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곡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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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찢어지는, 무표정한 기록 [통곡]

 

 

 

 

*는 전혀 반응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모습은 지켜보는 이들에게 기이한 인상을 안겼다. 눈물을 흘리지도, 오열하지도 않고, 그저 가만히 시체의 뺨을 쓰다듬고 있는 *의 모습은 스산해 보일 정도였다.

(...)

*는 무표정하게 딸의 뺨을 연신 쓰다듬었다. 그건 *의 통곡이었다.

-454

 

끔찍하면서도 무참하기 이를 데 없는 사건에는 이른바 면역이란 것이 생겨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범죄에만큼은 아예 항체라는 것이 만들어질 수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고야 만다.

연쇄 유아 유괴살인사건.

 

어떤 사이코패스의 잔혹한 짓이라도 성인을 대상으로 할 경우에는 인간 대 인간의 대결로 보아 그럴 수도 있다하고 용인할 수 있는 지점이 찾아지지만, 유아를 대상으로 한 범죄에는 그 한 '점'이 절대 찾아지지 않는다.

[통곡]은 일본을 경악시킨 희대의 범죄, 유아 네 명을 참혹하게 살해한 미야자키 쓰토무 사건을 모티브로 한 것이라고 한다.

감옥에 수감된 범죄자들에게도 이른바 "급"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들 사이에서도 유아대상 범죄자들은 인간 취급을 못 받는다. 어떻게 인간이..차마..

함부로 말을 이어가기도 힘든 인면수심의 범죄자는 도대체 어떤 내면을 가졌기에 그럴 수 있나, 라는 궁금증이 인다. 일반인의 뇌와는 다른 사이코패스의 뇌를 지니고 태어났고, 거기에 그 정신적 기질을 발현시킬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란 무시무시한 사람이어야 가능한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하나로 그어진 것이 아니라서 언제, 어떤 식으로든 산산조각으로 부서질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통곡]에서 그려내는 음울한 이야기는 그 마음을 따라 읽어나가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도 좋겠다.

 

유아들의 실종 이후 살인으로 이어진 사건이 연이어 터지자, 경시청의 사에키 수사과장은 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한다. 캐리어 중에서도 엘리트 코스만을 밟아온 그에게 적대감을 감추지 않는 세력들이 있기에 이번 건은 어떻게든 잘 해결해보고 싶다. 전 법무대신의 사생아이자 현 경찰청 장관의 사위인 사에키는 남들의 이목을 한눈에 받는 남자다. 그런 사에키를 안쓰러운 눈으로 관찰하는 사람이 있다. 차근차근 사정청취를 하며 사건에 접근해나가는 장점을 가진 오카모토 형사는 주변에서 모두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사에키의 처지에 동정심을 가진다.

 

이 사건과는 별개로, 터무니 없게 보일 수도 있는, 아마도 범인인 듯한 한 남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난 이 남자는 절대 누구에게로부터도 구원받지 못할 거라는 절망에 빠져 허덕인다.

그는 아마도 아이를 잃은 슬픔에 모든 것을 놓아버린 남자인 것 같다. 심약한 상태의 남자는 종교에 귀의하게 되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그의 거의 모든 것을 바치고 만다.

 

"마쓰모토 씨, 어두운 걸 몸에 달고 다니시는군요."

"마쓰모토 씨께서 뭐가 무거운 걸 짊어지고 계신 듯 보여서요. 당신의 과거에서 비롯한 것일까요?"

"마쓰모토 씨, 이 교단에 잘 들어오셨습닏. 당신이라면 분명 여기서 구원을 찾으실 겁니다."-139

 

유아 유괴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과 신흥종교집단에 영혼을 팔아 버린 남자의 이야기가 시종일관 번갈아가며 엮이자 처음엔 아무 상관 없는 일인 줄만 알았던  두 이야기가 어느 지점에서 교차될 것인지 감이 잡혔다. 아마도 아이를 잃은 부모가 실의에 빠져 마음에 뚫린 구멍을 메우려다가 종교에 귀의한 것 아닌가...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그 끝없는 황망함을 달래려는 남자의 몸부림이 내내 안쓰러웠다. 하지만 남자가 믿는 종교에서 전파하는 카발라의 비전이 이런 식으로 사용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계속되는 수사에도 진전이 없고 범인의 비아냥거리는 듯한 편지만 날아들자 사에키는 강한 발언으로 범인을 도발하기에 이른다.

"세상은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경찰은 반드시 당신을 체포하겠다."라고 언론에서 공표한 것인데, 이는 엄청난 사건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휘몰아치듯 쏟아져나오는 반전의 순간은...

그 짜릿함은 ...최고다!

슬금슬금, 야금야금 작가는 힌트를 던졌는데 그걸 넙죽넙죽 받아먹지 못하고 칠칠치 못하게 그냥 흘려버리고 만 것이 이렇게 뒤통수를 칠 줄이야.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은 소설 곳곳에 쓰여 있지만 그 마음은 애써 진중하고 무거운 분위기로 꾹꾹 눌러놓은 느낌이다. 마지막 한 방을 위한 초석이었던 게다. 가슴 찢어지는 듯한 절규와 몸부림으로 가득해야 할 사건을 내내 무표정한 모습으로 지켜보게 한다. 아직은 감정을 터뜨릴 때가 아니니, 조금만 더 참으시오...라고 지시문을 적어놓은 것도 아닌데 충실하게 차분한 길을 걷다가 허방다리라는 급습에 정신을 못 차리는 형국이다.

가슴 찢어지는, 무표정한 기록에 끝내 허물어지고 말았다.

소리 없는 통곡. 그것이야말로 감정의 극한에서만 느낄 수 있는 울음이 아니겠는가.

 

 

누쿠이 도쿠로의 작품으로는 처음 읽는 것인데, 추천하는 이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이유를 알겠다.

이런 감정의 롤러코스터, 오랜만에 느껴보는 것 같다.

다음으로는 [우행록]을 읽을 예정인데, 완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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