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6일 토요일

맑고 추움

 

■ “레오나르도가 부드러운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게 함으로써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남겨둔 부분들이 바로 입과 눈 부분이다. 모나리자가 어떤 기분으로 우리를 보고 있는지 확실하게 알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녀의 표정은 늘 붙잡을 수 없다”-(E.H 곰브리치, 《서양미술사》예경, 302쪽)

 

_《데이지 밀러》에 나오는 데이지(daisy)는 “차분하면서 경쾌한 여자”다. 꽃(Daisy)은 어디나 피지만 풍토와 기후대 영향을 받는다. 너무 덥거나 너무 추우면 견디지 못한다. 사랑하는 이에게 헌정할 때 꽃은 전달하는 이의 설레고 부푼 마음을 담았다. 꽃은 아무 일도 하지 않(못하)지만 건네는 손길이 닿아 소중한 마음을 알아달라는 신호가 된다. 꽃은 적당한 햇살과 바람과 꽃병이 갖춰지면 마음에 꽃을 꽂는다. 움직이지 않는 꽃은 꽃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는 듯하지만 사람은 꽃을 붙잡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알지도 못한다. 무심한 꽃은 혼자 피어났다 혼자 질뿐이다.

 

스물일곱 살 가량 된 점잖은 미국 남자 윈터본은 안락한 호텔이 많은 스위스 작은 마을 브베에서 데이지를 처음 만난다. 돈 있는 외국인들은 이곳에 장기체류하거나 경유지로 삼는다. 어려서부터 부유한 집안 덕에 유럽에서 학교를 다닌 윈터본은 사교모임에 나가기 좋아하며 여러 남자와 데이트를 하는 명랑한 데이지에게 끌린다. 외국 여성에게 관심이 많은 윈터본을 의식한 것인지 모르지만 데이지는 줄곧 윈터본 시야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리고, 작은 꿀벌처럼 간지럽게 자극한다.

 

그러나 이 끌림은 윈터본 마음을 뚫지 못했다. 끌림이 뚫지 못하니 울림이 없겠으나 이 작품은 뚫는 순서를 나중에 배치함으로써 긴 여운을 남기는데 성공했다. 헨리 제임스가 의도한 게 아니라면 우연치고는 뛰어난 재치이며, 의도한 것이라면 잘 짠 설계다. 헨리 제임스는 이제 막 호감에 상응하는 남녀 한 쌍에 신의가 없는 이탈리아 남자 조바넬리를 끼워 넣는다. 호감이 무르익기에 앞서 섣부른 오해가 짓궂게 훼방을 놓으면서 이 작품은 제목을 더욱 부각시켰다. 자유분방한 데이지는 사실 꼼꼼한 관찰자였다. 내연녀가 있다는 소문에도 불구하고 윈터본을 오해하는 대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그녀는 말라리아 열병에 죽어가면서 윈터본과 시용성에 올라갔던 일을 기억해달라고 주문했다. 죽음 앞에서 고백한 연모는 남은 사람 전 생애에 무늬를 새긴다.

 

윈터본과 데이지 사이를 어긋낸 건 오해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윈터본은 이 서늘한 미안함을 평생 떨치지 못한다. 그 증거가 윈터본으로 분한 헨리 제임스가 19세기에 쓴 이 작품을 21세기 독자인 나까지 읽게 만든 점이다. 전기가오리에게 감전된 것처럼 윈터본은 데이지에게 반했었다. 그러나 데이지와 얽힌 남성편력 소문을 파파라치처럼 수집했다. 소문과 주관적 판단 결과로 데이지는 “무지하고 천박하고 헤픈 여자” 로 둔갑됐다. 오해를 스스로 조장한 셈이다. 격식을 따지는 집안에서 성장한 사람은 사회 평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기는 숨겨놓은 여자가 있으면서 데이지에게는 정숙한 처녀 이미지를 대입한다. 오해는 선입견과 편견으로 쌓아올린 장벽에 아집이라는 쇠옷을 두르면서 돌이킬 수 없다.

 

소크라테스에게 감전된 메논처럼 윈터본은 데이지를 자기와 부응할 수 있는 대상으로 봤다. 한 영역에 속하고 같은 색 인줄 알았다. 롤랑 바르트 말을 빌리자면 “그것은 분류될 수 없는” 상대다. “내 타입이야, 바로 내 타입이야” 우리는 한눈에 꽂힌 꽃을 보면서 이런 말을 한다. 여기서 꽃과 사람을 분리할 수 있지만(이 둘은 비교 대상이 아니나, 비유 대상은 된다) 꽃과 사람은 타입에 따라 마음 선택이 나눠진다. “바람둥이의 구호 :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타입’을 찾아 일생을 헤매는, 조금은 힘든 바람둥이가 아닐까? 나는 상대방 육체의 어느 구석에서 내 진실을 읽어야 할까?”

 

일전에 결혼제도를 (피가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그릇된 믿음”(사르트르가 했던 말 같은데 정확하지 않다)이라고 친구들에게 말한 게 떠오른다. 누구도 이 말을 이해하는 것 같지 않았다. 내가 결혼제도를 오해한다고 그들은 여겼을 테고, 나는 결혼한 친구들이라서 결혼제도를 부정하고 싶지 않은거라고 오해했을지도 모른다. 허황한 욕망에 지나지 않을 섹스가 핏줄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관습으로 체질화된 물듦이다. 어쩌면 나도 데이지처럼 연애만 하다가 장르가 다른 말라리아 열병(젊어서는 술과 여행이었고, 지금은 책과 영화이다)에 걸려 죽게 될 운명이다. 꽃은 무심하다. 내 이름 끝자가 한자로 꽃인 것은 부모님의 혜안이었을까? 그럴리가! 나를 완전히 감전시킬 전기가오리를 못 만났고, 내가 감전시킬만한 상대를 못 만난 세속의 어긋남이겠지.

 

_이 독서일기를 쓰면서 《사랑의 단상》을 찾아 뒤적였는데 전기가오리를 시끈가오리라고 번역했다. 네이버 검색에 따르면 부산지방에서는 전기가오리를 시끈가오리라고 부르고, 제주도에서는 밀개가오리로 부른단다. 이런저런 관련어를 계속 찾았으나 ‘시끈’과 ‘밀개’가 방언이라는 사실만 확인됐다.


_마감이 코 앞인데 고질병인 ‘딴짓’에 붙잡혀 읽었던 책을 뒤적이고, 시시한 영화 〈말모이〉를 보다가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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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4일 목요일

맑고 쌀쌀

 

《기러기》에 나오는 오다마(お玉)는 “창가의 여자”다. 구슬(玉)은 돌아다니면 상하거나 깨진다. 구슬은 장소에 구속 받는다. 이동이 많을수록 훼손되기 쉽다. 가만히 손바닥 안에 두고 굴려야 한다. 구슬은 곁에 두고 조물락조물락 만질 대상이다. 가난 때문에 첩이 된 오다마(お玉) 이름에 구슬 옥(玉)자가 들어간 건 작가의 계산에 따른 작명으로 짐작된다. 

 

연정은 모든 연애가 그렇듯 오해와 이해를 번복하며 교차한다. 짝사랑도 궤가 다르지 않다. 인간사회는 오해와 이해 2중주 변주다. 인간은 여기에 놀아나 희망이 되기도 하고 절망이 되기도 한다. 질투는 오해에서 나오고 포용은 이해에서 나온다. 그런데 끝까지 오카다는 오다마를 오해하거나 이해한 게 없다. 왜 모리 오가이는 미시마 유키오 평처럼 “사물을 관통하는 뢴트겐적인 묘사력”을 무엔자카 언덕길 마주침에서 독자에게 충분히 암시하지 않았을까?

 

오카다는 오다마를 본 순간 “한층 더 붉게 물든 얼굴로 모자를 만지는 것처럼 모자챙에 손을 갖다 댔”을 뿐이다. 이 어색한 쭈삣거림은 외투 속에 죽은 기러기를 숨기느라 어정쩡한 태도였다. 평소에는 당당한 도쿄의대생으로 정의의 기사 역할을 다하지 않았나. 오카다는 오다마가 기르는 새를 뱀에게서 구해주고 오다마 집 앞을 지나면서 모자를 벗고 밝은 인사를 건네던 점잖은 남자였다.

 

오다마는 오카다의 예의바름을 오해했다. 오카다가 보인 작은 호의를 자기 마음에 호응한 것으로 알았다. 창 안쪽과 창밖이 마음으로 통해 경계가 허물어졌다고 착각했다. 호의는 실질적이지만 반드시 마음을 관통하는 것은 아니다. 관계의 친밀성, 이를테면 마음의 거리와 공유한 시간이 발효된 깊이 만큼 호의 결과가 갈린다. 여기에는 당연하게도 감정이 어느 정도 눅인 것인지가 개입된다. 오카다의 호의에 감정이 흔들린 오다마는 정성들여 화장을 하고 옷을 갖춰 입고 무엔자카 길로 나간다. 새로운 용기였다. 더 이상 새장 속에 갇힌 새처럼 집에 갇힌 창가의 여자가 아니다. 살다보면 작은 일에 오해라는 촉매가 개입해 큰일로 점화된다.

 

그러나 모리 오가이는 깔끔하다. 과감한 단절을 아는 작가다. 끝내 스마트한 오카다를 무심한 방관자로 완성했다. 열일곱 살짜리 사채업자 첩에게 엘리트 의대생은 상처를 주지 않고, 독자에게 오해 따위를 부풀리지 않는 수법을 선택했다. 그럼에도 나는 오다마 혼자 헛물 킨 게 아니라고 고집한다. “독자는 쓸데없는 억측은 하지말길 바란다.”라는 작품 마지막 줄에 쓴 모리 오가이의 요청은 외려 오해의 능선을 넘었다.

 

“나의 마음가짐을 무엇이라고 표현할지 좋을지 말하자면, resignation이라고 말하는 것이 좋을 것이나, (남들이)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울 것인가 생각하고 있을 때, 나는 의외로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물론 resignation의 상태라고 말하는 것은 무기력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 점에 관해서 나는 그다지 변명할 생각도 없습니다.”-(‘나의 입장’ 모리 오가이, 1940년)

 

오카다는 마지막까지 침착하게 냉정했다. 옮긴이가 쓴 것처럼 ‘체관(諦觀)’적 인물이다. ‘살펴본다’는 체관은 이성으로 억제하는 태도이다. 내가 정리하고 있는 체념(諦念)과 같다.


한국에서는 기러기를 늦가을 철새로 비유하는데 생각난 김에 몇 가지 떠올라 적바림한다. 

1)기러기 울음/오랫동안/하늘에/가득퍼지네

雁の声/しばらく/空に/滿ち-高野素十 다카노 스주 (1893~1976)

2)기러기 안(雁)은 ‘바윗집(厂)에서 사람(人)과 살았던 새(隹)’라는 글자가 합쳐졌다. 고서에는 편지를 가리켜 안서(雁書)라고도 한다. 기러기 편지, 기러기가 전하는 편지라니 멋있다.

3)인생이 무엇과 비슷할까/응당 눈 위의 기러기 발자국일세

(人生到處知何似/應似飛鴻踏雪泥)

눈 위에 발자국 우연히 남았지만/기러기 날아간 곳 몰라라

(泥上遇然留指瓜/鴻飛那復計東西)-소동파

4)설니홍조(雪泥鴻爪)는 “눈 위에 난 기러기 발자국이 눈이 녹으면 없어진다는 뜻”으로 인생무상을 가리킬 때 많이 쓴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거나하게 취하셔서 이 말씀을 하실 때마다 듣기 싫어 얼굴을 찡그렸는데 이제 내가 이 말을 적고 있다.

 

하루 종일 추워서 꼼짝 앉고 있다가 저녁에 이 책 저책 뒤적였다. 한국 여가수 가운데 최애하는 사이키델릭 여왕 김정미가 부른 ‘봄’을 따라 부르며 봄을 생각한다. 가사가 시다.

 

꽃밭을 헤치며 양떼가 뛰노네/나도 달려보네/저 산을 넘어서 흰구름 떠가네/파란 바닷가에 높이 떠올라서/멀어져 돌아온다네/생각에 잠겨있구나/봄바람 불어오누나/그 얼마나 아름다운가/봄 봄 봄 봄 봄 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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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긋난 사랑 : 눈으로 인사하고 눈으로 보냈다
    from 뻥 Magazine 2019-02-14 22:43 
    2월 13일 수요일맑고 따듯 ■ 눈으로 인사하고 눈으로 보냈다 : 목역이송지(目逆而送之)-《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모리 오가이가 쓴 《기러기》 절정은 오카다와 오다마가 무엔자카 언덕길에서 마주친 순간이다. 한마디 말조차 건네지 못하고 한 걸음 멈칫하지 못한 채 바라만 보면서 지나친 어긋난 연정이다. 이 어긋남을 어긋낸 건 오카다 유학을 독려한 W교수와 연못의 기러기다. 이루어지지 못한 짝사랑 이야기는 오카다가 기러기에게 돌을 던지면서 파문(波紋)
《기러기》: 오해와 이해



2월 13일 수요일

맑고 따듯

 

■ 눈으로 인사하고 눈으로 보냈다 : 목역이송지(目逆而送之)-《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모리 오가이가 쓴 《기러기》 절정은 오카다와 오다마가 무엔자카 언덕길에서 마주친 순간이다. 한마디 말조차 건네지 못하고 한 걸음 멈칫하지 못한 채 바라만 보면서 지나친 어긋난 연정이다. 이 어긋남을 어긋낸 건 오카다 유학을 독려한 W교수와 연못의 기러기다. 이루어지지 못한 짝사랑 이야기는 오카다가 기러기에게 돌을 던지면서 파문(波紋)을 몰고 왔다. 물결은 바람이 불거나, 외부에서 물리적 개입이 있거나, 물속에서 소용이 일 때 거세진다. 밋밋해서 외려 슬픈 세피아 톤의 이 이야기는 오다마가 겉으로는 조용히, 속으로는 뜨겁게 흠모하는 오카다가 돌멩이로 기러기를 맞추면서 파문이 결정됐다.

 

이 어긋남은 오카다가 오다마를 향해 직지인심(直指人心)하지 않은 어긋냄에서 비롯됐다. 진실에서 고개를 돌린 까닭에 순정한 여인의 용기를 볼 수 없었다. 마지막 이별이 무엔자카(無緣坂)였던 것은 운명이다. 헤어진 대상보다 헤어진 장소가 더 기억나는 건 장소가 가진 고정성 때문이다. 나는 헤어진 사람을 기억하고자 어떤 한 장소를 일부러 찾아갔던 적이 있다. 인연이 다한 장소는 공허하지만 공허함은 한때 충만했던 기억을 지울 수 없다. 마음에 담아 떠나보낸 사람과 그 늦가을에 인연을 다 할 바에는 남모르게 가슴에만 두고 있었다면 오다마의 서글픈 짝사랑은 빈 사랑으로 완성될 수 있었을까. 몰래 혼자서만 지켜보는 사랑은 찬 사랑일까.

 

김영민 선생은 《사랑, 그 환상의 물매》에서 이렇게 말한다. “연정은 지형(topos)이 무너진다는 뜻이다. ‘무너진다’는 것은, 마치 중력 하나가 모든 존재를 지배하는 어느 순간의 경험처럼, 모든 이치들이 열정의 무중력 공간 속에서 속절없이 해체된다는 것이다.” 사랑을 마음에 담기 시작하면 혼란스럽고, 사랑에 물들면 붕 뜬 것처럼 나른하고, 사랑에서 멀어지면 무거운 고통이 찾아온다. 오다마가 무엔자카 언덕길에서 지나치는 오카다의 뒷모습을 보면서 느낀 감정이란 “충만 속에서 벌어지는 아득한 공허의 체험”이었을 것이다. 아토포스(a-topos)는 충만과 폐허, 나른함과 고통을 왕복하기 때문에 혼란스럽다.

 

별똥별이 지붕에 내려앉고 따듯한 방에는 음악이 흐른다. 술이 없어도 견딜만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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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8일 금요일

맑고 쌀쌀

 

아침 일찍 서둘러 도서관에 갔다. 오늘 독서회 첫 모임이다. 원고와 PPT파일까지 나름대로 준비했는데 회원 두 명이 참석했다. 지영 씨에게 신청자가 적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막상 대하니 민망했다. 책 안 읽는 사회를 넘어 책에 관심 없는 사회다. 1년 동안 꾸려 나갈 생각을 하니 갑갑하다. 말은 두 명이나 이백 명이나 똑같다고 했지만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마음까지 그렇다는 건 아니다. 준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두 명이나 이백 명이나 똑같은 수고가 따른다.

 

아무리 가슴에 뜨거운 포부가 벅차게 끓어올라도 동력이 따르지 않으면 식는다. 처음 마음이 나중 마음까지 무너지지 않을지 자신 없다. 시골 도서관 현실이 해도 너무한다 싶으면서도 다행히 오늘 참석한 두 명은 책을 좋아하고 관심이 많은 사람들처럼 보인다. 다음 주에, 다다음주에 지켜보면서 내 마음이 유지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타인의 마음을 알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나는 어떤 마음인지는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마음이 있다고 떠올릴 뿐이다. mind가 아니면 things이다.

 

돈은 못 벌고 신경은 꽤 쓰이는 이 일을 덜컥 맡은 건 시골 도서관에서도 알찬 독서회가 유지될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욕심없는 의욕”이라고 합리화하는 한편 돌아오는 길에는 그래도 다섯 명은 있어야 무엇인가 성취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첫 수업에서 납세자 주권행사를 말했다. 공공도서관은 지자체 세금으로 운영된다. 도서관에서 많은 책을 빌려 읽고, 독서회에 적극 참여하는 일은 내가 낸 세금을 돌려받는 일이다. 이런 주권의식이 절실하다.

 

어떤 장벽을 만날 때면 책장 앞에서 서성이는 버릇대로 오늘도 내 마음을 마사지해 줄 책을 고르다가 태학사 고전 시리즈를 뒤적였다.

 

“대나무가 막 움이 터 나올 때에는 한 마디 정도 되는 싹일 뿐이나, 여기에서 마디가 생기고 잎이 나온다. 처음에는 층층이 포개져있는 마디가 마치 매미 배 가죽 같고 뱀이 허물을 벗어놓은 것 같으나 이것이 자라면 수십 길이 되어 검을 뽑아 하늘에 닿을 듯한 기상이 되니, 이런 것은 나면서부터 그 안에 있었던 것이다. 지금 대나무를 그리는 자가 마디마디 윤곽을 그리고 잎잎을 포개고 있으나 어찌 다시 생동하는 대나무를 그려낼 수 있겠는가?

 

대나무를 그릴 때에는 반드시 먼저 마음속에 대나무를 완성하고 나서 붓을 들고 자세히 바라보아야 한다.”

 

소동파 외종사촌 문여가가 지은 이 글을 읽으면서 내 마음에 대나무가 떠올랐다. 오늘 모임에서 올해 책 열한 권과 영화 열한 편을 보고 발제와 토론을 했다는 성취감을 연말에 맛보자고 했다. 삶의 의미와 가치는 과정에 있다.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과정을 하찮게 여길 수 없다. 이 기대는 문여가가 명성을 얻어 묵죽(墨竹)으로 비단을 얻으려던 일화와 비교할 수 없지만 이제 막 싹을 피우는 내 마음 속 대나무를 들여다 보게 한다. 저녁을 먹고 따듯한 이불 속에 다리를 펴고 앉으니 몸이 녹는다. 밝은 생각을 풀어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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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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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어떤 작품인가

원제가 《The Education of Little Tree》(작은 나무의 교육)인 이 소설은 1979년에 초판 출간됐다. 처음 출간했을 때 출판계에서 큰 반응이 없다가 1986년 뉴멕시코 대학에서 복간하면서 입소문을 타고 독자에게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작가 포리스트 카터[1]가 자기 경험을 쓴 것으로 알려진 이 책은 자연파괴·인종차별·자본주의와 대척점에 있는 목가주의(牧歌主義)[2] 문학으로 스테디셀러 반열에 올랐다.

 

인디언 체로키족 혈통인 소년 ‘작은 나무’는 부모를 잇달아 여의면서 다섯 살 때부터 조부모와 함께 살게 된다. 조부모는 숲속 골짜기에서 필요한 만큼만 사냥하고 야생 먹거리로 음식을 차린다. 인디언 문학이 그렇듯 이 책에서도 자연은 돈벌이를 위한 정복 대상이 아니라 신이 인간에게 허락한 겸허한 선물로 그린다.

 

자연을 예찬하며,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을 존숭하는 내용은 이 책을 목가주의 문학 결정체로 독자에게 오랫동안 사랑 받게 했다. 팽창한 산업시대에 과도한 경쟁으로 피로해진 현대인들은 이 책을 수놓은 숲·영혼·마음·별·나무와 같은 말들에서 영성체적 위로를 느낀다. 독자는 세속의 욕망에 때 묻지 않은 순수성으로 회귀하고픈 바람과 자연에 동화된 인디언의 소박한 삶에 감동하면서 자본주의 그늘에 묻혀 지친 자신을 돌아본다.

 

■ 목가주의와 자본주의

목가주의 문학은 낭만주의 문학 사조이다. 자연을 조명하며 인간의 삶을 자연의 일부로 귀속시키면서 탐욕 없는 삶을 묘사한다. 자연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가치를 교훈으로 새긴다는 점에서 목가주의 문학은 생태주의 문학과 같은 계열이다. 그러나 생태주의 문학은 자연의 유기체적 관계에 몰입하며 자연파괴와 인간성 말살을 정조준 한다. 반면 목가주의 문학은 인간이 자연에 자연스럽게 흡수되는 정서를 바탕에 깔고 있다.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목가주의 문학은 삶의 중심에 물질을 배치한 자본주의 폐단에서 비롯됐다. 자본주의는 ‘도시·소비·기계’로 구성됐다. ‘농촌·생산·수공예’로 구성된 목가주의는 자연을 ‘경외로운 절대진리’로 삼는다. 목가주의 문학은 자연을 평화와 지혜를 얻는 경전으로 규정하면서 자본주의가 자연을 수탈하는 행위에 대속의식을 가진다. 이 책에서 보여준 자연예찬은 목가주의 전형으로 백인이 만든 체제인 자본주의에 굴종하지 않을 것을 강조한다.


■ 눈물의 여로, 죽음의 행진

이 책에서 조부모가 들려준 체로키족 수난사는 북아메리카 인디언 역사이기도 하다. 1620년 메이플라워(Mayflower)호를 타고 미국 동북부에 도착한 영국인은 중부와 서부로 세력을 넓혀갔다. 총과 전염병을 앞세운 백인들은 아메리카 인디언들 주거지를 침입해 약탈과 학살을 자행했다. 체로키족은 1838년부터 1년 동안 만 3천여 명 정도가 인디언보호구역으로 강제 이주됐다. 무장한 백인군인들이 위협하는 가운데 1300킬로미터를 걸은 체로키족은 추위와 기아, 질병과 사고로 4천여 명이 죽었다고 한다.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남북전쟁이 일어났을 때 노예제 유지를 주장하는 남부 연합군에 포섭되어 북부 연방군과 싸웠다. 이 책에서 소년의 증조할아버지가 겪은 눈물의 여로나 남북전쟁 일화는 인디언을 영토에서 몰아낸 백인들의 계략이다. 인디언보호구역은 인디언감금구역이었고, 남부 연합군 패배로 인디언들은 조약에 따라 거주지역이 축소됐다.

 

■ 포리스트 카터와 KKK(Ku Klux Klan)[3]

이 책을 쓴 포리스트 카터는 미국 남동부 앨라배마 주 옥스퍼드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에서 복무했다. 전역 후 콜로라도 대학에서 1년 동안 참전군인과 퇴역군인을 관리하는 법을 공부했다. 작가가 되기 전에는 라디오 방송국과 정치인 후원 단체에서 일했다.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주유소를 운영하면서 정치인 연설문을 작성했고 인종차별 단체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터는 남부 연합군 장군 네이선 포리스트(Nathan Forrest 1821~1877)를 추종해 그의 이름을 따서 필명으로 정했다. KKK 열혈 지지자 앨라배마 주지사 조지 월리스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자 인종차별 연설문을 써주기도 했다. Segregation now, Segregation tomorrow, Segregation forever (오늘도 인종분리, 내일도 인종분리, 영원히 인종분리). 카터는 작가로 데뷔하면서 과거행적을 숨기려고 자식을 조카로 위장했고, 자신이 체로키족 핏줄이라고 했다. 사후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고조모가 체로키족이었을 뿐이라고 한다.

 




-주   석-

[1] Forrest Carter : (본명 Asa Earl Carter, 1925년 9월 4일~1979년 6월 7일). 미국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제로니모》, 《우리는 영혼을 팔지 않았다》외 다수. 주로 인디언을 다룬 작품을 썼다.

[2] 목가주의(牧歌主義) : 농촌에서 소나 양을 치면서 자연에 동화되어 소박하게 사는 삶을 미화하는 예술형태. BC 3세기 그리스에서 태동해 시, 문학, 회화로 장르가 계승됐다.

[3] KKK(Ku Klux Klan) : 미국 테네시 주 풀라스키(Pulaski)에서 1865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퇴역군인 여섯 명이 모여 조직해 1866년 6월 정식으로 발족한 백인우월주의 단체. 흰옷을 입고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공격한 백인 엘리트 우월주의자로 십자가를 내세운 기독교적인 미국집단으로 불린다. KKK라는 말은 그리스어 ‘kyklos’(모임·단체)에 씨족·가족을 뜻하는 ‘clan’을 두음에 맞춰 ‘klan’으로 바꾼 것으로 특별한 뜻은 없고, 총의 공이치기를 당길 때 나는 소리라고도 한다.





1. 광천공공도서관에 기고한 2019년 2월 ‘이달의 책’ 소개이다.

2. 지난해까지 도서관에 2년 동안 납품한 서평 대신 올해부터는 책소개 양식으로 바꿨다.

3.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많은 독자에게 삶의 검박함을 일깨운 작품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쓴 카터가 어떤 문제적 인간인지는 책의 명성만큼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소개한다.

4. 작가의 인성과 가치관, 활동이 글과 괴리될 때 독자는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까? 나로서는 쉬운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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