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에 대한 고집
다니카와 슌타로 지음, 요시카와 나기 옮김, 신경림 감수 / 비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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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시인의 깊고도 넓은 시[사과에 대한 고집]

 

 

 

빨강과 초록.

보색대비가 확실하게 이루어진 책이라서 눈에 띈다.

국내 시인의 시도 잘 읽지 않으면서 일본 시인의 시를 읽으려 하니 걱정이 앞섰지만 과감히 펼쳐든다.

왠지 백설공주가 베어 문 "독약이 묻은 빨간 사과"를 연상케 한다.

동화같은 설정이지만 마냥 아기자기한 동화스러운 내용은 아닐 것 같은 느낌 때문이다.  

<사과에 대한 고집>을 표제작으로 내세운 만큼 사과 표지가 효율적으로 사용되었지만 "사과" 보다는 "고집"이라는 단어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만 같다.

 

낯선 시인의 이름 다니카와 슌타로.

그의 고집이 얼마나 , 어떻게 드러나 있을까.

 

 

<자기소개>라는 시에서

나는 키 작은 대머리 노인입니다.

 

라로 자신을 표현한 노시인은 시와 에세이로 내게 말을 건넨다.

언어가 달라 말로는 그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번역된 글로나마 그와 나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나는 나이 많은 시인의 시가 좋다. 비록 난해하여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할지라도 시인의 넓고 깊은 세계에서 유영하며 조금이나마 세상의 비밀을 얻어갈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그의 시는 어느 한 가지에 머물러 있지 않고 수없이 많은 것을 다양한 방법으로 노래한다.

시만 써서는 살 수 없다고 푸념하는 듯하지만 시에는 가격도 없고 무엇보다 종잡을 수 없는 자유로움이 있다며 시에 대한 생각을 확실하게 정립한 시인이라서 멋지다.

 

시는 우리 마음 깊은 곳에, 그리고 일상생활 곳곳에 숨어 있어요. 시는 지구에 있는 숱한 언어들의 차이를 초월해서 우리 의식에 바람구멍을 뚫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129

 

혼자 놀고 혼자 시 쓰기를 좋아한다는 시인은 인생의 많은 부분들을 자신의 감성으로 이해하고 글에 녹여낸다. 시인이 부려 쓰는 글은 어떤 것은 이해가 되고 어떤 것은 난해하지만 한 번 읽고 넘기기엔 아쉬워서 읽고 또 읽어보게 된다.

처음엔 눈으로 읽다가 다음엔 입 속에서 굴려 본다.

좋은 말이네.

머릿속으로 이해한 것이 하루 이틀 뒤엔 좀 더 감성적으로 풀어져서 마음 속에 자리를 잡는다.

 

 

 

산다는 것을 목이 마른다는 것이라고 표현한 이 한 마디도

내내 입 속에서 굴리고 굴려 본다.

 

시인이 걸어온 길에서 문득 산다는 것을 쓰고 싶어졌을 그 즈음에는 목이 말랐겠구나.

나는 지금 목이 마른가? 충분히 촉촉히 적셔져 있는가?

시인의 그 즈음과 나의 현재를 나란히 두고 보면서 쉬엄쉬엄 곁눈질 해본다.

시를 두고두고 읽으면 그 때마다 다른 말들이 떠오른다.

단 한 줄의 시구도 허투루 읽어낼 수가 없게 된다.

 

미세먼지가 목구멍과 콧구멍에 들어와 박혀 간질간질함을 유발하는 봄날,

산다는 것은 재채기를 하는 것이라는 시 한 구절이 액면 그대로의 뜻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간질간질하게도 튀어나올 듯 튀어나오지 않는 마음 한구석의 아픔이나 슬픔이나 우울 같은 것들을

한바탕 "에취"로 날려버리라는 뜻으로 끌어다붙일 수도 있다.

내가 읽고 내가 마음대로 해석하는 재미~

지금 나는, 재채기가 필요한 때인가? 이렇게 자문도 해 보면서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들여다 본다.

 

장소는 다 지구 위의 어느 한 점이고

사람은 다 인류 중의 한 사람

 

열아홉에 이런 시를 적은 적이 있다는 시인은, 그리하여 자신을 '이웃 시인'으로 맞아 달라고 부탁한다.

63년 시의 역사를 기념하는 선집으로 풍성한 과실을 따서 쌓아놓은 것 같은 이 시집은, 그래서 언어와 국경의 경계를 넘어서 가볍게 내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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