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등령

여행지 : 비선대, 마등령, 공룡능선
여행일 : 2009/07/15~17
사진첩 : 공룡능선을 넘어서
참   고 : 설악산 지도


설악산 입구에서


1

지루하게 펼쳐진 돌길을 하염없이 오른다.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돌들이 흙길에 뿌리를 내리고 흩어져있다. 아무렇게나 틀어박힌 돌멩이 같았지만 사람들의 발걸음이 수월하도록 넓은 면이 위쪽으로 향해 가지런히 놓여있다. 등산로 정비사업 등을 통해 기본적으로 정리를 했겠지만 무엇보다 오랜 시간, 이 길을 지나다닌 수많은 사람들의 힘겨운 걸음걸이를 통해 다져졌으리라. 한두 명의 장인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라 몇 세대의 손을 거친, 자연과 시간이 빚은 투박한 골동품 같아 정겹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런 감상이 흐르는 땀을 식혀주지는 못했다. 이마를 타고 흐른 땀방울은 두 눈을 따갑게 찔렀고, 발부리에 걸린 노란 돌멩이 위로는 암회색의 땀방울이 가득했다. 또한 첨단의 등산복도 빨랫줄에 걸린 물먹은 수건으로 변해 버렸다.

금강굴 갈림길을 지나면서 점점 가팔라진 길은 그 강도를 높여만 갔다. 아직 본격적인 산행은 시작도 못했는데 수통의 물은 반이나 비어버렸고 마른 숨은 더욱 거칠어졌다.
목을 축이며 한숨 돌리자 그제야 주변경관이 눈에 들어온다. 엄청난 바위 절벽이 우리 위에서 내달리고 있었고 등 뒤로는 수많은 암봉들이 군락을 이루며 능선에 박혀 있었다. 거대한 무기고를 메운 예리한 창날들처럼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막연하게 떠돌던 설악산의 실체를 확인하는 것 같다. 아마도 수만 년에 걸친 자연의 침식으로 오늘의 모습을 이뤘으리라. 홍수나 산사태와 같은 일시적인 현상으로 생성된 지형과는 확연히 구별되어 보인다.

숨을 고르며 능선을 향하지만 저 위를 쳐다볼 엄두가 나질 않는다. 무겁게 발길을 잡아끄는 오늘 일정도 그렇거니와 사선으로 구불구불 뻗어 올라간 길에 막혀 돌과 나무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리라. 능선이 가까워졌을 때, 울창한 나뭇잎 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하늘빛을 기대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한 바가지의 땀을 더 흘린 후, 걷기와 쉬기를 수십 번쯤 반복한 뒤에나 만나게 될 마등령을 생각하며 앞사람의 발자국만 무심히 뒤쫓는다.

공룡능선과 대청봉



2

사실 오늘 우리가 오를 곳은 공룡능선이다. 설악산의 척추 같은 존재로 마등령에서 신선봉까지의 5.1Km의 암릉구간을 말하는데 외설악과 내설악을 나누는 기준인 동시에 속초시와 인제군의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마치 공룡의 기괴한 등뼈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어쩌면 오각형의 등뼈가 인상 깊었던 스테고사우루스를 연상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나라에 공룡이라는 단어와 이미지가 알려지기 시작한 지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기에 공룡능선이라는 이름 역시 최근에야 붙여진 듯 보인다.
아무튼 마등령은 공룡능선을 타기위한 시작점이자 종점이 되는, 기준점 같은 곳으로 어찌 보면 오늘 산행의 진정한 시작은 마등령부터인 샘이다. 그런데 벌써부터 이리 지쳐버렸으니 오늘 일정을 잘 소화할 수 있을 지부터가 걱정이었다. 함께한 산악회 회원들에게 폐나 끼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두 달 전, 다음 산행을 설악산 공룡능선으로 잡았을 때에는 그 이름에서 오는 기대감과 함께 약간의 걱정도 있었다. ‘공룡능선은 타야 산을 탄다’고 말 할 수 있다는 한 선생님의 말에 모두가 의기투합은 했지만, 막상 일정이 잡히니 잘 해낼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산이 갖고 있는 우직함과 성실함, 꾸준히만 오르면 어떤 산이든 오를 수 있다는 점 역시 잘 알고 있었기에 즐겁게 산행준비를 할 수 있었다.

산행 준비는 오래전에 넣어둔 배낭을 꺼내는 것으로 시작했다. 한창 산을 돌아다닐 때 준비해 둔 텐트, 침낭, 버너, 코펠과 함께 고이 포장된 체 오늘을 기다리고 있었을 배낭을 펼쳤다. 대학교 첫 산행, 지리산 첫 종주 때 샀으니까 20년은 된 녀석이다. 빛바랜 낡은 배낭이지만 그 어깨끈에는 나와 함께한 우리 산하에 대한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리라. 여기에 침낭과 쌀, 카메라, 스틱 등의 준비물을 주섬주섬 챙겨 넣고 오래전에 담가 놓은 술도 하나 찔러 넣었다. 산도 좋지만 거기서 즐기는 한 잔의 술도 빠질 수는 없는 일 아니던가. 2박3일의 일정만큼이나 40리터의 배낭도 산행의 기대로 꼭꼭 눌러 담았다.


3

부산에서 설악산에 이르는 거리였으니 어지간히 멀리도 온 샘이다. 설악동 여관촌에서 하루를 쉰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배낭을 정리했다. 어제의 숙취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터라 오늘의 기다란 산행이 조금 걱정되기도 했지만 일행의 활기찬 기합소리에 정신을 차려본다.
“자, 출발 합시다.”
이어 산행대장님의 나지막한 목소리도 들려왔다.
“알지요? 오늘 고생 좀 할 겁니다. 해 떨어지기 전에 도착하려면 부지런히 걸어야 됩니다.”
어깨를 내려누르는 배낭의 묵직함보다 그 말이 더 무겁게 다가왔다. 무사산행을 기원하며 긴장된 첫발을 내딛었다.

설악동에서 비선대로 이어진 길은 신작로처럼 부드러웠다. 널찍한 길에 시원하게 뻗은 적송(소나무)들은 좌우로 도열한 체 우리를 맞이했다. 이렇게 웃으며 숨 쉴 수 있는 것도 다 이 산소탱크 덕분이리라. 산을 가득 메운 적송의 붉은 기운이 등산객의 기운을 북돋았다.
조금 더 들어가자 계곡 소리는 가까워졌고 길은 더욱 좁아졌다. 비선대를 보고자 몇 번을 올랐던 길이라 낯설지가 않았다. 십여 년의 시간은 흘렀지만 자연만큼은 변함없는 모습으로 나를 반기는 것 같다. 모두가 그대로인데 내 옷자락만 시커멓게 찌들어버린 것은 아닐까. 자연의 푸른빛으로 내 찌든 때를 말끔히 씻어버렸으면 좋겠다.

계곡을 끼고 20여분을 더 걷자 쏴- 하는 물소리가 비선대에 도착했음을 알려왔다. 바위를 미끄러진 물줄기는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둥근 못을 만들었고, 이를 호위하듯 지켜선 장군봉과 선녀봉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다. 언제 봐도 우람한 장군봉과 선녀봉은 설악산을 지키는 최고의 수문장이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어 보였다.
“여기로 계속 올라가면 천불동계곡을 거쳐 양폭산장, 대청봉까지 갑니다. 우리는 여기서 우측으로 빠져 마등령으로 올라갑니다. 준비됐지요? 여기서부터가 진짭니다. 찬찬히 올라갑시다.”
말을 끝낸 산행대장님의 말에 알 수 없는 미소가 번진다. 우리는 계곡을 건너 우측으로 뻗은 경사로를 힘차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마등령 가는 길



4

마등령, 웬만한 산을 훌쩍 뛰어넘는 1200m 높이의 고개라는 것을 알았을 때 어느 정도 짐작은 했었지만 이정도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은 그 양을 가늠할 수 없었고 배낭을 짊어진 등허리는 축축함을 넘어 따뜻한 온기를 내뿜고 있었다. 깊은 심호흡으로 기운을 차려보지만 눈앞을 가로막은 돌계단은 발길을 쉬 놓아주질 않았다.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 수통마저 야속하게 느껴졌다.
비선대를 떠난 지 두 시간이 지났을까. 느려진 걸음 왼편으로는 깨어진 유리조각처럼 험상궂게 늘어선 공룡능선이 보였다. 능선을 이루는 다채로운 형상은 최면이라도 거는 듯 나를 끌어당겼다. 아름다움 속에 숨어있는, 올 테면 와보라는 식의 거만함이 절로 묻어났다.
“공룡능선, 이 길을 올라 저곳에 가야한다!”
몇 번을 중얼거렸는지 모르겠다. 눈앞에 펼쳐진 마법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주문을 외우는 주술사라도 된 것 같았다.

문득 능선을 올려다보자 울창한 수목 사이로 하늘빛이 보였다. 이는 급한 산사면을 거의 다 올라왔다는 의미인 동시에 지금부터는 조금 수월한 능선 길을 걷는다는 것이리라. 긴 심호흡과 함께 발걸음도 힘이 들어간다.
하지만 설악산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죽어도 준치라 하지 않던가. 한고비를 넘었다고 해서 모든 길이 수월해질 수는 없는 법. 급한 불은 한풀 꺾었다지만 진대봉을 돌아 산 허리를 타는 길 역시 만만치 않았다. 다리에 쌓인 피곤과 층층이 쌓인 허기는 내 발걸음은 더욱 잡아끌었다.

한참을 걷자 저만치서 물소리가 들려왔다. 지도에 표시된 샘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여느 오아시스보다 반갑게 다가왔다. 돌 사이를 흐르는 크지 않은 물줄기는 우리의 갈증과 땀을 식히기에는 충분했다. 여기서 시작된 몇 방울의 물이 모여 시내, 계곡, 바다를 이루리라. 소소한 일상의 위대함이랄까. 터무니없이 작아 보이는 물방울이 모여 산을 찾는 이들의 목을 축이고, 백두대간의 수목을 우거지게 한다. 그리고 바다로 흘러 우리 생명의 근원을 이루었다. 나에게 흘러든 생명수는 전신을 흐르며 세포를 일깨웠다.
걷고 쉬기를 반복하며 기나긴 걸음을 옮긴다. 늦은 걸음 때문인지 앞서 간 일행도 보이질 않고 길과 나무들만이 내 주위를 맴돌 뿐이다. 이곳에 홀로 남겨진 것처럼 홀가분하고 여유롭다. 깊은 심호흡으로 설악산은 모두 내차지가 된다.

산허리로 뻗은 철재계단을 오르며 얼마쯤 쉬고 있는 사이, 저 위의 선두는 이미 마등령에 도착한 것 같았다. 마지막 힘을 지그재그로 꼬인 계단에 모아본다. 잭이 콩나무를 타고 오르듯 신중한 걸음을 옮겼다. 오를 때는 얼마 되어 보이지 않던 계단도 뒤를 내려다보자 아찔하게 다가왔다. 차가운 난간을 움켜쥔 손아귀에 마지막 힘을 불어넣는다.
넷, 셋, 둘, 하나, 마지막 계단을 오르자 수풀에 가려있던 하늘빛이 일순간에 쏟아진다. 계곡을 휘감으며 올라온 산바람 역시 뜨거워진 땀방울을 식혀준다. 마등령, 너무 가팔라 산턱을 어루만지며 올라야 된다는 마등령에 섰다. 비대해진 몸과 땀에 쩔은 배낭을 지탱하느라 뻣뻣해진 다리를 이끌며, 목구멍으로 넘어올 것 같은 심장박동을 진정시키며 그곳에 올랐다.
저 멀리로는 한낮의 대기에 탈색된 연푸른색 대청봉이 보인다. 좌우로 넓게 펼쳐진 백두대간의 능선은 고개를 들고 하늘로 비상하는 봉황처럼 웅장하다. 그 밑으로는 주식차트의 꺾은선그래프 같은 공룡능선이 날을 세우며 달려온다. 설악산의 안과 밖을 나누며 촘촘히 박혀있다.

하지만,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다.
이곳 마등령은 한 고개로서의 의미보다 공룡능선의 시작점이라는 의미가 더 큰 것이 사실이다. 물론 오늘의 땀과 노력이 헛수고인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는 단지 공룡능선에 오르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다.
앞으로도 어려움은 많겠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 잘 해 내리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길을 나서자. 뒤로 보이는 풍경만이 모두가 아니듯 더 높은 곳을 찾아, 더 먼 곳을 볼 수 있는 곳으로 길을 떠나자. 스테고사우루스의 등뼈를 따라 설악산을 올라보자.
아직 갈 길은 멀다지만 새로운 출발선에 서자 힘이 솟구친다. 모든 길에는 마침표가 있겠지만 거기엔 언제나 새로운 시작이 있었기에, 다시 길을 나선다.

공룡능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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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말하다


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소리 없이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어찌할 수 없는 존재지요. 가까이할수록, 잡으려할수록 더 멀어지는 것이 바로 말입니다. 엄청난 학식으로 치밀하게 준비했다고 해서 쏜살같이 지나가는 말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그래서 전 말을 믿지 않습니다. 내일 있을 말은 물론이거니와 어제 흘렸던 말 역시 마찬가집니다. 존재하지도 않은 미래를 이야기하거나 과거라는 시간을 통과하는 순간 말은 그 원래의 성격을 잊어버립니다. 말이 갖는 함축성은 듣는 이로 하여금 수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이는 수십개의 잔가지를 뻗으며 뇌리 속에 각인됩니다. 설상가상으로 자신의 상황에 맞게 각색되어 타인에게 전달됩니다. 기쁘거나 슬프거나, 혹은 분노의 감정이 포함된다면 기름을 뒤집어 쓴 불꽃처럼 엄청나게 불어나기도 합니다. 말은 생활의 수단이지 목적은 아닙니다. 부디 한마디의 말에 현혹되어 그 실체를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마십시오. 말의 함정에 빠지지 마십시오.


* 말, 말, 말의 무서움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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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기념회

 알라딘 블로거로 활동 중인 파란여우님이 그간의 서평을 정리해 책으로 출판했다. 그 전에 몇 번 이름은 들어봤지만 관심을 갖고 그의 글을 찾아 읽지는 않았는데 알라딘 메인에 걸린 그녀의 출판 소식을 듣고 여기저기 기웃거려봤다.
  일단 그녀의 블로그를 통해 그간의 행적을 유추해봤다. 공무원 생활을 때려치우고 귀농, 염소를 키우며 살고 있으며 그즈음 시작된 본격적인 책읽기로 5년 동안 천여 권의 책을 읽었다고 했다. 물론 대충 읽고 넘긴 것도 아닐 것이고 알라딘 블로그에 체계적으로 정리를 해서 올렸을 테니 그 시간과 노력은 가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책이 출판된 상황 때문인지 현재의 블로그에서는 직접 서평을 읽을 수 없지만 나머지 글들을 통해서나마 그녀의 ‘글빨’을 가름해 볼 수 있었다. 서평이든 일상을 적은 글이든 한 가지 소재에서 시작된 글이 가지를 뻗으며 그 영역을 사회, 문화, 역사, 예술로 넓혀나가고, 서로의 공통점과 이질적인 면을 적절히 배합해 하나의 주재로 완성해 나가는 모습이 기성 작가 못지않았다. 오히려 기성작가들 같았으면 이슬만 먹고 사는 외계인쯤으로 치부하고 말았겠지만 알라딘이라는 둥지에서 오랫동안 먼 이웃으로 공존해온 파란여우님의 경우에는 그 존재감이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오며 가며 만난 동네 사람이 알고 보니 굉장히 유명한 아무게 였더라는 식의 놀라움과 나는 왜 그렇게 되지 못했는지, 나는 왜 그렇게 할 수 없는가하는 아쉬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똑같은 책을 읽어도, 똑같은 그림을 보거나 똑같은 상황에 처했어도 내가 얻고 느끼는 것은 단지 그 상황의 단면에 불과할 뿐, 깊이 있는 분석과 날카로운 성찰은 부족하게만 보였다. 어떤 시선으로, 어떤 느낌과 방법으로 생각하기에 그런 복합적이고 전문적인 이해가 가능한지 가늠하기 어려웠고 머릿속에 맴도는 그런 복잡한 생각들을 어떻게 유려한 글로 풀어낼 수 있었는지 궁금함을 넘어 불안함으로까지 다가왔다. 물론 파란여우님이 언급했던 것처럼 많은 독서와 깊이 있는 생각, 그리고 적절한 메모가 쌓여 지금의 글이 완성되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글에 ‘미친’ 그녀의 입장일 뿐 나에게는 쉽게 다가오거나 설명되지 못했다. 당신네들은 “조금만 더 노력하고 준비한다면 충분히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말했지만 단편적이고 어설픈 이런 내 글들을 보자니 한숨만 더 깊어져버렸다.
  세상에 잘나가는 글쟁이들이 너무나도 많다. 기성작가 못지않은 그들의 배 아픈 행보를 보자니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어깨를 내리누르는 의기소침이 동시에 몰려오는 것 같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그들의 생각의 깊이가 부러운 것이 아니라 글이라는 결과물과 그 부속물이 부러운 것은 아닐까 반문해본다. 책이나 사회현상, 일상의 일을 글로 표현하고 블로그에 올림으로써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의 방문자가 다녀가고 수많은 댓글이 달리는 그 껍데기가 부러운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글을 쓰고 홈페이지에 올리면서 나의 느낌과 생각을 다른 사람들이 공감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언제부턴가 이런 글도 남이 읽어 주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내가 적은 글을 누군가가 읽지 않는다면 글을 올리는 것 자체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반문한 적이 많았다. 물론 그럴 때마다 누구를 위한 글쓰기가 아닌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한 글쓰기임을, 책이나 여행, 일상에 대해 되돌아보고 정리해 보기위한 것이라고 되새겨 보지만 가끔씩 치밀어 오르는 과시욕은 사라지질 않았다.
  결국 문제는 글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글을 통해 자신을 뽐내려고 하는 허세에서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파란여우님의 멋진 글과 수많은 댓글이 부럽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좋은 글들은 어디 하루아침에 써 지겠느냐 말이다. 오랜 시간 자신과, 독서, 글쓰기에 대한 투철한 연마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경지이기에 그 외형만을 흉내 내려고 한다면 소리만 요란한 빈 깡통이 될 것이 분명하다.
  욕심과 부러움을 삭히고 글에 대한 처음의 생각으로 돌아가야겠다. 타인의 시선을 고려하지 않을 수야 없겠지만 일단 자신에게 충실해져야겠다. 더 많이 읽고 더 깊이 생각해야겠다. 좀 더 솔직해지고 더 자주 메모해야겠다. 작가의 의도를 뒤집어 생각해보고 그 결과를 한발 앞서 추론해봐야겠다. 너무 많은 것을 한 번에 담으려하지 말고 핵심이 되는 내용을 쉽게 표현할 수 있도록 연습해야겠다. 그리고 글을 통해 나를 되돌아봐야겠다.


- 2009/12/04
    파란여우( http://blog.aladin.co.kr/bluefox )님의 블로거를 보면서, 부러움과 부끄러움에 몇 자 적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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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로쿠 2009-12-05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미 멋진 글을 쓰고 계시는걸요. 저는 책을 잘 읽지 않아서인지 요즘은 가끔 헤깔리는 한글도 있을 정도에요. >.< 제가 보기엔 쓰신글 이해가 잘 될 정도로 멋진 글 실력이 아닐까 싶네요. 블로그 글들을 왠만하면 큰 주제만 보고 넘기지만, 이 글은 읽기가 매우 편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갑니다.
저도 블로그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합니다. 어쩌면 다른 사람이 봐주길 원하는 심리가 더 강하게 작용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방문자가 계속해서 줄어들면 글이 줄어들고,, 몇주뒤에 다시 포스팅을 시작하고.. 반복되는 블로그네요. ^^
그리고 제 생각은 블로그의 질과 방문자 수는 비례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어떤 곳은 연예기사를 빨리 올려서 베스트 블로그가 되는곳도 있구요. 어찌보면 세상 원리랑 비슷한듯, 결국, 블로그도 사람들이 원하는 니즈를 충족시켜주는 마케팅이 아닐까요?! 훌륭한 글쓰기는 기본 조건은 되겠지만, 그들이 원하는 컨텐츠를 제공하지 못하면 결국..

쓸대없이 말이 길어졌네요. 모쪼록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참 그리고 올블로그에 어제 베스트 글에 있더군요. ^^ 축하드립니다.

프리즘 2009-12-06 22:52   좋아요 0 | URL
누가 봐준다고 좋은 글이 많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응원은 될 것 같네요. 하지만 인기를 위한 ‘보여주기’식 글도 또한 문제겠죠. 요즘엔 스스로를 많이 되돌아봅니다. 건강하세요~
 
내 심장을 쏴라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글을 잘 썼기에, 무슨 내용을 어떻게 요리했기에...’ 하는 마음이 부러움과 함께 밀려왔다.
 소설이라는 걸 써 보려고 몇 날을 바동거린 적이 있었다. 평소 즐겨 써오던 여행기에 소설적 사건을 추가해 작은 단편을 하나 써보려고 했었는데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머릿속에 떠도는 생각만큼은 '김훈 저리가라'였지만 이를 구성하고 써내는 능력은 갓 글 읽기를 시작한 유치원생 수준이었다. 어디서 주워들은 풍월은 많되 그것을 내 것으로 써내려갈 실력은 되질 못했다. 결국 한 움큼의 머리털만 뽑아버린 체 간단한 산문으로 마무리했었다.
 그렇게 어려운 소설을, 단편도 아닌 장편을, 그것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것 자체는 부러움을 너머 범접하기 힘든 신의 경지처럼 다가왔던 게 사실이었다. 약간의 자괴감과 신에 대한 경외감이 뒤섞인 마음으로 세계문학상 수상작을 펼쳤다.

 소설의 배경은 정신병원. 미쳐서 들어온 이들과 들어와 미쳐버린 사람들이 세상을 비웃으며 살아가는 수리 희망병원을 무대로 한다. 정신병원을 전전하며 이곳까지 오게 된 이수명은 같은 날 정체불명의 사람들에게 끌려오는 류승민을 만난다. 하지만 첫날부터 류승민의 탈출소동에 휩싸여 호된 신고식을 치른다.
 두 젊음은 단절된 세상과의 끈을 잡기위해, 불행했던 과거의 기억과 자신을 옭죄려는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계속해서 탈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모든 시도가 실패로 끝났고, 급기야 류승민은 시력마저 잃어버려 자포자기하며 현실에 멈춰 버린다.

 정신병원이라는 특수한 상황, 세상과 담을 쌓은 체 그들만의 방식으로 소통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무엇이 그들을 세상 밖으로 내동댕이쳤는지 모르지만 마음의 빗장을 단단히 걸어 잠근 체 좀처럼 나오려하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 속에 자신을 숨겨버리고 미쳐버린 세상 밖으로 도망쳐버렸다. 하지만 '미쳤다'고 손가락질 하는 세상과는 달리 오히려 그 속에서 평안을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닫혀버린 마음의 문보다 더 육중한 철문이 그들을 보호하고 있기에.

 그들은 세상을 향해, 자신을 등진 세상을 향해 모든 열정을 쏴 버리려 한다. 계속되는 탈출 실패와 약물치료, 폭력 속에서도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억압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힘찬 날갯짓을 지금 막 시작되었다. 자유를 향한 그들의 비행에 박수를 보낸다.
 봄 햇살 같은 미소가 글 속에 녹아있는 것 같다. 봄바람 같은 간결함과 간간히 섞인 유머가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잘은 모르지만 세상을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보려는 작가의 따뜻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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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 스펜서 존슨
스펜서 존슨 지음, 이혜승 옮김 / 청림출판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쌍둥이라는데... 어떻해~”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가 아직도 기억난다. 들뜬 목소리처럼 보였지만 그 속에 숨어있는 근심과 걱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첫째아이 돌을 지낸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쌍둥이라니. 물론 ‘쌍’이 갖고 있는 ‘Double(두 배)’의 기쁨도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무시할 수 없었다. 세 명의 아이를 누가 돌보며 이들에게 들어가는 엄청난 양육비는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하지만 막상 쌍둥이들이 태어나자 이런 외적인 어려움보다는 어린 쌍둥이 동생을 마주하게 된 첫 아이에 대한 문제가 더 급하게 다가왔다. 어린 두 동생을 때리고 꼬집는 것은 다반사고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떼를 쓰고, 고함을 지르는 등의 행동이 두드러지게 잦아졌다. 물론 부모의 사랑을 나눠 갖는 것에 대한 첫째의 질투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어찌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다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화내고 야단치며, 전쟁 아닌 전쟁을 치루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커가는 아이들에 비해 특별히 변화된 것은 없었다.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 속에서 문득 내가 자녀에 대해 너무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귀가 따갑도록 들었지만 정작 그 방법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봤다. 

 “그래, 사랑하는 방법을 공부하자.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보자”
 이렇게 읽기 시작한 <부모>는 이전에 봤던 육아 관련 서적과는 접근방식부터 달랐기에 그 느낌도 자못 컸다. 자기 계발서로 유명했던 스펜서 존슨의 글이라 더 의미 있었는지 모르겠다.
 책은 일상에서 간단하게 적용할 수 있는 ‘1분 교육법’을 강조한다. 1분 목표, 1분 칭찬, 1분 훈계와 같이 얼핏 들을 때는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 같았지만 그 가치에 대해선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못한 것들을 예화를 바탕으로 되짚어 본다.
 1분 목표, 먼저 아이에게 자신만의 목표를 세우게 한다. 단 1분 이내로 읽을 수 있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어야 한다. 목표가 없는 삶이란 지도 없이 먼 항해를 떠나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이라고들 하지만 정작 우리들은 그 목표의 중요성을 잊고 살아가고 있다. 정확한 목적지도 없이 어찌 제대로 된 출발점이 있을 수 있겠는가. 1분 목표는 좋은 시작의 중요성을 일깨우며 목적 달성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스스로 찾아보게 만든다.
 1분 칭찬, 아이의 잘한 점을 찾아 적극적으로 칭찬한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했고, 어떤 점이 엄마, 아빠를 기쁘게 했는지 자세하게 말해준다. 얼마 전에 화제가 되었던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책 제목처럼 한마디의 칭찬이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잘한 점을 찾아 칭찬해 줌으로써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고, 긍정적인 생활방식을 키우도록 도와줄 수 있다. 이를 통해 장점은 더 발전시키고, 단점은 극복될 수 있도록 내적 강화를 줄 수 있으리라.
 1분 훈계, 아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명확한 표현으로 즉시 훈계한다. 이때 아이의 가치는 존중해 주되 잘못된 행동만을 훈계해야 한다. 어떤 일이든 결과가 있게 마련인데 이를 잘 활용한다면 또 한 번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자신의 잘잘못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든 나이기에 주위의 엄마, 아빠가 도움은 필수적인 것 같다. 하지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을 잊지 말아야겠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라 아이를 야단치다보면 잘못한 행동 이외의 모든 것까지 부정하고 단죄하려는 경향이 있다. 꼭 아이의 잘못만을 훈계해야지 아이의 존재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는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꼭 안아준다면 그 효과는 배가 되지 싶다.
 부모가 알아야 할 세 가지 지침뿐만 아니라 이것이 왜 중요한지도 자세히 일러준다. 우리가 미처 실행하지 못했던 단순한 교육법을 막강한 결과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목표를 통해 자신의 할 일에 대해 정확히 이해할 수 있고 그 해결과정을 통해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 또한 칭찬은 아이들의 행동에 자신감과 확신을 주며 훈계를 통해서는 실수나 잘못을 바로잡아 미래에 닥칠지 모르는 문제를 미연에 해결할 수도 있다.
 결국 모든 것은 아이들의 ‘자존감’에 귀결된다고 하겠다. 여러 연구물을 통해서도 알고 있듯이 “스스로를 좋아하는 아이는 바르게 행동하고 싶어 한다”는 말을 명심해야겠다.

 단순히 아이들의 교육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까 하고 읽었지만 더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아이들의 요구를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엉터리 사랑이 아니라 부모도 아이들과 똑같이 웃고 우는 인간이라는 점을 인식한 체계적인 사랑이 필요한 것 같다. 함께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며 칭찬, 훈계하는 모습을 통해 자신의 가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가치도 함께 생각할 수 있어야겠다.
 가정에서 뿐만 아니라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일어나서 밥 먹고 세수하고 출근하고, 서류 정리하고 수업하고 보고서 만들고, 아침부터 시작되는 하루를 아무런 의미 없이 보내는 것은 아닌지. 그저 사고 없이 하루를 버텨내야하는 하루살이처럼 생활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본다. 그날 할 일을 정해놓고 퇴근할 때에는 그날의 일을 정리해본다면 이보다 더 좋은 처세법이 없지 싶다. 그날의 할 일을 명확히 알고 있으니 당연히 능률도 오를 것이고 흥미도 자연스레 뒤따라올 것이다. 목표를 달성했을 때 느끼는 희열은 또 얼마나 클 것이며 설사 실수가 있었다고 한들 다음에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리라. 직장, 학교, 군대, 교회, 공사장, 어디하나 적용되지 않는 부분이 없는 것 같다. 우리의 아이들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들에게도 최고의 처세서가 아닌가 싶다.
 이제 막 세 살을 넘긴 첫째아이에게 바로 적용하기는 어렵겠지만 두고두고 읽으며 음미해야겠다. 책을 이끌어가는 화자인 헬렌이 마지막에 강조했듯이 ‘오늘 배운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눠’주고 싶다. 아내와 이웃들과 함께, 훗날에는 우리 아이들과 함께 읽어봐야겠다. <부모>와 함께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점검해봐야겠다.


( www.freeism.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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