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0일 월요일

맑고 미세먼지 나쁨

 

내내 뿌연 날이었다. 고약한 마법사가 지상에 흩뿌린 모래 알갱이가 둥둥 떠다니는 듯 목이 칼칼하다. 카톡 프로필에 ‘료안지(龍安寺)’ 돌 정원을 새봄부터 고정해 놨다. 나실나실하고 아슴아슴한 봄이 갈수록 짧아져 로맨틱한 기분을 관념으로나마 느끼고 싶었다. 《사카구치 안고 산문집》에서도 “료안지 석정(石庭)은 어떤 관념과 연결시켜 그 관념을 표현하려는 것이다.”라고 썼다. 관념이 상상으로 확대되는 멍 때리는 듯한, 되도 않는 것 같은 고민들, 부질없는 것 같은 시간이 좋다. 벚꽃의 영광이 사라지고 나무그림자가 길어지면서 몽롱한 대기가 슬며시 뒷걸음치는 늦봄이야말로 관념에 젖어 실컷 상상의 허세를 누릴 수 있다. 딱히 누군가와 서둘러 만날 약속이 없고, 게다가 지난주에는 정형외과 의사에게 부주상골 증후군 진단을 받았으니 멍 때리기에 더할 나위 없는 기회다. 충격은 조금 받았다. 내 발목뼈가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모른 채 오십오 년을 살았다. 케틀벨을 번쩍번쩍 들고 스쾃을 뚝뚝 하는 동안 발목은 무릎에 너도 나 따라와라 하는 식으로 인대를 따라 병을 옮겼다. 나이 먹어서 근육 소실 어쩌고 하며 재던 호기가 초음파와 엑스레이 합작 증명 한방에 사라졌다. 마리 퀴리 여사도 문명도 위대했다. 오늘 낮에 택배로 받아먹은 호두타르트까지도.


▲ 교토 료안지 돌 정원

 

“료안지의 석정이 아무리 심오한 고독이나 사비를 표현하고 심원한 선기(禪機)에 통한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돌의 배치가 어떠한 관념과 사상에 연결되는가도 문제되지 않는다. 요컨대 한없이 넓은 바다가 주는 무한한 향수와 사막에서의 거대한 일몰을 생각하고 석정이 부여하는 감동이 그것에 미치지 못할 때는 주저 없이 석정을 묵살하면 되는 것이다. 이때 무한한 바다나 고원을 정원 안으로 들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는 변명은 무의미하다.”

 

• • • • • “주저 없이 석정을 묵살하면 되는 것이다” • • • • •

 

관념의 상상이 좋은 이유는 “주저 없이” 지울 수 있어서다. 옛 애인이야 주저 없이 버릴 수 없고 잊을 수 없고 욕할 수 없으나 상상 속에 있는 옛 애인은 주저 없이 지울 수 있다. 관념 속에서 이룰 수 없는 일이 없는데 엉너리를 하자면 불가능한 일, 이를테면 로또 당첨되어 기역자로 지은 모던하우스에 서재를 꾸민다거나 테네리페 작은 마을에 그림엽서를 파는 가게를 여는 일도 가능하다. 아, 테네리페라니. 카나리아 제도에 있는 북위 28도 서경 16도에 있는 그 섬에서 큰오빠는 플라멩코 치마를 입은 스페인 여인 엽서를 보내왔었다. 〈윤식당〉에서 가라치코가 방송에 나올 때 붉은 기와가 얹어진 성당과 작은 공원, 화산폭발 때 생긴 자연풀장을 얘기하며 추억에 젖은 큰오빠와 다르게 오전에는 린넨 원피스에 끈 샌들을 신고 동네 돌길을 산책하고 돌아와 오후에는 붉은 장미 덩굴이 문 앞에 멋들어지게 올라간 가게에서 엽서를 팔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추억과 관념은 형태는 다르지만 차분한 거리감으로 그날의 대화를 부드럽게 마무리했다.

 

“바쇼는 정원을 나와 대자연 속에서 자신만의 정원을 보고 또 만들었다. 그는 여행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생을 살았을 뿐 아니라 하이쿠를 통해 정원적인 것에서 벗어나 대자연에 정원을 만드는 작업에 몰두했다. 그 정원에는 오직 잣나무 한 그루 밖에 없을 때도 있고, 또 그저 여름풀만이 자라고 있기도 하며, 바위와 그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 소리밖에 없을 때도 있다. 이 정원에는 의미를 부여한 돌이나 구불구불한 소나무 같은 것은 일체 없고 그 자체가 직접적인 풍경이자 동시에 직접적인 관념이다. 그러면서 료안지의 석정보다 훨씬 아름답다.”

 

• • • • • “직접적인 풍경이자 직접적인 관념” • • • • •

 

아무런 물질이 없는 상태에서 물질을 허공에 채워 넣는 게 쉬울까. 그보다는 물질로 꽉 찬 공간에서 물질을 치우고(지우고) 허공으로 만드는 게 쉬울까. 끼부림같은 이런 장난질을 느긋하게 하면서 반나절을 보내다보면 내가 그린 그림이 기린 그림인지, 낙타 그림인지 묘하게 빠져든다. 물질 없는 공간과 물질을 지우는 공간은 한 끗 차이도 아니면서 한 끗 시늉을 내기에 좋은 말장난인데 바쇼가 물질 없는 허공에 나무와 돌과 새를 채워 넣고 심지어 바람소리까지 입력했으니 어지간한 서라운드 3D 영화만큼 그럴싸한 영상미다.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무에서 유-관념은 직접적인 풍경이 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끝에 파르르 닿는다. 후각을 자극할 정도면 그건 오버일까.

 

사카구치 안고는 일본 정서는 “영원한 것을 만드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체념이 있어서 정원이나 건축은 불에 타고 사람마저 죽으니까 인생을 물거품처럼 여긴다고 한다. “실물이 아닌 그림자에서 아름다움을 본다”고 마스노 슌묘는 《공생의 디자인》에서 말했다. 꽃잎이 떨어진 나무둥치나 짙어진 연두색이 햇빛에 반짝이며 나풀대는 그림자를 보는 일이야말로 세속에 질둔하게 사는 사람이 늦봄에 누릴만한 즐거운 관념이다. 젊은 시절에는 화려했으나 나이 들어서는 평담해진 두보는 〈곡강이수〉에서 “한 조각 꽃잎이 져도 봄빛이 줄어드는데 바람에 수많은 꽃잎이 날리니 시름에 젖는다”고 했다. 별 말씀을요. 그 바람결 따라 외적인 서늘함과 내적인 열망이 타오르게 된다. 관념이란 충만함, 의도의 부재, 허허로움을 모두 갖고 있다. 결과는 밋밋한 맛이다.


▲ 〈만춘 : 늦봄〉에서 딸을 시집 보내게 된 아버지가 친구와 료안지 마루에 앉아 서운한 심정을 말하는 장면

 

저녁에 오즈 야스지로가 1949년에 만든 〈만춘 : 늦봄〉을 다시 봤다. 교토에 있는 ‘기요미즈데라’와 ‘료안지’가 나오는 이 영화는 담백하고 담담하고 단정한 영화 분위기에 걸맞게 흑백화면이 롱테이크로 촬영됐다. 내가 교토를 가보고 싶은 이유도 료안지 마룻바닥에 앉아 돌 정원을 바라보며 멍 때리고 싶기 때문이라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손바닥으로 허공에 쓱― 한번 스치고 나면 지워질 것 같은 풍경은 고무래로 한번만 쓱― 훑으면 굵은 모래가 제 결을 달리 할 그만이어도 그만인 관념의 실체. 일기를 다 써 갈 즈음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수국과 흰 목련이 앞 다퉈 핀 고향집 뒤뜰이 생각났다. 붓꽃과 돌배나무, 박태기나무, 조팝나무도 있었고 담벼락 끝 길게 휘휘 감고 벽을 타고 올랐던 등나무에 걸터앉아 《소공녀》나 《빨간 머리 앤》을 읽었다. 좀체 지워지지 않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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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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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범죄는 국가 안위를 주관하는 병력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폭압이나 전쟁, 학살로 부른다. 베트남전에서, 한국전쟁에서, 난징에서, 제주도에서, 시리아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1980년 광주에서 그랬다. ‘이념의 총알’은 시대를 달려 국경을 넘어 인종과 민족을 가리지 않고 학살했다.

 

어떤 죽음은 산골이 되어도 잊히지 않는다. 살아남은 사람은 기억하고, 기억하는 사람은 증언하며, 증언을 기록하는 사람이 있는 한 죽은 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집단학살을 사회가 공동기억으로 가져야 하는 이유는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 시민사회 안전과 미래를 보장하는 공동자산으로서의 가치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5·18 광주항쟁을 다룬 《소년이 온다》에서 정대의 넋이 읊조린 “국가에게 묻고 싶었어. 왜 나를 죽였지?”와 같은 질문에 우리는 정직한 답변을 해서 제대로 된 장례식을 치러야 한다.

 

거리시위에서 옆구리에 총을 맞아 죽은 정대는 트럭에 실려 시체 한 무리와 함께 광주 외곽에 던져졌다. 상무관에서 시신 기록을 하던 정대 친구 동호는 도청이 함락될 때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 둘은 죽은 장소가 다르지만 같은 기억을 공유한다. 작가와 독자가 유령과 함께 이동하는 것 같은 서술 방식은 흑백영상을 보듯 참혹한 현장성을 제공한다.

 

“고깃덩어리처럼 던져지고 쌓아 올려진 우리들의 몸은 햇빛 속에 악취를 뿜으며 구더기가 끓어 썩어간 더러운 얼굴들”로 변했다. 여름밤 펌프 물로 친구 동호와 함께 등목을 하고 천변을 따라 나란히 자전거를 타던 열여섯 살 소년 정대가 유령이 되어 들려주는 이 장면은 보안사 시설에서 고문을 당한 생존자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만약에 이 질문에 무슨 소리냐, 인간은 존엄하고 위대하다고 주장하려면 ‘1980년 광주’를 부정해야 한다. 갈비에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옹졸하게 분개하지만 남을 구하려고 목숨을 버리기도 하는 게 인간이다. 이타성을 ‘거룩한’이나 ‘숭고한’과 같은 형용사로 상찬한다. 평범한 사람은 남을 위한 희생을 보면서 이기적인 자기 모습을 돌아본다. 반면에 인간은 나를 위해 남을 죽이기도 한다. 내 재산과 자존감과 권력을 지키고 갖기 위해 남을 죽인다.

 

모나미 볼펜을 손가락에 끼워 뼈가 드러나도록 고문하고, 2년 동안 하혈을 할 정도로 성고문을 하고, 내장이 찢어지도록 배를 짓밟고, 눈꺼풀에 담뱃불을 지지고, 산채로 목을 자르고, 젖가슴을 도리고, 마침내 시신에 석유를 붓고 불을 지르는 행위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양심에 흔들리면서 양심을 쉽게 저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날마다 싸운다”던 생존자 고백은 처절한 자기투쟁을 뜻한다. 벌레보다 못한 고름과 진물덩어리라는 자기비하와 인간이라는 실체가 충돌되는 내면 전쟁 말이다.

 

《소년이 온다》는 그동안 나온 ‘5·18 문학’작품과 다르게 초혼을 얼개로 짰다. 서사에 뛰어난 공선옥이 쓴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나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임철우가 쓴 《백년여관》, 이인휘가 쓴 《내 생의 적들》처럼 후일담이 나오지만 소년 유령 두 명이 주축이다. 《소년이 온다》는 빈약한 서사를 만회하려는 듯 단락 몇 개를 나눠 시·공간을 전환한다. 이런 장면 전환은 산만한 인상을 주지만 1980년 광주를 세밀하게 재현했다. 초혼은 죽은 이의 혼을 다시 불러 이루지 못한 간절한 소망에 응답하려는 행위다. 이 소설이 제사문학 성격을 띠면서 위령제를 지내는 것 같은 분위기는 작가가 유령 동선을 따라 독자에게 중계했기 때문이다.

 

유령은 과거를 추궁하며 문제를 해결하라고 현재를 압박한다. 유령이 지닌 불안은 절박한 절규로 살아있는 사람에게 죽음의 문제, 이를테면 원인과 발단을 살피고 책임을 부과해서 유령에게 온전한 죽음의 길로 안내하라는 정언명령인 셈이다. 고통스런 기억이 강렬하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다. 유령처럼 겉도는 삶이 죽음이다. 《소년이 온다》에서 유령을 제목에 붙인 이유도 유령이 빼앗긴 고귀함을 찾아주고 싶은 비거스렁이 같은 염원에서 비롯됐다.

 

인간을 하찮은 물건 취급하면 죄책감이 없기 때문에 던지고 부시고 짓밟고 불에 태우기 쉽다. 1980년대 민주 항쟁에서 거론되는 잔혹한 장면을 두고 이거 실화냐고 묻는다면 최루탄이 난무한 1980년대를 몸으로 기억하는 나는 이렇게 말한다. 이거 실화다. 그때 학살자는 올해 여든일곱 살로 생존한다.

 



-주 석-

1. 5·18 광주항쟁 :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신군부를 장악한 무장계엄군은 계엄철회를 요구하는 전라남도 광주시민 수백 명을 폭행하고 학살했다. 실제 5월 10일부터 작전이 시작된 것으로 밝혀졌고, 미수습 유골이 많아 정확한 희생자 수를 알 수 없다.

2. “갈비에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옹졸하게 분개하지만” : 김수영 시인이 쓴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에 나오는 한 구절.

3. 비거스렁이[명사] : 순우리말로 비바람이 갠 뒤에 시원해지는 현상.





1. 광천공공도서관에 기고한 ‘5월의 서평이다.

2. 이번 서평은 5·18 광주 항쟁을 염두에 두고 썼다.

3. 격월로 인문도서와 문학 장르로 나눠서 서평을 게시할 예정이었으나

인문도서 대출이 미비하다는 도서관 측 요청으로 지난달에 이어 문학 장르를 선정했다.

4. 《소년이 온다》는 연극 단막처럼 시·공간이 몇개로 나뉘어 구성됐다.

작가는 연극무대를 소설에 삽입시켰는데 소설 전체 구성과 내용을 연극에서 따 온 계산이 짐작된다.

5. 원고에 쓴 “빈약한 서사”라는 문장을 몇번 생각하다가 그대로 송고했다.

6. 신형철 평론가가 추천사에서 상찬한 프리모 레비에 비교한 오글거림은

외려 작가에게 부정적 인상을 줄 수 있다.평론가라면 중립을 지키고 솔직해졌으면 좋겠다.

상찬하는 게 신형철 평론가의 솔직한 평론이라면 검증이 필요하다고 보는 내 입장에서는

그가 추천한 책은 미문중심이지 않을까 일단 의심이 든다.

7. 그럼에도 《소년이 온다》는 초혼의식을 잘 활용했고 몇몇 빼어난 문장이 참혹함을 잘 드러낸다.

8. 또한 그럼에도 운동권 후일담 얘기는 민주항쟁을 경험한 내 입장에서는 소설 묘사에 충격은 없다.

대신, 진실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못하고 법심판이 비껴간 현실에 분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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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와 흙 - 후쿠시마, 죽음의 땅에서 살아가다
신나미 쿄스케 지음, 우상규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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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이나 조류독감이 돌면 정부는 소, 돼지, 닭을 살처분 한다. 산업재난이 닥쳤을 때도 마찬가지다.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폭발했을 때 일본 정부는 살처분을 지시했다. 위기 앞에서 가축은 비용문제를 구실로 가장 먼저 처리 대상이 된다. 시간과 돈이 덜 드는 단기 효율성 정책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동물윤리 논란에도 불구하고 가축은 집단 안락사를 당한다. 말이 안락사이지 집단 살해이다.

 

후쿠시마 핵폭발 참사 당시 소들이 처한 상황을 취재한 《소와 흙》은 인간이 가축을 대하는 관점을 재편성한다. “후쿠시마, 죽음의 땅에서 살아가다”라는 부제에서 짐작하듯 이 책은 소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묻는다. 책에 따르면, 소는 고양이나 개와 다르게 산업동물로 분류된다고 한다. 산업은 경제적 가치로서만 조명되기 때문에 가치가 사라지면 존재 이유도 사라진다. 이처럼 소는 비용문제를 이유로 공공연하게 살처분이 용인된다.

 

방사능 피폭이 심한 후쿠시마 인근 몇몇 농가는 외양간 문을 열어 소를 내 보냈다. 야생에서 스스로 살아남기를 바랐다. 겨울에는 일주일에 두 번씩 금지 구역에 들어가 콩나물찌꺼기를 섞은 사료를 줬다. 그러나 풀려났다고 해서 안전한 게 아니었다. 굶어 죽고 병들어 죽고 다쳐서 죽고 피폭되어 죽었다. 동물보호단체가 열어준 외양간에서 나와 늪에서 물을 마시다가 빠져 죽기도 했다. 길과 산과 들에 소 사체가 쌓였다. 사람이 떠난 반경 20킬로미터는 원시림이 우거지고 정적이 깊어졌다. 살아남은 소들은 계절이 몇 번 바뀌면서 적응했다.

 

소가 백골이 되고 있을 때 정부는 무능했다. 반면에 민간단체는 활발히 움직였다. 사육사와 수의사가 연대해 야생의 소를 관리했다. 금지구역으로 들어가 사료를 주고 다시 돌아갈지도 모를 외양간을 수리했다. 오사카대학 핵물리연구센터는 방사능에 노출된 지역 흙을 채취해 피폭선량을 계산하고 연구했다. 사람조차 피폭 위험에 노출됐지만 소가 살아 있는 한 죽게 내버려 둘 순 없었다고 한다.

 

핵발전소 폭발은 대기업과 정부의 거래가 결합된 자본주의 탐욕과 안전 불감증이 빚은 참사이다. 사고가 나지 않으리라는 허황된 오판은 아무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해마다 구제역을 겪고 핵발전소 24기를 운전하는 우리에게 타산지석이 되는 이야기다. 금지구역 야생에서 남겨진 소는 이제 연구대상으로 관찰된다고 한다.

 

주지하듯이 소와 사람은 흙에서 얻은 곡식을 먹고 산다. 그래서 “흙의 피폭은 그 위에 사는 것들의 운명을 모조리 바꿔 놓았다”고 하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소가 죽을 줄 알면서도 소가 계속 살아야 하는 의미를 찾고 싶었다던 사육사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게 아닐까. “생태계 기반이 폐기물로 전락된 가운데 자기 배설물로 피폭된 흙을 기름지게 하고 풀과 곡물을 키우는 소”는 대지를 지키는 존엄한 파수꾼이다. 우리가 누리는 풍부한 전기에너지와 풍성한 식탁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숙고할 때다. 




1. 농민신문사 발행 월간잡지 《전원생활》 5월호에 기고한 신간안내이다.

2. 책에서는 “원자력”이라고 했으나 모호하고 단순한 느낌이 들어

확실한 느낌을 전달하고자 원고에서는 “핵”으로 바꿔썼다.

3. 2010년 구제역(정확하게는 2010년 11월 28일부터 2011년 4월 3일까지)에서

살처분된 발굽동물은 347만 마리이다. 관련 페이퍼 링크는 여기로

4. 영세축산업자 입장에서 당시 경험은 꽤 오랫동안 트라우마로 남았다.

5. 누군가는 소를 고기로만 인식하겠으나 고기로 형성된 인간, 즉 고기를 먹는 고기로써의 인간에 관해

‘흔들리며’ 사는 게 동물윤리가 아닐까 싶은데,

내 짐작에는 우리 사회에 이런 분위기 조성은 매우 빈약한 것 같다.

6. 《소와 흙》에서 사람이 떠난 피폭 금지구역 내 소들은 여러 이유로 죽는데

가장 참혹한 장면은 외양간에 갇힌 소들이 동물애호단체에서 열어준 문 밖으로 나와 늪지대에서 물을 마시다가

늪에 빠져 진흙투성이가 되어 허우적대며 죽어가는 소를 무심한 달빛이 비추는 장면이다.

저자는 이 장면을 가리켜 “사람을 신뢰하다 죽은 소들”이라고 썼다.

7. 핵발전소가 사고가 나지 않으리라는 믿음 때문에 사후대책조차 미비했는데 한국은 어떤 상황일지?

8. 《소와 흙》을 읽은 내 심정은 이렇다.

도쿄전력에 항의하러 간 피해자들에게 생경한 도쿄의 환한 불빛과 재난에 무심한 도시 사람들의 얼굴빛이

피폭된 마을에 정적이 감돌고 살처분 위기에 놓인 소들의 큰 눈동자와 교차되는 영상이 떠올랐다.

그래서 내가 늘 말하는 어깃장이 한강에 핵발전소 1기만 짓는다고 발표하면

도시 사람들 반응이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하다.

9. 둘레 반응은 ‘지방은 식민지’라는 사실만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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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59
토머스 하디 지음, 이종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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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테스》가 출간되자 영국 사회는 “부도덕한 소설”이라고 비판했다. 부잣집 아들에게 겁탈을 당한 테스를 놓고 독자들은 정의의 심판관이라도 되는 양 논쟁했다. 난잡한 성적 묘사 없이 영국 농촌 마을 풍경과 섬세한 심리 포착이 뛰어난 《테스》에게 ‘부도덕하다’는 딱지가 붙은 이유는 엄격한 종교관에 얽매인 사회 인습과 도덕을 꼬집은 때문이다.

 

작가 토마스 하디는 가난한 소작농 딸 테스의 굴곡진 삶을 내레이션 들려주듯 서술한다. 정직하고 부지런한 시골 처녀 테스를 중심으로 테스를 비탄에 빠트린 바람둥이 알렉과 목사 아들로 책임감과 독립심이 강한 엔젤을 배치했다. 게다가 한없이 이어지는 드넓은 구릉과 목장 사이로 이어지는 마찻길과 같은 세밀한 풍경 묘사는 유화 물감을 두텁게 바른 인상파 화가 그림처럼 문장이 기름지다.

 

그러나 《테스》는 그렇고 그런 애정소설이 아니다. 토마스 하디는 관찰자 입장에서 자기 생각을 작품에 과감하게 주입해 육체적 정조에 구속된 구태의연한 관습과 편견을 농밀하게 폭로한다. 한마디로 《테스》는 토마스 하디가 19세기 영국 사회를 물들인 해묵은 관념을 대하는 시각을 거침없이 드러낸 작품이다.

 

여기서 잠깐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소설은 공감·이해·동정·분노·슬픔을 유발한다. 감정과 이성은 정서를 자극하고 흔들면서 자아에 스며든다. 인간 감정이 단순한 구조가 아닌 것처럼 소설에는 작가가 심어놓은 여러 장치가 있다. 직설과 은유를 직조하면서 소설이 나온 배경, 이를테면 시대와 지역을 포함해 작품을 쓴 의도까지 소설은 많은 이야기를 담는다. 이러한 얼개는 주제를 받쳐주는 조연으로 작품에 영향을 끼친다. 파도치는 바다에는 물만 있는 게 아니라 해초와 물고기와 새와 박테리아가 있음을 떠올리면, 《테스》가 태어난 빅토리아 시대를 톺을 필요가 있다.

 

동인도 회사가 싱가포르를 지배한 1826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0년대까지 영국은 백년이 넘도록 ‘해가지지 않는 나라’였다. 군인, 경찰, 관리, 목사, 사업가는 금의환향을 꿈꾸며 식민지로 떠났다. 식민지 플랜테이션 사업에 관심이 많았던 테스 남편 엔젤이 테스와 별거하면서 브라질로 떠난 이면에는 국가가 지원한 식민지 이민 정책이 버티고 있다. 식민지 사업은 돈벌이와 군대주둔 뿐만 아니라 이국의 문화를 흡수하는 선봉에 서기도 했는데 작가는 어떤 직업보다 식민지 경험을 오랫동안 기록으로 남겼다.

 

《동물농장》과 《1984》로 유명한 조지 오웰은 미얀마 경찰 경험을 살려《버마 시절》을 발표했다. 인도 원주민과 자연을 《정글북》에 담은 러디어드 키플링은 인도 태생 영국 작가이다. 《다섯째 아이》로 한국에 알려진 도리스 레싱은 이란에서 태어나 짐바브웨 풍토를 수혈 받았다. 이처럼 식민지 사업은 영국문학에서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토마스 하디는 영국을 벗어난 적 없는 작가이지만 빅토리아 여왕 시대를 살면서 인간 본성과 관습, 선과 악, 개인과 사회가 맞물린 관계를 탐색했고 지배층의 위선과 여성 문제에 천착했다.

 

제국주의 시대 이상형 남성상은 탐욕을 상징한다. 남성은 바깥 활동으로 인한 피로를 가정에서 보상받으려 했고 여성은 ‘집안의 천사’가 되어 남성에게 순종했다. ‘성경험이 없는 처녀와 정숙한 아내’는 엄숙한 종교관과 육체적 정조를 요구받은 빅토리아 여왕 시대 모든 여성이 갖출 강령이었다. 심지어 여왕마저 남편에게 다소곳한 아내 이미지를 연출해야 했으므로 테스와 같은 하층민 여성은 인습을 거부하거나 저항할 수 없다. 사회에서 가장 낮은 계급인 테스가 의지에 반한 유일한 저항이 살인이었던 사실로 봐서 당대 여성의 저항은 파멸을 의미한다.

 

알렉에게 성적으로 유린당한 테스는 오랫동안 괴로워했다. 가난과 모멸감을 등에 지고 일자리를 찾아 전전했다. 남편인 엔젤에게조차 인간의 믿음을 잃은 테스가 선택할 길은 달리 없었다. 피해자를 품지 못하는 사회는 무뢰한 사회이다. 조금 진부하지만 사랑과 이해가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는 보편적 관점에서 보자면, 피해자를 외려 압박하고 구속하면서 인간은 스스로 야만인이 된다. 테스가 가장 무서워한 것은 가난이나 외로움이 아니라 도덕의 갑옷을 걸치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한 위선적인 인간이었음은 새삼스럽지 않다.

 

요즘 들불처럼 일어나는 미투(Metoo) 열기와 2차 가해를 보면서 1891년 테스가 받은 상처가 아물려면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릴지 의문이 든다. 테스에게 씻기 힘든 상처를 주고 죄의식이 없는 알렉이나 순결강박증 때문에 테스를 일찍 돕지 못한 엔젤, 나아가 무지와 편견에 자아를 방치한 얼굴들이 떠오르는 건 우연이 아닌 듯싶다.


 



-주 석-

1. 토마스 하디(Thomas Hardy, 1840년~1928년) : 영국 소설가이자 시인. 독학으로 문학을 공부했다. 식민지 시대에 만연한 종교와 도덕 인습 폐해와 차별을 다룬 작품을 주로 썼다. 종교인의 편협한 태도를 폭로하고 자유로운 애정을 옹호해서 도덕주의자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았다.

2. 해가지지 않는 나라 : 세계에 식민지 영토를 확장한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가리킨 말에서 유래했으나 18세기 이후 영국이 패권을 장악하면서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를 일컫는 대명사가 되었다. 전 세계에 식민지가 있는 제국은 어디를 가든 해가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3. 집안의 천사 :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가 쓴 《집안의 천사 죽이기》에서 유래했다. 남편에게 순종하며 자녀에게 헌신하는 현모양처를 가리킨다. 안락한 집안에서 가장에게 보호 받으며 개인 성취나 행복보다 집안일에 가치를 둔 여성상이다. 




1. 광천공공도서관에 기고한 ‘4월의 서평이다.

2. 이번 서평은 고전문학으로 Metoo 운동을 염두에 두고 썼다.

3. 《테스》는 가난, 신분계급, 노동, 사회 인습, 종교를 대입해 도덕과 윤리를 묻는 작품으로

빅토리아 여왕 시대 소작농의 삶과 자연풍경까지 담은 장편소설로 완역본을 읽을 때 가치를 느낄 수 있다.

4. 1979년에 로만 폴란스키가 만든 영화 《테스》에서 테스 역을 맡은 배우 나스타샤 킨스키는

갓 데뷔한 배우였기 때문에 뛰어난 연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내성적인 이미지로는 가장 적격인 배우이다.

5. 토마스 하디가 쓴 《테스》는

호주 한국학 교수 루스 배러클러프가 쓴 《여공문학》에서 한국 여공이 즐겨 읽던 소설로 등장한다.

6. 집에 갖고 있는 책은 민음사판으로 서평을 쓸 당시 도서관에 민음사판이 비치되지 않아

문예출판사판으로 읽었다.(도서관 납품 원고는 도서관에 비치된 책을 기본으로 선정한다)

원고 납품후에 도서관측에서 민음사판을 구입해 비치했다.

7. 문학동네에서 펴낸 《더버빌가의 테스》 실물을 보지 못해 궁금하다. 서울 가면 서점에 들러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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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테스》와 《여공문학》
    from 뻥 Magazine 2018-03-31 10:29 
    3월 16일 금요일맑고 쌀쌀 어제 늦은 밤까지 책을 읽는 바람에 늦잠을 잤다. 도서관에 가려다가 몸상태가 안 좋아 관두고 냉장고를 정리했다. 낮에 농협마트에 가서 3천 5백 원 주고 계란 한 판과 붕어 싸만코 두 개를 사 왔다. 바람이 쌀쌀맞게 불어서 걸어오면서 몇 번이나 몸을 돌렸다. 저녁을 먹고 영화 〈테스〉를 십여 년 만에 다시 봤다. 며칠 전 문예출판사 판본으로 읽은 《테스》와 어제 다 읽은 《여공문학》이 ‘테스 바람’을 부추겼다
나무의 노래 - 자연의 위대한 연결망에 대하여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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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겨울이 지나고 봄비가 내리면 나무는 연초록 움이 튼다. 죽은 듯 바싹 마른 가지에서 싹이 돋는 모습은 경이롭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조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나무 열두 종을 집중 탐구한 《나무의 노래》에서는 이 비상한 결속을 “그물망”이라고 가리킨다. “나무줄기들은 저마다 분리된 개체처럼 보이지만, 나무의 삶은 이런 원자론적 관점을 뒤집는다. 우리는―나무, 인간, 곤충, 새, 세균은―모두 복수(複數)로 존재한다.” 바꿔 말해서 자연은 상호 유기적 관계라는 뜻이다.

 

자연은 긴장·경쟁·조정·해소를 거치면서 생성하고 소멸한다. 이 과정은 반복되며 순환하고 환경에 맞춰 진화하기도 한다. 생태 순환은 생태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이론으로 생성과 소멸을 같은 연장선으로 본다. 이 책에서 강조한 그물망 이론은 생존 경쟁과 조화를 통해 다른 종과 연결되었음을 입증했다. 그래서 저자는 자연은 인간과 동떨어진 이격공간이 아닌 동일한 환경과 연속성에 놓여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뉴욕 맨해튼 가로수 콩배나무처럼 오늘날 도시에 식재한 나무는 문명과 공존한 자연이다. 저자가 전자장비로 들은 콩배나무 소리는 고층건물에 익숙한 우리에게 여러 감정과 생각을 갖게 한다. 좁은 공간에서 뿌리를 안쪽으로 모아 지탱하는 힘을 키운 콩배나무는 자동차 소음과 지하철 진동에도 불구하고 환경에 적응했다.

 

헬멧과 방독면을 쓰는 일이 일상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접경 지역 올리브 나무는 관개수로 개발과 함께 더 넓게 조성됐다. 건조한 땅에서 자라던 나무가 축축한 땅에서도 잘 자라게 된 사례다. 비잔티움, 십자군, 오스만 제국, 영국 등 제국의 각축장이었던 예루살렘에서 자연은 더 쉽게 가혹한 환경에 노출됐다. 그러나 학살과 폭격을 피해 살아남은 길고양이들처럼 올리브나무도 생육조건을 바꿔 종을 유지한 셈이다.

 

문명이 발전할수록 인간과 자연을 분리한 이분법 관점은 생태학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인간은 여러 세대에 걸친 노력으로 자연에게서 생물 다양성을 배웠다. 저자는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파괴와 멸종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새로운 그물망을 창조해야 한다고 한다. 저자가 “속함의 윤리”라고 부른 이 논의가 문명화·도시화·기계화에 길들여진 인간에게 어떤 철학적 명제를 던져 줄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자연을 기저로 삼아 건설된 도시도 형태는 변했으나 자연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도시를 자연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면, 도심의 강물은 자연 상태에서 멀어진다. 이미 ‘방해’받았으니 폐수를 쏟아 부어도 괜찮다는 식이다. 인간이 배제된 ‘천연’ 보호구역의 귀결은 산업 쓰레기장이다.”


‘우리 시대 최상급 자연문학 작가’로 상찬 받는 식물학자가 쓴 이 책은 생태학을 바탕에 깔고 역사·문화·문명을 직조했다. 게다가 웬만한 문학 작품에 견줄 만큼 예리한 통찰력과 섬세한 시적 표현이 감탄을 자아낸다.

 



1. 농민신문사 발행 월간잡지 《전원생활》 4월호에 기고한 신간안내이다.

2. 저자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은 2014년에 나온 《숲에서 우주를 보다》를 읽으며 처음 알았다.

섬세한 문장을 구사하는 생물학자로서 《나무의 노래》도 환경을 향한 간절한 염원을 빼어난 문장에 담았다.

3. 《숲에서 우주를 보다》와 마찬가지로 《나무의 노래》도 훔치고 싶은 문장이 많다.

4. 《나무의 노래》에서 가장 인상적인 말은 “속함의 윤리”이다.

5. 이유미가 쓴 《우리 나무 백가지》가 학술적 가치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다르게

해스컬이 쓴 나무 책은 문명과 환경 콜라보레이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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