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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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대표작 <내 심장을 쏴라>, <7년의 밤>을 통해 빠른 속도감과 숨 막히는 스토리에 빠져든 나는 그녀의 데뷔작이었던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까지 찾아 읽었다. 그리고 최근 서점가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28>까지 읽었으니 나도 어쩌면 '전작주의자(한 작가의 모든 작품을 모아 의미를 해석해 냄으로써 그 작가와 그의 작품세계를 온전히 자신의 세계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것)'가 되어가는 것이 아닐까...

  한때 이문열, 이외수 님의 책을 찾아 열심히 읽어 내렸던 경우는 있었지만 이렇게 여류작가의 모든 책을 읽어보기는 처음이다. 그렇다고 정유정 님의 글을 특별히 찾아 읽었다고만은 볼 수 없는 것이, 그녀의 책이 모두 베스트셀러에 들면서 나의 노력으로 찾아 읽었다기 보다는 시대의 분위기상 자연스럽게 읽게 되었다는 것이 더 적당한 표현 같다. 서점가의 명당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베스트셀러를 읽지 않으면 왠지 주류에서 밀려나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내 전작의 숨은 정체인지도 모르겠다.


  미디어 상에 떠있는 화려한 선전 문구처럼 <28>은 스피디한 전개와 긴박하게 돌아가는 사건이 독자를 사로잡는다. 알래스카의 눈보라를 헤치며 질주하는 아이디타로드(Iditarod Trail Sled Dog Race) 경기처럼 오직 눈앞의 길과 상황에만 집중하게 만든다. 자칫 시선을 놓쳤다가는 어디로 추락할지 모르는 상황처럼 소설에 대한
예측이나 상상마저 사치스럽게 만든다.
  <28>은 화양시에 번진 원인불명의 인수공통전염병(동물과 사람을 함께 감염시키는 전염병)에 맞서는 다섯 명의 인물과 한 마리의 개의 28일간의 사투를 다루고 있다. 한때 머셔(썰매꾼)였던 수의사 재형, 화양시 구조대원인 기준과 간호사 수진, 신문기자 윤주와 정신병자 동해, 그리고 이야기의 중심을 이끌고 있는 개 링고는 자신의 입장에서 서술된 이야기를 통해 소설 <28>을 완성해 간다.


  하지만 정유정 님 특유의 스피디한 전개가 점점 식상해졌다.
다양한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고 인물들의 동선이 빠르게 겹치면서 조금씩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심각하게 꼬여버린 엄청난 양의 사건은 막장 드라마의 그것과 소재만 다를 뿐 별반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비좁은 수족관을 가득 메운 열대어를 보는 것처럼 갑갑했다.

  주인공의 심리적 변화나 인물 사이의 내적 관계보다는 전염병과 개를 중심에 놓고 벌어지는 외적인 사건이 주가 되다보니, 시각적 영상만 가득했지 이를 음미할 수 있는 묘사는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였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사건이 독자의 흥미는 이끌어냈을지 몰라도 소설의 현실성과 읽는 깊은 맛은 살리지 못한 것 같다.

  특히 미치광이 살인자, 동해의 모습은 소설의 현장감을 떨어뜨리는 듯 했다. 개에 집착해 살인과 방화까지 마다하지 않는 악착같은 모습이 너무 작위적으로 보였다. 작가가 표현하려 했던 인간애가 '무협호러액션물'에 가려진 느낌이었다.

  늦은 잠을 청한 다음날, 거울 앞에서 마주하게 되는 붉은 눈의 초췌한 내 모습이나 출근길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개들의 의미 없는 몸짓에 괜히 놀라게 된다. 지극히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마음 한구석 어디쯤에는 '인수공통전염병'과도 같이 내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 재앙을 두려워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구와 연인, 가족에게 집착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서로 떨어져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이라는 동족을 외면하지 못하는 존재가 우리의 숙명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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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 교사들과 함께 쓴 학교현장의 이야기
엄기호 지음 / 따비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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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실과 교무실에서 일어나는 학생과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들려준다. 요즘 학생들은 어떤 모습이며 어떻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지, 아니 어떻게 학교와 담을 쌓게 되었는지 몰래카메라가 설치된 교실을 보는 것처럼 사실적으로 그려놓았다. "설마, 저 정도일라고" 하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사실 기성세대가 아는 학교는 자신들이 다녔던 2000년 이전의 모습 70%에다가 뉴스나 영화, 혹은 자신의 자녀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한 30%의 모습이 합쳐진 낭만적인 이미지가 많았다. 엄격하고 강압적이었지만 일사분란했고, 선생님의 말은 모든 진리에 우선하는 최고의 가르침이었다. 출세의 지름길이었던 공부와 대학 이외에는 별다른 관심거리도, 어려움이나 문제도 없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교실은 모든 것이 변했다. 지식은 더 이상 선생님의 전유물이 아니었고 학원과 인터넷에 넘쳐나기 시작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인정하면서 책임과 의무는 소홀해졌다. 맞벌이부부가 늘면서 학생들은 방치되었고 점점 게임에 빠져들었다.


  우리는 누구나 몇 년에서 몇 십 년 이상씩 학교생활을 해 왔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교의 문화나 현실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와는 차이가 많다.

  더이상 선생님을 존경하지도 않을 뿐더러 무서워하지도 않으니 교육은 물론 대화 자체도 점점 힘들어진다. 자극적이고 즉각적인 컴퓨터게임에 길들여져 오랜 끈기를 필요로 하는 작업은 해내지 못하고 자그마한 일에도 발끈하며 달려든다. 학원 공부에 매달린 체 정작 교실 수업에서는 엎드려 자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입시와 관련 없는 과목은 아에 듣지도 않는다. 뜻대로 되지 않는 학교생활의 스트레스는 십 원짜리 욕설과 친구에 대한 맹목적인 폭력, 따돌림으로 풀어버린다.

  영화에서나 보이는 이런 모습들은 지금 우리의 학교에서 흔히 일어나는 모습이다. 인정하기 싫겠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우리는 어쩌면 학교라는 최소한의 가치를 잊지 않았기에, 이를 외면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학교나 교사에게도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산업화와 IMF, 인터넷과 스마트 세대를 겪으면서 사회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고 각종 영양가 없는 소모성 공문에 묻혀
수업과 학생을 소홀히 했다. 또한 수업을 연구하고 평가받는 것을 주저하는 동안 교수법은 발전하지 못했다.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치기에는 기간제교사라는 딱지가 너무 컸다.

  학교와 교사는 관료주의의 병패를 답습하며 정체된 모습도 많이 보여줬기에 사교육으로 돌아선 학생과 학부모를 무조건 탓할 수만은 없었다. 위축된 학교는 교육의 역전현상을 바로잡기 위해 조급해할 수밖에 없었고 이런 영향은 공교육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는 이런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학교와 교사, 학생과 학부모의 각성을 유도한다.

  하지만 학교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칠 뿐 뭔가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물론 이 한 권에 우리학교의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문제점과 불만을 잔뜩 털어놓고는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사라져버리는 것처럼 무책임하게 보이기도 한다.

  또한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우호적인 시선도 조금 불편하다. 마치 이들만이 진정으로 교육을 생각하는 단체이고 그 말만 잘 들었어도 우리 교육이 이처럼 망가지지는 않았다는 얘기처럼 들린다. 전교조가 우리나라 교육발전에 이바지한 공은 알겠지만 자기자식만을 지나치게 편애하는 학부모의 고집처럼 답답하기도 했다.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는 자조 섞인 제목이 가슴 아프다. 하지만 모든 학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 많다고는 하지만 많은 교사들은 더 나은 학생들의 미래를 위해 오늘도 애쓰고 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학교와 학생을 지켜보면서도 이들에 대한 사랑은 여전하다. 교사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두려움이 희망으로 바뀔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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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권택영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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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롤리타 콤플렉스’라는 말이 있다. ‘아동을 성적 대상으로 생각하는 행동’ 정도로 어렴풋이 알고 있던 나는 인터넷을 통해 <롤리타>라는 소설이 있고 거기서 이 말이 생겨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적인 것이라면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삼류로 취급하는 사회분위기와는 달리 <롤리타>는 이미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었기에 꼭 읽어보고 싶었다. 거기다 성과 관련된 책이라 호기심이 동했고 아동과 성이 어떻게 연결되어 이런 말이 생겨났는지도 궁금했다.
   내가 구한 책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된 <롤리타>로, 판권이 종료되어 더 이상 구하기 힘들어 인터넷 중고서점을 통해 어렵게 구했다. 어떤이는 오래된 번역의 절판본을 웃돈까지 줘가며 사야할 이유가 있느냐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책장에 꽂힌 비슷한 디자인의 문학전집을 보다보면 왠지 한 출판사의 전집류만 계속 고집하게 된다. 어쩌면 시각적인 구색을 맞추어 놓으려는 일종의 내 과시욕일지도 모르겠다. 아뭏튼 약간의 허영심과 맞물린 호기심과 기대로 <롤리타>를 펼친다.



   어머니 없이 자란 어린 험버트는 에너벨을 사랑했지만 그 소녀는 곧 발진티푸스로 죽고만다. 하지만 에너벨과의 못다한 사랑은 어린 소녀에 대한 집착으로 발전되어 그를 따라다녔다. 성인이 된 험버트는 어린 창녀를 만나보기도하고 결혼이란 제도에 자신을 넣어보기도 했지만 가슴 한 곳은 어린 소녀에 대한 갈망으로 늘 허전했다. 그러던 중 열 두 살의 “롤리타, 내 삶의 빛이요, 내 생명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 롤-리-타”(p15)를 만난다.
   “변덕스럽고, 성질 사납고, 명랑하고, 버릇없고, 안하무인인 십대 소녀의 요부 같은 우아함으로 가득 찬 아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미치도록 갖고 싶은 아이, 검은 나비 리본과 머리를 묶은 작은 핀부터 매끄러운 장딴지 아래 작은 흉터까지.” (p69)


   험버트는 롤리타와 더욱 가깝게 지내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헤이즈(롤리타의 엄마)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롤리타를 향한 애정 뿐만 아니라 성적 욕망도 함께 있었다. 헤이즈는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되지만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죽고 험버트는 롤리타의 공식적인 아버지가 된다. 그는 롤리타와 함께 여행을 떠나면서 마침내 그녀를 소유하게 된다. 그는 롤리타의 아버지이자 연인이 된 것이다.
   하지만 어린 롤리타가 자기 또래의 이성이나 다른 곳에 흥미를 느끼게 되면서 그녀가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해한다. 그럴수록 그의 감시와 구속, 집착은 더욱 광적으로 변해간다.


   조금은 억지스럽기도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일어나는 주인공들의 심리변화는 <롤리타>를 더욱 깊이있게 만든다.
   자신의 삶을 회상하듯 읊조리는 험버트의 말에는 롤리타를 향한 애정과 집착, 분노가 롤러코스터처럼 격동했다. 롤리타에 대한 사랑에 핑크빛 세상을 보다가도 언제 바뀔지 모르는 그녀와의 관계에 극심한 불안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성과 감성을 오가며 도덕적 갈등과 자기 합리화를 번갈아 되풀이하는 그의 모습은 소심한 일반인의 모습과 치밀한 범죄자의 모습까지 동시에 볼 수 있었다.
   또한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과 가족의 사랑에 목마라했던 롤리타는 아버지의 애정이 싫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방심은 결국 그녀를 구속하게 되는 단초가 되어버린 것. 후에 이런 상황을 책망하며 도망치려고도 했지만 가족에 대한 동경과 익숙해져버린 물질적 풍요에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험버트가 자신의 경험을 회고하는 형식의 이 소설에서 그는 롤리타를 진정으로 사랑했노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롤리타에 대한 육체적 집착으로 밖에 보이질 않았다. 부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의심하는 의처증 환자처럼 집요했다. 화롯불 옆, 인화성 물질을 채워가며 점점 부풀어 오르는 풍선처럼 위태위태한 집착은 끝이 없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위해서 그랬노라 말하지만 이는 사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변명일 뿐 사랑의 순수함을 빌어 행하는 범죄와 다름없어 보였다. 험버트는 이렇게 롤리타의 구덩이 속으로, 사랑을 빙자한 욕망의 감옥 속에 스스로를 묻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롤리타에 대한 광적인 집착 뒤에 숨은 애정만 놓고 본다면 그가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어린 소녀였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그의 사랑에는 필시 우리가 갖고 있지 못하는 순수함도 어느 정도는 숨어있는 것 같다.
   특정한 대상을 몇 년씩이고 열정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누구는 몇 십 년 째 결혼생활을 하며 사랑하고 있노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사회적 제도나 자식이라는 혈연적 관계가 없다면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배우자 이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관심을 두거나 빼앗긴 적이 없었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런 면에서 험버트는 자신의 사랑을, 열정을 결코 놓지 않은 범상치 않은 인물임에 틀림없다. 어린 소녀에게 병적으로 집착하고 자기 딸을 성적 노리개로 이용한 것 이상으로...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관심이 지나쳐 애초의 순수함을 잊어버렸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으리라. 사람의 욕심에는 끝이 없었기에 존재 자체에 대한 사랑보다는 상대를 지배하고 소유하려는 욕망이 더 강하다. 그래서 종국에는 나와 대상은 사라지고 욕망 자체만 자신을 뒤덮고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얼굴만 봐도 좋다가고 손이라도 잡아보고 싶고 그러다가 입맞춤까지 상상하게 되지 않던가. 그렇기에 <롤리타>는 성도착증 환자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내면의 숨겨진 욕망이라 하는지도 모르겠다.
  과유불급이라는 고사성어처럼 지나치면 오히려 화를 부르는 것. 가끔은 좀 더 여유를 갖고 제3자의 입장에서 관조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지 싶다. 사랑할수록 놓아주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한발 떨어진 여유가 우리의 관심을, 사랑을 더 질기고 오래토록 유지해주는 비결이지 싶다.

 


   마지막으로 민음사 판 <롤리타>의 번역에 대해서도 한마디 안할 수 없다. 글은 희극과 서사시를 넘나들며 독백과 회상을 통해 독자, 혹은 청중이나 관객에게 롤리타에 대한 애정을 설명하고 있어 쉽게 읽히는 편이 아니다. 험버트의 감정 기복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는 글은 책을 읽는 나를 더욱 고달프게 했다.
   특히 서로 다른 언어를 연결시켜주는 번역가의 입장에서는 더욱 곤혹스러웠으리라. 하지만 번역서와 대면할 수밖에 없는 일반 독자의 경우, 난해한 문맥을 접하다보면 번역가의 역량에 따른 문제가 아닌지부터 의심하게 되고, 나아가 원문의 가치마져 혼란스러워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민음사판 <롤리타>와 함께 최근에 판권을 구입해 새롭게 출판한 문학동네판 <롤리타>에 대한 평을 찾아봤다. 두 출판사의 번역을 놓고 갑을박논이 많았지만 전체적으로는, 민음사(권태영)는 원문에 충실하려 했지만 이해하기 어렵고, 문학동네(김진준)는 내용은 쉽게 들어오지만 원문의 느낌을 살리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특히 dehet님의 글이 기억에 남는다.
   “민음사는 미친놈이 혼자 열정적으로 중얼거리는 걸 옆에서 주워듣는 느낌이고, 문학동네는 미친놈이 날 다정하게 바라보며 자신의 광기를 존나 무섭도록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느낌이다.” (dehet)

 

  ‘세계문학’이라는 표제를 달고 여전히 출판되고 있는 고전, 하지만 번역을 할 때 좀 더 공을 들여 신중하고 작업했으면 좋겠다. 읽기 편하면서도 원문의 분위기를 훼손하지 않도록 말이다. ‘미친놈의 열정적 중얼거림’같던 민음사판과 ‘친절한 미치광이’ 같은 문학동네판을 비교해 읽는 것도 또 다른 재미를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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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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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나도 소심하고 예민해 사람들과의 관계마저도 무서워했던 요조는 이런 자신을 감추기 위해 더욱 유쾌한 척 생활한다. 하지만 여러 사람과 섞일 수 밖에 없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곱상하게 생긴 외모로 인해 많은 여자들이 얽히면서 그의 삶은 서서히 침몰해갔다. 쉽게 말해 '실격'해버린 인간이었던 것.
  그의 입장에서 본다면 세상은 도전하고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회피하고 숨어버려야 할 두려움 그 자체였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방인의 모습이면서 동시에 세상에 순화될 수 없는 순수함이 있었던 요조는 이런 모습의 자신을 아무렇게나 내던져버렸다. 자기혐오의 극을 향해 내달리며 자신을 '실격'시켜 버렸던 것.

  다섯 번의 자살 시도 끝에 서른아홉 살에 자살에 성공한 저자(다자이 오사무)의 삶이 곳곳에 녹아 있는 것 같다. 부유한 집안에 태어났지만 이질적인 주변 환경과 공산주의 체험, 약물 중독으로인해 방황했던 그를 느끼게 된다. 그는 <인간 실격>을 통해 현실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던 자신을 질타하면서 곧 닥쳐올 자신의 운명을 예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요조와 다자이 오사무가 스스로의 생명까지도 던져버릴만큼 이 세상이 두려운 존재였던가 반문하게 된다. 당시의 환경과 시대 상황을 직접 겪어볼 수는 없었기에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그렇다고 자살이 정당화 될 수는 없지 싶다. 어쩌면 인간만이 저지르는 가장 무모하고 비겁한 행동이 아닐까.
  간혹 '너무 순수한 나머지 자살했다'는 식의 말로 합리화시키려 하지만 이는 세상에 자신을 단련시키질 못한 자신과 그 가족의 책임이 제일 크다고 하겠다.


  책과 저자의 삶에 녹아든 허무주의가 내 삶에 영향을 끼칠까 두렵다. 그래서 이런 부류의 책은 가끔씩, 아주 가끔씩 읽어야겠다. 삶 자체가 너무 잘 나가는 것 같다거나 행복에 겨워 어찌할 줄 모르는 상황, 아니면 인생을 진정시켜줄 약간의 브레이크가 필요할 때 읽어야 할 '진정제' 혹은 '각성제'로서 말이다.

  투박한 번역이지만 우리가 살아가야할 삶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꺼리를 던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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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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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처럼 맛보는 초코케익처럼 자극적이고 달콤하다. 아래턱 침샘에서 시작된 전류는 온 몸을 전율케 했고 한 스푼에 칼로리가 얼마이겠거니 하는 생각은 잠시 잊어버리게 된다.

  갑자기 결혼을 발표하고 그 준비에 바쁜 재인과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뮤지컬 배우를 하겠다는 유희. 그리고 이들을 친구로 둔 서른 한 살의 노처녀 은수에게 느닷없이 세 명의 남자가 등장한다. 우연히 알게 되어 잠자리까지 함께한 감성적인 연하남 태오, 그리고 오랫동안 친구라는 평행선을 유지하다 갑자기 프로포즈를 하는 유준, 그리고 얼마 전 회사 상사의 소개로 알개된 평범남 영수. 은수는 이렇게 세 사람과 시크하고(세련되고 멋진쫀득한 연애를 벌인다.

 

  화려한 모습 뒤에 감춰진 그녀(들)의 고분군투를 통해 우리의 '사랑'을 되돌아보게 된다. 거침없이 돌진하다가도 불안한 마음에 자꾸 뒤를 돌아보곤 했다동화 속 왕자님을 꿈꾸면서도 현실적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다일탈을 꿈꾸면서도 가족의 울타리를 포기하진 않았다사랑이 위태로우면 불안하다고 징징거리고, 안정된 후에는 권태롭다고 투정하면서 욕망과 현실 사이를 위태롭게 오갔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지상최고의 명제 앞에서 엉뚱한 것에게 대부분의 정열을 쏟아 부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이성에게 인정받고 싶은 자존심이나 친구와 이웃 사람들의 이목, 가족들의 이해관계에 휘말려 사랑의 참의미를 왜곡하고 있지는 않았던가. 사랑을 내세워 자신을 포장하건 합리화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대여 나의 어린애~ 그대는 휘파람 휘이~, -며 떠나가 버렸네~"

  젋은날의 사랑과 이별이 이문세의 <휘파람> 가사처럼 책장을 넘나든다. 우습기도하고 부끄럽기도 한 지난날의 기억이 연기처럼 떠오른다. 나는, 나는 그녀를 진정 사랑했던걸까...

  <달콤한 나의 도시>는 시간에 대한, 사랑에 대한, 그리고 책임에 대한 '젊음의 오마주(영화에서 존경의 표시로 다른 작품의 주요 장면이나 대사를 인용하는 것을 이르는 용어)'가 아닌가 싶다. 나와 이성, 타인의 경험이 결합되고 재구성되는 과정이 바로 사랑이니 말이다.

 

  * 책은 총 9부로 나눠져 있는데 각 장 앞에는 권신아 님의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다. 책 표지의 그림과 함께 보면 볼수록 정이 가는 삽화다책의 내용과 일러스트를 비교해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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