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무언가 끊임없이 소유하고 싶어한다. 밥 먹고 살기위해 밥그릇이 필요하고 쓰다보면 더 이쁜 놈으로 사고 싶고, 옷이 사고 싶고 때 맞춰 바꿔입고 싶고.

나 또한 인간인지라 소유욕이 대단하다. 뭔가사고 싶은게 있으면 반드시 사고야 마는 타입이었다.
그런데 근래들어 소유욕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다. 이 해탈의 계기가 너무나 아이러니하다.

이 가부장적 사회에서 잠시 잠깐 발을 헛디뎌 결혼이라는 실수를 해버린 나는 뒷수습이 안되어 무지 곤란을 겪고 있는 중이다. 그리하여 어찌하면 이 연옥같은 상태를 벗어날까를 고민하다가 두가지 방도가 제시 되었다.
첫째, 어느날 아침 회사 가기가 죽도록 싫고 feel이 꽂히는 날 회사를 때려치우고 다버리고 떠나자.
둘째, 이 남자는 사랑하지만 이 남자와 살게 됨으로 인해 나에게 가해지는 각종 사회적 폭력을 견딜 의사가 전혀 없으므로 이혼을 하자.

머리가 상쾌했다. 그래 그러자 하는 결심이 생겼다.
그런데...갑자기 내눈에 들어오는 것들.
저 비싼 장농과 침대와 몇백만원 어치 하는 밥그릇 등등
저것들이 아깝더라는 거다.저걸 우찌해야 하나. 당장 어디 둘 곳도 없고.

이 궁리 저궁리 하다 '하~ 이것 봐라. 이제껏 내가 저것들을 소유하고 있다 생각 했더니 이제와서 보니 저것들이 나를 꼼짝못하게 잡아두고 있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이었다. 나로 하여금 이땅을 지금 당장 뜨지 못하게 하는 것도, 이혼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전부 내가 소유한 것들이었다. 여기서 안정된 지위 등등은 포함 되지 않는다. 애시당초 그런 것에는 미련조차 없는 나이므로.
정말 냉장고가 아깝고 장롱이 아깝고 내 그릇이 아까운것이었다.

허허..이런 미친년이 있나 싶겠지만 그게 사실이었다.
그리하여 냉장고와 장롱과 그릇들은 나를 지금 이 현실에 당분간 안주시킬 것이다.
언젠가 그것들이 낡아 더 이상의 미련이 남지 않게 되면 좀 더 자유로워 지려나.

하여간 그리하여 요즘 얻은 버릇은 무엇이든 사고 싶다가도 3초 후에 반드시 '소유는 자유를 억압한다'라는 말이 떠오르고 소유욕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걸 깨달음이라 해야하나 미쳤다고 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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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5-02-18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리히프롬은 소유와 존재의 삶의 양식을 각각 나누기도 하지만 어쩌면 소유함으로써 존재를 느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은 이들이. 저 역시 소유하기를 좋아합니다. 이것저것 수집하고 다 끌어모으고 혼자 가지고 있다가 어디 남기거나 줄데도 없으면서 그저 끌어모으는 것만으로 즐거움을 느낀답니다. ^^;

kleinsusun 2005-02-19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쥐님, 글 한번 정말 솔직하네요. 저랑 같은 류의 사람 같아요. 우찌 이런 친근감이...ㅋㅋ 근데...결혼하면 강쥐님이 말씀하시는 각종 사회적 폭력 물론 많겠지만, 결혼이라는 제도로 "보호(?)" 받는 그런 것들도 있지 않나요? 주변 사람들이 하도 결혼을 강요, 강권하면서 결혼이 주는 "안정감"을 말하는데.... 그런게 있나요?

코마개 2005-02-19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뇨, 전혀 안정감 없습니다. 남편은 그런거 느끼는것 같더군요. 그런데 저는 안그래도 시니컬한 성격이 더욱 심해졌고 다른 이들로부터 공격 당하지 않기위해 온 몸의 신경을 날카롭게 세우고 살게 되는군요. 특히 참을 수 없는것은 아무리 잘해준다 해도 시집에서 나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참견 하는건 정말 정신과 치료를 요할만큼 스트레스를 줍니다.

코마개 2005-02-19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글쎄...소유함으로 존재를 느낀다. 아마 참자아를 찾은 이들은 오롯이 존재 자체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당연, 범인들은그 경지에 이르지 못하겠지만. 저도 뭔가 끌어모으는것 좋아하는데 이게 한번씩 다 소용없다 느낄때가 있는데 있는데 바로 이사갈때. 왜 모든게 쓰레기로 보이는지.

2005-02-22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