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여 잘 있어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9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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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여자가 다섯 번째 이별을 하고 산속으로 머리 깎고 완전하게 떠나 버렸대”로 시작하는 박상민의 노래, <무기여 잘 있거라>는 다섯 번의 사랑과 배신, 이별을 신나는 리듬에 맞춰 코믹하게 불러 큰 인기를 끌었다. 여기서 말하는 무기란 총(gun)으로 대변되는 남성성을 의미하는 부정적인 단어로 쓰였다. 그래서 자신을 이용하고 버린 혐오스러운 남자들에게 “무기들아 잘있어~”라고 말하며 떠났던 것.
 하지만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어라>에서 말한 무기는 말 그대로 전쟁의 도구로 사용되는 대포, 총, 칼을 의미한다. 그래서 무기, 즉 전쟁으로 동반되는 죽음, 이별, 부상, 두려움, 공포에서 벗어나고픈 안간힘이 담겨있다. 하지만 어디 현실이 그런가, 벗어나려고 하면 더 얽혀버리는 올가미처럼 우리의 발목을 잡았다. 

 

  이 책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랑을 지키려는 한 쌍의 연인을 통해 전쟁의 참담한 현실을 사실적이고 담담하게 표현한다. 전쟁 속에 휘말린 개인이나 이들의 삶을 연민이나 동정 어린 시선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해설 없이 재생되는 전쟁 다큐멘터리에서처럼 덤덤하게 펼쳐놓는다.

 

  1차 세계대전에 참가한 프레더릭 헨리는 간호사 캐서린 바클리를 알게 되고 재미 삼아 작업을 건다. 하지만 부상으로 이송된 후방에서 그녀와 다시 만나게 되면서 사랑이 싹트게 된다. 사랑이 무르익을 무렵 부상이 완쾌된 헨리는 다시 전쟁터로 복귀하지만 연합군이 패하면서 후퇴하게 되고, 이 와중에 탈영병 신세로 전락해 총살될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가까스로 탈출해 캐서린과 재회한 헨리는 스위스로 도망가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이들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으로부터 도망쳐보지만 현실은 이들을 옹호해주기보다는 점점 더 폭풍의 한가운데로 몰아넣었다. 태풍의 눈에서 잠깐이지만 고요한 하늘과 햇빛을 볼 수 있었지만, 이는 더 큰 고난과 시련을 예고하는 전주일 뿐이었다. 현실은 회피하고 외면한다고 해서 해결되거나 극복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도망가면 갈수록 냉엄한 현실에 직면해야 했던 것. 헨리와 바클리, 아니 우리를 공격하는 최대의 무기는 바로 ’현실‘이었다. “무기여 잘 있어라”는 말은 고달픈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우리의 바람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불가역적인 현실 앞에 인간은 더욱 나약해지고 소심해져서, 결국에는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존재로 남게 되는 것 같다. 이는 극한의 현실에서 마주하게 되는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본능은 자신을 지키려고 하는 최후의 마지노선이 아닐까 싶다. 그 벼랑 끝에서 ‘사랑’‘이라는 한줄기 희망을 봤고 ,여기서 작게나마 위안을 찾게 되는 것이 인간인 것 같다.
  결국 우리는 사랑이라는 동아줄을 기다리며 세상이라는 외줄을 타고 있는 작은 광대에 불과한 존재라고 생각한 것일까. 권총으로 자살한 헤밍웨이의 기울어져 가는 가슴 속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 안쓰럽기도 하다. 네 번의 결혼과 바람,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두 번의 비행기 사고와 여러 차례의 전쟁 참전, 우울증과 알코올중독증을 앓았다는 그가 세상 바깥으로 내몰리면서도 애타게 찾으려고 한 것도 '사랑'이었지 싶다.
 
  책을 덮고 나니 여러 이야기가 두서없이 떠오른다. 현실을 외면하고픈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 숲>와 사랑에 함몰되어 모든 것을 내던지는 이문열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가 생각난다. 그리고 허무하게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헤르만 헤세의 <크놀프, 그 삶의 세 이야기>와 함께 전설적인 부부갱단(보니와 클라이드)의 비극을 그린 영화 <우리에겐 내일은 없다>도 뇌리를 스친다. 허무하게 사라져버릴 인생, 아 사랑이여~

 

 

(www.freeis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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