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일 목요일

맑음

 

공개 일기를 쓰면서 ‘관음증’을 생각하곤 한다. 자기검열이 없지 않다.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쓰는 게 아니라 허심탄회하게 쓰는 게 원칙이지만 한편으로는 내 ‘삶의 기록’으로 가끔 들춰본다. 섣부르고, 자아과잉이고, 스스로 불만인 모습이 적나라하다. “그 외의 아무 것도 아닌” 이런 기록들은 언젠가는 소멸된다. 그 전까지는 불완전한 인간이 책에 기대 살았다는 기록으로 진행될 것이다.


“타인은 나를 깜짝 놀라게 하고 나의 자아를 엿듣는 자의 존재로 고정시켜 버린다. 나는 그렇게 들켜 버린 것을 부끄러워하며, 타인 앞에서 나 자신을 부끄러워함으로써 나는 나 자신이 그에 의해 고정되고 있음을 체험하며 알아챈다. 들켜버린 상황 속에서 나는 타인이 바라보는 객체일 뿐, 그 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그 앞에서 나는 마치 나무가 바람에 의해 휘어지고 있듯이 그렇게 나의 몸을 열쇠 구멍 위로 구부리고 있다.”

-프란츠 짐머만 《실존철학》

(이 책은 번역을 다시 하든가 교정을 다시 하든가해서 개정판으로 나왔으면 한다. 키에르케고르부터 야스퍼스, 사르트르, 카뮈, 헤겔, 하이데거까지 읽을 만한 분석이건만 문장이 엉망이다. 읽으면서 내가 싫어하는 과잉교정증후군에 걸릴 지경이다)

 

새벽에 많은 비가 내렸다. 마당이 깨지도록 들이붓는 빗소리에 잠을 설쳤다. 어제 까다 만 밤을 마저 까서 냉동실에 넣고 저녁에는 강의 원고를 손질했다. 일기를 쓰기 전에 뜨끈한 물을 받아 족욕을 했더니 통증이 가신다.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본다. 늙은 몸아, 너도 참 고생 많구나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앓는 소리를 내면서 잠자리에 누울 때면 《어느 「고쿠라 일기」전 》에서 읽은 〈국화 베개〉가 생각났다. 하이쿠 시인 스기타 히사(杉田久) 모델인 누이(ぬい)가 57세에 병원에서 죽은 장면 말이다. “간호 일지에는 날마다 “혼잣말을 하다가 혼자 웃곤 했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녀를 기쁘게 한 것은 무슨 환청이었을까”

 

복순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문 앞에서 기다리는 모습, 강의를 진행하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일, 내 놓았던 책꾸러미를 뒤적이다가 그 자리에서 몇 페이지를 읽게 되는 뜻밖의 글, 서늘한 밤공기에 반짝이며 날아다니는 반딧불이, 맑은 밤이면 마당에 쏟아질 것 같은 별들, 화인이와 은숙이의 밝고 경쾌한 목소리……

 

부조리가 없는 자유로운 이런 현상, 단순한 일상, 경멸하지만 단절시킬 수 없어 섞여야 하는 세계, 나는 어느새 결정적 관계보다 소멸될 가능성을 아는 관계에 길들여졌고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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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일 수요일

흐리고 비바람

 

“현대의 정치사상은 모럴이 꼭 필요하다. 그런데 그것이 정치적인 모럴인 한 그것은 절대 순수한 모럴이 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모럴 속에 들어갈 다른 성분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무엇일까? 진정으로 그것을 찾으려고 애쓰면 우리는 〈공동체가 사라지지 않고 이 사람 혹은 저 사람들이 죽는 것이 더 낫다〉라는 가야파식의 논리에 당도하게 될 것이다.”

-르네 지라르 《희생양》에서 〈단 한사람만 죽으면〉

 

예수 수난은 빌라도·유다·베드로·가야파(Caiphas), 그리고 군중이 개입됐다. 대사제 가야파가 예수 한 명을 죽이는 일만이 이스라엘 전체의 안녕을 위한다고 했듯이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희생물은 ‘무엇무엇을 위해’라는 구호 속에 제단에 올려졌다. 르네 지라르는 “희생물에 의지하고 싶어 하는 우리의 유혹”이 희생양을 만든다고 한다. 군중이 외치는 ‘무엇무엇을 위해’라는 고함이 매번 옳거나 바르거나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진 않았다. -와 + 만 생각하지 말고 ×와 ÷ 가 섞일 수는 없(었)을까. 


비가 종일 내렸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주름진 얼굴로 창문을 때리고 지나가는 비바람 소리를 가만히 듣는다. 군중에서 멀어진 지 오래됐다. 뽀얀 생 밤 한 알을 또각또각 칼로 저며 와인 한 잔 마시고 잘 생각이다. 젊었을 때 기억 몇 뭉치가 잠시 뿌옇게 떠오르다가 고자누룩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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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일 화요일

흐리고 미세먼지 나쁨

 

태풍이 올라온다고 해서 큰오빠와 밤을 땄다. 지난해에는 20킬로그램이나 되서 밤 묵을 만들어 먹어 봤는데(과정이 정말 힘들었다. 두 번은 못 한다), 올해는 8킬로그램 나왔다. 내일은 종일 집안에 들어 앉아 밤 깔 일만 남았다. 저녁 뉴스에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 이춘재 14건 범행 자백”이 뜬다. 화성 살인 사건은 내 기억에 처음으로 ‘연쇄살인’을 각인시킨 사건이다. 돌이켜보니 승합차 납치 사건도 많았던 시기였다.

 

지난달 도서관 독서모임에서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을 다루면서 로쟈보다 스비드리가일로프를 더 조명했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열네 살 소녀를 유린해 자살에 이르게 하고, 하인을 학대해 죽게 했다. 아내 죽음도 석연치 않다. 살해 의혹이 짙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사기도박으로 수감되었다가 3만 루블을 갚기 위해 돈 많은 과부를 농락한 장본인이다. 


로쟈 본명인 라스꼴리니꼬프 이름에서 ‘Raskol’은 러시아어로 ‘분열’, ‘단절’, ‘구교도’를 일컫는다. 그래서 로쟈는 초인처럼 강인한 사람이 되고 싶은 반면 내면에서는 갈등과 고뇌로 몸부림친다. 대립된 두 개의 성향을 가진 로쟈가 ‘흔들리는 이상주의자’인 반면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속악(俗惡) 그 자체다. 살인을 저지르고 난 후 도덕과 이상을 설명하는 로쟈에게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는 무언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들판에 열린 딸기라고 했던 겁니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사람을 죽인 로쟈의 어두운 모습을 보면서 자신과 같다고 아무렇지 않게 대꾸한다. 스비드리가일로프에게는 선과 악의 차이가 없고 선과 악, 도덕과 양심을 따지는 일이 무의미하다. 자기가 악행을 저지르면서 자기의 자유를 시험하고 심지어 그 일이 악행인지 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이렇게 악에 무개념인 사람은 양심이 평온하다.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혈색마저 좋은” 이런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외려 환경을 이용해 자기의 삶을 진행시키는데 능숙하다. 그렇다면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누구인가. 나는 로쟈의 악몽에서 떨어져 나온 분신이라고 말했다. 로쟈가 인류애적인 가치와 사회 공공의 선, 즉 도덕과 정의와 자유를 고뇌한다면(물론 로쟈는 현실적으로 무능한 도스토예프스키와 닮았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철저히 자기욕망에 충실한다. 추악하고 더럽고 음탕한 삶을 살면서도 그것이 스비드리가일로프에게는 온전한 세계일뿐이다. 그 세계가 자기를 위해 지탱해주지 못할 때 사라지는 것은 필연이므로 자살로 존재를 상실하는 설정은 당연하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성폭행치사 사건이 아니라 여성혐오범죄 사건이다. 프로파일러 추정에 따르면 용의자는 피해자의 신체를 잔혹하게 훼손하면서 피해자가 극도의 고통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봤을 것으로 여긴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 갈등하지 않는 사람, 자기 신념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이 무섭다. 소설 속 스비드리가일로프야 도스토예프스키가 죽였지만 현실의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어떻게 해야 하나. “혈색마저 좋은” 그 악에 희생되고, 희생됨을 지켜보고, 지켜보면서 “같은 들판에 열린 딸기”로 인류가 여기까지 왔다. 악을 악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새하얀 사고, 나의 악몽을 지배하는 무엇, 무의식의 얼음장 밑에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는 큰 빙산....뉴스 한 토막에 여러 생각이 넘나든다. 


피해자들의 원혼이 지금이나마 해원되기를 합장하며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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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오카 사건 회고문
마쓰다 도키코 지음, 김정훈 옮김 / 소명출판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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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오카 사건 개요

1945년 6월 30일 밤, 일본 동북부 아키타현 오다테시 하나오카(花岡) 광산에서 중국노동자들이 봉기한다. ‘포로’로 불린 중국노동자 986명은 1944년 7월 28일부터 1945년 5월 11일까지 중국 본토에서 하나오카 광산으로 세 번에 나눠 강제 이송됐다. 포로 대부분은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과 싸운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 병사 출신이다. 포로들은 노동착취·굶주림·폭행에 시달리면서 하나오카 강 수로변경공사와 댐 공사에 투입됐다. 사망자가 속출하자 분개한 포로들은 일본인 가해자들을 죽이고 산으로 달아났지만 일본군 토벌대에 사살되거나 광장으로 끌려왔다. 한여름 폭염에 달궈진 광장에서 3일 동안 일본군에게 폭행과 고문을 당한 포로들은 백여 명이 사망했다. 봉기가 일어난 지 45일 후 일본이 항복 선언을 할 때까지 429명이 희생됐다고 한다.

 

■ 『하나오카 사건 회고문』은 어떤 책인가

작가 마쓰다 도키코[1]는 하나오카 광산이 있던 아키타현 출신이다. 광산에서 태어나 광산에서 자랐다. 광업소에서 급사로 일했던 ‘광산의 딸’인 작가는 광산 노동자를 가장 가까이에서 본 목격자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9월에 도쿄에서 살던 작가는 하나오카 광산을 취재하는데 갱내를 직접 들어가 살폈다. 생존 인물과 현장을 답사하며 수집한 증언과 자료에 사건을 재구성한 목판화와 시를 엮은 이 책은 일본제국주의 폭압으로 희생당한 조선인과 중국인 강제 징용자의 처참한 실태를 조명하며 일본정부의 반인륜적 실상을 폭로한다. 나아가 한국전쟁특수 효과를 노린 일본정부의 치밀한 전략과 하나오카 사건 이후 위령제와 유골반환을 방해한 일본정부의 왜곡과 은폐도 짚었다.

 

■ 전시증산과 나나쓰다테[2] 사건

이 책에 따르면 하나오카 사건은 나나쓰다테 사건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전쟁국가로 돌진한 일본은 군수물자 생산에 박차를 가했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조선인 강제징용자는 확인된 인원만 66만 명이며 밝혀지지 않은 인원을 합치면 150만 명으로 추정된다. 구리, 철, 아연을 생산한 하나오카 광산은 전쟁수행이 목적인 전시증산에 적합했다. 더 많은 채굴을 위해 난굴을 팠다. 마침내 1944년 5월 29일 ‘7번 갱도’는 하나오카 강 밑바닥과 닿으며 무너진다. 회사는 매몰된 노동자 구출은커녕 하나오카 강물이 갱내로 유입돼 “광상(鑛床)이 쓸모없게 되므로 폐쇄”를 결정했다. 밤이면 흙과 모래가 트럭에 실려와 무너진 7번 갱도 위에 부어졌고 철조망이 둘러 처졌다. 생매장당한 희생자 22명의 유골은 수습되지 않았다.

 

일본정부는 증산에 차질이 생기자 조선인 징용자 130여명을 하나오카 강 수로변경 공사에 투입한다. 진전이 없자 두 달 후 중국에서 전쟁 포로를 강제 연행했다. 수 킬로미터에 이르는 이 공사에는 기계가 동원되지 않았다고 한다. 물 한 모금 제대로 마실 수 없이 뼈만 남은 중국인 포로들이 삽과 괭이로만 만든 인공하천 하나오카 강은 지금도 유유히 흐르고 있다. 하나오카 광업소에만 일본 상공성이 주도한 조선인 강제 징용자는 2017명으로 밝혀졌다. 당시 상공성 최고책임자는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로 현재 일본 총리 ‘아베 신조(安倍晋三)’의 외조부다.


■ 제국주의·자본주의·차별주의

나나쓰다테 사건과 하나오카 사건은 제국주의·자본주의·민족차별주의로 정리된다. 작가가 “일본 군국주의 압축도”라고 규정했듯이 아시아 침탈을 넘어 세계 정복 야욕을 계획한 일본의 군국주의는 두 가지 사실로 입증됐다. 자국의 국민도 부족해 아시아 사람들을 착취하고 살육했으며, 패전 이후에도 타민족차별을 지속하고 있다. 게다가 제국주의와 손잡은 자본은 전범기업 오명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줄곧 등장한 ‘가시마구미(鹿島組. 가시마구미 건설)’처럼 대기업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노동자를 저임금·저식량배급·중노동으로 착취했다.

 

일본은 중국을 침략할 때 ‘삼광(三光)’을 지시했다고 한다. 모두 죽이고, 모두 불태우고, 모두 빼앗으라는 이 악다구니는 ‘일본인인 우리(we)는 1등 국민으로 정당한 선(善)’이며 ‘다른 민족(they)은 열등한 악(惡)’으로 구별 짓는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인이 ‘불령선인(不逞鮮人)’[3]이나 ‘미개인’으로 낙인찍혀 핍박을 받았던 사실을 상기하면 일본정부가 다른 나라 사람을 ‘하찮은 것들(things)’로 인식한 근원이 여기에 있다. 현재 오다테시에서는 ‘중국인순난자위령비’ 앞에서 해마다 성대한 추모식이 열린다. 그러나 하나오카 사건의 기저가 된 나나쓰다테 사건 함몰지에는 민간인이 세운 초라한 추모비마저 방치된 채 방문자가 놓고 가는 꽃이 그날의 원혼을 달래고 있다고 한다.         




-주 석-

[1] 마쓰다 도키코(松田解子 1905~2004) : ‘일본의 진보적 양심작가’로 불리는 작가. 평생 광산 노동자를 취재한 르포와 소설을 썼고 사회활동가로 활동했다. 쓴 책으로『땅 밑의 사람들』, 『유골을 보내며』, 『오린구덴』등이 있다.

[2] 나나쓰다테(七ツ館) 사건 : 1944년 5월 29일 난굴(亂掘)로 7번 갱도가 하나오카 강 밑바닥과 닿으면서 붕괴된 사건. 이 사건으로 조선인 징용자 12명과 일본인 노동자 11명이 매몰됐다. 3일 동안 갱 밖 광부들이 조선인 1명 구조. 그러나 회사는 갱내에서 보내는 구조요청신호를 무시하고 갱도를 강제 폐쇄해 22명이 생매장 당했다.

[3] 불령선인(不逞鮮人) :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조선인을 비하한 말로 ‘불온하고 불량한 조선 사람’이라는 뜻이다.




1. 광천공공도서관에 기고한 ‘10월의 책’ 소개이다.

2. 강제징용배상판결과 관련해 일본 정부가 취한 수출 규제와 한일 갈등을 보면서

도서관 이용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강제징용 관련 책을 꼽았다.

3. 이 책은 이미 읽은 책이지만 한 번 더 정독하면서 차분하게 정리했다.

4. 위험을 무릅쓰고 갱도까지 들어가 취재한 저자 마쓰다 도키코의 영면을 기원한다.

5. 리뷰 제목에 쓴 “폐쇄의 죄”는 본문에서 따 왔다.

6. 두 달 동안 도서관 리모델링 공사가 끝나고 오늘 개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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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나오카 참사를 읽으며 스치는 얼굴들
    from 뻥 Magazine 2019-10-01 12:32 
    6월 30일 토요일 오전 흐림 오후 비 낮에 한숨자고 일어나서 어제 읽다만 《하나오카 사건 회고문》(수백 명이 죽은 ‘참사’를 ‘사건’이라고 축소한 편집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을 마저 읽었다. 2부에 실린 판화와 서사시를 넘기다가 “버드나무 잎”이라는 시에서 한참 멈췄다. 굶주림에 시달린 광부들에게 누군가 버드나무 잎으로 만든 개떡을 가져와 감독 몰래 나눠 먹었다고 한다. 일본 광부들은 같은 일본인이라고 건빵 나눠주고 학생들은 차를 마시게 해 줬
해동화식전 - 조선 유일의 재테크 서적, 부자 되기를 권하다
이재운 지음, 안대회 옮김 / 휴머니스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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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을 신봉한 조선은 선비 나라였다. 선비는 가난할지언정 체면을 지켜야했고 백성은 가난을 운명처럼 여겼다. 물욕을 평가 절하한 조선시대에 부자 되기를 권한 『해동화식전(海東貨殖傳)』에 따르면 안빈낙도(安貧樂道)는 악이다. 가난을 편하게 여기고 도를 즐기는 대신 생업에 종사해 부유해지는 것이 나라와 백성 모두를 구제한다고 한다.

 

“부자는 미덕이고 가난은 악덕”이라는 주장을 시종일관 유지한 이 책은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에서 「화식전(貨殖傳)」을 빌려와 저술했다. 온갖 수단을 동원해 부자 되기를 강조한 사마천만큼이나 『해동화식전』 저자도 관직에 나가는 대신 부자 되기를 권한다. 청빈을 미덕으로 인식한 조선에서 파격적인 도발이다. 부모와 처자식을 윤택하게 살도록 애쓰면 수신제가치국평천하가 실현된다고 한다. 풍족한 재산은 가정을 지키고 정직한 납세는 국가경제에 이롭기 때문이다. 1750년대 봉건왕조 시대에 부의 가치를 재해석한 모습에서 자본주의가 연상된다.

 

이 책은 「조선유일의 재테크 서적, 부자 되기를 권하다」라는 부제에서 보듯 빈곤탈출 방법을 제시한 경제경영서다. 저자의 경제론과 성공한 부자 아홉 명을 소개해 실용서 성격을 갖췄다. 자수성가형 부자들인 이들은 선비·농부·머슴·거지 출신들이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이 엄격하게 구분됐던 조선에서 한미한 신분에도 독과점과 대부업을 통해 부를 축재할 수 있었던 요인은 용기·계획·지혜·성실·신의이다.

 

책을 읽다보면 부자로 성공한 사람들은 명분보다는 실리를, 단기투자보다는 장기투자에 안목이 있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무엇보다 가난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인삼을 사재기했다가 조선통신사에게 열 배 이익을 남기고 되판 국제무역가, 소금 한 되를 보자기에 싸서 천장에 달아놓고 밥을 먹은 자린급, 남의 가게를 잘 지켜준 거지 등 이들은 대범한 실행과 신뢰로 사람의 마음을 얻고 부자로 성공했다.

 

그러나 저자가 부자를 칭송한 진짜 이유는 부자가 된 이들이 재산을 사회에 돌려주는데 있다. 흉년이 들었을 때 곳간을 열어 식량과 돈을 나누고, 재산을 불린 늙은 종이 죽자 자식을 면천시키며, 자산가가 되자 소작인들에게 땅을 나눠 준 부자들은 도움을 받은 사람들에게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백정, 국밥장사꾼, 몰락한 선비가 부자가 된 배경에는 공동체사회 가치에 호응한 신의가 큰 작용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영·정조 때 소품문(小品文)인 이 책은 단정한 문장에 저자의 의중을 진중하게 담았다. 팔도 경제 지리와 특산물을 정리해 당대 풍속과 경제를 가늠할 수도 있다. “부란 누구나 좋아하는 맛좋은 생선회나 구운 고기와 같다”고 한 저자는 평생 불우한 처사로 살았다고 한다.

 




1. 농민신문사 발행 월간잡지 《전원생활》 10월호에 기고한 신간안내이다.

2. 안대회 교수 번역은 쉽게 읽히고 원문이 달려 있어 확인이 가능하다.

3. 이 책은 조선시대 관점으로 읽는다고해도 토론 소재로 쓸 몇 가지 이야기가 있다.

“부자는 미덕이고 가난은 악덕”이라는 주장에서 부와 가난을 세분해 나눌 필요가 있다.

② 책에 거론된 독과점 사업은 특정 상품 가격 급등을 낳아 경제 혼란을 자초했다.

③ 재산을 불리는 위험한 과정에 하인이나 농민을 앞세웠다는 점에서 신분차별 의식이 드러난다.

4. 그럼에도 새 책 소개는 긍정적인 면을 밝혀야 하므로 늘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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