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의 꿈 - 완결판
리처드 바크 지음, 공경희 옮김, 러셀 먼슨 사진 / 나무옆의자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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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에 했던 마라톤이 화근이 된 것일까? 오른쪽 발목이 부으면서 물이 차기 시작한 것을 직접적인 통증이 없다고 진로를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연골과 인대까지 손상되어 수술까지 받게 되었다. 이렇게 발목부터 무릎 위까지 깁스하고 며칠째 병원에 누워있다.
  수술이 끝나고 통증과 부기를 가라앉히고, 이식된 연골이 안착하기를 기다리는 긴 시간 동안 주로 집에서 갖고 온 영화를 보며 지냈다. 하지만 영화도 시들해질 즈음 간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을 고르다 집어 든 책이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이다.

 

  내가 가진 <갈매기의 꿈>은 총 세 권이다. 가장 오래된 책은 송은실 번역본(소담출판사, 1990년 발행)이고 나머지는 현문미디어에서 나온 류시화 번역본(2003년)과 공경희 번역본(2015년 발행)이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서 <어린왕자>와 함께 추천되어 있기에 처음 읽었는데 작은 분량이지만 그 어떤 책보다 울림이 컸던 기억이 난다. 조나단의 비행과 추방, 그리고 끝없는 도전과 귀환을 몇 번을 곱씹어 읽었고, 친구들에게 선물도 많이 했었다. 그래서 새로운 번역이나 판형이 보일 때마다 사 왔던 것이 이 세 권이다.
  송은실 번역은 다소 의역이 보이긴 하지만 어느 한군데 치우침 없는 균형 잡힌 시선으로 조나단과 플레처의 비행기를 이야기한다면, 류시화 번역은 오랜 명상의 영향인지 불교적 색채가 강하게 묻어있다. 하긴 사랑이나 자비나 모두 같은 말이니... 공경희 번역본은 가장 최근에 번역된 책으로 치밀하고 사실적이다. 가장 매끄럽게 읽히지만, 조나단의 내면과 이상을 표현하기에는 너무 현대적인 느낌이 크다. 특히 원작자가 옛날에 적어놨던 조나단의 숨겨진 뒷이야기가 추가된 것이 특이했다. 아무튼, 번역가마다 특징이 있어 느낌과 문장을 서로 비교해가며 읽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준다.

 

  

 (왼쪽부터 송은실 번역본(소담, 1990), 류시화 번역본(현문, 2003), 공경희 번역본(현문, 2015))

 


  뱃머리나 쫓으며 생선 대가리를 탐내는 여느 갈매기와는 달리 조나단은 비행술에만 관심이 있다. 어떻게 하면 저공, 고공비행, 선회와 활강을 우아하게 할 수 있는지 연구하고 도전했던 조나단은 마침내 1,200m에서 340km/h로 활강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를 지켜본 갈매기들은 기존의 질서를 깨뜨렸다며 조나단을 무리에서 추방한다.
  이렇게 홀로 생활하게 된 조나단은 화려한 비행술로 자신에게 다가온 두 마리의 갈매기를 따라 하늘과 맞닿은 미지의 공간으로 인도된다. 그곳은 자신처럼 비행술을 연마하는 갈매기들만 모여있는 곳으로, 여러 스승을 만나 더 많은 기술을 배웠고, 공간의 한계까지도 뛰어넘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더 높은 경지의 단계까지 올라가려는 순간, 자신처럼 비행술에 관심이 많은 갈매기나 기존의 질서에 순응하지 못해 쫓겨난 갈매기를 찾아 자신을 내쫓은 무리로 되돌아간다.
  여기서 조나단은 제자인 플레처와 함께 비행술을 가르쳤다. 조나단을 따르는 갈매기들이 점점 늘어나게 되고 심지어 맹목적인 추종하거나 비난하는 갈매기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플레처는 비행시험을 보이는 중 바위에 부딪혀 의식의 변환을 맞이하는데, 더 높은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지만, 그는 지상에 남아 다른 갈매기에게도 비행의 기쁨을 전해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플레처를 살려낸 조나단의 엄청난 능력과 이를 보고 흥분한 갈매기들로 인해 플레처는 큰 혼란에 휩싸인다. 이때 조나단은 플레처에게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며, 내면의 자아를 찾아 스스로 노력할 것을 당부하며 홀연히 사라진다.


 

  비행술을 익히며 최고의 경지까지 오른 조나단과 플레처는 자신의 비행술을 본인의 영달만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 비행의 가치를 깨닫지 못한 이들을 위해 온몸을 던져 설명하고 가르쳤다. 이는 우리가 익히 들어온 성인의 모습과도 유사했다.
  모세는 사랑을 행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온갖 시련을 겪는다. 조나단은 비행을 통해 자신의 이상을 찾아 나서지만 결국 자기 무리로부터 추방당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었지만 사흘 만에 부활하여 온 누리에 사랑을 전하듯이, 조나단의 제자 플레처는 비행술 도중 큰 사고를 당했지만, 기적적으로 깨어나 자신의 비행술을 다른 갈매기에게 전한다. 시나이산에서 모세가 받아온 예수의 열 가지 가르침처럼, 조나단은 자신은 비행을 좋아하는 평범한 갈매기일 뿐 특별하지 않다며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고 한다.
  조나단과 플레처의 삶 속에는 예수뿐만 아니라 석가, 노자와 같이 진정한 자아를 찾아 세상을 밝게 만든 이들의 모습이 겹쳐있다. 한 시간 남짓이면 읽을 수 있는 얇은 책 속에 인간의 희로애락이 모두 들어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자신을 사랑하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행한다면 그것이 바로 사랑이고, 자비이며, 무위자연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깨달음을 세상에 전해 많은 대중을 사랑과 자비의 세계로 인도하라는 대승적 세계관과도 일치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갈매기의 꿈>을 한낮 소설책 정도로 읽고 덮어버리기에는 너무 거대한 책이다.

 

  그리고 공경희 번역본(현문미디어, 2015년 발행)에는 리처드 바크가 써놓고 출판하지 않았던 <갈매기의 꿈> 뒷이야기가 추가되어 있다. 조나단이 사라진 이후 조나단이 신격화되고 비행보다는 제단을 쌓아 조나단을 숭배하는데 몰두하게 되는 후세 이야기가 나온다. 마치 예수가 전하려고 했던 사랑보다는 성경 구문과 교회의 외형에만 집착하고 있는 오늘날의 모습을 풍자하고 있다.
  1, 2, 3부로 나누어진 기존의 <갈매기와 꿈>은 특정 종교에 한정되기보다는 삶의 가치를 중심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말했다면, 새로 추가된 4부는 왜곡되어가는 예수의 가르침, 사랑을 행하라는 본질에서 멀어지고 있는 오늘날의 기독교를 직접적으로 거론하고 있어, 기존 책이 가진 범용성과 확장성을 훼손된 느낌이다. 유유히 비행하던 한 마리의 갈매기가 낚시꾼이 떨어뜨린 멸치 대가리를 보고 허겁지겁 달려드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난 기존의 <갈매기의 꿈>만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다.

 

  책을 읽기 시작할 때부터 내가 꼽는 최고의 책에는 <갈매기의 꿈>이 언제나 포함되어 있다. 내용도 그렇거니와 “꿈”이라는 단어가 갖는 동경이 마음에 들었다. 무한한 열정으로 자신을 이상을 찾아 날갯짓하는 모습이 생각만으로 날 설레게 했다.
  그래서 지금도 꿈을 꾼다. 가족과 함께 즐겁게 여행을 다녀오고, 더 멀리 수영을 하고, 의미 있게 직장생활을 하면서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미루지 않는 것, 바람이 되어 세상 위를 날아가는 것!
  “자, 먼저 수평비행부터 시작하자.”

 

 

(www.freeis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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