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는 노래 푸른도서관 30
배봉기 지음 / 푸른책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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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이자 세계 몇 대 미스터리로 꼽히는 남태평양 이스터섬의 모아이 석상.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 눈, 아주 큰 코, 굳게 다문 입. 제주도의 웃는 낯의 동글동글 돌하루방과는 아주 다른 모습의 이 석상이 개인적으로는 좀 무섭기도 하고 예쁘지는 않아 보인다. ㅡ.ㅡ  또, 거대한 석상을, 한두 개도 아닌 군(群)을 이룰 정도로 세운 것은 돌하루방이 수호신의 역할을 했던 것같은 그 비슷한 의미를 가졌기 때문 아니었을까 라고 별다르게 생각지 않았던 내게 [사라지지 않는 노래]라는 이 책의 제목이 모아이 석상과는 쉽게 연결되지 않기도 했다.  

그런데. [사라지지 않는 노래]의 긴 서문이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작가가 친구로부터 받아든 어떤 '기록'을 읽고 충격에 빠졌다는 얘기에 과연 어떤 기록이길래?, 귀를 솔깃하게 만들기에 충분할 만큼 정성들인 서문이었기에. 결국엔 작가가 얼마나 정성들여 그 기록을 읽고 살을 붙이고 글을 썼는지, 이 책을 읽는 내내 작가의 수고가 고스란히 느껴져 매우 흡족한 마음이었고, 오죽하면 모아이 석상을 새삼 경이로운 눈으로 다시 보게까지 만들었을까. 

평화롭던 이스터섬에 외지인이 들어오면서부터 비극이 시작된다. 처음엔 본토인과 외지인 두 패가, 세월이 지나면서 양쪽의 피를 반반씩 받은 중간자와, 이런 싸움에서 늘 레퍼토리처럼 등장하는 배반자와, 몸은 이쪽이지만 마음은 저쪽인 사람과...... 무리들은 끊이지 않고 싸우고, 싸움에서 이긴 무리는 진 무리를 핍박하고, 다시 싸움 끝에 이긴 쪽과 진 쪽이 뒤바뀌고, 이 작은 섬은 도대체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서로간의 증오와 피비린내로 뒤덮인다. 이 와중에 모아이 석상은 이긴 쪽의 필요에 의해 진 쪽의 노동력을 착취해 세워지기 시작했고, 다시 노동력을 제공했던 쪽이 득세하면 또 다시 복수를 위해 더 잔혹한 방법으로 노동력을 착취했으니, 모아이 석상은 그들의 싸움을 더욱 부추기는 비극의 상징물이 되고야 만다.        

대륙의 노예로 끌려간 이스터섬의 족장이 암송하던 그들의 노래는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의 우리로서는 들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노래. 다만 아주 사실적이고 긴박하여 나를 완전히 몰입하게 만든 [사라지지 않는 노래]가 그들의 노래를 다른 언어로 불러주고 있다는 생각에 만족해야 겠다. 생뚱맞지만, 혹시 표지의 모아이 석상이 그 노래를 부를 수 있는데도 입을 굳게 다문게 아닌가 미심쩍어 자꾸자꾸 다시 보게 만든다. 그들의 노래가 꼭 이 모아이 석상 안에 갇혀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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