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 날아든다 푸른도서관 32
강정규 지음 / 푸른책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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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 날아든다]는 초등6학년인 딸이 먼저 읽었는데, 감상을 물어보니 '책이 참 공손하다'는 표현을 쓴다. 잠시 당황한 나,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읽어보면 엄마도 알 것이라고 한다.  

음.. 맞다. 공손하다. 조곤조곤 부드러운 글맵시가 읽는 이의 마음을 더없이 편안하게 해준다. 7편의 단편 중 많은 수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하거나 관련을 갖는 이야기라서 지금의 초등생은 공감대 형성이 덜 할 수도 있는데, 또 전쟁의 상처로 슬프거나 울컥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 [새가 날아든다]는 뭐랄까.. 강한 충격 요법이 아닌 조심스러운 다가섬의 미덕을 가졌다는 표현이 어떠할까.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세 단편. 줄글이 아닌 시와 같은 모양새를 가진 <삼거리 국밥집>은 한국전쟁으로 뜻하지 않게 헤어진 딸을 잊지 못해 절절한 가슴앓이를 하는 국밥집 할머니가 선명하게 그려지며 양녀와 애틋한 정을 나누는 모습이 마음 짠했고,, 지하철 안 할머니와 모자간의 미묘함을 잘 잡아낸 <소통>에서 행색이 초라한 할머니가 선선히 내준 한과를 받아들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이와 그의 엄마를 바라보며 언젠가 나도 그 비슷한 경험을 했거나 목격했던 것처럼 낯이 뜨겁기도 하고 지하철 안 승객들처럼 무언의 마음졸임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표제작인 <새가 날아든다>야말로 정말 마음 넉넉하고 기분 좋게 읽은 작품이었는데, 할머니의 조금 주책스러운 손주사랑과, 감자밭의 새 알이 궁금해 연신 전화를 해대다가 알을 가져간 후로는 영 소식이 없던 손자의 불효와, 언제 그랬냐는 듯 제삿날 온가족 모여 딱새 알이 든 둥지를 두고 실랭이 하는 모습까지, 그야말로 푸근한 고향의 모습이고 가족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자극적이고 현란한 이 세상 속에서 아주 맑고 청량한 여백을 맛보기에 참 좋은 책, [새가 날아든다]는 공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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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 않는 노래 푸른도서관 30
배봉기 지음 / 푸른책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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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이자 세계 몇 대 미스터리로 꼽히는 남태평양 이스터섬의 모아이 석상.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 눈, 아주 큰 코, 굳게 다문 입. 제주도의 웃는 낯의 동글동글 돌하루방과는 아주 다른 모습의 이 석상이 개인적으로는 좀 무섭기도 하고 예쁘지는 않아 보인다. ㅡ.ㅡ  또, 거대한 석상을, 한두 개도 아닌 군(群)을 이룰 정도로 세운 것은 돌하루방이 수호신의 역할을 했던 것같은 그 비슷한 의미를 가졌기 때문 아니었을까 라고 별다르게 생각지 않았던 내게 [사라지지 않는 노래]라는 이 책의 제목이 모아이 석상과는 쉽게 연결되지 않기도 했다.  

그런데. [사라지지 않는 노래]의 긴 서문이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작가가 친구로부터 받아든 어떤 '기록'을 읽고 충격에 빠졌다는 얘기에 과연 어떤 기록이길래?, 귀를 솔깃하게 만들기에 충분할 만큼 정성들인 서문이었기에. 결국엔 작가가 얼마나 정성들여 그 기록을 읽고 살을 붙이고 글을 썼는지, 이 책을 읽는 내내 작가의 수고가 고스란히 느껴져 매우 흡족한 마음이었고, 오죽하면 모아이 석상을 새삼 경이로운 눈으로 다시 보게까지 만들었을까. 

평화롭던 이스터섬에 외지인이 들어오면서부터 비극이 시작된다. 처음엔 본토인과 외지인 두 패가, 세월이 지나면서 양쪽의 피를 반반씩 받은 중간자와, 이런 싸움에서 늘 레퍼토리처럼 등장하는 배반자와, 몸은 이쪽이지만 마음은 저쪽인 사람과...... 무리들은 끊이지 않고 싸우고, 싸움에서 이긴 무리는 진 무리를 핍박하고, 다시 싸움 끝에 이긴 쪽과 진 쪽이 뒤바뀌고, 이 작은 섬은 도대체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서로간의 증오와 피비린내로 뒤덮인다. 이 와중에 모아이 석상은 이긴 쪽의 필요에 의해 진 쪽의 노동력을 착취해 세워지기 시작했고, 다시 노동력을 제공했던 쪽이 득세하면 또 다시 복수를 위해 더 잔혹한 방법으로 노동력을 착취했으니, 모아이 석상은 그들의 싸움을 더욱 부추기는 비극의 상징물이 되고야 만다.        

대륙의 노예로 끌려간 이스터섬의 족장이 암송하던 그들의 노래는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의 우리로서는 들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노래. 다만 아주 사실적이고 긴박하여 나를 완전히 몰입하게 만든 [사라지지 않는 노래]가 그들의 노래를 다른 언어로 불러주고 있다는 생각에 만족해야 겠다. 생뚱맞지만, 혹시 표지의 모아이 석상이 그 노래를 부를 수 있는데도 입을 굳게 다문게 아닌가 미심쩍어 자꾸자꾸 다시 보게 만든다. 그들의 노래가 꼭 이 모아이 석상 안에 갇혀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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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조선을 그리다 푸른도서관 31
박지숙 지음 / 푸른책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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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의 최고작 중 하나로 꼽힌다는 <무동(舞童)>의 춤추는 주인공이 클로즈업된 표지그림. 옷끝이 찰랑거리고 가볍게 발을 굴리는 저 무동에겐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을까, [김홍도, 조선을 그리다]는 이렇게 시작된다. 아마도, 물론, 작가의 상상이 만들어낸 이야기이겠지만 이 책에서 만나는 김홍도와 그의 작품 이야기는 내게 상당한 흥미와 충분한 공감을 끌어내어 독서 후 새삼스레 인터넷에서 여러 미술관 사이트와 김홍도의 작품 관련 정보를 뒤져보기까지 하게 만들었다.  

이는 이 소설의 스토리가 모두 김홍도의 작품과 관련된, 마치 작품을 해설하는 듯한 상황과 맞물려 전개되고 있는 덕분. 도입부의 <무동>을 시작으로 <서당>, <신선도>, <호귀응렵도>,  마지막의 <추성부도>까지, 김홍도가 겪고 보고 느낀 것을 자신의 화폭에 고스란히 담은 사연이 구성지게 이어진다. 김홍도는 그림을 그린 이였기도 했지만 자신의 그림 속에 무형으로 존재하는 주요 인물이기도 했다는 설정.  

따라서 김홍도의 작품으로 미루어 '인간 김홍도'를 탄생시킨 작가의 상상력에도 수긍이 된다. 김홍도가 신분을 뛰어넘는 인간애가 없었더라면 어찌 그처럼 경쾌하고 해학적인 풍속화가 탄생했을 것인가. 아...... [김홍도, 조선을 그리다]를 통해 주제넘게 '예술'이라는 것에 대해 참 많은 생각을 했더랬다.  

이 책에서 한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등장하는 김홍도의 작품을 실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잘 알려진 작품이기는 하지만, 인터넷에서 즉석으로 검색가능하기도 하지만, 이왕이면 이 책을 읽는 조금 어린 독자의 배려 차원에서 친절한 해설이 덧붙여졌다면 좋았을 듯. 이 점을 제외하면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주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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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찾아 한 걸음씩 미래의 고전 7
이미애 지음 / 푸른책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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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 복장을 하고 활짝 웃고있는, 주먹 불끈 쥔 책표지의 남자아이를 보니 아마 이 녀석의 꿈이 요리사인가 봅니다. 이렇게 웃고 있으니 자신이 꿈꾸고 있는 것을 꿈꾸고 있다는 사실이 참 행복해 보입니다. 자신이 꿈꾸고 있는 것을 꿈꾸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나요. 사실 많은 부모들이 아이가 공부 잘 해서 좋은 대학 나와 전문직을 가지기를 바라는 소망을 갖고 있으니, 아니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만일 아이가 요리사처럼 조금은 특별한 꿈을 가졌다면 그 꿈을 진정으로 응원해줄 부모가 얼마나 될까 싶습니다. 그래서 더 이 녀석의 웃음을 자꾸만 쳐다보게 됩니다.  

두본이는 그냥 천성처럼 음식에 관심이 많고 요리를 너무너무 하고 싶어합니다. 자기 스스로 전생에 부엌데기였을 거라고 생각할 만큼요. 하지만 부모님 특히 엄마는 두손 두발 절레절레 휘젓는 형편입니다. 훌륭한 요리사였으나 지금은 미각을 잃어 폐인처럼 살고 있는 삼촌 때문이지요. 팽팽하게 맞서는 두본이와 엄마. 아니, 엄마의 철벽같은 반대에 두본이는 자신의 꿈에 대해 두 말도 못하는 날들이 계속되는데.  

[꿈을 찾아 한 걸음씩]은 명랑한 두본이 덕분에, 할머니와 두본의 친구들처럼 의미있고 활달한 조역 덕분에 두본이가 엄마의 반대 때문에 조금은 힘들 때도 있지만 자신의 꿈을 향해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내딛는 모습이 아주 경쾌하고 즐거운 동화로 그려졌습니다. 또 두본이 덕분에 어린이 독자는 자신의 꿈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이고, 나 같은 부모 입장의 독자는 내 아이의 꿈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지요.  

초등6학년인 제 딸도 독후감에 이렇게 썼더군요. 

'... 그렇게 당당하게 자기 꿈을 밝히고 계획을 세워 착착 진행하면서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습에 감탄했다. 하지만 몰래 학원을 다닌 건 좀 못됬다는 생각이 든다. 나라면 입맛을 잃은 삼촌을 위해서라도 꼭 요리사가 될 거라고 어머니를 반드시 설득했을 것이다...(중략).. 나를 돌아보게 만든 책이다. 나도 주인공처럼 나의 꿈을 향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봐야 겠다'  

아이가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면, 설령 그것이 세월을 따라 몇 번씩 바뀌는 한이 있어도 부모로서 감사해야할 일일 겝니다. 초등학생들에게도 팍팍한 이 삶에 꿈조차 없다면 사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아직 어려 꿈을 구체화하지 못했다면 이제부터라도 꿈꾸는 연습을 해보는 것도 좋겠죠. [꿈을 찾아 한 걸음씩]의 두본이에게서 힌트를 얻어 무언가를 꿈꾸기 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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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걸어가요
이선주 글.그림 / 푸른책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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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누군가 걸어가요]와 같은 그림책을 만난다. 책표지의 빙긋 웃는 여자아이를 볼 때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다. 세계지도 위에 가득한 구름들을 볼 때도 괜찮았다. 그런데! 이젠 손톱만한 상상력과 탄력만이 남은 나에게는 난해한 그림책 ㅡ.ㅡ;; 

희안한 일은, 내가 가장 먼저 읽고(또는 보고) 나서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초등 6학년 딸에게 넘겨주었더니 "여기 나와있는 그림들 하나하나에 이름을 지어주라쟎아요."라면서 그림을 놓고 나보다 훨씬 나은 해석을 줄줄줄 읊었다는 사실. 하지만 그녀 역시 해석은 하되 이 책에 그리 큰 흥미를 느끼지 않음은 마찬가지. 책은 다시 5살 아들의 차례가 되었는데 오호라~!! 아직 글을 읽지 못하는 녀석인데 그림은 참 잘도 읽는다! 내가 글을 읽어주지 않고 "이건 뭐하는 그림이야?"라고 물으면 엉터리같은 대답을 그럴듯하게 해내는데, 그게 또 진짜 맞는 말 같다는 사실.    

'누군가'의 이름을 지어보자고 책 서두에서 밝혔지만, 그보다 더 무한한 상상과 창작을 유도하는 그림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구름 속엔 김홍도의 그림 '무동'과 비너스와 연꽃이 함께 등장하고, 착시현상을 테스트하는 것 같은 정사각형이 한 페이지를 꽉 채우며, 그 사이사이 걷거나 앉아있는 여자 아이의 모습도 있다. 여기에 어찌 해석의 정답이 따로 있을까. 나의 아들처럼 자기 상상대로 마음껏 꾸며내는 것이 전부이자 핵심일 테고, 그것이 곧 독자의 즐거움이 되게 하는 알쏭달쏭한(?!)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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