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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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에서 여자로 사는 일’이다. 남아선호, 취업, 승진, 결혼, 육아, 정책, 가치관, 인식을 키워드로 삼았다. 주인공 김지영 씨 주치의인 정신과 의사가 진료기록을 들려주듯 전개한 때문에 영상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런 느낌은 한국 여성이라면 한번이라도 겪었음직한 ‘너무나 흔한 일화’ 때문이다. 2백 쪽이 채 안 되는 소설에 한국 여성이 사는 모습이 적나라하다.

 

남아 선호 사상이 지배한 나라에서 뱃속에서부터 ‘태아살해’를 당하는 여성 차별은 남성 차별과 출발부터 성격이 다르다. 책에서 다룬 것처럼 성장과정에서는 아들에게 좋은 음식과 옷을 주고, 학교에서는 남자아이가 반장이 된다. 주민등록번호에서 남성은 1로 시작하고 여성은 2로 시작한다. 이제는 어떤 여성이라도 제약 없이 대학 교육을 받지만 회사에서는 남성 직원을 원한다. 임신과 육아로 공백기를 염려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성은 성범죄에 노출된 위험 앞에서조차 외려 질책을 받기 일쑤다. “못 피한 사람이 잘못”이라고 하는 김지영 씨 아버지 말처럼 우리 사회에서 성범죄 인과 관계는 대개 이해하기 어려운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마침내 결혼은 여성에게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 안내한다. 아들이 노후 보장성 보험이라도 되는 양 며느리에게 아들 낳기를 암묵적으로 강조한 김지영 씨 할머니가 보여준 전근대 유습은 의문이나 의심 없이 계승되어 왔다. 남성이 주도권을 쥔 사회에서 보조자나 기껏해야 조력자에 머물렀던 할머니 세대는 여성이 지켜야할 덕목을 ‘가이드라인’으로 체득한 것이다.

 

이처럼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남편에 대한 순종과 아들출산은 여성에게 의무였다. 여기에 가사노동, 남편 뒷바라지, 시부모공양, 자녀 교육까지 전담했다. 할머니 세대는 무능한 남편 대신 온갖 품팔이로 아들을 키운 강한 자긍심을 표출하며 심리적 보상을 구한다. 반면에 김지영 씨 어머니가 보여준 ‘억척어멈’ 세대는 경제개발 세대 산증인이다. 남자 형제에게 밀려 진학을 포기한 이 세대 여성들은 1970년대 시골에서 상경해 공장에서 일했다. 방직공장에서 일하며 “돈 벌어서 오빠들 학교 보낸” 어머니는 “지금은 돈 벌어서 너희들 학교 보내는” 처지가 됐다.

 

개발경제 체제에 어머니 세대가 사회활동을 했다고 해서 가부장제 분위기가 사그라진 건 아니다. 1970년대 여성 노동자 삶을 증언한《나, 여성노동자 1권》(유정숙 외 8명 지음. 유경순 엮음. 그린비. 2011)에 따르면 노동운동현장에서조차 차별이 만연했다. 증언자들은 회사 탄압보다 남성 노동자들과 이에 동조한 여성 노동자들이 보인 음모·왜곡·질투가 더 견디기 힘들었다고 한다. 어머니 세대가 보험 아줌마, 야쿠르트 아줌마, 화장품 아줌마와 같은 정식 고용 형태가 아닌 ‘아줌마 재취업’으로 사회에 복귀한 점도 한국 노동사에서 눈여겨볼 부분이다.


근대화 이전은 물론이고 교육이 확장된 근대화 이후에도 여성은 의지를 펼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어릴 때는 아버지 뜻에 따르고 결혼해서는 남편에 순종하며 늙어서는 아들에게 의탁한 삼부종사(三夫從事)는 오랫동안 여성을 계도하는 이념이 되어 몸과 정신을 지배했다. 관습과 제도가 받쳐 주고 사회에서 용인된 이와 같은 삶은 종종 ‘숭고한 가치’로 포장된다. 손톱이 뒤집어지도록 일한 여성에게 ‘장한 어머니상’이나 ‘효부상’ 상패를 안겨주면서 가문과 지역사회를 빛낸 귀감으로 칭송했다.

 

여성은 근대 계몽기에 들어 집단에서 개인으로, 인습에서 의지로, 문맹에서 교육으로 넘어오면서 이전과는 다른 삶을 추구했다. 자유, 자발적 선택, 신념과 같은 능동적 가치를 말할 수 있게 되었으며 실천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우리에게는 여전히 탐문이 산적하다. 모성 신화를 앞세워 여성에게 인내를 압박하는 것도 모자라 여성을 성적 사물화로 삼는 동안 사회는 방관하거나 동조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늠름하지만 뿌리 깊은 차별은 미성숙한 사회에서 거대한 악이다.

 

이 소설은 불평등과 왜곡이 어디에서부터 잘못됐는지 지적하지 않는다. 대신 소설과 르포 경계가 모호한 이 작품에서 우리 의식을 지배한 편견·미흡한 시스템·담론 없는 사회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다. 김지영 씨에게 의식 장애를 유발한 ‘맘충’과 출근길에서 젊은 여성이 내뱉은 지하철 타고 출근하는 주제에 애를 가진다는 비아냥거림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 부족에서 기인한 몰지각한 차별행위이다. 이처럼 오늘날 성차별은 부지불식 여성을 비하한 가부장제를 답습하며 자본과 결탁한 해묵은 차별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도 순응하는 인간형에 김지영 씨를 대입한 어느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고통 받는 사연이 은폐되지 않고 더 많이 시끄러워질 필요가 있다. 그럴 때만이 잃어버린 김지영 씨 목소리가 돌아올 수 있으며, 김지영 씨 목소리 회복은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1. 광천공공도서관에 기고한 ‘10월의 서평이다.

2. 이 책과 엮어 읽을만한 신간 김혜진 소설 《딸에 대하여》가 궁금하다.

책소개로만 보면 전작 《중앙역》에서 보여준 낮은 곳을 향한 시선을 유지한 듯하다.

3. 조남주는 이 소설에서 ‘힘, 뽝-준 페미니즘’을 말하지 않고 자연스런 흐름으로 관계조망을 짰다.

4. 페미니즘 글을 볼 때 내 관찰기준은

자신이 지닌 공격적 성향을 페미니즘으로 앞세워 ‘공격용 무기’처럼 사용하는지를 관찰하는데 있다.

5. 4)와 관련해 이런 경우 설득력이 떨어진다. 외려 반발심과 부정적 인상을 주기도 한다.

6. 이 책을 읽으면서 가부장제 세대였던 부모님이 오빠들에게는 엄격하셨는데

딸인 나에게는 왜 자유분방함을 허용하셨는지 궁금해졌다.

두 분 모두 오래전 명을 달리하셨으므로 물어볼 곳이 없다.

명절이라 많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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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증발 - 사라진 일본인들을 찾아서
레나 모제 지음, 스테판 르멜 사진, 이주영 옮김 / 책세상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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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폭발한 후쿠시마 원전은 방사능 오염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 논란이 일 때마다 일본정부는 방독면 대신 하얀 마스크만 쓰고 청소하는 사람들 사진을 공개해 안전을 강조한다. 일본에서 사라지는 사람들을 취재한《인간증발》에서는 보도 사진에 나오는 청소부들이 ‘증발된 사람들’, 이를테면 가출자, 실종자, 노숙자라고 가리킨다.

 

인터뷰에서 이들은 “어차피 가출한 사람들이라서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누구도 찾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책에 따르면 야쿠자가 노숙자나 가출한 사람을 모집해 사고 현장에 보낸다. 일본정부가 야쿠자 개입을 묵인했는지 알 수 없으나 무관심 속에 방치된 사람들은 피해보상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수상한 일에 동원된다.

 

한해 10만 명이 증발하는 사태를 조명한 《인간증발》은 세계3대 경제대국 일본이 숨기고 싶은 어두운 민낯이다. 우리말 ‘행방불명’에 해당되는 ‘인간증발’은 집을 나온 사람들이 온천에서 몸을 씻을 때 수증기에 과거가 흡수되어 사라지는 것처럼 비유했다고 한다. 물론 이름을 바꾸고 이력을 숨긴다고 해서 꽃길이 기다리는 건 아니다.

 

증발한 사람들을 가장 괴롭히는 건 돈이다. 실직, 빚, 가난, 학대, 수치심, 압박감, 이혼 등 증발 사연은 제 각각이나 대개 돈 때문에 증발하고 증발해서도 돈 때문에 힘들다. 야반도주가 더욱 극심해진 시기는 버블경제 거품이 꺼진 1990년대 중반부터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를 맞은 2008년 즈음이라고 한다. 실직과 파산으로 신용대출에서 제외된 이들은 사채를 빌리고 빚을 갚지 못해 협박을 받는다. 마지막 선택은 ‘심야 이삿짐센터’ 도움을 받아 야반도주하는 것이다.

 

책에 따르면 도피한 사람들은 은행에서 돈을 인출해 떠돌다가 돈이 떨어지면 일용직 노동자가 된다. 허드렛일로 연명하다 도쿄 외곽 ‘산야’나 오사카 변두리 ‘가마가사키’와 같은 슬럼가로 숨는다. 야쿠자가 관리하는 슬럼가는 사회와 인연을 끊으려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막장이다. 더럽고 춥고 좁은 이곳에서 병들고 죽고 야쿠자가 되기도 하지만 이들은 수치심 때문에 가족에게 연락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

 

저자가 인용한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쓴 《국화와 칼》은 일본사람과 수치심 관계를 오랫동안 연구한 결과물이다. 일본사람들은 옛날부터 고유한 문화를 만든 자긍심과 우월감이 강했다고 한다. 《국화와 칼》에서는 이점을 들어 일본사람들은 실패를 하면 다른 사람에게 조력을 구하기보다 자기 탓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엄격한 교육으로 실패에 관대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었으나 정작 실패한 사람들은 도움을 구할 수 없어 길을 잃고 만다.


《인간증발》에서 강력한 주제어로 등장한 “‘압력솥’같은 일본 열도”라는 표현은 경쟁압박과 성공강박증에 시달리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실종자를 찾는 탐정이 취재원에게 던진 이 말은 ‘열정페이’, ‘3포세대’, ‘사오정’, ‘오륙도’, ‘고독사’를 겪으며 자살률 세계4위라는 오명을 쓴 우리나라 현실과 겹친다. 이 책은 파행적인 사회 구조가 어디에서부터 어긋난 것인지 묻지 않는다. 대신 사라진 사람들이 드리운 긴 그늘을 검질기게 보여 줄 뿐이다. 




1. 국립세종도서관 발행 월간자료 《호수가 보이는 도서관》에 기고한 10월호 ‘이달의 책’ 서평이다.

2. 지면에 실린 글 확인은 여기로

3. 12월호까지 원고를 게재할 예정이다.

4. 오사카 슬럼가인 ‘가마가사키’와 관련해 《외침의 도시, 가마가사키》가 10월 출간 예정이다.

5. 일본 슬럼가에서 재일한국인들이 파칭코 사업을 가장 많이 장악했다고 한다.

6. 본문에 표지와 관련한 이름 표기 오류가 있다.

작은 실수이지만 책 얼굴이라고 할만한 ‘표지’ 오류에 출판사는 좀더 신경을 써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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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치가 먹고 싶습니다
오즈 야스지로 지음, 박창학 옮김 / 마음산책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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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화감독 오즈 야스지로(이하 ‘오즈’) 자료를 묶은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는 국내에 첫 선을 보이는 오즈가 쓴 책이다. 종군일기와 지면에 기고한 글을 비롯해 대표작으로 꼽히는 영화〈동경 이야기〉감독대본을 묶어 팬심을 유혹한다.

 

“부모와 자식 관계를 그리고 싶다”고 밝힌 〈동경 이야기〉제작 의도에서 알 수 있듯 오즈 작품 대개는 ‘도쿄’와 ‘가족관계’를 다룬다. 안 그래도 영화사가 다나카 마사스미는 〈동경 이야기〉를 두고 “오즈 야스지로의 ‘도쿄론’ 총결산 작품”이라고 평한다. ‘시골 부모 도쿄 상경기’인 이 작품은 근대화·도시화 과정에서 전근대 가족공동체 해체를 담담하게 그린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에서 1950년대 이후 경제성장에 성공한 일본은 전통가치관 소멸과 향촌사회 붕괴를 피하지 못했다. 도시가 팽창하고 시골은 이격 공간이 되었다. 경제와 문화 격차가 벌어지고 시골부모와 도시자식은 소통단절에 놓인다. 오즈 영화에 등장하는 핵가족이나 결원이 있는 가족은 이처럼 전쟁과 경제 근대화 배경에 기인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가족은 겉으론 돈독한 사이처럼 보이나 속사정은 다르다. 오즈는 건조하고 절제된 연출로 근대화 이전 대가족 체제로 회복 불가능을 보여준다. 부모와 자식이 나누는 의례적인 대화, 도시가 불편한 시골 부모, 공장과 가까운 변두리 아파트, 전차로 출근하는 소시민 일상은 1970년대 경제개발 과정을 경험한 우리나라 풍경과 닮았다.

 

오즈는 근대화로 인한 가족 해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담백하게 묘사하는데 수록한〈종군일기〉에서 그 이유를 짐작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절정이던 1937년부터 2년 동안 중국에서 일본군으로 복무한 오즈는 전쟁 참상에 대한 관심보다 본국에 있는 지인에게 영화 소식을 묻는 편지를 보내고 종군 일기를 썼다. 음식, 날씨, 꽃나무, 중국 전통 가옥과 같은 소소한 일화가 대부분이다. 오즈에게 있어 전쟁이란 인간이 겪는 많은 일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였음을 엿볼 수 있다.

 

백보 양보해서 생각해도 인권에 관한 보편적 인식을 가진 인간이라면 살상이 자행되는 현실을 외면하기 어렵다. 만에 하나 ‘서정성에 기댄 전쟁 극복기’로 봐준다고 해도 〈종군일기〉에서 오즈가 보여준 빈약한 인권인식과 참혹함에 대한 무감각은 해석이 복잡해진다. ‘중국인에게는 침략군이며 위안부에게는 가해자였던 오즈 야스지로’가 거대한 야만을 사소하게 보는 듯한 태도는 ‘섬세한 영화장인 오즈 야스지로’와 충돌한다.

 

주지하다시피 인간은 한 꺼풀만 벗기면 실체를 알 수 있는 바나나처럼 단순하지 않다. 모순투성이인 인간은 예술을 통해 인간 정신 가치를 승화시키려는 노력을 해 왔다. 완벽하지 못하므로 완벽을 추구하고 불확실하므로 확실을 염원하는 인간에게 관찰자 역할을 자임했던 오즈는 고해성사하듯 “인생의 본질이란 아무것도 아닌 것일지도 모른다.”고 회고한다.

 

오즈가 남긴 사사로운 기록물인 이 책은 힘주지 않고 일상을 조명한다. 총알이 빗발치는 사지에서 문득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라는 편지를 보낸 것처럼 사소함에 깃든 인간 존재 본질을 생각하게 만든다.     




1. 국립세종도서관 발행 월간자료 《호수가 보이는 도서관》에 기고한 10월호 ‘이달의 책’ 서평이다.

2. 지면에 실린 글 확인은 여기로

3. 12월호까지 원고를 게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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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즈 야스지로 : 세속에 질둔한 사람이 사는 방식
    from 뻥 Magazine 2017-09-29 11:07 
    9월 1일 금요일맑고 선선 철이 바뀌느라 그런지 피곤해서 오전에 한 시간 이상을 잤다. 오후에는 마당에서 복순이 털을 빗어줬다. 하늘이 물감 풀어놓은 것 마냥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랬다. 플랭크 십 분, 케틀벨 스윙 150번, 기타 이런저런 요가를 이십 여분 하고 저녁을 먹었다. 강의 원고도 밀렸고 잡지 원고를 미리 쓸 계획이었으나 첫 문단만 쓰고 진도가 안 나가 영화 〈꽁치의 맛(秋刀魚の味)〉(1962년) 을 또 봤다.(아무튼 딴 짓 하는 습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안톤 슈낙 지음, 차경아 옮김 / 문예출판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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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슈낙이 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읽고 센티멘털한 가을을 앓은 때가 있었다. 오래전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무렵이다. 비단실로 수놓은 듯한 고운 문장은 사춘기 감성을 흠뻑 적셨다. 교정에 뒹굴던 은행잎, 담벼락에 기댄 가녀린 코스모스, 전학 간 친구가 보내온 편지, 스산하게 내리던 늦가을 비, 가을이 다 지나도록 일기장에 안톤 슈낙 흉내를 냈다.

 

이번에 개정판으로 나온 이 책은 2부로 나뉜다. 1부는 시골 고향에서 자랐던 어린 시절을 회상한 산문이다. 2부는 젊음과 사랑, 방랑과 숲에 관한 이야기와 마하트마 간디에 대한 단상과 같은 논조가 분명한 글을 섞었다. 1부와 2부는 다른 내용이지만 섬세한 감각과 세밀한 묘사가 돋보인다.

 

수록한 스물다섯 편 가운데 표제작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다룬 첫 장에는 유명한 첫 문장이 회자된다. “울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초가을 햇살이 내리쬐는 정원 한 모퉁이에서 오색영롱한 깃털의 작은 새의 시체가 눈에 띄었을 때. 대체로 가을철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저절로 시상(詩想)이 떠오르는 문장이다.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낸 표제작과는 다르게 두 번째 장부터는 시골 고향에서 있었던 일을 문학적 표현이 풍부하게 풀어냈다. 9월 밤에 듣던 사과 떨어지던 소리, 바람결을 타고 들려오는 대장간 망치 소리, 해변 암석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 썰매를 끄는 말방울 소리, 장미와 백합이 활짝 폈던 할머니네 정원과 같이 자연 속에서 관찰한 정감 있는 풍경을 묘사한다.

 

저자가 공들인 우아한 문체는 침잠한 내면을 밝은 곳으로 끌어올린다. 자잘한 풍경이 만든 따듯한 위로이다. 이를테면 “밤바다에서 듣는 백사장 조약돌 소리”나 “학교에서 돌아와 새까맣게 타르 칠이 된 고깃배를 타고 강 언저리를 노 저어 다니고”, “성신 강림절에 보리수나무 아래 마을 농부들이 모여 연주한 음악이 맞은편 포도원에서 메아리로 반사되어 들려오는 것”처럼 우리 영혼에 스민 어떤 기억들은 광활한 세상을 건널 때 등불처럼 마음을 비춘다.

 

산타클로스로 분장한 옆집 누나 골탕 먹이기, 분홍 장미 꽃잎을 뿌려줬던 첫사랑, 마인 강변, 포도원, 숲 산책, 친구들 죽음까지 담백한 묘사에서 인생을 사랑하는 차분한 달관을 엿볼 수 있다. 두 차례 세계대전에 참전한 저자는 참혹한 참상을 목격하면서 삶과 죽음, 부정과 긍정, 슬픔과 기쁨에 깊은 성찰을 키웠을 것이다.

 

1세기가 지난 글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와 닿는 건 어떤 이유에서일까. 아마 누구나 지나온 철없고 순수했던 어린 시절이 현실에 길들여진 어른이 되어서 그리움으로 변했기 때문은 아닐까. “영원히 다시 오지 않을 세월 속으로 묻혀버린, 흘러가버린 그 겨울. 희미한 새벽빛 속을 한 사나이와 어린 소년이 눈 속에 크고 작은 발자국을 내며 가고 있었다. 이 어린 소년이야말로, 오늘 이 시간 마인 강변에서 상념에 잠겨 바라다보는 이 사나이였던 것이다.”

 

독자에게 자서전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1. 농민신문사 발행 월간잡지 《전원생활》10월호에 기고한 신간안내이다.

2. 지면에는 편집팀에서 ‘시적인 문체로 담아낸 인생을 달관한 시선’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3.이번호 《전원생활》은 특집으로 ‘수다가 있는 카페’를 실었다.

사과 창고를 개조해 마을 카페를 만든 영주 주치골, 부산 초량동 어르신들이 운영하는 마을 카페,

서교동에 있는 빨래방 카페, 경산시에 있는 곤충 카페, 이 밖에 한방 카페, 취미 동호회 카페 등을 소개했다.

얼마전 읽은 《물욕 없는 세계》에서 처음 알게 된 

‘로하스(LOHAS : Lifestyles of Health and Sustainability)’가 떠올라 반가웠다.

4.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햇살에 잔잔하게 반짝이는 물결을 바라보는 기분이 든다.

헤르만 헤세 에세이를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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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욕 없는 세계 - 갖고 싶은 것이 없어지면, 세계는 이렇게 변한다
스가쓰케 마사노부, 현선 / 항해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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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편집자이자 광고기획자인 저자가 일본·미국·중국을 취재해 엮은 《물욕 없는 세계》는 시종일관 “의미 있는 생활”에 방점을 찍는다. 저자는 자본주의가 만든 물질지향 중심에서 벗어나 ‘미니멀라이프’, ‘로우라이프’, ‘협동조합’, ‘셰어하우스’와 같은 사회운동이 느리지만 지속적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 사람들은 상품(물질)이 아닌 상품을 둘러싼 이야기, 즉 관계·과정·느낌에 눈을 돌리면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만든다는 것이다. 라이프스타일 변화는 패션, 인테리어, 생활 잡화, 먹거리, 여행, 취미, 주거 공간 등 많은 분야에서 목격된다. 라이프스타일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소유가치보다 사용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강하고, 대량생산 제품보다 사람이 애정을 갖고 만든 제품을 선호하며, 자기 취향을 적극 반영한 제품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라이프스타일 변화는 물질(돈) 가치보다 비물질적 가치인 인간관계, 소소한 이야기, 나눔, 공유에서 행복을 탐색한 결과이다. 저자는 많은 개발도상국이 생산과 소비에 질주했고 소득증가에 비해 성숙한 사회시스템 조성에는 실패한 중국을 예시로 지적한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대표국가가 된 중국은 경제 양극화가 심화되고 사회 불안 위험도가 높다. 저자가 낙관적으로 취재한 상해(상하이)의 ‘로하스(LOHAS : Lifestyles of Health and Sustainability)’ 운동은 탈소비 사회 승패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듯싶다.

 

이 책의 주제는 과잉생산과 과잉소비에 피로한 사람들이 “상품보다는 가치를 만들며 살고 싶다”는 새로운 양식을 이끌었다고 가리킨다. 작은 규모, 느린 삶, 수제품을 연상시키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이념은 미국 포틀랜드에서 창간한 잡지 《킨포크(Kinfolk)》편집장 말에 압축됐다. “우리는 더 ‘작은 모임’에서 이루어지는 인간관계로 눈을 돌려, 의미 있는 생활, 즐겁고 간편하면서도 숙고된 사고방식을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팽배한 물질욕망 폐단에서 벗어나 ‘물욕 없는 세계’가 행복을 실현할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지금과 같은 상태로는 더 나은 삶에 다가갈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 싹튼 점이다. 그래서 저자가 라이프스타일 모델도시로 제시한 포틀랜드는 과잉과 결핍과 불안으로 지친 우리가 눈여겨 볼 대상이다. 프랜차이즈 대신 개인 가게가 즐비하고 안전하고 저렴한 지역농산물을 공급받는 도시라면 다양한 의미와 결과가 형성되지 않을까. 저자가 말한 것처럼 “성장이 멈춰도 성숙할 수 있는 길”은 그리 먼 미래 이야기가 아니었으면 싶다.  




1. 국립중앙도서관 발행 월간자료 《오늘의 도서관》10월호에 기고한 서평이다.

2. 지면에는 편집팀에서 정한 ‘물질에서 벗어난 행복’으로 제목이 실렸다.

3. 본문에서 ‘~의’라는 문장은 편집팀에서 추가한 문장으로 

요즘 편집팀은 조사 사용에 의문을 갖지 않는 것 같다.

곧 발간될 국립세종도서관 발행자료 10월호에 서평을 기고하면서 마찬가지로 편집팀과 이 문제를 겪었다.

4. 앞에서 말한 ‘편집팀’은 도서관 부서가 아닌 ‘대행사’를 가리킨다.

5. 3),4)와 관련해 그럼에도 조금씩 더 나은 원고와 편집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여긴다.

6. pdf 파일은 여기로

7. 8월 31일에 쓴 짧은 평을 아래와 같이 이곳으로 옮겨 덧붙인다.(추천해주신 분들에게는 죄송)

‘과잉’과 ‘결핍’은 자본주의 문제이다. 탐욕, 부의 불균형, 독점, 특혜, 무책임, 방관 외에 ‘욕망’과 ‘행복’을 끊임없이 자극하면서 피로하게 만드는 게 자본주의이다. 원고 관련해서 읽은 책이었으나 지속가능한 실천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상품만 조명되고 내력이 배제되는’ 이 거칠거칠한 세계에 등대가 되는 시도가 된다면 좋겠다. 이반 일리치, 니어링 부부, 공동작업 예술공간, 셰어하우스, 귀농(귀촌), 동네 책방, 개인 공방, 알라딘에서 책 나눔 등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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