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로봇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김옥수 옮김 / 우리교육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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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봇공학의 3원칙]

  제1원칙 :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그리고 위험에 처한 인간을 모른 척해서도 안 된다.

  제2원칙 : 제1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제3원칙 : 제1원칙과 제2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로봇 자신을 지켜야 한다.


  로봇이 등장하는 소설이나 영화의 원조격인 소설로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된다"로 시작하는 로봇공학의 3원칙을 만들어낸 아이작 아시모포의 단편집이다. 이 3원칙은 로봇이 등장하는 대부분의 소설이나 영화에서 차용하는 개념으로, 이를 통해 아시모프는 SF소설의 거장이자 전설이 되었다.

  이야기는 기술문명이 발달해 우주로 발을 넓혀가고 있는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로봇은 사회를 발전시키고 인간을 도와 많은 일을 했지만, 인간은 나날이 발전하는 로봇의 능력에 점처 두려움을 갖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람이 할 수 없는 위험한 일이나 다른 행성에서의 광물 채집 같은 힘든 작업을 맞겼다. 이런 배경 위에 9편의 단편들이 독립적이지만 유기적으로 엮어져 있다.

 

  <로비_소녀를 사랑한 로봇>에서는 한 소녀를 돌보는 보모 로봇, 로비가 등장하는데 엄마와 주변 사람들의 두려움으로 멀리 보내지게 된다. 하지만 소녀에게 위험한 순간이 닥치자 로비는 그녀를 구하게 되고 다시 함께 생활하게 된다. 인간과 기계 사이의 휴먼스토리로 인간을 도와야 한다는 로봇공학 1원칙이 등장한 소설이다.      

  <스피티_술래잡기 로봇>은  로봇공학의 세가지 원칙이 온전하게 등장하는 단편으로 스피티는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하는 2원칙과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 3원칙 사이에서 맴돈다. 로봇 3원칙 간의 간극을 절묘하게 파고든 느낌. 

  <큐티_생각하는 로봇>에서는 우주기자의 관리를 맞게 되는 로봇이 등장하는데, 인간을 가둬놓은 체 자신의 임무를 완벽히 수행한다. 이 로봇은 자신이 믿고있는 세계의 구성하는 하나의 부품 정도로 인간을 인식해버린다. 로봇이 인간 위의 신이 되어버린 것.

  <허비_마음을 읽는 거짓말쟁이>에서는 인간에게 행복함을 주려는 로봇의 노력이 엉뚱한 결과를 낳게 된다. 서로의 마음을 오해해 벌어지는 유쾌한 코미디를 연상케했다.

  이 외에도 <데이브_부하를 거느린 로봇>, <네스터 10호_자존심 때문에 사라진 로봇>, <브레인_개구장이 천재>, <바이어리_대도시 시장이 된 로봇>, <피할 수 있는 갈등>이 실려 있다.

 

  <아이, 로봇>에는 로봇 3원칙을 중심으로 여러편의 에피소드가 하나의 글로 묶여 있다. 어떻게 보면 로봇이라는 제한된 소재만으로 풀어가야하는 한계를 인간과 로봇 사이의 규칙과 질서, 모순을 기발하게 표현한 것 같다. 지금부터 80년 이전인 1900년 중반에 출판된 소설들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마치 스마트폰을 주제로 매번 새로운 드라마를 만들어낸 영국 드라마, <블랙미러>를 보는 것 같다. 점점 중독되어 가는 스마트폰의 검은 화면처럼, 매끄럽고 차가운 로봇의 차가운 표면 아래 감추어진 인간과의 연결고리가 재미있다.

 

  자율주행 자동차에 등장하는 윤리적인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주행 중인 탑승자를 보호해야 하지만, 이를 위해서 사람이 붐비는 인도 위로 핸들을 틀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로봇과 인간 사이에서오는 복잡하고 난해한 질문이 <아이, 로봇>에 던져 놓았다. 로봇을 통해 화려한 이상향만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그 편리함 뒤에 감춰진 이면을 고민케 한다.

  결국 로봇과 같은 첨단문명도 인간의 손에서 탄생한 한 줄의 코딩이라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창의력을 보여주는 알파고의 활약에 뒤렵기도 하다. 나는, 우리는 로봇을 조종할 것인가, 조종당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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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여 잘 있어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9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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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여자가 다섯 번째 이별을 하고 산속으로 머리 깎고 완전하게 떠나 버렸대”로 시작하는 박상민의 노래, <무기여 잘 있거라>는 다섯 번의 사랑과 배신, 이별을 신나는 리듬에 맞춰 코믹하게 불러 큰 인기를 끌었다. 여기서 말하는 무기란 총(gun)으로 대변되는 남성성을 의미하는 부정적인 단어로 쓰였다. 그래서 자신을 이용하고 버린 혐오스러운 남자들에게 “무기들아 잘있어~”라고 말하며 떠났던 것.
 하지만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어라>에서 말한 무기는 말 그대로 전쟁의 도구로 사용되는 대포, 총, 칼을 의미한다. 그래서 무기, 즉 전쟁으로 동반되는 죽음, 이별, 부상, 두려움, 공포에서 벗어나고픈 안간힘이 담겨있다. 하지만 어디 현실이 그런가, 벗어나려고 하면 더 얽혀버리는 올가미처럼 우리의 발목을 잡았다. 

 

  이 책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랑을 지키려는 한 쌍의 연인을 통해 전쟁의 참담한 현실을 사실적이고 담담하게 표현한다. 전쟁 속에 휘말린 개인이나 이들의 삶을 연민이나 동정 어린 시선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해설 없이 재생되는 전쟁 다큐멘터리에서처럼 덤덤하게 펼쳐놓는다.

 

  1차 세계대전에 참가한 프레더릭 헨리는 간호사 캐서린 바클리를 알게 되고 재미 삼아 작업을 건다. 하지만 부상으로 이송된 후방에서 그녀와 다시 만나게 되면서 사랑이 싹트게 된다. 사랑이 무르익을 무렵 부상이 완쾌된 헨리는 다시 전쟁터로 복귀하지만 연합군이 패하면서 후퇴하게 되고, 이 와중에 탈영병 신세로 전락해 총살될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가까스로 탈출해 캐서린과 재회한 헨리는 스위스로 도망가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이들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으로부터 도망쳐보지만 현실은 이들을 옹호해주기보다는 점점 더 폭풍의 한가운데로 몰아넣었다. 태풍의 눈에서 잠깐이지만 고요한 하늘과 햇빛을 볼 수 있었지만, 이는 더 큰 고난과 시련을 예고하는 전주일 뿐이었다. 현실은 회피하고 외면한다고 해서 해결되거나 극복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도망가면 갈수록 냉엄한 현실에 직면해야 했던 것. 헨리와 바클리, 아니 우리를 공격하는 최대의 무기는 바로 ’현실‘이었다. “무기여 잘 있어라”는 말은 고달픈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우리의 바람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불가역적인 현실 앞에 인간은 더욱 나약해지고 소심해져서, 결국에는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존재로 남게 되는 것 같다. 이는 극한의 현실에서 마주하게 되는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본능은 자신을 지키려고 하는 최후의 마지노선이 아닐까 싶다. 그 벼랑 끝에서 ‘사랑’‘이라는 한줄기 희망을 봤고 ,여기서 작게나마 위안을 찾게 되는 것이 인간인 것 같다.
  결국 우리는 사랑이라는 동아줄을 기다리며 세상이라는 외줄을 타고 있는 작은 광대에 불과한 존재라고 생각한 것일까. 권총으로 자살한 헤밍웨이의 기울어져 가는 가슴 속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 안쓰럽기도 하다. 네 번의 결혼과 바람,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두 번의 비행기 사고와 여러 차례의 전쟁 참전, 우울증과 알코올중독증을 앓았다는 그가 세상 바깥으로 내몰리면서도 애타게 찾으려고 한 것도 '사랑'이었지 싶다.
 
  책을 덮고 나니 여러 이야기가 두서없이 떠오른다. 현실을 외면하고픈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 숲>와 사랑에 함몰되어 모든 것을 내던지는 이문열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가 생각난다. 그리고 허무하게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헤르만 헤세의 <크놀프, 그 삶의 세 이야기>와 함께 전설적인 부부갱단(보니와 클라이드)의 비극을 그린 영화 <우리에겐 내일은 없다>도 뇌리를 스친다. 허무하게 사라져버릴 인생, 아 사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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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모비 딕 1~2 - 전2권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허먼 멜빌 지음, 황유원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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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20년 11월 20일 포경선 에식스호는 남태평양에서 '거대한 향유고래’와 충돌해 침몰했다. 구명보트 세 척에 나눠탄 선원들은 남아 있던 비상식량이 바닥나자, 인육으로 연명했다. 석 달 넘는 표류 끝에 8명이 살아남았다. 포경선원으로 일한 멜빌은 1840년대에 낸터킷을 방문해 이 에식스호의 생존자이자 일등항해사였던 오언 체이스의 조난기를 읽었다. 19세기 최대의 해양참사로 알려진 이 비극은 소설 <모비딕>이라는 고전으로 재탄생한다.
(출처 : 낸터킷을 세계적인 해양 여행 명소로 만든 ‘모비딕’의 ‘마법’)


  나를 이슈미얼로 불러달라. 나는 고래 자체가 주는 압도적인 느낌에 매료되어 미국에서 포경업이 시작된 낸터킷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야만족 퀴퀘그를 만났다. 그는 폴리네시아 왕의 아들로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성격이었지만 고래잡이를 동경하고 있는 데다 순수하고 사람에 대한 믿음이 강해 나와 동행키로 했다.
  우리는 에이해브가가 선장인 피쿼드호에 탔는데 그는 지난번 고래잡이에서 모비 딕이라 불리는 흰색 향유고래의 공격을 받아 한쪽 다리를 잃었다. 이 때문인지 선장은 고래잡이라는 본래 목적보다는 모비 딕을 잡고 말겠다는 복수심이 앞섰다. 하지만 용감하고 침착한 일등 항해사 스타벅은 이런 선장의 모습을 걱정했다.
  출항 후 첫 번째 출격! 모선에서 출발한 네 척의 보트는 저기 보이는 고래 떼를 향해했지만 거친 파도와 스콜, 안개로 인해 고래도 놓치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고래에 부딪혀 보트가 전복되면서 겨우 살아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등항해사인 스터브가 향유고래를 잡았다. 잡은 고래는 포경선에 매단 체 해체되는데,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든 상어 때문에 작업이 쉽지만은 않았다. 특히, 향유고래 머리에서 최고급 기름인 경뇌유를 추출하던 중에는 선원 한 명이 고래 머릿속에 갇혀 수장될 위기에 몰렸지만, 퀴퀘그의 용기와 노련함으로 무사히 구출해내기도 했다. 
  피쿼드호는 다른 포경 보트와 힘겹게 경쟁하거나, 스터브의 멋진 창 던지기로 고래를 잡기도 했다. 그리고 커다란 고래무리 가운데에서 목숨을 건 사투를 벌리기도 했고 선원 한 명이 조난되는 등의 일을 겪으며 고래를 잡아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모비 딕을 만났다. 이틀 간의 긴 추격과 싸움으로 보트를 부서지고 선원 한명도 죽었다. 추격 사흘째 되는 날, 모비 딕은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최후의 전투를 준비한다.
  “질질 끌리는 밧줄과 작살과 창으로 너저분한 모습이 된 거대한 형체가 바다로부터 세로로 비스듬히 솟아올랐던 것이다. 그것은 늘어진 얇은 베일 같은 물안개에 가려진 채 잠시 무지개가 뜬 대기 중에 머무르고는 다시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수면 위로 30피트까지 솟아오른 물은 분수가 뿜어 올린 물기둥처럼 일순간 번쩍하더니, 산산이 부서져 눈송이처럼 쏟아져내렸다. 고래의 대리석 같은 몸뚱이 주변의 수면은 갓 짜낸 우유처럼 물거품을 일으키며 소용돌이쳤다.“(<모비 딕> 2권 501페이지)

  <모비 딕>은 <백경>이라는 이름으로도 번역되기도 했는데 1,000페이지가 넘는 상당한 분량이다. 하지만 “도대체 고래는 언제 나타나는 거야?”라고 반문할 정도로 ‘고래 사냥’과는 상관없는 이야기가 상당 부분 차지한다. 백색 향유고래 모비 딕과 피쿼드호 선원들 간의 사투라든가 포경선이라는 제한된 공간 속에서 생활하는 선원들의 이야기보다는 고래는 어떤 종류가 있고, 고래잡이는 언제 시작되고, 어떻게 진행되는지, 고래기름은 어디에 사용되고 어떻게 얻는지, 포경선과 포경 보트의 구조와 용도는 어떻게 되는지 백과사전처럼 설명한다.
  그렇다 보니 모비 딕을 쫓는 중심 이야기의 맥은 자주 끊어지고 지루함마저 들게 한다. 고래 이야기에서 포경과 그 주변에 대한 설명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고래사냥 언저리의 이야기가 책 대부분을 차지하다 보니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150년 전에 출판되어 오늘날까지 두루 읽히고 있는 세계적인 고전이라는 타이틀이라도 없었다면 계속 읽어 나갈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그리고 이슈미얼과 함께 포경선에 오른 퀴퀘그, 스타벅의 비중이 작은 것도 아쉬웠다. 소설 초반부의 강렬한 등장신에 비해 이렇다할 역할이 없었다. 모비 딕과 대척점에 선 에이해브 선장을 도와주거나 대립하면서 이야기를 이끌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또한 모호하거나 매끄럽지 못한 텍스트가 종종 보였다. 고르지 못한 중계 사정으로 중요한 장면을 놓쳐버린 경우처럼, 고래와의 긴박한 승부에서도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못하는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원문 자체가 그런지 번역상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몇 번을 다시 읽어봐도 잘 이해되지 않았다.


  모비 딕이라는 이름은 거대하다는 의미의 모비(Moby)와 성기를 의미하는 딕(dick)의 합성어로, 한마디로 “거대한 거쉬기~”라는 말인데, 실제 에식스호는 물론 여러 포경선을 공격했다는 한 사나운 향유고래에서 따왔다고 한다. 모카 딕으로 불렸던 이 향유고래는 포경선이 다가오면 도망가는 다른 고래와는 달리 머리와 꼬리를 이용해 포경선과 선원을 공격했다고 한다. 생존을 위해 사납게 몸부림치는 고래를 보고, 격정의 순간으로 치닫고 있는 성난 남성을 생각해낸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또한, 세계적인 커피점인 스타벅스의 이름이 여기 나오는 일등 항해사 스타벅에서 따왔다는 것. 원래는 배의 이름인 피쿼드를 사용하려고 했지만, 공동 창업자가 스타벅으로 바꾸자고해 복수형인 s를 붙여 오늘날의 이름이 태어났다고 한다. 모비 딕이 휘젓고 다니는 거친 바다의 비릿한 향기나 암갈색의 구수한 커피향과 묘하게 어우러지는 것 같다. 이제 커피를 마시더라도 폭주하는 모비 딕을 차분하게 대적하는 스타벅이 생각날 것 같다.


  자연사 박물관에서 고래 뼈는 많이 봤지만 살아있는 고래는 2015년 하와이 마우이섬에서 처음봤다. 반달 모양으로 유명한 몰로키니 섬으로 스노클링을 하러 가던 중 울렁이는 파도 사이로 퓨우~하고 수증기를 뿜어내던 고래를 볼 수 있었다. 먼발치에서 고래의 등만 살짝 보였을 뿐이지만 수면 아래 커다랗게 존재할 고래의 여유로움을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든든해졌다.
  고래는 그 모양과 크기, 움직임, 그리고 존재만으로도 나를 설레게 했다. 머리부터 시작해 등과 꼬리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선이 엄마의 포근한 가슴선이나 고향 마을의 아늑한 산세를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지구상의 어떤 생명보다도 거대하지만 자신을 드러내거나 과시하지 않으며, 부드러운 움직임 속에는 거친 바다를 이겨낼 강한 힘이 있다. 그래서 고래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옛 선사의 소박하고 부드럽지만 강한 정신세계를 보는 것 같이 경건해진다. 

  <모비 딕>은 고래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설레는 책이다. 고래 이외의 부분이 너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동경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응징의 대상으로 그려지긴 했지만, 고래의 거대함만으로도 우리 가슴을 채우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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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술 - 오늘의 술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늘 어제 마신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무튼 시리즈 20
김혼비 지음 / 제철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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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12월 31일, 직장에서 신년 계획을 논의하는 작은 회의를 마치고는 술을 먹었다. 처음에는 수육으로 시작되었고 2차는 어묵탕과 조개를 소주와 마셨다. 평소 같으면 3차 이상을 달렸을 자리지만 내일 중요한 일정이 있었던 나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중요한 일정이란 다름 아닌 입원. 1월 2일 예정된 수술이라 하루 전인 1월 1일에 병원행이 예약되어 있었던 것인데, 작년 11월, 몇 년 전부터 이상 신호는 있었지만 큰 불편이나 통증이 없었기에 차일피일 미뤘던 진료를 시작하며 어렵게 잡아놓았다.
  아무튼, 입원과 수술을 마치고 병실에 누워있은 것이 벌써 열흘이 다 되어간다. 2020년 첫날부터 병실에 기숙하며 먹고, 자고, 싸기를 반복하며 침대충으로 지내다 보니 도대체 할 일이 있어야지... 그래서 집에 모아놓은 영화도 보고, 폰질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한 블로그 이웃의 2019년 한 해를 돌아보는 쓴 글을 보던 중 “아무튼, ○○○”로 시작되는 책을 몇 권 보게 되었다. 그래서 당장 인터넷 서점에서 이 단어를 키워드로 검색해봤더니 <아무튼, 피트니스>, <아무튼, 서재>, <아무튼, 기타>, <아무튼, 문구>, <아무튼, 떡뽁이> 등 무려 25종의 아무튼 시리즈가 나와 있었다.
  마침, 문병 오는 집사람이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간다기에 한 잔 부탁했다. 안 그래도 병실에서 치맥이 생각났었는데 말이다. 뭐 이렇게라도 술 내음을 맡을 수 있다니 병원 생활의 무료함을 조금은 달랠 수 있겠다.

  <아무튼, 술>에는 김혼비 작가의 개인적인 술 경험담이 맛깔나게 실려있다. 동네 대포집에서 듣는 친구의 술 무용담처럼 재밌고 흥겹다. 언제 처음 술을 마셨고, 어떻게 필름이 끊겼는지를 이야기하고 술로 맺어진 T와의 인연과 친구들과의 에피소드를 소주, 맥주, 막걸리, 양주, 와인과 함께 풀어 놓았다.
  병실에 누워있는 틈틈이 지루하지 않게 읽었다. 몸은 갑갑한 병실에 갇혀 있지만, 마음은 1차 소맥, 2차 소주, 3차 맥주를 향해 달려 나간다. 오른쪽 팔뚝에 꽂혀있는 링거에는 맑은 수액이 아닌 차디찬 소주 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나의 첫 술은 대학 합격자가 발표가 있던 날, 반 친구의 전화를 받고 나가 마신 맥주가 첨이지 싶다. 열 명 정도의 친구들이 부산의 한 대학가 앞에 모여 축하주를 마셨던 기억이 난다. 술 맛을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합격 속에 감추어진 대학 생활에 대한 불안감도 있었기에 술자리 자체의 기억은 없지만 많이 마신 것 같지는 않다.
  아마 본격적인 술은 대학교 신입생 때부터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학과, 동문회, 동아리 등 선배나 동기들과 어울려 매일 퍼마신 기억이 난다. 조금 급하게 퍼마시던 성격이라 2차가 시작될 즈음에는 이미 곯아떨어져 버리기 일쑤였고, 이 술자리가 파할 때쯤 부활해 집에 가려는 지인들은 붙잡고 다시 술판을 벌이기도 했다.
  소개팅이나 중매를 위해 커피숍에 갔을 때도 2차는 언제나 맥줏집이었다. 뻘쭘하고 어렵던 첫 만남이었지만 맥주라도 한잔 들어가면 이런저런 이야기가 술술 나오기 시작했고, 차감된 외모 점수도 충분히 만회할 수 있었다.
  직장생활도 술 비중이 컸다. 일이 끝나면 직장 상사를 안주로 맥주와 소주로 시켰다. 마음이 맞는 동료와 함께 한 잔씩 기울이며 이해할 수 없는 현실과 불안한 미래를 달랬다. 사흘에 한 번꼴로 소집되는 이 방과후활동(?)을 위해 하루를 버티고, 내일을 준비했다.

 

  이렇게 즐기던 술은 며칠째 못 마시고 있다. 하긴, 병원 치료나 의사의 처방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오래 금주해본 적이 없으니, 어쩌면 ‘미필적 금주’라고 해야 할까. 물론 갑갑하고 건조한 공간에 오래 있다 보니 선선한 해질녘이 되면 시원한 생맥주가 그립기는 하지만, 병원이라는 마실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그렇게 생각나지는 않는다.
  어쩌면 그동안 내가 퍼마신 술은 알코올 자체의 끌림보다는 술자리 속에 곁들여진 사람들이 그리워서가 아닐까 싶다. 친구들이나 직장동료들과 만나더라도 말을 많이 하는 편도 아니고 듣고만 있는 편인데도 사람들의 이야기가 오고 가는 시끌벅적한 분위기 자체를 좋아했던 것 같다.
  <어쩌다, 술>은 술 자체의 화학적 반응보다는 술자리를 통해 일어나고 생각났던, 일어날 일에 대한 오마주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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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의 꿈 - 완결판
리처드 바크 지음, 공경희 옮김, 러셀 먼슨 사진 / 나무옆의자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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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에 했던 마라톤이 화근이 된 것일까? 오른쪽 발목이 부으면서 물이 차기 시작한 것을 직접적인 통증이 없다고 진로를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연골과 인대까지 손상되어 수술까지 받게 되었다. 이렇게 발목부터 무릎 위까지 깁스하고 며칠째 병원에 누워있다.
  수술이 끝나고 통증과 부기를 가라앉히고, 이식된 연골이 안착하기를 기다리는 긴 시간 동안 주로 집에서 갖고 온 영화를 보며 지냈다. 하지만 영화도 시들해질 즈음 간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을 고르다 집어 든 책이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이다.

 

  내가 가진 <갈매기의 꿈>은 총 세 권이다. 가장 오래된 책은 송은실 번역본(소담출판사, 1990년 발행)이고 나머지는 현문미디어에서 나온 류시화 번역본(2003년)과 공경희 번역본(2015년 발행)이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서 <어린왕자>와 함께 추천되어 있기에 처음 읽었는데 작은 분량이지만 그 어떤 책보다 울림이 컸던 기억이 난다. 조나단의 비행과 추방, 그리고 끝없는 도전과 귀환을 몇 번을 곱씹어 읽었고, 친구들에게 선물도 많이 했었다. 그래서 새로운 번역이나 판형이 보일 때마다 사 왔던 것이 이 세 권이다.
  송은실 번역은 다소 의역이 보이긴 하지만 어느 한군데 치우침 없는 균형 잡힌 시선으로 조나단과 플레처의 비행기를 이야기한다면, 류시화 번역은 오랜 명상의 영향인지 불교적 색채가 강하게 묻어있다. 하긴 사랑이나 자비나 모두 같은 말이니... 공경희 번역본은 가장 최근에 번역된 책으로 치밀하고 사실적이다. 가장 매끄럽게 읽히지만, 조나단의 내면과 이상을 표현하기에는 너무 현대적인 느낌이 크다. 특히 원작자가 옛날에 적어놨던 조나단의 숨겨진 뒷이야기가 추가된 것이 특이했다. 아무튼, 번역가마다 특징이 있어 느낌과 문장을 서로 비교해가며 읽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준다.

 

  

 (왼쪽부터 송은실 번역본(소담, 1990), 류시화 번역본(현문, 2003), 공경희 번역본(현문, 2015))

 


  뱃머리나 쫓으며 생선 대가리를 탐내는 여느 갈매기와는 달리 조나단은 비행술에만 관심이 있다. 어떻게 하면 저공, 고공비행, 선회와 활강을 우아하게 할 수 있는지 연구하고 도전했던 조나단은 마침내 1,200m에서 340km/h로 활강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를 지켜본 갈매기들은 기존의 질서를 깨뜨렸다며 조나단을 무리에서 추방한다.
  이렇게 홀로 생활하게 된 조나단은 화려한 비행술로 자신에게 다가온 두 마리의 갈매기를 따라 하늘과 맞닿은 미지의 공간으로 인도된다. 그곳은 자신처럼 비행술을 연마하는 갈매기들만 모여있는 곳으로, 여러 스승을 만나 더 많은 기술을 배웠고, 공간의 한계까지도 뛰어넘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더 높은 경지의 단계까지 올라가려는 순간, 자신처럼 비행술에 관심이 많은 갈매기나 기존의 질서에 순응하지 못해 쫓겨난 갈매기를 찾아 자신을 내쫓은 무리로 되돌아간다.
  여기서 조나단은 제자인 플레처와 함께 비행술을 가르쳤다. 조나단을 따르는 갈매기들이 점점 늘어나게 되고 심지어 맹목적인 추종하거나 비난하는 갈매기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플레처는 비행시험을 보이는 중 바위에 부딪혀 의식의 변환을 맞이하는데, 더 높은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지만, 그는 지상에 남아 다른 갈매기에게도 비행의 기쁨을 전해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플레처를 살려낸 조나단의 엄청난 능력과 이를 보고 흥분한 갈매기들로 인해 플레처는 큰 혼란에 휩싸인다. 이때 조나단은 플레처에게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며, 내면의 자아를 찾아 스스로 노력할 것을 당부하며 홀연히 사라진다.


 

  비행술을 익히며 최고의 경지까지 오른 조나단과 플레처는 자신의 비행술을 본인의 영달만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 비행의 가치를 깨닫지 못한 이들을 위해 온몸을 던져 설명하고 가르쳤다. 이는 우리가 익히 들어온 성인의 모습과도 유사했다.
  모세는 사랑을 행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온갖 시련을 겪는다. 조나단은 비행을 통해 자신의 이상을 찾아 나서지만 결국 자기 무리로부터 추방당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었지만 사흘 만에 부활하여 온 누리에 사랑을 전하듯이, 조나단의 제자 플레처는 비행술 도중 큰 사고를 당했지만, 기적적으로 깨어나 자신의 비행술을 다른 갈매기에게 전한다. 시나이산에서 모세가 받아온 예수의 열 가지 가르침처럼, 조나단은 자신은 비행을 좋아하는 평범한 갈매기일 뿐 특별하지 않다며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고 한다.
  조나단과 플레처의 삶 속에는 예수뿐만 아니라 석가, 노자와 같이 진정한 자아를 찾아 세상을 밝게 만든 이들의 모습이 겹쳐있다. 한 시간 남짓이면 읽을 수 있는 얇은 책 속에 인간의 희로애락이 모두 들어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자신을 사랑하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행한다면 그것이 바로 사랑이고, 자비이며, 무위자연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깨달음을 세상에 전해 많은 대중을 사랑과 자비의 세계로 인도하라는 대승적 세계관과도 일치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갈매기의 꿈>을 한낮 소설책 정도로 읽고 덮어버리기에는 너무 거대한 책이다.

 

  그리고 공경희 번역본(현문미디어, 2015년 발행)에는 리처드 바크가 써놓고 출판하지 않았던 <갈매기의 꿈> 뒷이야기가 추가되어 있다. 조나단이 사라진 이후 조나단이 신격화되고 비행보다는 제단을 쌓아 조나단을 숭배하는데 몰두하게 되는 후세 이야기가 나온다. 마치 예수가 전하려고 했던 사랑보다는 성경 구문과 교회의 외형에만 집착하고 있는 오늘날의 모습을 풍자하고 있다.
  1, 2, 3부로 나누어진 기존의 <갈매기와 꿈>은 특정 종교에 한정되기보다는 삶의 가치를 중심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말했다면, 새로 추가된 4부는 왜곡되어가는 예수의 가르침, 사랑을 행하라는 본질에서 멀어지고 있는 오늘날의 기독교를 직접적으로 거론하고 있어, 기존 책이 가진 범용성과 확장성을 훼손된 느낌이다. 유유히 비행하던 한 마리의 갈매기가 낚시꾼이 떨어뜨린 멸치 대가리를 보고 허겁지겁 달려드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난 기존의 <갈매기의 꿈>만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다.

 

  책을 읽기 시작할 때부터 내가 꼽는 최고의 책에는 <갈매기의 꿈>이 언제나 포함되어 있다. 내용도 그렇거니와 “꿈”이라는 단어가 갖는 동경이 마음에 들었다. 무한한 열정으로 자신을 이상을 찾아 날갯짓하는 모습이 생각만으로 날 설레게 했다.
  그래서 지금도 꿈을 꾼다. 가족과 함께 즐겁게 여행을 다녀오고, 더 멀리 수영을 하고, 의미 있게 직장생활을 하면서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미루지 않는 것, 바람이 되어 세상 위를 날아가는 것!
  “자, 먼저 수평비행부터 시작하자.”

 

 

(www.freeis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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