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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털 같은 나날
류진운 지음, 김영철 옮김 / 소나무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전화가 울린다. "어, 왜?" "개명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 "법원에 개명허가신청 내서 허가를 받아야지."
"그거 쉽냐?" "아니 쉽지 않지. 이름을 바꾸려는 이유가 뭔데?" "애가 밥을 안먹어서 점쟁이가 이름 바꾸면 밥 잘먹는다 그랬대." "뭐?? 택도 없는 소리하네. 그런걸로는 죽었다 깨도 개명허가 안나."
"너 아는 판사 없냐?" "있어도 그게 그 사람한테 배당되지도 않고, 안된다니까." "그래도 말이라도 해주면..."
항상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무슨 일에 처하면 그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떠올린다. 닭털같은 나날은 바로 이런 시(關係)에 관한 이야기다. 중국에서는 모든게 과계로 요약된다 한다. 관계로 문제가 생기고 관계로 문제를 해결하고. 그래서 사업을 하더라도 이 관계가 없으면 실패 한단다.
이책의 주인공 임(林)은 집에서 너무 멀리 출근하는 아내의 직장을 바꾸기 위해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부국장에게 '관계'를 이용해 로비하고, 임의 고향사람들은 그가 북경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출세를 하였다 생각하여 온갖 것들을 해결하기 위한 관계로서 임을 찾아오고, 임의 스승은 북경의 병원을 소개해 달라고 임과의 관계를 이용하며, 임은 그의 딸을 원하는 유치원에 넣기 위해 이웃의 관계를 이용한다.
정말 너절하게 살지 않는가?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이게 남의 얘기가 아니라는데 너절하다고 비웃을 수만은 없는 이유가 있다.
내가 결혼 준비하면서 우리 시어머니가 이용한 '관계'를 생각해 보자.
맨 처음 한복을 맞추러 간다 했을때 나에게 당신의 시집 동서의 올케가 하는 바느질 집에 가서 하자 했다. '아는 사람'이니 더 잘해 줄거라고. 동서의 올케를 아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두번째 예물을 맞추러 가자 할때는 당신의 고등학교 선생님의 같은 성당에 다니는 대녀의 금방에 가서 하자 했다. 아는 사람이니 싸게 해줄거라며. 결국은 후진 디자인에 바가지 옴팡썼다.
세번째 예식장을 고르러 가자 했을때 동네 예전 시의원하던 사람이 하는 부페가 있는데 아는 사람이니 가자 했다. 잘해 줄거라며. 다를거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코트 하나 산다 했을때 동네 아줌마의 딸이 모피 공장을 하는데 거기 가서 사면 쌀거라 주장했다.
보험 하나 든다 했을때 교회에 아는 집사님이 보험 회사 다니니 잘해 준다 했다.
닭털 같은 나날은 이런 너절한 이야기를 마치 남 얘기처럼 능청 스럽게 풀어가고 있다. 그리고 조금 안스럽게까지 하다. 관계가 잘 풀리지 않자 임이 홀로 밤에 벌이는 행위는 글쎄...이걸 슬프다 해야 할지.
그날 저녁 아내와 아이가 잠든 뒤, 그는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아주 어두운 밤에 스스로 따귀를 때렸다. "너는 왜 이렇게 능력이 없냐! 너는 왜 이렇게 살아가는 방법을 모르냐구!" 그러나 그는 아내가 깰까 걱정이 돼, 세게 때리지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