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사형은 무력하다.  [공허한 십자가]

 

사람에게는 양심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 선과 악을 구별하는 도덕적 의식이나 마음씨'를 뜻하는 것이다.

오욕칠정이 넘쳐나는 것을 양심이 제어하지 못할 때 범죄자가 생겨난다.

범죄라는 것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게 마련.

피해자 혹은 피해자 가족의 입장에서는 가해자가 어떤 경로로든 죄를 저지른 것에 대한 응당의 대가를 치르게 되기를 원한다.

살인의 경우, 똑같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고 부르짖기도 한다.

가해자가 사형제도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되면 피해자 부모의 마음이 과연 후련해지기나 할까?

가해자에게 속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옳지 않은가?

그렇다면,

과연 사형제도는 필요한 것인가? 가해자가 진정으로 속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접점을 찾지 못하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 올려 논쟁의 불씨를 일으키는 소설. [공허한 십자가]

 

 

"히루카와의 사형이 집행된 이후, 뭔가 달라진 게 있나요?"

나카하라는 즉시 대답했다.

"아니요. 아무것도...무엇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아, 그래?' 하고 생각했을 뿐이지요."

"그렇겠지요. 그리고 히루카와도 결국 진정한 의미의 반성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사형 판결은 그를 바꾸지 못했지요."

히라이는 약간 사시인 눈으로 니카하라를 빤히 쳐다보았다.

"사형은 무력합니다."

 

광고 회사에 근무하던 나카하라는 딸이 살해당한 이후 아내 사요코와 이혼하고 반려동물의 장례식을 치러주는 '엔젤보트"라는 장례식장을 운영한다. 11년 후, 갑자기 그를 찾아온 형사로부터 아내 사요코가 대낮에 한 노인의 칼에 찔려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이유 없이 가슴이 먹먹해지는 때가 종종 있는데, 부모보다 자식을 앞세운 사람들의 사정을 들을 때 그렇다. 아이를 잃은 슬픔이 겨우 치유되고 있는가 싶을 때에 연락을 거의 끊고 살다시피 했던 전처 사요코의 죽음을 전해 들은 나카하라는  왠지 납득할 수 없는 사실에 사건을 좀더 깊이 파헤쳐 보기로 한다.

사요코의 쓰야에 참석해서 예전 장인 장모를 만난 나카하라는 결혼 전 광고 카피라이터로 일했던 사요코가 취재노트를 쓰며 기사를 작성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요코가 취재했던 도벽증 환자 사오리도 만나게 되는데...

 

아내 사요코가 남긴 '사형 폐지론이라는 이름의 폭력'이라는 원고는 유족의 슬픔을 극복하기 위한 단순한 통과점의 의미로서 '사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지만 '속죄'와 '보상'이라는 면에 있어서는 사요코도 꽤나 고민을 한 듯, 원고의 결말은 속시원히 지어지지 않고 있었다.

 

사요코를 살해한 노인의 사위라는 사람은 의사라고 했는데, 그로부터 옛 장인 장모에게 사과의 편지가 도착했다는 사실을 듣고 나카하라는 그를 찾아가서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하곤 사요코가 취재했던 도벽증 환자 사오리와 의사 사이에 접점이 있음을 알아낸다. 사요코가 취재했던 도벽증 기사에 따르면, 사오리는 도벽증에 시달리면서도 다른 사례자들과는 달리 이 세상에 자신처럼 죄가 많은 존재는 없다며, 빨리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던 사람이다.

 

"사람을 죽이면 사형에 처한다- 이 판단의 최대 장점은 그 범인은 이제 누구도 죽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범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 피해자 가족의 슬픔을 극복하는 통과점을 찍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 사람을 사형에 처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처벌인가?

여기에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지금까지 속죄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세요? 교도소에 들어가도 반성하지 않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어요. 그런 사람이 등에 지고 있는 십자가는 아무런 무게도 없을지 몰라요. 하지만 **이 지금 등에 지고 있는 십자가는 그렇지 않아요. 너무나 무거워서 꼼짝도 할 수 없는, 무겁고 무거운 십자가예요. 나카하라 씨, 아이를 살해당한 유족으로서 대답해보세요. 교도소에서 반성도 하지 않고 아무런 의미 없이 하루하루를 보낸느 것과 제 **처럼 현실 속에서 다른 사람을 구하면서 사는 것, 무엇이 진정한 속죄라고 생각하세요?"-413

 

사형제도의 찬성과 반대라는 의견은 십자가처럼 완벽하게 어긋난 길을 달리고 있다.

다른 두 직선이 단 한 번 마주치는 십자가처럼 두 의견의 접점을 찾을 수 있을까?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고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공허한 십자가]

나무의 바다, 수해에 숨겨진 비밀이 드러나면서 오랜 시간 묻혀 있던 사건이 드러나지만 그들에게 과연, 감히 이래라 저래라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괜시리 숙연해지는 마무리에 깊은 한숨을 내쉬며 책장을 덮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헤세의 여행]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헤세의 여행 - 헤세와 함께 하는 스위스.남독일.이탈리아.아시아 여행
헤르만 헤세 지음, 홍성광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방랑자 헤세, 여행하다. 글쓰다. [헤세의 여행]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헤르만 헤세는 1877년 독일에서 태어났고 1962년 세상을 떠났다. 그의 국적은 스위스라고 한다. 독일과 스위스는 서로 이웃한 국가다.

 

 

 

그의 삶은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기보다 정처없이 옮겨가며 이어져 왔다. 어디가 그의 진정한 고향인지는 그 자신만이 짚을 수 있으리라. 꽤 오랜 기간동안 작가로 살아오면서 많은 글을 썼기에 그의 흔적을 알아보려면 그가 남긴 글들을 읽어보면 된다. 신기하게도 그가 지내온 이력들이 작품에 고스란히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헤세를 처음 만난 것은 사춘기 때였다. 나 뿐만이 아니라 청춘의 문을 막 들어서려는 시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헤세의 문장은 매혹 그 자체일 것이다.

<데미안>, <수레바퀴 밑에서>, <골드문트와 나르치스> 등등.

앞날이 막막하고 속시원한 대답이 내려지지 않은 채로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는 시기에 있던 나에게  헤세는 그 당시의 꽉 막힌 심정을 읽어주고 어루만져 주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의 글에 나오는 청소년들과는 이상하게 동질감을 형성할 수 있었다.  헤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첫사랑의 실패를 이야기했고  학교 안에서의 거친 반항을 실천했으며  동성간의 막연한 끌림도 문학적으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는 그 유명한 구절을 곱씹으며 아프락사스의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게 되기도 했다.

만년의 헤세를 그대로 드러내는 <유리알 유희> 또한 헤세의 문학적 성취와 더불어 그 스스로 이룩한 사상의 완결체를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웬만큼 겪고 나서는 헤세에 자연스레 흥미를 잃게 되었고 딱히 그의 작품을 찾아 읽어야겠다는 열의도 사그라들었다.

최근, 헤세의 헤세이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읽게 되면서 소설가로서의 헤세, 나의 청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헤세가 아닌 인간적인 헤세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는 헤세는 ‘옷자락이 다 해져 올이 성긴 바지를 입은 왜소하고 보잘 것 없는 문학가'의 모습으로 내게 다시 다가왔다.

 

헤세의 진면목을 이로써 보게 되었다고 만족하던 그 때, <헤르만 헤세의 사랑>이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여러 편지와 문서를 찾아내 헤르만 헤세가 사랑한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한 책이다.

나의 사상이나 예술관 때문에

내 인생에서, 혹은 여성들과의 관계에서 종종 어려움에 봉착한다.

나는 사랑을 부여잡을 수도, 인간을 사랑할 수도,

삶 자체를 사랑할 수도 없다.

-헤르만 헤세-

 

 

위대한 작가로서의 헤세, ‘옷자락이 다 해져 올이 성긴 바지를 입은 왜소하고 보잘 것 없는 문학가’로서의 헤세를 만날 수 있었던 전작과 달리, [헤르만 헤세의 사랑]을 읽으면서는 헤세를 거의 우러르기까지 했던 독자로서의 경외감이 와르르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여인들과 짝을 이룬 헤세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정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첫 번째 아내였던 마리아가 아이를 낳는 그 순간에도 여행을 떠났던 헤세.

 

이제 인간 헤세에 대해 실망했던 내게 "헤세의 여행"은 어떻게 다가올 것인가...

약간의 두려움을 안고서 이 책을 읽어나갔다.

 

 

 

이 책의 맨 앞에 실린 1904년의 <여행에 대하여>라는 글에는 여행을 대하는 헤세의 심정이 솔직하게 드러나 있다.

 

여행의 시학은 일상적인 단조로움, 일과 분노로부터 휴식을 취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우연히 함께 하고, 다른 광경을 관찰하는 데에 있다. -36

 

여행의 목적은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체험을 통해서 더욱 풍요로워지고,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발견하며 옛 진리와 법칙을 전적으로 새로운 상황에서 재발견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황무지에서의 목동의 눈초리나 피스토야의 소가족과의 경험 등 여행의 낭만주의라 부르는 것들도 첨가된다고...

 

이 책에는 1901년 최초의 이탈리아 여행을 시작으로 1904년 보덴 호 산책, 1911년의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등지의 아시아 여행, 1919년에서 1924년까지 테신 지역 소풍, 1920년 남쪽 지역으로의 방랑, 1927년 뉘른베르크 등지의 낭송 여행 등 24세부터 50세까지 헤세가 쓴 여행과 소풍에 대한 기록들이 주루룩 등장한다.

 

아름다운 목사관 앞을 지나가며 헤세는 그리움과 향수를 느낀다고 말했다.

밖에서만 보았을 뿐 그 안에 누가 사는지 알지 못하는 이 목사관에 대해 나는 언젠가 진짜 고향 같은 향수를 느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행복하게 지낸 곳에 대한 향수 같은 것 말이다. 이곳에서 15분 동안은 정말이지 아이였고 행복했으니까. -302

 

이 집에 산다 해도 목사로 살지는 못할 것이고, 지금처럼 정처 없이 무해한 방랑자로 살 것이다. 때로는 현실과 동떨어진 신학자가 되고, 때로는 미식가가 되고, 때로는 지극히 게을러져서 술독에 빠져 있기도 하고, 때로는 젊은 아가씨에게 빠져 있기도 하겠지. 때로는 시인이나 광대가 되고, 이따금 가난한 마음에 불안과 아픔을 담고 향수병을 앓을지도 모른다. -301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를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방랑자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현실을 여기서 살짝 엿볼 수 있다.

어린 시절 첫사랑에 실패하고 자살 시도를 한 후, 서점에서 일하다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선 헤세는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고도 길고 긴 생애 동안 그의 곁을 지킨 아내는 세 명이나 된다.

고향을 그리워했지만 방랑자로서의 삶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얼핏 보면 모순 투성이의 삶 속에서 무척 괴로운 나날들을 보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별로 여행하지 않는 조용한 마을 주민이자 서재에만 틀어박혀 사는 문필가에게는 다다음달 12일에 이런저런 도시에서 마지못해 낭송회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끔찍한 일이다. (...)

작가는 빈둥거리며 불규칙하고 기분 내키는 대로 시간을 낭비하며 미심쩍은 인생을 보낸다. 규칙적이고 틀에 짜인 생활을 하는 이들은 그런 사정을 전혀 알지 못하리라!-388

 

 

무지 까칠한 작가였지만 그의 문체는 무척 아름답고 묘사는 섬세하다.

무수한 여행을 통해 그가 얻은 것들은 그의 문학 혹은 에세이 속에 그대로 녹아 들어 있다.

 

여행시기에 맞추어 그가 쓴 글들(여행기 외에 소설, 기고문 등)을 다 읽어보지는 못하지만 그의 여행기와 수기 등을 통해 그가 말하는 여행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었다. 괴팍한 성격의 인간 헤세와 문학작품 작가로서의 헤세를 연관시키는 일은 여전히 쉽지가 않다.

데미안의 작가로서의 헤세만 알았더라면...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오랜 인생을 산 작가, 혹은 인생 선배의 녹록지 않은 연륜이 들어 있는 글들에서 어딘가로 떠나는 "여행"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볼 수 있어서 이 책을 읽은 것이 그리 후회스럽지는 않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나는 자꾸만 딴짓 하고 싶다 - 중년의 물리학자가 고리타분한 일상을 스릴 넘치게 사는 비결
이기진 지음 / 웅진서가 / 201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제야 찾은 나의 이상형[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

 

"무모하게 살아도, 어떠한 삶도, 삶이 된다."-237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이기진의 말이다.'

라고 하면 인생선배로서 후배들에게 교훈을 주는, 묵직한 울림을 가진 말처럼 여겨진다. 금과옥조로 삼으리라...

 

하지만 물리학과 교수가 아닌  '딴짓의 고수 이기진'이 던진 말이라 생각하면, 더불어 그의  딴짓 퍼레이드가 펼쳐지는 에세이를 읽고 나면 같은 말이라도 유쾌한 생명력을 가진 말로 재탄생하게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평범함을 거부하는 물건들과 그에 얽힌 이기진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의 '딴짓'에 빠져든다.

아, 내 이상형은 바로 이런 사람이었어.

이제와서 땅을 치고 후회해 본들 무슨 소용 있으랴만...

평범한 일상에 매몰되어 같은 일만 반복하고 살던 내게 톡 쏘는 사이다같은 청량감을 안겨주는 독특한 일상을 구경하고 나니 내가 이제까지 누리던 일들이 시시하게 느껴졌다.

이미 내가 잡을 수 있는 기회는 날아가버렸으니

내 아들을 이런 '딴짓'하는 남자로 키워볼까나...하는 생각이다.

 

얼마 전 TV에서 <비정상회담>이라는 프로그램을 볼 기회가 있었다. 미국 출신 타일러가 취업 스펙 9종세트까지 등장했다며 한국의 높은 스펙 경쟁을 꼬집었다. 학벌, 학점, 영어점수에 추가해 어학연수, 자격증,공모전 입상, 인턴 경험, 자원 봉사, 성형수술까지 총 9종.

외국인의 눈에 비친 우리나라의 모습이 이런 모습이라 부끄럽기도 했고 한편으론 자녀를 키우는 학부모 입장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고 키워나가야 하나 고민도 됐다.

 

그러던 차에 이기진 교수의 '딴짓'이 잔뜩 실린 이 책은 내게 자녀교육의 길을 찾던 내게 새로운 길을 제시해 주었다.

물론 현재는 대학교수로 있기 때문에 이 모든 딴짓들을 누릴 수 있지 않느냐,며 비판의 촉을 세울 수도 있는 문제이지만 그의 삶은 스펙 쌓기에 모든 것을 집중하는 요즘 아이들과는 다른 과정을 거쳐 목적지에 도착한 점이 다르다.

그는 영어유치원에부터 생애 첫 공교육을 가장한 사교육을 시작하는 아이들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비뚤어진 길을 그려나갔다.

처음 학교에 들어가 글을 못 읽는다고 담임 선생님께 야단맞은 소심한 소년은 학교를 그만둔다. 그 뒤 전학 간 학교에서 3년간 야구만 한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다른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건이 아닌, 자기만의 아주 사소한 계기로 방향이 틀어질 수 있다. 내가 그랬다. 꼰대 같은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사실 하루에도 몇 번씩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만한 일들이 내 앞으로 다가오고 지나간다. 문제는 내가 그 순간을 인식하느냐, 아니면 그냥 보내느냐 하는 것이다. -202

 

공부를 특별히 잘한 것도 아니고 자랑할 만한 특기도 없었고 특별히 내세울 만한 것이 없는 평범한 학생이 지치도록 야구에 매진하는 전성기를 누린다.

중학교 때부터는 꽤 정신을 차린 모양인지 호기심이 샘솟은 탓인지 책을 읽어 대고, 천체와 우주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

고등학교 때 물리 선생님이 툭 던진 칭찬 한 마디 "어? 너 물리 잘하는데?"를 들은 덕분에 물리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후로 그는 열정적으로 연구를 했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다녔다.

한 번 열정에 사로집히면 앞뒤를 못 가리는  일종의 '몰입' 상태에 빠져드는 것 또한 그의 훌륭한 장점 중의 하나다.

 

# 큰 돈 드는 것도 아니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면 '하고 싶은 일'을 남겨두지 않는다.

 

로봇을 만들고 나서 다음엔 의자도 만들어 봤다. 아니, 뭔가 만들고 싶은 게 있으면 다 실행에 옮겼다. 뭘 만들었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는 건 아니지만, 안 만들고 있으면 그대로 하고 싶은 일로 평생 남을 것이 아닌가.-41

 

# 일과 가족을 우선순위로 둔다.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가족은 함께 붙어 사는 것이 좋았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있는 경우엔 더욱 그렇다.-46

 

# 남들과 다른 자유스러운 생각을 하면서 '소외'를 즐긴다.

 

남을 의식하고 남과의 차이를 좁히려고 들 때 삶은 개성을 잃고 만다. 진정 하고 싶은 것을 못 하고 대세를 따라가는 것은 자신의 개성을 없애는 일이다. -52

 

# 알리바바의 보물창고를 간직하고 있다.

 

아르메니아 공화국의 시장에서 녹색 에마야주와 녹이 잔뜩 낀 저울의 추, 양털로 짠 카펫

수건에 둘둘 말아 가지고 다니는 전용 백자 술잔, 알프스 산장 카페에서 산 유리잔

채린이의 밥그릇으로 쓰던 쇼와 시대 청화 도자기, 에도 시대 이마리 도자기 오차잔,

원래 주인은 이태리 사람이지만 파리 15구에 있는 자전거 숍에서 구입한 롤리 자전거

월리스 그로밋 피겨 라디오, 최고의 컬렉션이라 꼽는 '창성동 실험실'이자 한옥 갤러리...

 

거기에다가 그림에 취미를 가진 그는 이 책의 모든 삽화를 직접 그렸고 동화책과 만화책을 이미 여러 권 낸 작가이기도 하다.

 

아~ 다른 건 몰라도 이 정도의 스펙이라면 충분히 나의 이상형이라 할 수 있겠다.

9종 스펙을 굳이 갖추지 않아도 언제든 원하는 것이 있을 때 몰입할 수 있는 열정을 가진 아이.

일과 가정을 소중히 여기는 아이.

자기만의 취미를 가지고 있는 아이.

 

지금 내가 혹시 변진섭의 <희망사항>에서 말하는 그런 이상형을 바라고 있는 건가?

아니, 아니, 아니다.

그 이상형은 존재하고 있고 이렇게 책도 펴냈으니 절대, 네버, 불가능한 이상형은 아닌 것이다.

다만, 이기진을 이렇게 자랄 수 있게 만든 제 2의 신사임당 같은 어머니가 되기에 내가 너무 부족할 뿐.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ttp://blog.aladin.co.kr/fineday/7145885 [도쿄기담집] 최고의 단편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도쿄기담집] 최고의 단편은...

 

<어디가 됐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라는

제목도 긴...단편이다.

 

흔히 SF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과 공간을 이동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사람이, 휙 사라졌다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다른 장소에서 나타날 수 있을까?

미래로 가거나 과거로 가는 것은 애시당초 가능한 일이기나 한 것일까?

현실이 아닌 수학적인 공간에서 이동을 시킨다면 ...

애니메이션 <호튼>에서처럼 닥터 수스가 그려내는 초미시의 세계로 뿅~ 하고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다면...

절대로 인간이 확인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의 이동이라면...

 

평범함을 거부하는 물리학자 이기진은 자신의 에세이에서 물리학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기적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곳이 "벼룩시장"이라고 말했다. 오래된 물건 속에 서로 다른 시간 여행의 축이 있고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공간이  벼룩시장이라고. 어떤 사람에게는 버려진 물건이나 쓰레기 정도로 치부되겠지만 그곳엔 분명 서로 다른 시간의 축이 만드는 타임캡슐 같은 공간이 있다고 말했다.

이는 그의 골동품에 대한 그의 개인적인 감정이 물리학적인 지식과 어우러져 묘한 문학적 감수성을 드러낸 말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하루키가 전하는 이 단편에서의 기묘한 사건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사라진 사람을 찾는 일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한 여자가 의뢰를 해왔다. 부부는 한 맨션의 24층에 살고 있었는데 비가 꽤 많이 쏟아지는 날 26층에 사는 시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남편이 돌봐드리려고 찾아갔다고 한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비가 오는 날이면 신경증에 시달리는 시어머니는 자꾸 전화를 한다고 했다. 남편은 26층까지 계단을 이용하곤 했는데, 25분쯤 후 집에 갈 테니 아침을 준비해놓으라는 전화를 한 뒤로 그 길로 사라졌다. 24층과 26층 사이의 계단 중간에서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춘 것이다.

여자의 남편은 기이하게도 20일 뒤 집을 나갈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센다이 역 벤치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20일 간의 기억은 깨끗이 사라진 채.

 

"구루미자와 씨.(...) 현실 세계에 잘 돌아오셨습니다. 불안신경증의 어머님과 아이스피크 같은 하이힐의 부인과 메릴린치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삼각형의 세계에."-120

 

단편 속 "나"는 문인지 우산인지 도넛인지 코끼리인지, 아무튼 척 보면 알게 될 "그것"을 찾고 있다. 누군가 갑자기 현실 세계에서 사라졌을 때 그 누군가의 흔적을 찾는 것은 "문 같은 것"을 찾기 위해서다.

벼룩시장에서와 같은 기묘한 시간의 축이 만드는 "타임캡슐" 같은 것을 단편 속 "나"도 찾고 있는 것일지도...

 

아니, 어쩌면 사실은 기이한 것을 찾아다니는 "나"는 그저 관찰자에 불과할 뿐.

현실세계에서 다른 공간 혹은 시간으로 사라져버린 것은

소설 속 '구루미자와 ' 본인의 의지가 아닐까.

감당하기 힘든 삼각형의 세계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있고 싶은 간절한 욕망이 구루미자와 씨를 "순간이동"과 함께 "20일간의 기억상실"로 내몬 것은 아닐까.

 

기이한 이야기는 그저 기이한 대로 놔두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애써 현실에서 답을 찾으려 하면 그것 때문에 못내 씁쓸함만이 밀려올 뿐.

기담집의 형식을 빌어 그저 기담으로 기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