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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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언제 봐도 헌신적인 남자의 사랑에 가슴이 미어집니다. 천재교수 유가와와의 한판 대결도 볼 만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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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베일의 시간 - 삶의 끝자락에서 전하는 인생수업
KBS 블루베일의 시간 제작팀 지음, 윤이경 엮음 / 북폴리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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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삶의 흐름 속에 죽음이 있다 [블루베일의 시간]

 

 

 

나는 아직 무한한 생명력을 뽐내며 아침에 눈을 뜬다.

몸이 찌뿌듯하니 운동도 하고 배가 고프니 밥도 먹는다.

아이들에게 잔소리도 해주고 맛있는 간식도 챙겨준다.

 

내 숨이 언제 사그러들지 모르지만 지금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숨쉬고 있고 즐거이 이 순간을 만끽한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씨도 나름대로 즐겨 보려고 창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그만 늘상 하던 대로 책을 집어든다는 것이 ...[블루베일의 시간]이란 책에 손길이 닿아버렸다.

 

햇빛 눈이 부신 날에 이별은 안된다고 했던가.

비오는 날 보다 더 심해, 작은 표정까지 숨길 수가 없잖아.-[이별공식] 가사 중.

 

비가 오는 날에는 [블루베일의 시간]을 읽으면 안된다.

비가 내 얼굴 위에 흘러내려 온통 축축하게 젖어버리기 때문이다.

 

 

갈바리의원은 한국 최초, 동양 최초 호스피스 시설이다. '블루베일'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마리아의 작은자매회에서 세운 갈바리의원의 100일을 기록한 다큐가 책으로 씌여졌다.

그저 덤덤히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저녁밥상을 차리기 위해 압력밥솥에 밥을 안치고 뜸을 들이는 동안 단 10분 동안 몇 페이지 읽어나갔을 뿐인데...어렵쇼...

눈물이 금세 핑 돌더니 방울방울 무게감 있는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건 머리에서 심장까지 거쳐 돌아나오는 눈물이기에 쉽사리 멈취지지가 않는다.

세상 끝에 서서 이별을 나누는 이들의 사연으로 채워진 첫 장은 내 이야기가 아닌데도 엄청나게 가슴이 뻐근한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내 어머니, 내 아버지 나이대의 분들이시라 저절로 감정이입이 되었을 수 있다.

구구절절 사연이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임종 직전에 가족들이 모여들어 각각 한마디씩 가슴속 이야기들을 토해내곤 하는데...

내가 경험했던 단 한 번의 죽음에 대한 기억이 사르르 피어올랐다.

갓 결혼한 새내기 며느리였던 나를 "아가"라 살갑게 불러주시며 당신의 딸자식보다 귀하게 여겨주셨던 시아버지.

결혼할 당시 간암인 것을 알고 있었고 시한부라 어느 정도 각오하고 있었음에도 시아버지의 죽음은 황망했다. 임종을 지킨 분은 시어머니 단 한 분이었고, 장례식장에서 차디찬 주검으로밖에 만나 볼 수 없었지만 생전의 기억이 장례식 내내 마음 언저리를 빙빙 돌아서 눈물에 밥을 말아 먹었더랬다.

무뚝뚝한 성정이어서 살가운 대화 한 번 제대로 나누지 못했지만 한 사람의 "부재"라는 것이 얼마나 큰 공허함을 남기는지 그 때 확실히 깨달았다.

아직 살아 계신 부모님들은 돌아가실 때까지 후회 남지 않도록 잘 모셔야지 했지만 그게 또...살다보니 결심이 쉽게 행동으로 옮겨지는 건 아니더라.

현재의 내 불효가 퍼뜩 깨달아지고 "죽음"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무게가 서서히 내 앞으로 다가오더라.

 

생의 마지막을 호스피스 병동에서 마치기로 결심한 이들은 병원에서 의식도 없는 채 부지불식간에 "삐---" 하는 무기질의 경고음이 알리는 임종을 원치 않았기에 그곳을 택한 것이 아닌가.

 

 

평화로운 임종, 아름다운 임종.

그 순간은 누가 만들어주는 것은 아닐 터이다.

 

 100일간의 호스피스 병동 관찰 일지에는 다양한 삶들의 마지막이 기록되어 있지만, 이 책을 다 읽은 나에게 주어지는 것은. 지금부터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기회 뿐이다.

삶을 바꾸면 임종의 순간도 바뀔 터.

 

내가 지켜볼 임종의 순간. 내가 맞이할 임종의 순간.

그 두 가지는 되도록이면 오랜 후에 찾아왔으면 좋겠지만 언젠가는 찾아오겠지.

 

"어머님께 좋은 말씀 해드리세요. 버티요, 힘내시란 말보다는 편안하게 가시란 말씀 해드리세요. 고마웠어요, 사랑해요, 계속 말씀드리세요. 그렇게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아요. 억지로 드리세 하지 마시고요.(...)

딸은 빈껍데기처럼 허적허적 병실로 돌아갔다. 잠시 후 병실에서 분주한 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지금 올 수 있어'''?"

울먹이는 목소리, 서성이는 발소리, 순녀 할머니의 가쁜 숨소리가 밤을 채웠다.-49

 

혼자서는 결코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누군가의 임종의 순간에 내 곁에 불러들일 누군가가 꼭 있었으면 좋겠고,

나의 임종 순간에는 더더욱, 나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임종을 맞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내가 먼저 갈게. 다음에 오면 내가 마중 나갈게.' 이런 마음으로 간다면 참 좋겠어요. 인생을 멋지게 살아온 사람이 아름다운 죽음을 맞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217

 

아직까지 내게 찾아올 밝은 아침이 무한히 남아 있을 것만 같은데, 나는 비오는 날 처량맞게도 [블루베일의 시간]을 읽고서 죽음을 생각한다.

하지만 우울하고 권태롭게 생각하는 '죽음'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삶의 흐름 속에 죽음이 있다, 고 생각한다.

멋지게, 아름답게 임종할 수 있게 지금 마음에 굳은 살 하나를 박아 놓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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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9 15: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19 15: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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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에 대한 고집
다니카와 슌타로 지음, 요시카와 나기 옮김, 신경림 감수 / 비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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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시인의 깊고도 넓은 시[사과에 대한 고집]

 

 

 

빨강과 초록.

보색대비가 확실하게 이루어진 책이라서 눈에 띈다.

국내 시인의 시도 잘 읽지 않으면서 일본 시인의 시를 읽으려 하니 걱정이 앞섰지만 과감히 펼쳐든다.

왠지 백설공주가 베어 문 "독약이 묻은 빨간 사과"를 연상케 한다.

동화같은 설정이지만 마냥 아기자기한 동화스러운 내용은 아닐 것 같은 느낌 때문이다.  

<사과에 대한 고집>을 표제작으로 내세운 만큼 사과 표지가 효율적으로 사용되었지만 "사과" 보다는 "고집"이라는 단어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만 같다.

 

낯선 시인의 이름 다니카와 슌타로.

그의 고집이 얼마나 , 어떻게 드러나 있을까.

 

 

<자기소개>라는 시에서

나는 키 작은 대머리 노인입니다.

 

라로 자신을 표현한 노시인은 시와 에세이로 내게 말을 건넨다.

언어가 달라 말로는 그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번역된 글로나마 그와 나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나는 나이 많은 시인의 시가 좋다. 비록 난해하여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할지라도 시인의 넓고 깊은 세계에서 유영하며 조금이나마 세상의 비밀을 얻어갈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그의 시는 어느 한 가지에 머물러 있지 않고 수없이 많은 것을 다양한 방법으로 노래한다.

시만 써서는 살 수 없다고 푸념하는 듯하지만 시에는 가격도 없고 무엇보다 종잡을 수 없는 자유로움이 있다며 시에 대한 생각을 확실하게 정립한 시인이라서 멋지다.

 

시는 우리 마음 깊은 곳에, 그리고 일상생활 곳곳에 숨어 있어요. 시는 지구에 있는 숱한 언어들의 차이를 초월해서 우리 의식에 바람구멍을 뚫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129

 

혼자 놀고 혼자 시 쓰기를 좋아한다는 시인은 인생의 많은 부분들을 자신의 감성으로 이해하고 글에 녹여낸다. 시인이 부려 쓰는 글은 어떤 것은 이해가 되고 어떤 것은 난해하지만 한 번 읽고 넘기기엔 아쉬워서 읽고 또 읽어보게 된다.

처음엔 눈으로 읽다가 다음엔 입 속에서 굴려 본다.

좋은 말이네.

머릿속으로 이해한 것이 하루 이틀 뒤엔 좀 더 감성적으로 풀어져서 마음 속에 자리를 잡는다.

 

 

 

산다는 것을 목이 마른다는 것이라고 표현한 이 한 마디도

내내 입 속에서 굴리고 굴려 본다.

 

시인이 걸어온 길에서 문득 산다는 것을 쓰고 싶어졌을 그 즈음에는 목이 말랐겠구나.

나는 지금 목이 마른가? 충분히 촉촉히 적셔져 있는가?

시인의 그 즈음과 나의 현재를 나란히 두고 보면서 쉬엄쉬엄 곁눈질 해본다.

시를 두고두고 읽으면 그 때마다 다른 말들이 떠오른다.

단 한 줄의 시구도 허투루 읽어낼 수가 없게 된다.

 

미세먼지가 목구멍과 콧구멍에 들어와 박혀 간질간질함을 유발하는 봄날,

산다는 것은 재채기를 하는 것이라는 시 한 구절이 액면 그대로의 뜻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간질간질하게도 튀어나올 듯 튀어나오지 않는 마음 한구석의 아픔이나 슬픔이나 우울 같은 것들을

한바탕 "에취"로 날려버리라는 뜻으로 끌어다붙일 수도 있다.

내가 읽고 내가 마음대로 해석하는 재미~

지금 나는, 재채기가 필요한 때인가? 이렇게 자문도 해 보면서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들여다 본다.

 

장소는 다 지구 위의 어느 한 점이고

사람은 다 인류 중의 한 사람

 

열아홉에 이런 시를 적은 적이 있다는 시인은, 그리하여 자신을 '이웃 시인'으로 맞아 달라고 부탁한다.

63년 시의 역사를 기념하는 선집으로 풍성한 과실을 따서 쌓아놓은 것 같은 이 시집은, 그래서 언어와 국경의 경계를 넘어서 가볍게 내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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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왕국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9
프리드리히 글라우저 지음, 박원영 옮김 / 레드박스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영혼은 깨지기 쉽다  [광기의 왕국]

 

요즘 비정상회담 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내가 눈여겨 보는 인물은 비공식 중국대표^^ 장위안이지만 재미없기로 정평이 나 있는 이른바 "노잼 선생" 다니엘도 가끔 눈에 들어 온다.

대부분 무뚝뚝한 듯 표정 없는 얼굴로 일관하지만 살짝 웃음기가 감도는 표정을 지을 때면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같다.

다니엘이라는 사람 하나만을 두고 독일 국민 전체를 운운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지만 그가 전하는 말 속에서 대략 독일 사람들의 전반적인 특징을 읽어낼 수 있다. 기계와 건축에 뛰어나고 장인을 우대해주는 나라 독일. 독일하면 생각나는 이미지는 아우토반, 카이저 콧수염, 번쩍번쩍한 자동차 같은 무기질적인 것들이다. 밝고 온화하다거나 '부드러운, 화려한' 등의 수식어와는 정반대의 말들만 떠오른다.

투박하고 거친 발음을 뱉어내는 독일어에서도 느껴지듯이 왠지 부드럽지 않고 그래서 더욱 재미없을 것만 같은 "독일 추리 소설".

익숙지 않은 독일 추리 소설을 프리드리히 글라우저의 슈투더 시리즈로 접하게 되었다.

 

[광기의 왕국]은 형사 슈투더 시리즈 2편이다. 1편을 건너 뛰고 2편부터 읽게 되어 유감이긴 하지만 왠지 작가의 이력을 읽은 후  [광기의 왕국]을 보니 자전적 미스터리라는 말이 확 와닿는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불화로 정신이 피폐해진 작가는 페결핵을 앓던 중 복용한 모르핀에 중독되어 정신 병원 입,퇴원, 자살 시도를 거듭했다고 한다.

'슈투더 시리즈' 다섯 권을 출간했으나 마흔 두살의 나이, 결혼식 전날 뇌출혈로 사망한 그의 인생은 드라마틱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제목과 작가의 삶이 드리우는 짙은 우울을 안고 시작했기에 처음부터 무거운 시선으로 읽어내려갈 수밖에 없었는데...

미스터리물에 등장하는 형사 치고는 꽤 고령인 슈투더의 일거수 일투족을 따라가다 보니 실소가 터져 나온다.

왠지 허술해 보이고 왠지 옆에서 도와줘야만 할 것 같은 형사가 과연 사건을 잘 해결해낼 수나 있을까,싶어서였다.

이 형사의 장점은 뭘까??
정년퇴직을 육 년 앞두고 있지만 상관의 노여움을 사 경감에서 좌천당하고 지금은 다시 형사로 돌아온 슈투더.

다행히 그는 술에 쩔어있지는 않고 인간관계가 황폐하지도 않으며 성격이 까칠한 것 같지도 않다.

 

누구나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새벽 5시, 그는 날카로운 전화벨 소리에 잠을 깼다. -7

[광기의 왕국] 첫 문장이다.

꽤 오래 전 작품이니 만큼 추리소설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소재 "전화벨 소리"가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리고 슈투더는 사건 현장에 제 발로 찾아가는 게 아니라 의뢰인에 의해 사건 현장에 모셔진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란트링겐 요양 및 정신병원에서 피에털렌이란 환자가 탈출했고 그와 동시에 '미치광이 병원'의 원장 또한 사라졌다. 슈투더를 직접 찾아와 모셔가는 이는 정신병원의 부원장 에른스트 라두너 박사이다.

 

"이 일을 전부 다 파헤치려고 하면, 사실 지금 이 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예감이 들긴 합니다만, 어쨌든 당신이 파헤치려고 하면 많은 사람들 속으로 기어들어가야 할 겁니다.'

 

어떤 물적 증거보다 누군가의 한 마디가 더 큰 것을 말해준다고 믿는 심리 수사의 일인자답게 슈투더는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그 대가로 우리는 그가 만나는 사람마다  적어놓는 노트들을 일일이 기억해야만 한다.

사라진 원장과 친자살인범으로 정신병원에 오랫동안 감금되어 살아온 피에털렌에 관한 것은 물론이고 의사, 간호사, 경비원까지 병원에서 만나는 많은 이들의 이름과 정보가 슈투더의 노트에 빼곡히 기록된다.

광기의 영혼, 마토가 지배하는 어둠의 왕국이라는 이 정신병원에서 누가 진실을 말하고 누가 거짓을 말하는 것인지 정신차리고 지켜보아야 한다.

정신이 아픈 사람들과 함께 하다 보면 전염된다는 것이 사실일지?

슈투더가 기억해낸 바로는 부원장 에른스트 라두너 박사는 예전에는 지금처럼 "가면같은 미소"를 짓는 사람이 아니었다.

 

원장의 시신이 발견된 후 더욱 부지런히 이곳저곳을 살피고 다니지만 슈투더가 용의자로 점찍은 이는 창밖으로 뛰어내리고 그 이후로 안타까운 목숨들이 둘이나 더 희생된다.

정황증거가 정신 세계의 복잡성과 한데 엉켜 실타래들을 만들고만 있는데, 이 곳에 오래 머물며 '마토의 지배를 받기' 전에 슈투더는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슈투더는 정신분열증 사이코 패스, 공포 신경증 환자 등 정신이 아픈 사람들을 이해하려다 자충수를 두게 되는 건 아닌지...

 

처음부터 사건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가면의 미소 뒤에 숨어 사건을 관망하고만 있는 라두너 박사의 이해 안되는 행동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그 비밀은 끝에 가서야 밝혀진다.

 

"소위 혁명이라고 불리는 사건들은 사실 사이코패스들의 복수에 지나지 않는다."-275-

 

깨지기 쉬운 유리같은 영혼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이 곳에서 의사는 영혼의 의사가 되어야 한다.

정신이 무너진 사람이 절뚝거리며 오면 그의 영혼을 곧게 펴고 낫게 해주는 것이라는 라두너의 말은 그래서, 그에게 주어진 힘이 얼마나 큰지,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되는지를 넌지시 암시해준다.

 

꽤나 흥미진진한 사건이 얽히고 설키며 어마어마한 반전히 숨어 있는 등의 거대한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추리소설은 아니지만 "도대체 왜?"라는 것에 초점을 두고 본다면 가히 가슴 두근거리는 과정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일반 사회가 아닌, "마토가 지배하는 광기의 왕국"이라는 특이한 곳을 배경으로 삼았다는 점을 감안하고 본다면 그 왕국 안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이들의 입장에 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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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몽영, 삶을 풍요롭게 가꿔라 - 임어당이 극찬한 역대 최고의 잠언집
장조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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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결인 듯 노닐다 문득 나를 발견함 [유몽영]

 

 

 

 

책의 제목이 낯설었다. 그런데 책의 첫 구절을 보니 어디선가 본 듯한 기억이 난다.

계절에 맞는 독서법을 찾느라 이 책 저 책 찾던 중, 이거다 싶어 발췌하여 기록해 두었던 구절이다.

 

 

현대 인문학과 같은 문사철을 구현한 장르인 경사자집을 어떤 계절에 읽으면 좋을지 구분해 놓은 글이다. 이 구절이 실린 책이, 그것도 맨 앞에 실린 책이 [유몽영] 이었다니.

 

조장, 농단 같은 단어의 출전이 [맹자]였음을 [맹자]를 읽음으로써 비로소 알게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역시 부분만으로는 전체를 조망할 수 없다.

글을 베껴 써 놓았으면 출전도 적어 놓았어야지.

아마 출전을 적기는 하였으되, [채근담]이나 [명심보감]처럼 입에 익지 않은 것이어서 금세 잊어버렸을 수도 있다. 역시나 얕은 책 핥기 식 독서의 폐단이다. 아님, 주부 치매의 발현이거나...^^

 

그런데 왜 이 책을 이제서야 보게 되었을까.

'그윽한 꿈의 그림자'라는 뜻을 한 번만 새겨 보았으면 절대 잊지 못했을 것을...

어록체로 되어 있으며 통상 청언문학으로 불리는 [유몽영]은 [채근담]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하다고 한다. 이제라도 만나 보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채근담], [소창유기], [위로야화]는 처세 3대 기서라고 불린다. [유몽영]은 앞의 책들과 마찬가지로 처세 원칙을 포함하고 있지만 크게 4개의 주제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독서와 문학, 자연과 예술, 꽃과 여인, 인생과 처세 등이 그것이다.

 

 

원서에는 4자 성어로 된 제목이 붙어 있지 않으나 역자인 신동준은 앞의 [채근담]과 마찬가지로 제목만 봐도 해당 구절의 내용을 곧바로 알 수 있도록 4자 성어를 덧붙이는 구성을 취했다.

 

각각의 주제를 확연히 드러내는 원칙에 밑줄을 쳐 보았다.

 

독서와 문학에 해당하는 글을 읽을 때에는 현대의 문학관, 독서습관에 비추어 옛 사람들의 생각이 얼마나 다른지를 비교,대조해 볼  수 있다.

자연과 예술, 꽃과 여인 부분을 읽을 때면 어느새 꿈 속을 거니는 듯 슬며시 웃음지어진다.

독서를 통해 다른 세상을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들 하는데,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라는 광고 카피가 환기시키는 별세계의 안온한 배경이 펼쳐진 것만 같다.

 

청량한 바람을 계절별로 나누어 볼작시면 봄바람은 술, 여름바람은 차, 가을바람은 담배연기, 겨울바람은 생강 또는 겨자와 같다.-266

 

'비'라는 사물은 낮을 짧게 만들기도 하고, 밤을 길게 만들기도 한다.-113

 

달빛 아래서 선을 얘기하면 취지가 더욱 우원해지고, 검술을 얘기하면 품은 마음이 더욱 진실해지고, 시를 논하면 풍치가 더욱 그윽해지고, 미인과 마주하면 정의가 더욱 도타워진다. -172

 

이렇듯 몸이 타임머신을 타고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낯선 곳에 당도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가 하면, 현대의 혼몽한 세태와 그리 다르지 않은 처세법이 여전히 통용되고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 오히려 당혹감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제자백가'와 '마키아벨리'마저도 섭렵해버린 해박한 지식의 저자는 축자 형식의 주를 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세세하게 출전을 끌어와 밝히거나 근사한 사례를 직접 제시하기도 한다.

 

 

장자 <제물론>의 호접몽 우화에 대한 주 또는 해설은 좀더 상세하여 장자에 대한 작은 "강의"를 듣는 것 같다. 질 들뢰즈, 나카가마 다카히로의 [장자] 강의를 어지간해서는 혼자 독파해낼 수 없을 것만 같은데, 단 서너 장으로도 충분히 알짜배기 강의의 역할을 해낸다.

 

책을 수장하는 장서가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필요할 때 능히 찾아보는 간서가가 되는 게 어렵고, 간서가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능히 책을 읽고 이해하는 독서가가 되는 게 어렵고 독서가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책을 통해 배운 지식을 능히 실제에 활용하는 능용가가 되는 게 어렵고, 능용가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능히 머릿속에 체계적으로 정리해 기억하는 능기가가 되는 게 어렵다.-183

 

저자는 각 원칙의 해설을 통해 능히 능용가, 능기가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자칫 현 세태에 내뱉는 독설 같기도 하지만 지극히 객관적으로 접근하고 분석한 다음 내놓은 의견이기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실제로 조선조 사대부의 수준은 베트남은 말할 것도 없고 에도시대의 사무라이만도 못했다. -151

 

3대 세습의 전제정으로 인해 사실상 궤멸 직전에 처한 북한에 이어 남한마저 '당동벌이'의 붕당정치가 고착될 경우 남북이 공멸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 -180

 

장서가에서 겨우 간서가, 독서가의 수준으로 넘어가려고 하는 나에게 이렇듯 고전 속에서 현실 속 문제의 해법을 발견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저자의 해설 덕에 편하게 청나라 시대 고전 청언을 두루 맛볼 수 있었다.

[유몽영]은 꿈결을 거니는 듯 유유자적하며 한가로움 속에 몸을 맡기게도 하고, 날카로운 죽비 소리 내리쳐지듯 무지몽매함에서 깨어나게도 하는 두 가지 매력을 동시에 지닌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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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5-08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속에 좋은 문장이 많이 있을 것 같습니다. 내용을 사자성어 제목을 붙여서 정리한 저자의 센스가 좋군요. 문장을 외울 때 사자성어로 외우면 되니까요. ^^

남희돌이 2015-05-11 12:59   좋아요 0 | URL
네. 좋은 문장이 많고 되새겨볼 문장도 많네요. [유몽영]과 함께 채근담 등을 엮어서 동양고전 잠언 500선으로 책이 나온다고 해요. 필사공책도 딸려나온대요. 어서 써 보고 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