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곡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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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찢어지는, 무표정한 기록 [통곡]

 

 

 

 

*는 전혀 반응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모습은 지켜보는 이들에게 기이한 인상을 안겼다. 눈물을 흘리지도, 오열하지도 않고, 그저 가만히 시체의 뺨을 쓰다듬고 있는 *의 모습은 스산해 보일 정도였다.

(...)

*는 무표정하게 딸의 뺨을 연신 쓰다듬었다. 그건 *의 통곡이었다.

-454

 

끔찍하면서도 무참하기 이를 데 없는 사건에는 이른바 면역이란 것이 생겨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범죄에만큼은 아예 항체라는 것이 만들어질 수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고야 만다.

연쇄 유아 유괴살인사건.

 

어떤 사이코패스의 잔혹한 짓이라도 성인을 대상으로 할 경우에는 인간 대 인간의 대결로 보아 그럴 수도 있다하고 용인할 수 있는 지점이 찾아지지만, 유아를 대상으로 한 범죄에는 그 한 '점'이 절대 찾아지지 않는다.

[통곡]은 일본을 경악시킨 희대의 범죄, 유아 네 명을 참혹하게 살해한 미야자키 쓰토무 사건을 모티브로 한 것이라고 한다.

감옥에 수감된 범죄자들에게도 이른바 "급"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들 사이에서도 유아대상 범죄자들은 인간 취급을 못 받는다. 어떻게 인간이..차마..

함부로 말을 이어가기도 힘든 인면수심의 범죄자는 도대체 어떤 내면을 가졌기에 그럴 수 있나, 라는 궁금증이 인다. 일반인의 뇌와는 다른 사이코패스의 뇌를 지니고 태어났고, 거기에 그 정신적 기질을 발현시킬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란 무시무시한 사람이어야 가능한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하나로 그어진 것이 아니라서 언제, 어떤 식으로든 산산조각으로 부서질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통곡]에서 그려내는 음울한 이야기는 그 마음을 따라 읽어나가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도 좋겠다.

 

유아들의 실종 이후 살인으로 이어진 사건이 연이어 터지자, 경시청의 사에키 수사과장은 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한다. 캐리어 중에서도 엘리트 코스만을 밟아온 그에게 적대감을 감추지 않는 세력들이 있기에 이번 건은 어떻게든 잘 해결해보고 싶다. 전 법무대신의 사생아이자 현 경찰청 장관의 사위인 사에키는 남들의 이목을 한눈에 받는 남자다. 그런 사에키를 안쓰러운 눈으로 관찰하는 사람이 있다. 차근차근 사정청취를 하며 사건에 접근해나가는 장점을 가진 오카모토 형사는 주변에서 모두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사에키의 처지에 동정심을 가진다.

 

이 사건과는 별개로, 터무니 없게 보일 수도 있는, 아마도 범인인 듯한 한 남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난 이 남자는 절대 누구에게로부터도 구원받지 못할 거라는 절망에 빠져 허덕인다.

그는 아마도 아이를 잃은 슬픔에 모든 것을 놓아버린 남자인 것 같다. 심약한 상태의 남자는 종교에 귀의하게 되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그의 거의 모든 것을 바치고 만다.

 

"마쓰모토 씨, 어두운 걸 몸에 달고 다니시는군요."

"마쓰모토 씨께서 뭐가 무거운 걸 짊어지고 계신 듯 보여서요. 당신의 과거에서 비롯한 것일까요?"

"마쓰모토 씨, 이 교단에 잘 들어오셨습닏. 당신이라면 분명 여기서 구원을 찾으실 겁니다."-139

 

유아 유괴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과 신흥종교집단에 영혼을 팔아 버린 남자의 이야기가 시종일관 번갈아가며 엮이자 처음엔 아무 상관 없는 일인 줄만 알았던  두 이야기가 어느 지점에서 교차될 것인지 감이 잡혔다. 아마도 아이를 잃은 부모가 실의에 빠져 마음에 뚫린 구멍을 메우려다가 종교에 귀의한 것 아닌가...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그 끝없는 황망함을 달래려는 남자의 몸부림이 내내 안쓰러웠다. 하지만 남자가 믿는 종교에서 전파하는 카발라의 비전이 이런 식으로 사용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계속되는 수사에도 진전이 없고 범인의 비아냥거리는 듯한 편지만 날아들자 사에키는 강한 발언으로 범인을 도발하기에 이른다.

"세상은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경찰은 반드시 당신을 체포하겠다."라고 언론에서 공표한 것인데, 이는 엄청난 사건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휘몰아치듯 쏟아져나오는 반전의 순간은...

그 짜릿함은 ...최고다!

슬금슬금, 야금야금 작가는 힌트를 던졌는데 그걸 넙죽넙죽 받아먹지 못하고 칠칠치 못하게 그냥 흘려버리고 만 것이 이렇게 뒤통수를 칠 줄이야.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은 소설 곳곳에 쓰여 있지만 그 마음은 애써 진중하고 무거운 분위기로 꾹꾹 눌러놓은 느낌이다. 마지막 한 방을 위한 초석이었던 게다. 가슴 찢어지는 듯한 절규와 몸부림으로 가득해야 할 사건을 내내 무표정한 모습으로 지켜보게 한다. 아직은 감정을 터뜨릴 때가 아니니, 조금만 더 참으시오...라고 지시문을 적어놓은 것도 아닌데 충실하게 차분한 길을 걷다가 허방다리라는 급습에 정신을 못 차리는 형국이다.

가슴 찢어지는, 무표정한 기록에 끝내 허물어지고 말았다.

소리 없는 통곡. 그것이야말로 감정의 극한에서만 느낄 수 있는 울음이 아니겠는가.

 

 

누쿠이 도쿠로의 작품으로는 처음 읽는 것인데, 추천하는 이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이유를 알겠다.

이런 감정의 롤러코스터, 오랜만에 느껴보는 것 같다.

다음으로는 [우행록]을 읽을 예정인데, 완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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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읽고 싶은 에세이

 

한 발짝 늦게 읽고 싶은 도서 목록을 뽑아 보는 것도 좋다.

베스트셀러에 현혹되지 않고 내 눈과 마음을 믿으며 찬찬히 훑어 보는 것.

하지만 아직 내공이 그닥 많이 쌓이지 않아 여전히 대형 출판사와 유명 작가들에 눈이 먼저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1.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배수아가 알타이를 걸어본 이야기라고 하는데~

박가 배수아의 에세이를 읽는 것도 기대되고 알타이라는 다소 익숙한 듯 하지만 낯선 곳은 어떨지도 기대된다. 만연체의 문장 속에 터지는 웃음이라는 특이한 분위기도 느껴보고 싶다.

 

2. 라면을 끓이며

김훈의 산문집.

[밥벌이의 지겨움],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바다의 기별]에서 가려 뽑은 산문들에 400여 페이지의 글을 덧붙였다 한다.

베스트셀러 조작 논란의 중심에 선 문학동네의 책이기도 한데...

그래도 아직은 김훈의 이름값에 갈음하는 그의 글에 맛볼만한 것이 그득한지 확인해보고 싶다.

 

3.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오래 전, 인도 여행 에세이로 만난 류시화. 기이한 풍모로는 이외수와 쌍벽을 이루는 사람이라서 선뜻 손이 가지 않았지만, 이 아름다운 제목에 어찌 손이 끌리지 않을 수 있었겠나. 사진과 생생한 체험이 녹아 든 아름다운 문장에서 사막의 오아시스같은 단맛을 보았다. 새 책으로 그 감동을 다시 한 번 느껴 보고 싶다.

 

4. 아비 그리운 때 보라

이야기꾼 김탁환의 산문집. 그의 소설들, 특히 역사추리 소설들을 애정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의 산문 한 자락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는데, 이렇게 책으로 나왔다.

다양한 [임경업전] 필사본 중 맺음말로 쓰였던 "아비 그리운 때 보라"를 제목으로 채택했기에 호기심이 들고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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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감 - 샤오미가 직접 공개하는 창의성과 혁신의 원천
리완창 지음, 박주은 옮김 / 와이즈베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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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오미의 성장 동력 [참여감]

 

태풍의 길목에 서 있으면, 돼지도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다. -레이쥔

 

바로 어제 뉴스였던가.

밤새 중국집 가게에 불을 붙인 방화범이 있었는데, 범인은 맞은편 7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먼저 터를 잡고 중국집을 운영하던 가게 주인이었다고 한다.

새로 오픈한 경쟁업체 때문에 원래 가게의 매출이 50% 이상 떨어진 것 때문에 앙심을 품은 것이다.

 

그 주인의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이런 식으로 대처했다간 자신의 발전은 평생 꿈도 꾸지 못하고 나락으로 떨어질 뿐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는 IT업계의 주도권은 언제, 누가 거머쥘지 모른다.

휴대폰은 모토로라에서 발명했지만, 2000년 전후로 노키아가 '기술 인본주의'를 표방하며 글로벌브랜드로 도약했다. 하지만 얼마 안가 패권은 애플과 삼성으로 넘어왔고, 지금은 노키아가 있었던가...하는 상황에까지 오게 되었다.

소비자가 제품 선택을 결정하는 심리는 지난 수십 년간 거대한 변화를 겪었다. 최근 유행은 체험형 소비라고 한다. 샤오미는 완전히 새로운 '참여형 소비'를 발견하여 참여하고 있다.

인터넷 씽킹의 핵심은  '입소문이 왕'이라는 것이다.입소문의 본질은사용자에게 참여가을 제공하는 데 있다.

류츠신의 SF소설 [삼체]를 읽어보진 않았지만, 인터넷 씽킹에 기반한 참역ㅁ은 [삼체]에 나오는 '차원이 다른 세계에서의 대결'과 비슷하다고 한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변하는 현 시대에 남보다 한발 앞서 변화가능한 조직구조를 탑재한 기업이 유리하다.

소비자들은 기능만 보고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다. 내가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즉 그 제품을 통해 내가 어떤 새로운 체험에 참여할 수 있는가를 중점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언제까지나 중국이  미국과 한국 등의 전자제품보다 뒤쳐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다면 그건, 오산이고 오만이다.

'대륙의 실수'라고 우스개소리로 샤오미의 보조배터리를 칭찬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샤오미의 성공 배경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샤오미는 더이상 애플의 짝퉁 정도에 머물지 않고 있으며, 삼성을 추월하게 될지도 모른다.

가격 대비 우수한 성능?

적은 마진과 인터넷 판매 방식이라는 유통의 혁신?

샤오미의 혁신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무엇이 존재하는 것일까?

 

스마트폰을 단순히 '사용'하는 이들과 달리 샤오미폰 사용자들은 스마트폰으로 '논다'.

샤오미의 사용자들은 놀이터에서 함께 노는 친구다. 샤오미는 사용자들에게 참여감을 제공하기 위해 제품개발, 서비스 개선은 물론이고 오프라인에서 모여 노는 미팝을 만들었으며, 이 중 스타를 선발하는 미팝 연례 시상식을 치른다.

좁쌀이라는 뜻을 가진 샤오미지만, 한정지어지는 의미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고 더 넓게 뻗어나가는 원동력이 무엇인지는 '참여감'이라는 단어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새로운 시대, 글로벌 무대에서 뻗어나가는 샤오미의 성공전략! 샤오미의 철학!

[참여감]을 읽으면, '하늘로 날아오르는 돼지'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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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역사문화 사전 한국학 주제사전
정치영 외 지음 /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정신문화연구원)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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쏠쏠히 읽는 재미가 있어요~[지리산 역사문화 사전]

 

한국학 주제사전 중의 한 권인 [지리산 역사문화 사전]이다.

나이가 들면 언젠가는 지리산 그늘 아래 터를 잡고 살리라~ 마음 먹고 있었기에

지리산은 그다지 낯설지 않다.

그렇다고 매주 주말마다 등산을 나선다거나 지리산 주변의 문화 축제를 둘러본다거나

지리산이 품고 있는 많은 식생 중 특히 차에 관심이 있어 차맛을 음미할 줄 안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부산에 살고있기에 지리적으로 가까운 마음이 들어서 강원도나 충청도 어디쯤의 산보다는 정감이 느껴진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낯설지 않다는 것 말고는 지리산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거의 없다.

학창시절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열독했다는 정도로 체면치레나 할 수 있을까.

깜박 졸며 들었던 전공수업 시간에 잠깐 귓등을 스쳐 지나갔던 [유두류록]같은 기행문의 제목이 살짝 기억나는 것도 억지로 끼워넣어 볼까...

 

표제어들을 죽 훑어보면 (생소한 역사문화 사전이지만 어쨌든 사전이니까 표제어는 가나다 순으로 기재되어 있다.)

구례군, 구형왕릉, 김일손, 김종직, 날라리봉, 남부군, 달궁 아리랑, 동학농민운동, 문창대, 빨치산, 선교사 휴양촌, 쌍계사, 이병주, 이시영, 임진왜란, 지리산 국립공원, 천왕봉, 청학동, 최치원, 태백산맥, 토지, 평촌리, 화개장, 화엄사...등등

지리산을 매개로 하는 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지리학, 역사학, 문학 등 전공을 달리하는 6명의 연구자가 참여하였다는 점만 보아도 얼마나 방대한 양을 녹여내려고 노력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랜 역사 속에서 한반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던 지리산은 우리 역사의 중요한 무대가 되기도 했고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되기도 했다. 문, 사, 철의 인문학 자료들로부터 갖가지 구비전승문화와 텍스트들이 탄생하기도 했다. 산신, 성모 신앙 등 설화와 전설에서부터 고전 문학, 수많은 유산기와 유산시, 현대에 와서는 [토지], [태백산맥], [지리산] 등 문학 작품이 배경이 되기도 한 것을 보면 지리산이라는 너른 품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배태시켰는지 알 수 있다.

 

1945년 해방 이후부터 6,25 전쟁을 전후하여 지리산 일대에서 유격전을 수행한 공산 비정규군을 이르는 말, 빨치산.

빨치산 주요 은신처로 구들장 아지트, 달궁 비트(비밀 아지트), 법계사 아지트, 석실, 선녀굴, 인민군 야전병원(벽송사), 중땀암반굴 아지트, 칼바위 아지트 등이 그들의 주요 아지트였다는 것까지 실려 있어 역사속에 있었지만 우리의 기억에서는 잊혀졌던 곳의 흔적을 더듬어 볼 수 있다.

신라 시대 말기의 학자 겸 문장가로, 지리산의 신선이 되었다고 전해지는 인물, 최치원.

현실에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수 없음을 알고 방랑을 택한 최치원은 전국의 절경마다 자신의 자취를 남겼다고 한다. 부산의 해운대는 물론이고, 특히 지리산과 가야산에 그의 일화와 전설이 많이 전한다고 한다.

그 외에도 사성암 설화, 쌍계사 설화, 영원사 설화, 아지발도 설화 등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던 설화를 확인하는 것도 꽤 재미있었고,

이병주 문학관, 평사리 문학관, 혼불문학관 등 지리산을 배경으로 한 문학 작품과 작가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곳에 대한 소개도 읽어볼 만 하다.

때맞춰 문학축제에 참가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정도이다.

예부터 이상향이라 불리던 청학동은 지리산 안에 있다.

나중에 나이 들면 지리산을 찾아 들리라, 했던 것도 내 무의식 속에 '청학동'이란 이상향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지리산 역사문화 사전을 한 장 한 장 넘겨 보면 쏠쏠한 재미를 찾을 수 있다.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계기도 되었고, 지리산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문학작품을 찾아 읽어 보고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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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 강물은 그렇게 흘러가는데, 남한강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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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밝아지고 마음이 열린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8권 남한강편]

 

곧 있으면 추석인데, 사람들은 '추석'의 본질을 망각한 채 '연휴'라고 즐거워만 한다.

연휴가 길어지면 해외여행객이 공항에 득시글거려 발디딜 틈이 없다고 뉴스에 나온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한 권만 읽어 보아도 해외여행보다 우리나라 여행이 먼저일 거라 생각을 고쳐먹게 될 것인데...그들은 나와 너무 거리가 먼 사람들이고 나의 고함은 대답 없는 메아리가 된다.

그들은 우리 것이 더 좋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해외로 나가는 것일까?

그저 길고긴 연휴를 즐기기에는 미지의 장소에서 낯섬과 새로움을 즐기는 것이 더 낫다는 소신이 있어서일까?

무조건 우리 것이 좋다고 고리타분한 늙은이마냥 주절거리면 안 되지만, 우리 것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어서 쓴소리 한 번 하고 시작한다.

 

유홍준 선생의 길고 긴 문화유산답사기가 다시 국내로 돌아와 <남한강편>에 이르게 되었다.

제주 편 이후 일본편 완간을 이루고 나서 3년 만이다. 1권 남도답사 일번지를 시작으로 각 지역별 권역을 나누어 문화유산답사기를 써 온 그가 이번에는 "남한강"을 테마로 해서 글을 썼다.

남한강 편이라고 하니 언뜻 머리에 그 지역이 그려지지 않았다. 어찌 보면 낯선 접근일수도 있는데, 오래 답사를 다녀온 사람이 하나의 테마로 머릿속에 구상해왔을 정도니 얼마나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으면 그랬을까, 싶기도 해서 내심 기대하는 마음이 컸다.

남한강을 따라 내려오면서 아름다운 강변 풍광과 그 고을의 문화유산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며 서두를 떼는 유홍준을 믿고 책장을 넘기니, 술술 읽어진다.

영월부터 시작하여 단양,제천, 충주, 원주, 여주로 이어지는 코스에 대한 이야기가 영롱한 구슬 꿰이듯 주루룩 엮여 있는데 이 코스들은 4박 5일이면 충분하지만 당일답사 혹은 1박 2일, 2박 3일 로 나누어 가는 것을 추천한다고 한다.

유홍준 문화유산답사기의 백미는 바로 답사 일정표 아니었던가.

어느 때보다도 간결하면서도 꽉 짜인 일정표를 참고 삼아 훌쩍 떠나고픈 마음을 붙잡느라 혼났다.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를 쭉 보아온 것은 아니지만 이번 편에서는 1박 2일 단양,제천, 충주 1박 2일 창비 답사, 남한강 1박 2일 답사회 정기 답사, 남한강변의 폐사지 답사회 당일 답사, 미술사학과 남한강변 폐사지와 '뮤지엄 산' 당일 답사 등 답사의 성격에 따른 독특한 흥취가 드러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영월 법흥사 답사길에 달리는 버스 안에서 한 중년 아주머니의 특청에 따라 아무런 준비 없이 감동적인 선문답 이야기를 기억해서 해주는 데서는 인정 많고 다정한 선생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창비 식구와 유홍준 선생 식구들로 답사단을 꾸몄을 때에는 시인 신경림, 언론인 임재경, 역사학자 강만길, 국문학자 임형택 선생, 고향이 제천인 유인태 의원, 도종환 시인, 청풍명월의 한겨울 풍광이 그리워 참가한 신경림 시인, 화가 등 선생님, 선배, 친구, 후배, 제자로 이루어진 '창비 답사단'이 되어 답사계의 '수퍼 히어로즈'를 꾸린 느낌이 들었다.

각자의 전공에 밝은 눈으로 같은 문화 유산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을 접하게 되다니...

어느 답사단이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으랴.

TV에서 <영재발굴단> 역사퀴즈 편을 보았을 때, 유홍준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직접 퀴즈를 냈던 '단양 적성비'문제를 기억한다.

역시~ 진흥왕 시대 신라 문화의 급격한 발전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순수 비 중 가장 빠른 비는 단양 적성의 비였는데, 이 비는 왕이 직접 가지 않고 장군들을 보내 세운 것이라 한다.

 

이번 답사기는 특히 유홍준 선생의 전공인 조선시대 회화에 대한 소개가 나오는 부분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그림이 많이 소개되어서 옛 풍광을 되살려 보는 동시에 구도와 필치까지 세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교과서에 실린 몇몇 그림만 기억하고 있는 얕은 지식으로는 그림을 보는 안목을 제대로 키울 수 없었다. 단원의 옥순봉도 뿐만 아니라 절터의 비문에 남아 있는 글씨들하며 절경 속에 어우러지는 바위에 적힌 글씨까지 허투루 넘기지 않고 짚고 넘어가 주니 그 여행지에 아직 가보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싶었다. 이렇게라도 미리 공부하고 가서 보면 눈이 밝아지고 마음이 더욱 넓어질 것 아니겠나,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

 

단종 애사의 아픔이 서려 있는 청령포는 이미 다녀왔지만 이런 깊이 있는 역사의 이해가 덜했기에 다시 한 번 발길을 옮겨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중원 고구려비와 탄금대를 석양의 남한강과 함께 감상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다.

마음이 울적하거든 폐사지로 떠나라고 했던가. 거돈사터 삼층석탑, 청룡사터 등의 아련함도 좋겠지만 무엇보다도 화려하기로 소문난 지광국사 현묘탑비를 보면서 돌조각의 섬세함을 느껴보고도 싶다.

화려한 문양으로 장식된 거북도 있는가 하면 몸통이 조각나 버려 백비를 몸통으로 대신 이고 있는 거북도 있고, 고개를 한쪽으로 틀고 무언가를 바라보는 것 같은 거북도 있다 하니 각기 다른 돌거북 모습에 초점을 두고 감상하는 것도 재미있겠다.

어렵고 따분할 것만 같았던 우리 문화유산답사가 훌륭한 스승 한 명 만난 것만으로도 어서 빨리 가서 보고 만지고 감상하고 싶은 것으로 바뀌었다.

역사의 유물, 유적을 더듬으면서 가슴 속에 새겨야 할 게 많다.

가파른 온달산성에 올라 외적과 맞서 싸우던 우리네 전쟁의 모습에서 조상의 지혜를 배우고 온달을 장군으로 만들었던 평강공주의 기개도 다시 한 번 떠올려 본다.

 

강물은 많은 것을 지켜보면서 유유히 흘러만 간다.

남한강이 보고 들은 것은 어디에 새겨져 있을까.

그 흔적을 더듬어 살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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