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3일 수요일

살갗을 에일 듯한 추위

 

낮에 외장하드를 정리하다가 〈와호장룡〉을 다시 봤다. 2016년에 발표한 ‘처절한 망작’인 2편은 온라인 게임만도 못하고, 평론가들에게 온갖 철학적 수사로 호평을 받은 1편은 얘기할 ‘꺼리’가 많다. 대개 장자와 노자를 끌어다 붙인 해석이 떠도는 구름처럼 쉽게 찾아 읽을 수 있으나 나는 이 영화에서 가부장제를 봤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닉네임이기도 한 파란여우가 보여준 자유와 성평등을 혼자 곱씹지만 말고 일기에 쓰고 싶어졌다.

 

〈와호장룡〉은 남성중심주의, 권위에 대한 복종, 개인 욕망 부정이 드러나는 영화이다. 봉건왕조시대 배경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주요 인물 세 명만 추리면 침술사가 맥을 짚듯 잡힌다. 부산대 이왕주 교수가 쓴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에서 〈와호장룡〉평은 장자편에 나온 ‘포정해우(庖丁解牛)’를 주제로 삼았다. 이 교수는 리무바이가 스승에게 물려받은 청명검을 사욕에 쓰지 않는 건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는 도(道)라고 한다. 영화에서도 리무바이와 사형관계인 유수련은 청명검은 정의를 위해 쓰는 검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자기가 속한 무당파가 정의로운 집단이라는 뜻이다.

 

이 교수는 재기발랄하고 자유분방한 용에게 검술을 가르쳐준 파란여우를 가리켜 ‘소 푸는 기술’이 아닌 ‘소 잡는 기술’을 알려준 사악한 스승으로 해석한다. 소 푸는 기술은 선으로, 소 잡는 기술은 악으로 등치했다. 예의 바르고 진중한 리무바이와 유수련을 소 푸는 기술을 가진 선을 행하는 정의로운 무사로 인식하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발언이다. 반면에 정략결혼을 거부하고 제도에 순응하지 않는 도발적인 용과 그런 용에게 자유로운 삶과 개인 욕망을 심어준 파란여우는 악한 인물이 되어버렸다.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으로 회자되는 대나무 숲 대결은 장자가 말한 무위자연과 연결된다. “유위는 무위를 누르지 못하고, 억지스러움은 자연스러움 앞에서 오래 버티지 못한다.” 리무바이는 뒷짐을 진 채 춤을 추듯 칼을 휘두르는 용을 상대한다. 청명검을 손에 넣으려고 용은 애를 써보지만 쉽지 않다. 바람에 휘청대는 대나무 위에 나비처럼 사뿐하게 앉아 바람을 타는 리무바이는 대나무와 한 몸이 된 듯하다. 자연합일 순간이며 무위자연이라고 거듭 강조하는 이 교수는 소를 푸는 기술, 즉 포정해우야말로 자연의 섭리이며 도라는 것이다.

 

어쨌든 이 일기를 쓰려고 삼십 여분 동안 책장을 뒤지느라 슬쩍 뼛성이 났다. 대체, 대체, 대체! 를 열 번은 읊조렸다. 이 교수가 쓴 〈와호장룡〉평을 몇 년 만에 다시 읽었다. 이제나저제나 했지만 가부장제는 끝내 언급이 없다. 그런데 이 교수 말마따나 “사악한 파란여우”는 “순진무구한 용”에게 무예를 빌미로 접근하여 소 잡는 기술을 가르쳐준 악의 화신인가? 동의 못함 1. 게다가 “그녀를 진정한 무인으로 키워준 스승은 리무바이였다.”고 평한다. 동의 못함 2.

 

이 교수는 대나무 숲 결투 장면과 용이 연못으로 몸을 던지는 장면에 집중하느라 놓쳐서는 안 될 대사를 놓쳤다. 무위자연도 좋고, 자연의 섭리도 좋다마는 매사에 삐뚤어지고 기울어지고 흔들리는 생각을 가진 나로서는 “천하에 주자(朱子)만 공자 뜻을 알고 나는 공자 뜻을 모른다고 할 수 있느냐”고 했던 윤휴(윤 씨들의 반골기질은 파를 가리지 않고 유명하게 전래되었는데 우리 집에서는 아들들 제쳐놓고 딸인 나에게 가장 많이 유전되었다) 심정으로 삐딱선을 타기로 했다. 내 닉네임은 영화를 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어깃장으로 2002년에 만들어졌다.

 

1. 유수련은 가부장제에 복종하고 헌신하는 명예남성

유수련은 결혼을 앞둔 용과 처음 만난 날, “곧 시집가는데 그동안 내 인생을 살지 못했다”고 푸념하는 용에게 “여자에게 있어 혼인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고 조언한다. 봉건왕조시대, 봉건왕조시대, 봉건왕조시대를 세 번 말하면 수긍이 간다. 그러나 용도 봉건왕조시대를 사는 여성이다. “정의를 위해 쓰이는 청명검”을 둘러싸고 적대관계가 된 두 사람은 리무바이를 사이에 둔 연적관계이다. 젊은 여성과 고난을 함께 한 도반인 중년 여성은 무당파 수제자이자 인격을 갖춘, 게다가 잘 생기기까지 한 남자를 두고 감정싸움을 벌인다. 엉너리를 부려보면, 사랑은 싸움으로 시작한다. 용과 리무바이는 처음 만난 날부터 투닥투닥 밀당을 한다. 첫눈에 반한 것이다. 반면에 리무바이와 유수련은 오랫동안 살아온 부부처럼 어지간한 일에는 다툴 일이 없다. 리무바이는 청명검 도둑으로 나타난 젊고 예쁜 용에게 반한다. 쌩쌩하고 활기찬 용의 기운은 은둔생활로 들어가려던 리무바이 계획을 전면수정하게 했다. 게다가 용과 리무바이가 보여준 ‘대나무 숲 밀당’은 아슬아슬 조바심에 심장을 졸였을 것이다. (그러다 정분 난다) 남몰래 리무바이를 흠모해 온 유수련이 갑자기 나타난 용에게 반감을 갖고 위기를 느끼는 건 당연하다. 청명검 지키기는 명분일 뿐이다. 감정 속이지 말자. 유수련은 강호보다는 규방이 어울리는 인물이다. 무당파 제자로 사는 건 어떤 삶이냐고 묻는 용에게 “여자로서의 도리는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말하는 유수련은 철저히 가부장제에 동화된 여성이다. 봉건제에서 ‘여자로서의 도리’란 당대 여성들이 그렇듯 살림 잘 하고, 내조 잘하며, 아이 잘 키우고, 시부모 잘 모시는 일이다. 재기를 갖춘다고 해 봐야 서예나 수예에 그치고 아들을 낳아 대를 잇는 게 큰 의무였다. 유수련은 복종, 순종, 순응, 인내를 요구받았던 봉건시대 여성의 도리를 잘 알고 있으며 운명에 관해 의심하지 않았다. 청명검을 기증하겠다고 하는 리무바이에게 유수련이 말한 “정의를 위해 사용한 검이라 사형한테 어울린다.”는 말은 ‘리무바이=정의의 사도’라는 인식이다. 흠모 상대는 사실 구분 없이 언제나 정의인 법이다.

 

2. 리무바이 씨, 정의란 무엇입니까?

무당파 수제자 리무바이가 청명검을 기증하려고 산에서 내려오자 유수련은 먼 길을 찾아가 만난다. 그 사람 그림자만 비쳐도 그리움이 출렁여 가슴이 콩당콩당 뛰고 얼굴이 붉어질게다. 꽁냥꽁냥 연애한 사이는 아니어도 온갖 풍파를 함께 겪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밤 용이 리무바이 마음을 훔친다. 검만 훔치면 영화가 안 되니까 여리여리한 몸매로 지붕을 나풀나풀 새처럼 날아다니면서 리무바이 마음을 훔쳤으니 강호 고수도 어쩔 수 없다. 리무바이는 청명검을 훔쳐 달아나는 용을 가로막고 “연마를 더하면 청명검을 쓰는 법을 가르쳐주겠다”고 제안 한다. 낮에 유수련을 만났을 때만 해도 강호를 떠나 평범하게 살 작정이라고 하던 말을 뒤집었다. 사람이 참. 가소롭게 여기는 용에게 “사람 된 도리를 가르쳐주고 싶다”고 까지 한다. 본격 작업멘트이다. 리무바이가 훈계를 계속하자 “왜 날 가르치려는 거죠?”라고 맨스플레인을 따지는 용에게 본색을 드러내는 리무바이. “줄곧 제자를 찾고 있었지. 무당심결을 전수해주려고 말이야” 물론 숨이 끊어지기 전 유수련에게 “사매를 좋아했어요”라는 때늦은 고백으로 유수련을 안심시켰지만 사람이 참.



무당파가 정의를 위해 사용했다던 청명검. 이 문장을 뒤집어보면 무당파는 정의로운 집단인가? 정의를 위한 살인은 어디까지 용납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 생긴다. 무림세계를 평정한 승자는 월계수관을 거머쥔다. 불한당일지라도 역사는 승자 편이며 승자에게는 정의라는 독점사용언어가 특혜로 부여된다. 무당파가 강호를 제패하기까지 비록 그들 말대로 정의 구현을 위한 일이라고 해도 많은 살인을 저질렀을 것이다. 챙챙 칼싸움이 한창인 상황에서 단순가담자까지 가려서 싸우지는 않는다. 리무바이가 생각한 정의란 무당파를 선으로, 대적자를 악으로 놓지 않는 한 성립되기 어렵다. 무법지대에서 법을 지키는 사람이 정의라는 설정은 진부하다. 무당파가 자기 패거리들 결속과 이익을 위한 것 말고 대중을 위한 어떤 법을 대체, 대체, 대체! 지켰다는 것인가?

 

3. 성평등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이자 살인자 파란여우

파란여우는 비가 쏴쏴 쏟아지는 저녁에 죽었다. 관도 없이 입고 있던 옷차림 그대로 흙구덩이에 묻혔다. 살인자였으니 참담하게 죽는 건 예상된 일이다. 칠흑 같은 밤만이 죽음을 애도했다. 스승을 죽인 파란여우를 용서할 수 없다고 지탄하는 리무바이에게 파란여우는 당당하게 이런 말을 한다. “네 사부는 여자를 우습게 봤어. 동침했으면서도 무공을 전수해주지 않았지” 무당파 스승이 여성을 유혹해 동침을 하고 무공을 전수하겠다던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무당파는 대체 어디를 봐서 정의로운 집단인가? 파란여우가 무당심결을 훔친 일과 무당파 스승의 성착취는 생각이 복잡해진다. 집단 위태로움과 개인 상처를 저울질하지 않으려면(지긋지긋한 대의와 소의 나누기!) 리무바이는 스승에 몰입하지 말고, 정의를 착각하지 말고, 무당파에 집착하면 안 된다. 배움을 회의하고 의심하고 의문해야 할 것이었지만 파란여우를 근본 없이(대개 폭력은 근본 따지기부터 시작된다) 대드는 불가촉천민처럼 취급(대우도 아니고)했으니 리무바이는 죽어야 했다. 잘 죽었다. 내 방식대로라면 리무바이는 청명검에 죽어야 했다. 분별 없는 맹신이야말로 정의의 칼을 받아야 한다. 

 

리무바이나 유수련 입장에서 파란여우는 본류를 흐리는 지류이며, 귀족에 항거하는 천민이며, 권위에 도전하는 불령선인이다. 남성(기득권)에게 상처 받은 자존심과 사욕이 엉겨 살인을 했다. 무당파는 파란여우에게 생긴 상처를 보듬고 상처가 남긴 자국을 찬찬히 만져 찢어진 자리에 아까징끼라도 발라줘야 했지만 철저히 배척했다. 곁을 내주지 않고 짓밟아 묻어버렸다. 정의를 수호하는 무당파 집단이념이 벌인 만행이다. 파란여우는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남성에게 의존하지 않는 여성이다. 죽기 전 파란여우가 용에게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속내에서 험난한 인생여정과 그럼에도 자유를 향한 갈구가 강렬하게 느껴진다.

 

“한번 사는 인생 자유롭게 살아야지. 기왕 떠나왔으니 자유롭게 살자. 행복하게 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 넌 언제나 내 보배였어. 넌 내 유일한 가족이자 적이었어.”



김영민 선생은 《집중과 영혼》에 실린 〈여자의 분한, 여자를 향한 분한〉에서 “약자들은 약자의 역사를 잊지 않지만 이미 강자들에게 점유당한 역사와 그 현실을 자신의 ‘풍경’으로써 대적한다.”고 했다.

 

3일째 칼바람이 분다. 험악한 이 밤에 염소가 새끼 세 마리를 낳았고 한 마리는 죽었다. 사육자이자 살육자인 나는 조금은 기쁘고 조금 더 많이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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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과 영혼 - 영도零度의 인문학과 공부의 미래
김영민 지음 / 글항아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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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자는 김영민 선생 책을 읽은 독자와 읽지 않은 독자로 갈린다.읽은 독자 가운데 한 두 권만 읽은 독자가 있고 여러 권 읽은 독자가 있다.지멸있게 파고들며 한두 권 읽은 독자 가운데 허세와 호기심에 그러모은 독자가 있고 비판하다 덮은 독자가 있다.여러 권 읽었으나 참나무 책장은 아닐지라도 딱딱한 제본표지를 달고 나온 묵직한 책들과 어깨를 나란히 곁에 둔 호기로운 독서가도 있다.길 가다 돌멩이 툭, 차듯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독자도 더러 있다.낱말 한 개마다 깊게 파인 옹이 결을 따라 가다보면 그 아득한 심영과 심원만큼이나 어질어질해서 김영민 선생 책은 독자에게 맞지 않다고 투덜대는 독자가 있다.잰걸음으로 문을 열고 나가기까지 머뭇거리며 한 번 더 한 번 더 또 한 번 더를 이태 앉았던 자리를 보고 또 보고 만지고 또 만져서 기름기가 좔좔 손끝에 묻어나 육덕진 맛이 좋다고 하는 독자도 있다.텔레비전 10초 광고만큼 가죽위를 얕게 쓱―스치는 글빨이 세간에서 유행하는 현혹이라해도 만연체와 부사가 없는 문장은 문장의 에로틱을 완성하지 못한다고 여기는 독자가 있다면 그는 김영민 독애자이다.겉보리 같고 쭉정이 같고 빠다냄새 흠씬한 말잔치에 혀를 내둘러본 독자라해도 난망한 사설과 곡진한 결에 취하고 보면 이제껏 모든 자음과 모음은 허깨비 같은 것 같은 깨단함을 느낀 독자도 있다.소설 박상륭,인문철학 김영민이 이 황무지에서 볕뉘가 될 것인지 모르지만 김영민 선생 말은 끝이 없으므로 끝나지 않는다.언죽번죽한 저자들이 왁달박달한 세속을 누비는 동안 건강하시고 공과금과 쌀값 걱정 안 하실 만큼 돈을 버시기를 두 손 모아 빈다.

 

※ 뛰어쓰기매우귀찮아그대로적바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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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개와 인간의 마음 -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 마음의 비밀
대니얼 웨그너 & 커트 그레이 지음, 최호영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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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는 한해를 돌아보며 마음을 점검하게 된다.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가운데 마음이란 무엇인가?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를 떠올린다. 2013년 루게릭병으로 작고한 미국 심리학자 대니얼 웨그너와 제자 커트 그레이가 쓴 《신과 개와 인간의 마음》에서는 “마음은 마음을 바라보는 자의 눈 안에 있다”고 한다.

 

아르키메데스 점(관찰자가 탐구 주제를 총체적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지각할 수 있는 유리한 가설적 지점)처럼 마음 개념부터 짚고 시작하는 이 책은 박학다식한 연구 자료와 수다스런 논리로 지멸있게 밀고 나간다. 저자는 경험과 학습을 바탕으로 한 의식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마음은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우리 의식은 선입견·고정관념·편견에 가두거나 가벼운 오해로 임시저장하기도 한다. 마음은 마음먹기 나름인데 마음을 아는 일은 간단치 않다.

 

그래서 저자는 “‘실제로 무엇인가’가 아니라 ‘무엇처럼 보이는가’”를 발제 삼아 마음을 탐구 한다. ‘마인드 클럽(Mind Club)’으로 가정한 이 전개는 인간을 비롯해 동·식물과 로봇·물건·태아·신, 심지어 죽은 이가 지녔던 마음까지 탐험한다. 저자가 마음을 ‘지각의 문제’로 보는 이유는 대상을 무엇으로 보고 어떻게 판단하는가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로봇을 포함한 기계나 물건은 고통, 기쁨, 공감, 쾌락과 같은 경험이 없고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점점 복잡해지는 기계는 인간과 대화가 가능해졌다. 애플에서 만든 인공지능 시리(Siri)나 아마존 에코닷(Echo Dot)처럼 인간과 일상 대화가 가능한 로봇에게 인간은 마음을 부여한다. 피와 살이 있고 심장이 뛰는 조건에서만 마음이 있다고 믿었던 과거가 무색하게 마음도 SF 시대를 연 것일까?

 

그렇다고 인간이 동물이나 기계보다 소통과 공감 능력이 탁월하다고 보기 어렵다. 저자는 억압, 착취, 폭력, 살인, 전쟁은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지 않은 결과라고 한다. 피해자가 아닌 자기가 기르던 개에게 마음을 투사한 연쇄살인범, 유대인을 마음이 없는 대상으로 강등해 6백만 명을 학살한 히틀러처럼 인간에 대한 몰이해는 폭력이다. 마음을 소거 당한 대상은 흑인 노예가 되고, 식민지 착취를 당했으며, 성폭력 피해자가 된다.

 

저자가 시종일관 마음을 지각 문제로 가리킨 이유는 지각이 결여된 상태에서 마음이 결정되어질 때 발생하는 비극을 말한 것이다. 사실에 근거를 둔 지각과는 무관하게 인간은 감정과 경험만으로 상대를 도덕적 지위에 올려놓거나 무시와 파괴 대상으로 삼는다. 그것은 도덕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따라서 지각이야말로 대상을 사물로 전락시키는 일을 막는 도덕적 책임이다.

 

저자가 실험한 결과처럼 인간은 경험과 행위로 마음을 지각한다. 새삼스럽지만 “행위자와 수동자 간 마음 지각의 차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나와 세계를 이해하려는 태도이다. 이 일은 개부터 신까지 지각이 가능한 모든 세계가 해당된다.




1. 국립세종도서관 발행 월간자료 《호수가 보이는 도서관》에 기고한 12월호 ‘이달의 책’ 서평이다.

2. 지면에 실린 글 확인은 여기로

3. 해박한 자료와 지식, 많은 사례와 연구로 읽는 동안 즐거웠다.

그동안 읽은 마음을 다룬 심리학 도서 가운데 인상 깊게 남을 풍요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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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리커버 특별판, 양장)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컬렉션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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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196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쓴 《설국(雪國)》첫 문장이다. 제목과 배경이 한 큐에 드러난 이 문장은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들어봤음직하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일본 북동부 온천마을 유자와(湯澤)에서 두 달 정도 머물렀다고 한다.

 

눈이 많이 내리는 아스라한 풍경을 연상하듯 이 소설에는 이렇다 할 줄거리가 없다. 도쿄에서 서양무용 칼럼을 쓰는 중년남자 시마무라와 온천마을 게이샤 고마코, 짧지만 강렬한 이미지를 남긴 요코가 일일드라마 인물처럼 일상을 연출한다.

 

미리 밝혀두는데 이 소설은 곱씹을수록 알싸하다. 이 소설을 처음 읽었던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름답고 슬픈 느낌을 받았다. 그 후 몇 번 더 읽으면서 허무에 젖곤 했다. 이룰 수 없는 사랑, 가난하고 쓸쓸한 사람들, 극적인 결말 때문이다. 관찰자이자 방관자인 시마무라는 혼자 애간장을 끓이는 고마코와 대비된다. 고마코는 아침 아홉시든 새벽 세시든 수시로 시마무라가 묵는 여관방을 드나든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술에 취했거나 맨 정신이거나 온갖 핑계를 댈 뿐이다. 시마무라에게 도쿄로 돌아가라고 투정했다가 마음을 알아달라고 하소연한다. 사랑을 마음에 품어본 사람은 안다. 연정의 불꽃은 꺼지기 전까지 쉬지 않음을.

 

“순백의 도자기에 엷은 분홍빛 붓을 살짝 갖다 댄 듯한 살결, 가냘픈 목덜미, 미인이라기보다 깨끗했다. 뭐라 형용하기 힘든 청결한 아름다움이었다”

 

시마무라가 고마코 외모를 관찰한 이 대목은 제목이자 배경인 ‘설국’을 연상시킨다. 섬세한 심리표현과 세밀한 풍경묘사가 돋보인 이 소설은 영상미가 뛰어나다. 게다가 민속학지에 나옴직한 새 쫓기 축제나 지지미(縮) 짜기 같은 전통문화를 소개한다. 연모와 정리(情離) 감정을 중심에 넣고 근대를 상징하는 기차를 전면에 배치해 벽촌을 조명한다.

 

2백 쪽이 채 안 되는 이 소설이 쓸쓸한 이유는 요란하게 들이닥친 근대와 사위어가는 사람들을 대비한 때문이다. 세련된 도시 도쿄로 나가지 못한 산촌 사람들은 관광객을 상대하거나 지지미를 짜면서 산다. 소박하지만 어딘가 불안하고 쓸쓸하다. 냉기 가득한 고마코 방, 돈이 없어 치료를 제 때에 하지 못한 춤 선생 아들, 가무에 능하지만 떠돌이 생활을 하는 게이샤, 예인(藝人)이 되려던 사람이 기생(妓生)이 될 수밖에 없던 이야기를 작가는 무심한 시마무라 입으로 전한다.

 

눈 속에서 몇 번을 바래어 만든 지지미는 여름에 시원하게 입는다고 한다. 그러나 한번뿐인 삶은 여러 번 아파도 단련되지 않는다. 체념할 뿐이다. 조실부모한 작가 개인사는 논외로 쳐도 이 소설에서 드러난 ‘덧없는 허무’를 다른 것으로 설득할 힘이 없다.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 겨울이면 더욱 그렇다. 눈은 아름다워서 슬프다.




1. 국립세종도서관 발행 월간자료 《호수가 보이는 도서관》에 기고한 12월호 ‘이달의 책’ 서평이다.

2. 지면에 실린 글 확인은 여기로

3.  트랙백으로 연결한 페이퍼에서 다룬 바와 같이  ‘리커버 《설국(雪國)》’ 한정판으로 나온 이 책 표지는

책에 나온 ‘지지미(縮, ちぢみ)’를 묘사한 것으로 추정한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디자이너 안목이 탁월하다.

4. 3과 같은 이유로 ‘리커버 《설국(雪國)》’이 품절이라는 건 두고두고 아쉽다.

5. 내가 마지막 문장에 쓴 “눈은 아름다워서 슬프다”는 뜻은 복합적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작품에서 나타나는 허무한 삶, 눈, 무희, 지지미를 섞은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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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지미(ちぢみ)처럼 바래지다 : 세속에 질둔한 사람이 사는 방식
    from 뻥 Magazine 2017-12-01 17:41 
    11월 15일 수요일맑고 싸늘한 바람 책상을 정리하다가 《설국》을 책장에 넣기 전에 겉장을 손으로 쓱― 더듬었다. 원고를 송고했으니 한동안 책상 위로 재등장 하지 않겠다. 민음사에서 리커버 특별판으로 9월에 펴낸 이 책 겉장은 자글자글한 주름과 색 바랜 듯한 분홍빛이 은은한 파란색과 섞였다.(그나저나 판매량이 많은데 벌써 품절이다. 이건 ‘아름다운 리커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시마무라가 고마코를 관찰하며 “순백의 도자기에 엷은 분홍빛 붓을 살
징비록 (대활자본) - 지옥의 전쟁, 그리고 반성의 기록, 개정증보판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2
유성룡 지음, 김흥식 옮김 / 서해문집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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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없앤다’는 뜻을 가진 《징비록(懲毖錄)》은 국보 제132호로 1592년 임진왜란부터 1598년 정유재란을 기록한 기록유산이다. 선조 대에 정승을 역임한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이 저술한 이 책은 전란 기록 저작물 가운데 가장 자세한 기록물로 평가 받는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야욕이 전쟁 발발 원인이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정치당략으로 얼룩진 당쟁과 무사안일에 빠진 무책임한 지배층 실상을 낱낱이 폭로한다.

 

이 서평에서 다룬 《징비록》은 서해문집에서 2014년 개정증보판으로 재출간한 책을 저본으로 삼은 2016년 판본이다. 책에 따르면 《징비록》상·하 두 권에 부록으로〈녹후잡기〉를 싣고 《서애집》에서 내용을 추렸다고 한다. 큰 글씨에 적절한 도판과 쉬운 번역, 친절한 주석이 읽는 부담을 줄였다.

 

국가존속과 국민행복은 당리당략에 얽매이지 않는 정치이념이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킬 수 없으나 이념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투쟁과 희생과 관용이 따른다. 마침내 공동의 선이 실현되었을 때 ‘존엄한 역사’로 기록된다. 이런 상찬은 계급 구별 없이 역경과 환란에 공동대처했을 경우를 말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서 지배층은 무지와 무능도 모자라 무책임까지 3무를 겸비해 전쟁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무지에 뿌리를 둔 무책임은 부도덕하며 공동의 선을 추구하기보다 사욕에 얽매인다.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이기주의에 함몰된 이들에게 전쟁은 나와 반대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죄를 물어야 할 일로 이들은 언제나 빠져나갈 핑계와 구실을 만드느라 바쁘다. 그래서 환란이 휘몰아치는 사경 앞에서 무장은 무기를 버린채 옷을 갈아입고 병사보다 먼저 도망쳤고, 도망을 가지 않은 무장은 부하 목을 베어 자기 위세를 과시했다.

 

심지어 병법을 모르는 이가 맹장이라고도 불렸다. ‘배수의 진’으로 유명한 장수 신립은 조총을 걱정하는 유성룡에게 그 조총이란 것이 쏠 때마다 맞느냐고 허세를 부렸다. 신중한 계략과 민첩한 전술이 전무했던 신립은 험준한 천연 요새였던 조령을 비우고 평지였던 탄금대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충주 탄금대 공원 충혼탑에는 신립 동상이 있다. 전술전략이 없는 장수 잘못 만나 허망하게 죽은 병사 8천명에게 존숭한 예의가 선행되어질 때 ‘순국의 념’이 다할 것이다. 유성룡은 이 참패를 〈녹후잡기〉에서 한 번 더 다룬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조선 정치 구조는 계파정치이다. 노론·소론·북인·남인·동인·서인이 왕이 바뀔 때마다 정권교체 쟁탈전을 벌였다. 때로는 왕권강화를 목적으로 왕이 계파를 이용했다. 역사 교과서에서 오랫동안 회자된 상반된 두 가지 보고(상사 황윤길은 왜적 침략 대비 주장. 부사 김성일은 당장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고 주장)에서 왕이 선택한 것도 계파에 따른 결정이다. 사대부 못지않게 선조도 무사안일해서 당시 권력을 장악한 동인 세력 손을 들어줬다. 동인 출신 김성일은 잠시 득의양양했겠으나 1년 후 조선은 죽음의 땅이 되고 만다.

 

이처럼 권력을 의식한 허위보고와 패거리 이익에 눈먼 오만한 명분은 앞에서 언급한 국가존속과 국민행복이라는 정치이념으로 종종 발현된다. 결국 표리부동한 지배층이 보여준 견강부회와 사리사욕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좋은 사냥감으로 제공된 셈이다. 완악한 정치 공학을 앞세운 사람은 위기 앞에서 구태의연하고 진부한 공염불을 버리지 못한다. 유능한 장수를 가려 쓰는 안목이 없던 선조와 조정 대신들 입장에서는 종묘사직과 일신안위가 가장 중요했다. 이들이 안전지대에서 시시비비로 바쁠 때 백성은 소 한 마리와 비단 다섯 필을 받고 왜군 첩자가 됐다. 굶주림에 지친 아버지와 아들이 잡아먹고 남편과 아내가 서로 죽였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병자호란과 을사늑약은 검질긴 참극을 반복한 결과다. 오탁악세의 후흑(厚黑)한 무리들 가운데 진중한 명민함으로 난세를 헤친 이순신을 저자는 공들여 기록했다. 7년 동안 지속된 참화를 애끓는 심정으로 절절이 쓴 이 책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을 겪고 분단국가에 놓인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국가와 시대를 막론하고 정쟁과 파벌은 있다. 위정자들은 어디에나 있고 세계패권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미국의 사드 배치, 군사대국이 된 중국, 극우로 치닫는 일본 정세가 심각하다. 조선 대신들은 계책을 만드는 대신 궐 밖에 엎드려 우는 것 밖에는 할 일이 없느냐고 지탄한 명나라 사신 심유경 지적을 지금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징비록》주석-

1.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 1542(중종 37)~1607(선조 40). 조선 중기 문신이자 학자이다. 호는 ‘서애(西厓)’로 서인에 속한다. 임진왜란에 대비해 이순신과 권율을 등용했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군비확충과 경제안정에 힘썼다.

2. 〈녹후잡기(錄後雜記)〉: 전란 발생의 전조, 무기와 병법 등 각종 대비책과 명․일 양국의 강화 협상 전말을 기록한 책

3. 〈서애집(西厓集)〉: 유성룡이 쓴 시문집

4. 조총(鳥銃) : ‘새를 잡는 총’이라고 불러 ‘조총’이라고 했다. 한번 장전에 한번 밖에 쏘지 못하므로 전쟁에는 쓸모가 없다는 인식이 작동했던 작명이다. 그러나 일본은 조총을 개량해 임진왜란 때 사용했고 조선은 전란 후 화승총으로 개조했다.

5. 후흑(厚黑) : 청나라 말기 이종오가 처음 사용한 말로 뻔뻔하며 음흉한 사람을 가리킨다. 





 1. 광천공공도서관에 기고한 ‘12월의 서평이다.

2. 이번 서평은 겨울방학에 도서관을 이용하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썼다.

3. 2003년 서해문집에서 초판 출간된 《징비록》을 읽은 후 꽤 많은 시간이 지나 재독한 징비록은 새로웠다.

유성룡은 명나라에 대한 사대주의와 왕조시대 한계를 드러냈으나

반면에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명나라와 지배층을 향한 비판의식이 싹튼 게 아닌가 싶다.

4. 이 서평에 사용된 책은 큰글씨본이지만 책 크기는 일반 판형이고 화려한 도판이 이해를 돋운다.

5. 서평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부록으로 실린〈녹후잡기〉는

《징비록》핵심을 다뤘다는 점에서 가치가 재조명되어야 한다고 본다.

6. 나의 졸저인 첫번째 책에서 다룬《징비록》서평을 다시 읽어보면서 감정이입이 개입되었음을 느꼈다.

부끄럽다. 얼른 절판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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