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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편견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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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곳을 펼쳐도 생각이 마구 달려간다 [다정한 편견]

 

 

[손홍규의 로그인]이라는 경향신문 칼럼이 묶여 책으로 나왔다.

일주일에 한 편씩 꼬박꼬박 써나왔던 정성도 대단하거니와 그 다양한 생각들의 물꼬를 어디서 틔웠을까, 상상하니 더 이상 헤아릴 엄두조차 안나왔다.

아무리 원고지 4,5매 내외라는 분량이라지만 꾸준히 꼬박꼬박 써내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

 

제목을 쭉 훑어내려와 본다.

 

우산, 길고양이, 사내들의 대화, 싸목싸목, 여름 밥상, 곶감, 존재를 엿듣다, 마음의 창, 명절의 쓰임새, 남의 일, 영혼으로 난 길, 다음 생, 밥 먹는 이유, 지상의 방 한 칸, 아름다운 막말, 장마, 팔을 번쩍 드시오, 장기려 선생, 비정규직 소설가, 사람 소리, 작가의 말, 모국어, 문학과 질문, 왜 사냐건, 포퓰리즘, 은어의 귀환, 소문들, 만석보와 사대강, 행복 레시피, 모순어법들...

 

 

초등학생의 일기 제목 같은 단순한 것에서부터 조금 진지하려나...생각되는 단상들, 그리고 민감한 정치적 현안을 건드리려는 것 같은 꽤 세 보이는 제목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의 칼럼을 모은 것이니 5년 동안의 글들이 모인 셈이다.

목차를 보고 처음 든 생각은, 나도 지금부터 한 5년 부지런히 짧은 단상들을 모아 볼까...하는 것이었다.

누가 보상해주는 것도 아니고 알아봐주는 것도 아니지만 스스로 일주일에 한 편씩 주제에 대해 글을 쓰고 생각을 정리하고 4,5매 내외의 규칙을 적용시키면 글쓰기에 발전이 있지 않을까, 하고 아주 단순하게 생각한 것이었다.

 

 

에헴~ 그럼,

내용을 한 번 볼까.

짤막한 글이니 쉽게 읽어내려가겠다, 마음 먹고 잡았는데,

웬걸.

<어머니의 잠든 얼굴>을 지나 고작 두 번째 글 <라면엔 계란>을 읽었을 뿐이었는데,

라면 속에 들어가서 탁 깨어져야 할 계란이

고이 삶겨진 다음 물도 없이 맨목에 삼켜지기라도 한 것처럼,

그만 가슴에 꽉~ 막혀버렸다.

 

어머니라는 단어에 이어, 아버지라는 단어가 생각지도 못하게

암흑의 우주를 날아다니다 지구에 툭 와서 부딪치는 소행성처럼

가만 있는 나를 세게 치받고 가버렸다.

 

이놈아, 라면엔 계란을 넣어야지! 라면만 먹으면 죽어!

-14

 

뜬금없이 작가의 아버지라는 분이 저렇게 빽 소리를 질렀다지.

 

그 뒤로 의뭉스럽게 이어지는 작가의 부연설명이

이 시대 우리네 아버지들의 심사를 대변하는 것만 같아 그만 가슴이 메이고 만 것이다.

 

물론 내가 라면에 계란을 넣지 않아 아버지가 그토록 분개했다고 믿지는 않는다. 사는 꼴이 탐탁지 앟은 내게 무언가 훈계를 하고 싶어도 머리가 굵은 아드리 들어줄 리 만무일 테고 분통을 터뜨리고는 싶은데 마땅한 꼬투리를 잡을 수 없었던 것이리라. 마침내 아버지는 기회를 잡았고 라면에 계란도 넣지 않은 걸로 짐작건대 네 사는 꼴이 얼마나 한심하고 망측할지 눈앞에 훤하다는 힐난을 했던 거다.-15

 

부모님의 마음이란, 자식이 어리든 장성했든 가리지 않고 언제나 물가에 어린 자식 내놓은 것 마냥 안절부절이겠지.

 

라면에 계란이라는 단순한 조합 속에 이런 감동이 스며 있을 줄 어찌 짐작이나 했겠나.

손홍류는 그렇게 짧은 글 속에 나름의 농도와 오미를 가미하여 멋들어진 한 상을 차려 주었다.

 

나의 여행과 작가의 여행에서 얻는 체험이 다를 것이고

나의 장마와 작가가 겪었던 장마가 다를 것이다.

(실제로, 나는 지난 주 내내 겪었던 장마가 주는 습기와 끈끈함 덕분에 태풍이 저 아래에서 올라오고 있는 중임에도 오늘 갑자기 날이 쨍~ 하자 이불빨래부터 해야지, 하고 허둥거리는 주부다. 작가는 윤흥길의 [장마]를 읽은 소감을 기가 막히게 풀어내 놓았다.)

 

[다정한 편견]은 물론 작가의 편견이 100%

스며 있는 사적인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어느 곳을 펼쳐도 작가의 짧은 글 위로 내 생각이 빠르게 덧입혀지고

어떤 부분은 공감을, 어떤 부분은 눈썹 위로 당겨지며 찌푸리게 되는 반발을 경험하게 된다.

다시 말해 모든 글감을 다시 내 식으로 덧입혀 생각하게 되고, 상상하게 된다는 뜻이다.

큰 제목 하나로 내용을 끌어 안는 소설에서는 흠뻑 빠져들어서 다 끝나고 난 뒤에 다시 제정신을 차리게 된다면,

작은 제목 100개 넘는 단상들의 모음인 이 책에서는 한 꼭지를 읽고 나면 다시 튕겨져 나오게 되는 재미있는 경험을 한 셈이다.

노래에 맞춰 탱탱한 고무줄 위로 발을 얹어 가며 살짝, 넣었다 뺐다 했던 학창시절의 고무줄 놀이가 떠오른다.

흥겹게 뛰어노는 사이에 땀은 비오듯 흐르고 집에 가서 보면 놀 때는 못 느꼈던 생채기가 여러 줄 발목이며 종아리에 나 있다.

그 흔적을 보며 괴롭다, 다시는 안하고 싶다, 할 아이는 없을 것이다.

또 다시 내일이면 뛰어가서 친구들과 어울려 노래하고 고무줄 놀이에 열을 올린다.

손홍규의 [다정한 편견]도 고무줄 놀이와 같아서 작가의 편견 투성이 글을 읽고서 가끔은 내 생각을 얹기도 하고 튕겨져 나가기도 하면서 다시금 달려들게 된다.

흥겹고 재미있고 신 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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