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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은 바다로 떠났다
존 반빌 지음, 정영목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존 반빌의 14번째 작품인 [신들은 바다로 떠났다 The sea]는 제37회 부커상 수상작으로, 당시 최종 후보에 오른 작가들 간의 치열한 경합으로 인해 황금의 해라 불리기도 한 2005년도 수상작이다.'라는 유혹적인 책 소개글.
바로 이 글이 내가 몇 년 전에 무릎을 치며 읽었던 [설득의 심리학]에서 소개된 '권위의 법칙'에 의거한 것이라면, 나는 간단히 설득당했다. 이 책을 선택했던 다른 이유가 몇 가지 더 있긴 하지만, 아무튼 내가 끌렸던 이유는 부커상과 황금의 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얘기지만, 이왕이면 매우 문학적인 작품이라는 소개를 넣었어야 했다. 그것도 아주 굵은 글씨체로 자세하게 설명하며 강조했어야 했다. 나같은 독자의 취향과 선택권을 조금 더 신중하게 배려했더라면 말이다.
나쁜 책이라는 말은 아니다. 정말 문학적이어서(이 단어 외에는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으니 안타깝다) 이런 글에 적응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아주 어려운 고전을 읽을 때의 따분함이랄까, 몰이해랄까, 그런 느낌이 든다.
무미건조하다. 케케묵은 마른 먼지가 풀풀 날리는 것 같다. 喪妻한지 얼마 안되는 남편의 이야기이니 당연하기도 하겠지만, 어떤 대상이나 상황에 대해 무척이나 상세하고 친절한 묘사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를 읽어내기가 힘들다. 또 현재와 과거가 정교하게 뒤섞여 있어서 이야기를 잘 따라가다가도 한 순간 어느 시제인지를 놓쳐서 헤매기도 한다.
주인공을 포함해 등장인물의 캐릭터 또한 하나같이 아주 독특하고 메마르기 짝이 없다. 보통의 평범한 사람인데도 작가의 묘사가 평범하지 않게 만들어버렸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인상적인 것은 '냄새'. 작가가 인물을 묘사할 때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그 인물에게서 나는 냄새인데, 땀냄새나 머리를 감지 않은 냄새같은 체취에서부터 '새끼 사슴 같은 김빠진 듯한 냄새'나 '상점의 텅 빈 비스킷 깡통에서 나는 냄새'같은 기묘함까지, 또 어떤 상황이나 장소에서 나는 냄새의 묘사까지도 기묘한 분위기를 더욱 기묘하게 만드는 재주를 보인다.
책의 마지막에 실린 해설에서 이 소설은 바다만큼 넓은 아량과 인내심을 요하는 작품일지도 모른다고 한 것과 두 번 읽기를 권하는 것 모두 맞는 말이다. 작가 특유의 문체에 익숙해진 다음에 다시 읽게 될 때 비로소 모든 것이 의미를 드러내며 명료하게 다가온다고 해설한다. 과연 내가 두 번 읽을 수 있을까? 내가 작가 특유의 문체를 잊기 전에 언제고 두 번째로 읽게 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일단 조금 나긋나긋한 책으로 머리 속에 신선한 공기를 좀 넣어주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