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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 만세! ㅣ 힘찬문고 47
이현 지음, 오승민 그림 / 우리교육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개인적으로 작가 이현의 단편동화집 [짜장면 불어요]에 완전히 반했었기 때문에 그녀의 새 작품 [장수 만세]가 정말 반가웠다. 이번엔 장편동화다. 단편에서 보여줬던 그녀의 발랄한 글솜씨가 장편에서도 살아있을까? 살아있다! 이것 참, 장수 만세, 이현 만세다. 야호~!
초등학교 6학년인 주인공 나, 혜수네 가족은 매우 평범하다. 주류회사 영업부 차장님인 아빠, 알뜰살뜰 살림과 자식 뒷바라지에 애쓰는 엄마, 온 집안이 해바라기 하고 있는 타고난 수재인 오빠, 그에 비해 그저 그런 나. 가장 평범한 가족의 표본-아니, 타고난 수재는 빼고-이나 마찬가지인 혜수네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을 소개하는 첫 장 '우선 알아두어야 할 것들'에서부터 작가의 빼어난 글솜씨가 빛난다. 아직 초등학생이지만 웬만한 건 다 알 만한 나이인 혜수이니, 사실에 입각해 가장 특징적인 것을 제대로 꼬집는 비유가 꽤나 유쾌하다. 작가가 주인공 자신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 아이들에게서 나올 수 있는 딱들어맞는 표현이 구구절절 이어진다. 다시 말해 [장수 만세]의 첫 몇 장만 읽어보아도 곧장 이 동화 속에 파묻혀버릴만큼 매력적이다.
『이쯤 되면 짐작하겠지만 평범한 동생인 나는 무척 괴롭다. 뭘 잘하면 으레 '오빠 닮았다.'는 소리를 듣고, 뭘 잘 못하면 또 '오빠처럼 해 봐.'라는 소리를 듣는다. 이건 정말이지 저주받은 운명이라고 할 정도다.』 -12쪽
『"어머, 어머, 쟤 좀 봐. 또 놀고 있네! 기자님, 잠시만요. 얘, 길재야! 길재야! 너 '키높이 수학' 다 풀었어? '유선생 영어 숙제'는?"』 -32쪽
『이 모든 것에 시달리는 학생들을 위해 남아 있는 또 하나의 시련. 그게 바로 수행 평가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숙제라는 놈은 적어도 뒤끝은 없다. 하더라도 칭찬 한 번이면 끝이고, 안 하더라도 꾸중 한 번으로 끝이다...(중략)...하지만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숙제도 점수고 성적이다. 그게 바로 수행 평가다.』 -132쪽
어떤가. 차라리 비극에 가까운 장면일망정 희극에 가깝도록 묘사한 것이 초월적 비감마저 느껴지지 않는가. 또 작가가 얼마나 애정어린 시선으로 어린 학생들의 생활을 얼마나 꼼꼼하게 관찰했는지도 느낄 수 있지 아니한가.
줄거리는 간단하게 얘기할 것은 아니다. 혜수와 가족, 오빠의 친구, 그리고 유령이 주요 등장인물인데, 이들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직접 책을 읽어보시길. 힌트를 줄 수 있는 것이라곤 본래 오빠가 가야할 예정이었는데 저승 관계자의 업무착오로 주인공 혜수가 저승에 가게 되었고, 거기에서 오빠가 자살할 예정이라는 걸 알게된 혜수는 오빠의 자살을 막기 위해 활약한다는 것, 그리고 혜수 외에 유령 한 명과 오빠의 친구도 그 활약을 돕는다는 사실 정도. 뭐, 그렇다고 복잡하게 꼬인 이야기는 아니라는 걸 분명히 해야겠다. 등장 인물들마다 각자 강한 개성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이 동화를 이끌어나가는 적절한 역할과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대략의 설정만을 알고 읽는 것이 이 책을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방법이 되겠다. 또 [장수 만세]와 같은 주제를 갖는 동화는 많지만, 이처럼 독특한 설정은 처음 본다는 사실. 더욱 재미있게 읽으시길 바란다.
[장수 만세]는 이야기 한 가운데에 학업과 성취만을 향해 무작정 달려가고 있는 위태로운 학생들의 모습을 두고, 그 주변으로는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세상이 흘러가는대로 우르르 몰려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다행인 것은 그것들에 대해 옳다거나 그르다는 식의 평가를 내리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를 다 포용하고 있다는 점, 덕분에 읽는 내내 안쓰러움과 편안함을 동시에 가져다준다. 마지막으로, 참으로 평범하지만 이 책이 던져주는 메시지, 행복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기회도.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면 우리는 대체 왜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몹시 울고 싶었다.』-17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