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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빨간 사랑 - 다섯 영혼의 몽환적 사랑 이야기
슈카와 미나토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이런 책이었어? 음.. 이런 거였구나.'
[새빨간 사랑]을 읽고 실망스러운 짧은 한숨과 함께 든 생각이다. 강렬한 표지그림과, '로맨틱 호러'라는 색다른 장르(?)임을 강조했던 것에 비하면 [새빨간 사랑] 안에 담긴 5개의 단편은 알맹이없는, 막이 내리자마자 곧 잊혀지는 성의없는 공포영화같다.
내 머리 속에 형상화된 귀신의 모습은 소복을 입고 긴머리를 늘어뜨린 동양의 여자이고(영상매체 덕분에 만들어진 이미지이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같은 동양권인 일본의 귀신 이야기는 내 심장을 훨씬 꽁꽁 얼어붙게 만든다. 서양의 괴기스러운 좀비나 잔인한 스크림의 가면괴한과는 차원이 다른. 그런데 [새빨간 사랑]에 등장하는 귀신 또는 유령의 모습은 그런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다. 모습도, 하는 짓(?)도 동양과 서양의 중간쯤이라고 해야할까. 아무리 유령이지만 이도저도 아닌 정체불명의 존재다. 그래서 애매하게 '몽환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였을까?
충분히 공포스럽다. 내가 겁이 많은 편이기도 하지만, 밤에는 이 책을 읽기가 꺼려지고, 다음 페이지를 넘기기가 두렵기도 하다. 공포영화가 무서워도 끝내 눈을 가린 손가락 틈으로 보고야 마는 심리처럼 결국은 그 공포를 즐기며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기게 된다. 그런데 공포도 공포 나름. 여러가지 성격의 공포가 있다는 것에 비추어 볼 때 [새빨간 사랑]은 원초적인 두려움 보다는 메스껍고 역겨운 느낌의 기분나쁜 공포를 맛보인다. 특히 첫 작품과 네번째 작품이 그렇다. 미리 그런 줄 알았으면 읽기를 사양했을..
[새빨간 사랑]을 야릇한 뉘앙스를 풍기는 '로맨틱 호러'라고 부르기는 억지스럽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차라리 '에로틱 호러'다. 단편들이 사랑을 주제로 하는가본데, 읽는 내 입장에서는 사랑이 읽히지 않는다. 별로 간절한 사랑 같지 않다는 말이다. 그래서 에로틱 요소가 거의 없는 두 개의 단편은 책 안에서 겉돈다.
최근 범람하고 있는 일본작품에 대한 평가 중 '피상적이고 치장만 요란하고 감각적인'이라는 말에 공감하게 만든 책. 하루키와 바나나 이후 조심스럽게 골라왔던 일본의 수작에 대한 나의 호감이 무색해진다. 그럼 당분간 일본소설은 이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