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할머니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나라 요시토모 그림,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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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을 읽은 게 참 오랜만이다. 과거에 그녀의 유명작 몇 편을 읽으며 내가 가졌던 감상은 나른하고 몽롱하다는 느낌, 그리고 아쉬우리만큼 정말 짧은 책이라는 기억. [하드보일드 하드럭] 이후 5년만에 읽은 그녀의 [아르헨티나 할머니]는.. 여전하다. 짧다 못해 한 줌밖에 되지 않는 새털같은 무게가 다르다면 다를까. 

그녀는 '가족'이라는 것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내가 읽었던 전작들도 '가족'을 이야기했었고, [아르헨티나 할머니] 역시 어머니를 잃은 후 아버지가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가족이라는 판(板)을 새로 짜는 이야기다.  

상처한 후 하던 일을 모두 접고 아르헨티나 할머니네 집으로 숨어버린 아버지. 독특한 별명을 능가하여 기이한 인물로 비춰지는 아르헨티나 할머니가 '뭐가 좋아서?' 하는 생각은, 다 쓰러져가는 건물과, 울창한 숲처럼 되어버린 정원과, 톡 쏘는 고양이 오줌냄새가 섞인 그 집 현관에서 아르헨티나 할머니를 만나는 순간 모두 날아갔다. 낡고 구질구질하고 냄새나는 그 집을, 신기하게도, 내 집처럼 드나들게 되었다.     

아버지는 그 집 옥상에서 아버지가 만다라와 어머니 묘에 바칠 돌고래 비석을 공들여 깍고 있었다. 아버지는 이쪽 세상과 저쪽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소통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쪽에선 아르헨티나 할머니를, 저쪽에선 어머니를, 한 울타리에 넣고 싶었던 것일까.  

잘 모르겠다. 솔직히 내게 [아르헨티나 할머니]는 알듯 모를듯 애매모호하고 불분명하다. 하지만 적어도 이 작품에서만큼은 분명함에서 오는 날카로움과 불편함보다 이 모호함에서 오는 부드러움과 편안함이 훨씬 더 크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앞서 한 줌밖에 되지 않는 새털같은 무게라고 했지만, 그래도 그 무게만큼은 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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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송이 2007-08-07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홋...^^
언제나 직설적이고, 솔직한 님의 리뷰가 좋습니다.
잘 읽고 추천하고 갑니다.^^
 
터키에서 보물찾기 세계 탐험 만화 역사상식 14
곰돌이 co. 지음, 강경효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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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4번째 보물찾기. 역시. 역시나 재미있어요!

각 국의 역사와 문화가 다르기에 보물찾기 시리즈의 각 권이 늘 새로운 정보와 이야기거리로 꽉 차지만, 기본적으로 어린이에게 가장 크게 어필하는 재미 요소인 보물찾기의 과정과 해프닝은 권수를 거듭할수록 난이도와 긴박감이 더해가는 것 같아요.

[터키에서 보물찾기]는 이전 시리즈에서보다 훨씬 복잡한, 고단수의 트릭이 등장합니다. 어른들도 깜빡 속아넘어갈 트릭과 반전이 숨어있어요. 특히 호주편에서 등장했던 핸섬보이가 다시 등장하면서 호주에서의 비밀이 밝혀지는 동시에 터키편에서의 아슬아슬한 보물찾기 무용담을 더 화려하게 장식한답니다.

또 늘 그렇듯, 터키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와 상식이 적정 수준으로 잘 담겨있고, 만화 속에도 그것들이 잘 녹아있어요. 터키요리가 세계 3대 요리로 불리우고, 터키어의 어순과 문법이 우리나라 말과 많이 비슷하다고 하고, 또 터키에서는 '닥터피쉬'가 의학적으로 인정받았다는 등 재미있고도 새로운 이야기가 많지요.  

다만 고난이도의 트릭이 숨어있기 때문에 전편보다 이해하기가 약간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그만큼 더 흥미진진하다고도 할 수 있어요. 초등 4학년인 우리 딸, 친구 생일선물로 이 책을 사갔다면 어린이들의 만족도는 두말할 필요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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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펭귄의 여행 자연그림책 보물창고 1
샌드라 마클 지음, 앨런 마크스 그림, 고수미 옮김 / 보물창고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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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다 못해 뿌연 순백의 눈밭, 얼음장보다 더 차가울 것 같은 남극의 얼음산, 오로라가 비치는 하늘, 가루처럼 날리는 눈발을 헤치며 이동하고 있는 펭귄, 펭귄, 펭귄.. 

우아!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분명 유아동 대상의 그림책인데, 내셔널지어그래픽에서 볼 수 있는 대서사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과도 같다. 남극에 사는 황제펭귄이 알을 낳고, 엄마펭귄이 먹이를 구하러 떠나고, 다시 돌아와 알을 깨고 나온 새끼펭귄에게 먹이를 주는 과정을 묘사한 [엄마펭귄의 여행]은 멋진 그림 덕분에 정말 멋진 그림책이다. 큼직한 판형에 그림을 구성하는 요소는 단 몇가지임에도 불구하고, 눈 앞에 남극의 눈밭이 펼쳐진 것처럼, 바로 앞에서 펭귄 무리가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그 사실감과 생동감에 가슴 벅찰 정도다.

책 뒷부분에 있는 설명페이지를 읽으니 황제펭귄은 겨울동안 유일하게 남극에서 번식하는 동물이라고 한다. 혹한에도 굴하지 않는 어미펭귄의 길고 험한 여정은 오직 새끼 펭귄에게 먹이를 개워내줘야한다는 단순하고도 숭고한 의무에서 비롯된다. 책에서의 묘사 역시 담담한 설명체로, [엄마펭귄의 여행]을 통해 자연에의, 생명에의 경외심을 감동으로 느끼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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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는 시끄럽다 책읽는 가족 56
정은숙 지음, 남은미 그림 / 푸른책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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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드라마를 잘 보지는 않지만, 그래도 본다면 잔잔하고 소소한 사람사는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드라마가 보기도 편하고 마음도 편해서 좋다. [우리 동네는 시끄럽다]는 바로 그런 드라마같은 연작동화다. '시끄럽다'고 했지만 귀를 피곤하게 하는 악성잡음이 아닌, 잔잔하고 소소한 사람사는 이야기가 귀를 간지르는 이야기. 

6개 단편 동화가 담긴 이 연작동화집은 지하철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 더 가야 나오는 변두리 동네가 무대다. 곧 허물어질 것같은 백조연립이 우아한 백조아파트로 변신할 수 있다는 소문을 타고 이사온 진욱이네. 진욱이 엄마의 재건축을 향한 기대와 집념이 유쾌하게 쓰여진 첫 작품에서부터 동네에서 벌어진 드라마 촬영에 난리법석이 된 동네 사람들 이야기, 이 동네에 처음 등장한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먹어보고 싶은 꼬마들의 이야기, 엄마 등쌀에 반장되기 속성반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 그리고 베이커리와 붕어빵집, 세탁소의 비밀들까지, 시종일관 빙그레 웃음지을 수 밖에 없는 즐거운 이야기가 꽉 찼다. 

모두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본 이 동네 사람들 이야기에는 어른들의 욕심과 이기심, 질투, 주책맞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작은 동네에 사는 작은 사람들이 가진 그런 작은 마음들은 사람사는 맛을 더 맛깔스럽게 하는 조미료와 같아서 오히려 그네들의 순박함과 따뜻함이 더 잘 드러난다. 사람사는 게 다 그렇지, 그런 게 다 사는 재미야, 라며 웃음지을 수 있는 이야기, [우리 동네는 시끄럽다]가 눈에 쏙쏙 들어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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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베이커리
이연 지음, 이지선 그림 / 소년한길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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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 시대상을 담는 것은 동화라도 해서 예외는 아니다. 이혼과 재혼은 이미 오래 전부터 동화의 소재가 되어왔고, 몇 년 전부터는 왕따나 성폭행, 혼혈아 등을 소재로 한 동화가 많이 보인다. 그런 중에 내가 만난 [오후 3시 베이커리]는 다른 어느 책보다도 따뜻한 시선으로 가만가만히 이야기를 풀어낸 수작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야기는 초등학교 6학년인 주인공 상윤이는 아빠와 함께 살기 위해 서울에 올라오는 것에서 시작한다. 인기없는 만화작가인 아빠와, 아빠의 부인인 '오후 3시 베이커리의 주인 아줌마'와도 당연히 함께 살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은 새엄마와의 뻔한 갈등구조나 과장된 화합구조를 따르지 않는다. 상윤이도 '아줌마'도 가족이라는 구도에 자신을 억지로 끼워넣는 대신 친한 친구가 되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상윤이가 만나는 새로운 사람들.. 전학간 학교에서 단짝이 된 친구는 술먹는 아빠에게 매맞는 가족의 맏이이고, 늘 빵을 사러 오는 두 할머니는 옆집에 살고있는 할머니 부부다.

외견상 이토록 평범하지 않은 삶들은 상윤이에게 어떤 생각을 갖게 했을까? 

"그저 싸움을 했을 뿐인데 선생님은 내가 아줌마와 살아서 말썽을 부린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선생님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다 내가 고민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중략)..내가 아줌마와 살아서 생긴 문제는 딱 하나다. 사람들이 나를 동정 어린 눈길로 보는 것, 그리고 다른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고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91-92p)

"사람들은 장훈이를 칭찬한다. 형편없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는데도 삐뚤어지지 않는다고 말이다..(중략).. 그건 장훈이를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장훈이는 그런 아버지 아래서 자라는 데도 밝고 명랑해서 훌륭한 게 아니다. 그냥 밝고 명랑해서 훌륭한 거다" (108p) 

"할머니를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하얀 할머니는 검은 할머니의 유일한 가족이다. 그런데 가족이 아니라니." (117p)  

사회, 문화적인 편견과 억압은 어른이 되면서부터 자기도 모르는 새 자기 안으로 파고든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른들은 그 왜곡된 잣대로 타인과 타인의 삶을 평가하려고 한다. 그렇기에 상윤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어른인 나는 호되게 야단맞는 것처럼 아프고 슬프다. 어린이는 어른의 스승이라는 말이, 바로 이런 뜻이겠지.. 

[오후 3시 베이커리]는 경쾌하고 깔끔하게 잘 포장된 문장을 읽는 맛도 제맛이고, '오후 3시 베이커리'의 장기인 통밀식빵처럼 옅지만 은은하여 풍부한 맛이 일품인 동화. 어린이도 어른도 한 번 맛보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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