하다면 무엇 때문에 필요한가?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기술의 이점을 말하고 있는 걸까? 우리는 그 시간에 무엇을 얻었는가?

 

혼자서 또는 소수의 사람들 속에서 좀 더 고독하게 지낼수록 더 넓은 세상의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하는 경향이 있다. 창조적인 인간의 생각이란 외로운 시골길을 걸어가는 법이다. 아이들이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스스로 찾아낼 시간을 빼앗았다. 사람은 무리 지어있을 때 쥐떼처럼 행동하며 서로를 죽이려 든다. 권력이라는 대형전함을 멈출 방법은 없는 것 같다. 스스로 침몰하기 전까지는.

 

한 가족이 그렇게 산다고 해서 뭐 그리 대단한 변화가 생기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쏟아진 젤리 한 방울을 닦기 위해 바닥 전체를 문지르는 것과 같다. 표백제로 바닥 전체를 벗겨내기 전에 먼저 비누를 조금 묻혀 가볍게 문질러 보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충분히 그렇게 살 수 있으며,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당신의 손과 발을 움직여라. 언제나 무엇이든 지금 시작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그냥 좋은 일.

 

건강은 말 그대로 온전한 전체로 있는 상태이며 치유는 온전한 전체로 만드는 일. 현재의 의료산업은 에너지의 절반을 검사에 쏟아 붓는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혹시 질병이 잠복해있거나 서서히 퍼지고 있진 않은지 알아보기 위해서 말이다.

약을 먹을지 말지 대단히 신중하게 고민하는 이유는 한 번 약을 먹기 시작했다가 말려드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귀앓이 치료약을 하나 먹었다가 그 약으로 생긴 부작용들을 치료하기 위해 약을 두 개 먹게 되고, 결국 약을 끊고 나서는 귀앓이와 부작용이 모두 재발하는 상황을 한두 번 경험한 게 아니다.

 

새로운 것에 무턱대고 환호하느라 고민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현실적인 또는 깊이 있는 구조적 분석 따위를 하려 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기술을 접할 때 질문을 하지 않는다. 그냥 기술을 흡수하고 일종의 기계 인간이 되어 더 큰 기계를 위해 어느 때보다 열심히 일한다. 이것이 비극이다. 그런 사람들은 군중의 맥박 속에서 삶의 가치를 느끼려고 헛되이 애쓰는 사람이다.

그것도 대게 가장 저급한 취향에 맞춰 방송을 편성했다. 그에 따라 도덕적 기준도 급속히 격하되었다. 대다수 프로그램은 건강한 도덕적 풍토를 좀먹는 단순 오락물에 불과했다. 부모로서 우리가 텔레비전을 집에 들인다면 가장의 자리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것은 아이들을 양육할 우리의 책임을 저버리는 일과 다름없다. 라디오를 끄고 침묵을 되찾았다. 정적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알게 되었다. 우리는 힘닿는 한 그 기술에 대해 토론하고 저항하고 도전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서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당하는지를 잘 의식하는 것이다. 해로운 것들을 머리하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세상에 영향을 미칠 만큼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유지해야 한다.

 

나쁜 삶에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중요하다. 다른 사람을 좌지우지할 권력을 갖는 것, 가능한 한 많은 물건을 모으는 것, 적에게 복수하는 것, 그다지 인간답지 못한 삶의 고통을 잊기 위해 이런저런 것에 중독되는 것.

광고를 보면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기계를 소유하는 일처럼 보인다. 기계와 이야기하고, 기계를 사들이고, 사용법을 익히고, 기계를 관리하고, 그 기계를 내다 버리고 새 기계를 사들이고 또 사들이는 일에 당신 인생의 몇 퍼샌트를 쓰고 있는가? 아마도 대단히 많은 시간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많은 시간을 어디에서 가져왔을까? 비인간적인 공장에서 몇 푼 안 되는 일당을 받으며 곧 유행에 뒤떨이질 수명이 짧은 놀라운 기계들을 만드느라 땀 흘리는 수많은 사람의 삶.

오랫동안 기계와 이야기하며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필시 그러다 미쳐버릴 것이다. 지난 100년간 소비의 무아지경에 빠져 기계를 사들이느라 우리의 아이들과 가족, 언덕과 하늘과 물을 먹어 치웠으며, 학교 교육은 끊임없는 소비를 가르치는 교회가 되고 말았다.

 

당신이 어리고 무력했을 때 부모님이 당신을 돌본 것처럼, 연로하신 부모님을 돌볼 책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기계는 그런 책임 따위는 알지 못한다. 당당하게 인정하라. 당신의 부모와 조부모가 대단히 훌륭한 사람이 아니었더라도 그들이 살아온 삶을 가려야 한다. 그들이 빚은 흙에서 당신이 나왔으니 그들을 부정하는 것은 당신을 부정하는 것이며, 그로부터 좋은 결과가 나올 리 없다. 인간다운 삶을 사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답게 살려고 노력하고 그에 따르는 무거운 대가를 감당하는 것이다.

 

그는 주체가 아니라 대리인일 뿐이며, 마찬가지로 많은 학교 선생들도 다른 사람의 명령을 옮기는 대리인일 뿐이다. 자신의 말에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말에 따라 사는 사람이다. 그건 기계도 할 수 있지 않은가.

 

당신의 것을 소중히 여기고 보호하고 지켜라. 외부 사람들의 평가에 흔들리지 마라. 당신의 가족이 최고인지 최악인지는 언론과 복지 관료들이 말하는 것만큼 중요하지 않다. 내 영혼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기꺼이 포기하는 삶. 무엇이 중요한지는 스스로 찾아야 한다. 삶으로 쓴 글이니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든 자신의 삶으로 이해하고 응답하게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가오 옌 그림, 김난주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양이를 버리다

무라카미 하루키

 

2026년 7월 The Arpil Bookclub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가이다. 그리고 달리기를, 해외에서 글쓰기를, 번역을 좋아하는 인물로 알고 있다. 한 가지를 꾸준히 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의 에세이는 어떤가?

고양이를 어떤 이유에서인지 버리고 집에 왔는데, 집에서 고양이가 기다리고 있다. 이는 하루키에게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고, 아버지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아버지는 징병되어 일본군으로 중국으로 가서 전쟁을 하다가 돌아오는데, 나는 자꾸만 다른 곳으로 기억을 옮긴다. 년도를 자꾸 보게 된다. 자꾸만 본다.

그 시기는 일본이 한국을 속국으로 부리며 여러 나라와 전쟁을 하면서 위안부를 곳곳에 두었던 시기였다. 하루키의 아버지가 초등학생 아들에게 전하는 자신의 군 시절의 담담한 가해의 기억, 그것이 전부였을까? 군에서 시켜서 해야 했던 학살이 어떤 이유에서든 정당화될 수 있을까? 인간이란 어떤 존재라는 말인가. 너무도 가벼울 것 같은 에세이가 감당하기 어려운 짐이 되어 한동안 어리벙벙했다.

 

곧 일본에 간다. 일본에서는 해외여행을 간 어린 아이들을 상대로 대포처럼 몸을 부딪히고 다니는 일본 성인들이 있다고 한다. 물가가 굉장히 비싸고, 인색하다고 한다. 아직도 나는 왜 일본에 가는지 모른 채로 있다. 가서 나는 또 어떤 어리벙벙함에 가슴 조여 울까.

 

-----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아 이 글에서는 아주 간단하게만 언급한다. 자세하게 얘기하자면 상당히 길고 그리고 처절한 얘기가 될 테니까. 그 말을 ‘메시지’로 쓰고 싶지는 않았다. 역사의 한 모퉁이에 있는 이름 없는 한 이야기로서, 가능한 한 원래 형태 그대로를 제시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한 소소한 일 하나하나의 무한한 집적이, 나라는 인간을 이런 형태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결과는 원인을 꿀꺽 삼켜 무력화한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는 고양이를 죽이고, 어떤 경우에는 사람도 죽인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그 고양이에게 추월당했다.

 

이렇게 개인적인 문장이 일반 독자의 관심을 얼마나 끌 수 있을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나는 손을 움직여 실제로 문장을 쓰는 것을 통해서만 사고할 수 있는 인간이기에 이렇게 기억을 더듬고, 과거를 조망하고, 그걸 눈에 보이는 언어로, 소리 내어 읽을 수 있는 문장을 쓰면 쓸수록 그리고 그걸 되읽으면 되읽을수록 나 자신이 투명해지는 듯한 신비로운 감각에 휩싸이게 된다. 손을 허공으로 내밀면, 그 너머가 아른하게 비쳐 보일 듯한 기분마저 들 정도다.

 

어느 저녁, 툇마루에 앉아 있는데 내 눈앞에서 그 고양이가 소나무 위로 스륵스록 올라갔다. 마치 자신의 용감함, 기민함을 내게 자랑하는 것처럼, 새끼 고양이는 놀라우리만큼 가볍게 나무를 타고 올라가, 저 높은 꼭대기 가지 사이로 모습을 감췄다. 나는 가만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새끼 고양이가 도움을 청하듯 가녀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높은 곳에 올라가기는 했지만, 무서워서 내려오지 못하는 것이다. 고양이는 나무를 오르기는 잘 하지만 내려오기는 잘 못한다. 그런데 새끼 고양이는 그걸 모른다. 열심히 올라가기는 했는데, 자신이 얼마나 높이 올라왔는지를 알고는 겁이 나서 오금이 저렸으리라.

-(-표시는 내 생각)지난 주말, 가족과 알밤따기 체험에 나섰다. 둘째가 호기롭게 밤나무 근처 비탈에 올라갔다가 내려오지 못한다. 아빠가 손을 잡아주고 발을 미끄러트리듯이 해 내려왔다. 이 대목이 떠올랐다. 높은 곳에 올라가 내려오지 못하는 것은 비단 고양이 뿐이 아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럴 때 누군가 내 곁에 있어준다는 것. 그것은 든든함을 넘어 당연한 보살핌일 것이다. 곁에 아무도 없었다면 영영 내려오지 못하고 그곳에 누군가 구하러 올 때가지 있던가, 엉덩방아를 찧어가면서라도 내려왔던가 했을 것이다. 자조성을 키우기 위해 그렇게 할 수도 있겠다만, 도움을 받고, 나도 누군가를 돕는 것, 다정함을 전달하는 것, 그것이 사람 같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고, 저 먼 아래, 눈앞이 어질어질해지는 지상을 향해 수직으로 내려가는 어려움에 대해 생각한다. 역사라는 건 그런 것이다-무수한 가설 중에서 생겨난 단 하나의 냉엄한 현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킨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킨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이수현 옮김

 

2026년 6월 The Arpril Bookclub

 

손이 잘 가지 않는 책이 있다. 그런데 막상 집어 들면 빠져버리는 책이 있다. 읽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끝맺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삶도 그렇다.

 

내겐 흑인, 인종, 가족, 그런 소재들이 그렇다. 그렇다. 이 책은 흑인, 인종,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다루고 있다. 그런데 빠져든다. 한시도 놓칠 수 없다는 듯이 빨려 들어가게 한다. 내가 빨려들어가는 것인지, 빨려 들어 가게 하는건지 모르게. 소설 속 그녀처럼. 빠져들어 갔더니, 자신의 조상인지도 모를 누군가의 위험에 빠진 때로 가게된다면. 그런데 그곳은 흑인을 노예처럼 다루던 시기였다면. 마치 내가 일제강점기 시대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겠지.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나도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갈 테고. 그런 이야기를 써야겠다. 곧.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휴먼카인드 (리커버 특별판) - 감춰진 인간 본성에서 찾은 희망의 연대기
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 조현욱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휴먼카인드

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조현욱 옮김

 

2026년 5월 The April Bookclub

 

아... 그래... 마음 따뜻한 거 좋아. 좋지... 그런데 논문도 아니고, 짜 맞추는 거 같은게, 너무 보이지까... 씁쓸해. 따뜻한 마음이 살아남는다는 도돌이표. 좋은 마음 쓰는데도 씁쓸하다는 거 이 책을 보며 알았어.

 

-------------

[우리가 믿는 것이 우리를 만든다. 우리는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고, 우리가 예측하는 일은 일어나게 된다. 어느 쪽 늑대가 이기나요? 네가 먹이는 주는 쪽이지. 믿고 싶은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 의심하려는 의지.

 

하지만 우리가 허구를 믿기로 결정하면 상관없다. 권력의 영향 중 하나는 타인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할 필요가 없으므로 편협한 시각을 갖게 된다.

다원적 무지는 재앙을 초래하거나 심지어 치명적일 수도 있다. 폭음을 생각해보자.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면 대부분은 필름이 끊길 정도로 술을 마시는 것이 가장 좋아하는 취미가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학생들이 술을 좋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다가 결국은 모두가 배수구에 토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계속해서 참호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작 90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이 우리의 동포라는 사실을 너무 쉽게 잊는다. 먼 곳에서 안전한 곳에 몸을 숨긴 채 소셜미디어나 온라인 포럼을 통해 몇 번이고 서로를 향해 쏘야내고 있다. 두려움, 무지, 의심, 고정관념을 지침으로 삼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을 일반화한다.

 

우리가 수천 명의 낯선 사람들과 함께 대규모 집단을 이루어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말 그대로 우리는 서로를 시야에서 놓쳤다. 서로에 대한 불신이 자라기 시작했다. 의심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등골이 휘도록 일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모두 쉬고 있다는 것이다. 통치자들에게는 대중을 감시할 누군가가 필요했다. 인간은 부족의 동물이다. 그렇다. 우리는 편견을 빠르게 형성한다.

유대교와 이슬람교 민족주의와 자본주의는 모든 상상의 산물이다. 그 모두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를 믿게 만드는 것 중심으로 돌아간다. 모든 것을 듣고, 모든 것을 보는 사람, 모든 것을 보는 눈, 바로 하느님이다. 새로운 신들이 복수심을 품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신은 모든 사람을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감시하는 슈퍼 리바이어던이 되었다. 신은 당신의 생각도 감시한다.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전지적 존재는 이제 하늘에서 세상을 지켜보고 감시, 감독하다가 필요한 경우 공격을 가했다.

 

왜 사람들은 일주일에 40시간 동안 금속이나 종이 조각 혹은 은행 계좌에 숫자 몇 개를 추가하는 대가로 우리가 사무실이라고 부르는 우리에 숨죽이고 갇혀 있을까? 돈이 허구일 수 있지만 매우 실제적인 폭력의 위협이라는 강제력을 갖는다. 돈의 발명, 글쓰기의 반전, 법적 제도의 탄생. 압제의 도구에서 시작되었다. 통치자들이 세금을 부과하는 효율적인 방법을 원했기 때문이다. 가장 초기에 쓰인 문서는 미결제 부채의 긴 목록.

관리 자체를 없애면 업무 수행은 이전과 같거나 심지어 훨씬 더 좋아진다. 인사, 기획, 마케팅 부서를 없앴다. 직원을 책임감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존재로 대하면 실제로 그렇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선량하다고 믿는 회사이다. 심리학자는 환자에게 필요한 만큼만 치료하고.

의료 서비스를 시장에 맡기면 결국 산더미 같은 서류 작업으로 끝난다. 비용 청구가 간단할수록 실제 진료를 더 중시하게 된다. 청구가 복잡할수록 더 많은 참여자가 시스템의 허점을 찾을 것이다.

 

스스로하고 싶어서 무언가를 하는 사람보다 더 강력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어리석은 것처럼 대하면 그들은 스스로 어리석다고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학생들이 똑똑하다고 믿은 쥐를 더욱 따뜻하고 다정하게 다루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군가에 대해 부정적인 기대를 할 때 우리는 그들을 자주 쳐다보지 않게 되며 그들과 거리를 두게 된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자주 웃지 않는다. 오직 사실이 무엇인지 그것만 바라보라.

껍데기 이론(인간의 도덕이란 그이 이기적인 본성을 숨기는 얇은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이론). 그러나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뻔뻔함은 매우 유리한 속성이다. 수치심을 개의치 않는 정치인은 다른 사람들이 감히 시도할 수 없는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우리가 50명만 있으면 그들 모두를 정복하고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행하게 만들 수 있다.

 

더 나은 세상은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와 함께 시작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자신의 관대함이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어떻게 폭포처럼 흘러가는지 보지 못한다. 이것은 다른 사람 수십 명, 어쩌면 수백 명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친절은 잘 전염된다. 오늘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 내일의 상식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라. 이제 새로운 현실주의를 위한 시간이 왔다. 인류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때이다. 단순하지만 멋지다. 일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쉽지만 쉽게 만드는 것은 어렵다. 단순함을 선택했다.

 

부모가 무질서를 보는 곳에서 아이들은 가능성을 본다. 어른이 더러운 쓰레기를 견디지 못하듯 아이들은 지루함을 참지 못한다. 학교들이 감옥과 꼭 닮은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당신은 떠날 수 없으며 엄격한 위계질서 속에서 자기 자리를 맡아야 하며, 학생과 직원은 엄격히 구분되어 있다. 세상이 과목별로 나뉜 곳은 오직 학교뿐이다. 학교는 우리로 하여금 지금 그대로의 사회가 필요하다고 믿게 만드는 광고대행사이다.

 

당신은 식탁에 앉아 있고 소금이 손에 닿지 않는 곳에 놓여 있다. 소금 좀 건네주세요라고 말하면 누군가 무료로 소금을 건네준다. 인류학자들은 이것을 일상적 공산주의라고 일컫는다. 부모는 자신의 소유물을 아이와 공유하고 능력껏 기여한다.

 

자신의 몸에 먹이는 음식에 대해 신중하듯이 자기 마음에 어떤 정보를 제공할 것인지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하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북샵
피넬로피 피츠제럴드 지음, 정회성 옮김 / 북포레스트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북샵

피넬로피 피츠제럴드 지음

정회성 옮김

 

내가 생각났다며, 영화 북샵을 봤냐고 물었다. 안 봤다고 했고, 책으로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자신은 읽지는 않고, 영화는 봤다고 했다. 샀다. 읽었다. 재미없었다. 재미없어서 책방인 것 같다.

 

책방이 없는 곳에 책방을 들였고, 결국엔 책방의 쓸모를 다하지 못해 허물어지는 내용이, 지금의 내 책방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볼 수 없는.

그런데 그 사람은 왜 나에게 이 책을 보라고 했을까? 내 책방도 다름이 없다는 의미였을까? 영화와 책의 결말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돈을 많이 벌 생각으로 책방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도 굳이 책방 문을 열어두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는 건 아무런 의도가 없는 것이었을까? 만약 서점 주인인 당신에게 말이 많은 이가 말보다 웃음으로 이 책을 권한다면, 서로의 오해를 풀고 책을 펼치기를 바란다.

 

나는 묻어두었다. 꺼내지는 않을 생각이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만 기억하고 말 것이다. 요즘의 나는 그렇다. 세상 별 거 아니다. 그러니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살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