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 베이커리
이연 지음, 이지선 그림 / 소년한길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책 속에 시대상을 담는 것은 동화라도 해서 예외는 아니다. 이혼과 재혼은 이미 오래 전부터 동화의 소재가 되어왔고, 몇 년 전부터는 왕따나 성폭행, 혼혈아 등을 소재로 한 동화가 많이 보인다. 그런 중에 내가 만난 [오후 3시 베이커리]는 다른 어느 책보다도 따뜻한 시선으로 가만가만히 이야기를 풀어낸 수작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야기는 초등학교 6학년인 주인공 상윤이는 아빠와 함께 살기 위해 서울에 올라오는 것에서 시작한다. 인기없는 만화작가인 아빠와, 아빠의 부인인 '오후 3시 베이커리의 주인 아줌마'와도 당연히 함께 살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은 새엄마와의 뻔한 갈등구조나 과장된 화합구조를 따르지 않는다. 상윤이도 '아줌마'도 가족이라는 구도에 자신을 억지로 끼워넣는 대신 친한 친구가 되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상윤이가 만나는 새로운 사람들.. 전학간 학교에서 단짝이 된 친구는 술먹는 아빠에게 매맞는 가족의 맏이이고, 늘 빵을 사러 오는 두 할머니는 옆집에 살고있는 할머니 부부다.

외견상 이토록 평범하지 않은 삶들은 상윤이에게 어떤 생각을 갖게 했을까? 

"그저 싸움을 했을 뿐인데 선생님은 내가 아줌마와 살아서 말썽을 부린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선생님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다 내가 고민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중략)..내가 아줌마와 살아서 생긴 문제는 딱 하나다. 사람들이 나를 동정 어린 눈길로 보는 것, 그리고 다른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고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91-92p)

"사람들은 장훈이를 칭찬한다. 형편없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는데도 삐뚤어지지 않는다고 말이다..(중략).. 그건 장훈이를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장훈이는 그런 아버지 아래서 자라는 데도 밝고 명랑해서 훌륭한 게 아니다. 그냥 밝고 명랑해서 훌륭한 거다" (108p) 

"할머니를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하얀 할머니는 검은 할머니의 유일한 가족이다. 그런데 가족이 아니라니." (117p)  

사회, 문화적인 편견과 억압은 어른이 되면서부터 자기도 모르는 새 자기 안으로 파고든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른들은 그 왜곡된 잣대로 타인과 타인의 삶을 평가하려고 한다. 그렇기에 상윤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어른인 나는 호되게 야단맞는 것처럼 아프고 슬프다. 어린이는 어른의 스승이라는 말이, 바로 이런 뜻이겠지.. 

[오후 3시 베이커리]는 경쾌하고 깔끔하게 잘 포장된 문장을 읽는 맛도 제맛이고, '오후 3시 베이커리'의 장기인 통밀식빵처럼 옅지만 은은하여 풍부한 맛이 일품인 동화. 어린이도 어른도 한 번 맛보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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