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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지 않겠다 ㅣ 창비청소년문학 15
공선옥 지음 / 창비 / 2009년 1월
평점 :
책 말미에 이런 글귀가 있다.
『 모든 어른들은 청소년 시기의 감성들을 야금야금 빼먹으며 늙어가는 것만 같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그 감성들의 최대치를 기억해내는 특별한 즐거움을 누렸다. 』 - 작가의 말 중.
나는 공선옥작가의 이 말에 '아차!' 인지 '아하!' 인지 모를, 어쩌면 이 두가지가 반반씩 하나가 되는 갑작스러운 깨달음을 얻은 덕분에 [나는 죽지 않겠다]에 실린 여섯 단편들의 진가를 더욱 높이 사려 한다. 이 책의 주인공들이 겪고 느끼는 바를 읽어가며 나 어렸을 적 얼마나 기쁘거나 슬프며 즐겁거나 괴로우며 수시로 좋았다 싫었다가 바뀌었던가가 확실히 기억났으니, 문체나 줄거리 같은 것은 둘째치고라도 청소년 시기의 복잡미묘한 감정과 생각의 변화, 즉 풍부한 감성의 형성과 성숙, 만개함을 맛보는 즐거움을 누렸다.
[나는 죽지 않겠다]의 단편들 중에서 연작인 <라면은 멋지다>와 <힘센 봉숭아>가 가장 좋았다. 주인공 민수가 추운 밖에서 여자친구 연주를 기다리며, 라면집으로 향하며, 선물을 사주려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또 편의점과 분식집 등으로 아르바이트를 이어가며, 봉숭아를 위해 화분을 들고 밤거리를 뛰어가는...... 나는 민수가 되어 기다리고 일하며 뛰었고, 정체가 무엇인지 말로 형용하긴 힘들지만 뱃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순간순간의 감정을 민수와 똑같이 느낄 수 있었을 만큼 내 이성과 감성 모두를 흠뻑 적셔놓았다.
이는 책 전반에 걸쳐 소설 속 등장인물의 상황과 심정이 아주 리얼하게 살아있는 덕분일 텐데, 화려한 수사어나 포장된 표현들이 아니라 투박한 진실 그대로가 문장 속에 녹아있기 때문에 더욱 리얼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한껏 치장했었다면 오히려 '소설이니까 그렇지 뭐' 라는 반응으로 청소년의 진짜 모습과 청소년 소설의 괴리감만 생겼겠지만, [나는 죽지 않겠다]에서 느껴지는 진실성은 거부할 수 없다.
또한 여섯 단편들은 경제적으로 어렵고, 또 어렵기 때문에 삶이 고달픈 가정을 배경으로 하는 공통점을 갖는데, 그 와중에도 중고등학생인 주인공들은 나름의 삶을 향한 의지와 방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 또한 뿌듯한 일이다. 말없이 돈을 가져가버린 오빠를 두었을 지언정, 아르바이트비를 떼어먹혔을 지언정, 아기를 가졌을 지언정, 부모들의 고단함과는 별개로, 아니 부모와 형제들까지도 전부 감싸안을 만큼 크고 넉넉한 마음과 생각을 가졌다는 것. 참으로 다행이고 행복한 일이다.
읽어서 충분히 재미있고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다. 괜시리 어렸을 적으로 돌아가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릴 것같은 기분이 들게 만든다. 이젠 완전히 '어른'이 되어버린 나에겐 작가가 말한 '청소년 시기의 감성들을 야금야금 빼먹는' 아련함까지도 갖게 만든 이 책,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