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수련
미셸 뷔시 지음, 최성웅 옮김 / 달콤한책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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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두 번 읽게 되는 황홀한 미스터리 [검은 수련]

 

모네의 "수련"은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작품이지만 "검은 수련"이라고 하면 뜨악해진다.

상상하기도 쉽지 않은데, 이것이 소설이 된다?

시간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을 잡아내어 화폭에 옮기려 노력했던 "빛의 화가" 모네가 아무래도 이 소설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것 같지만 이 소설이 자아낼 미스터리와 어떻게 연결될지 자못 기대가 크다.

 

 

모네가 수련을 그린 곳으로 유명한 프랑스 지베르니 마을은 모네의 사후에 그의 수련이 탄생한 곳을 보려는 사람들로 성황을 이루자 모네의 집과 정원을 "관광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집을 꾸미고 벽에 페인트 칠을 하고 꽃을 꺽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면서까지 모네 시절의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84살의 심술궂은 노파일 뿐인 "나"의 눈에 모네의 정원이란 대형마트에 걸린 장식품일 따름이다.

 

밀과 옥수수, 개양귀비가 흐드러지게 펼쳐진 때 묻지 않은 지평선이라니!-20

푸른 이삭과 붉은 개양귀비가 진주처럼 아롱진 숲이 바람에 흔들린다. -21

클로드 모네 거리에 도착했다. 분홍색 접시꽃과 주황색 붓꽃이 석조 현관 앞 아스팔트를 개밀처럼 억척스레 뚫고 올라왔다.지베르니라서 가능한 풍경이다. -35

 

소설의 초반부터 지베르니 마을의 아름다운 풍경이 세밀하게 묘사된다. 하지만 곧 모네의 정원과 수련, 일본식 다리를 지나는 앱트 강의 개울가에서 처참한 모습으로 살해당한 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정적으로 고요하게 반짝이던 풍경은 서서히 일그러져 간다.

짙은 옷을 입은 노파인 "나"는 셴비에르 방앗간 의 망루에 올라 그 장면을 바라본다. 방앗간 건물 한가운데 서 있는 노르망디식 탑의 5층은 "나"의 동굴이며 빛이 닿지 않는 캄캄한 구석의 벽에 노파의 <수련> 그림이 걸려 있다. 검은색으로 뒤덮인.

애도의 꽃. 절대 완성되지 말았어야 할 슬픈 애도의 꽃.

 

지베르니 마을의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풍경에 어울리지 않게 이 마을에 사는 것을 숨막혀 하는 세 여자가 있다.

셴비에르 방앗간에 사는 84살의 심술쟁이 노파인 "나",36살의  거짓말쟁이 스테파니 뒤팽, 11살의 이기주의자 파네트 모렐.

살인자를 뒤쫓아야 할 형사가 용의자로 스테파니 뒤팽의 남편을 지목했지만 형사는 스테파니의 아름다움에 매혹당해 잠시 판단력을 상실한다. 그림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11살의 파네트는 앞의 살인사건과 연관하여 발견된 단서로 보건대 아마도 위험에 처해 있는 듯하다. 그 단서에는 이런 글귀가 있었다.

 

열한 살 생일을 축하해.

우리는 꿈이라는 죄 만들었지.

 

세 명의 여인을 중심으로 각각 세 갈래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아무래도 어떤 연관이 있지 싶건만 도무지 그 연관성을 쉽사리 찾을 수가 없었다.

2010년 5월, 심술궂은 노파의 독백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모호하지만 스테파니와 파네트의 삶을 송곳처럼 파고든다.

앱트 강 개울가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 사람은 안과 의사로 이름을 떨쳤던 제롬 모르발이었는데, 사건을 수사하던 로랑스는 26년 전 이와 똑같은 형태로 알베르 로잘바라는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두 사건의 연결 고리는 무엇이며, 살해 현장에서 발견된 글귀는 도대체 무슨 뜻일까?

 

모네 사후에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으로 수런거리던 분위기에 휩쓸려 미술관과 미술품 거래상을 샅샅이 훑으며 살해 사건과의 연관성을 찾던 수사관들은 과연 사건을 제대로 풀어나갈 수 있을까?

 

아름다운 수련의 마을 지베르니를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모네의 유령이 시간을 거슬러 세 여인의 삶을 검게 물들이는 과정이 유려한 필치로 이어진다.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빛을  볼 수 있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모네의 수련 연작들의 변화 과정이 이 한 편의 소설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만 같다.

수련 연못만 그려대다가 점차 배경을 지워나간 모네. 일본식 다리, 버들가지, 하늘...이런 것들을 지우고 오로지 꽃잎, 물, 빛에만 집중한 모네는 정화의 진수를 남긴다. 죽기 몇 달 전에 그린 그림들은 잭슨 폴락 등 오늘날 현대 추상화가들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죽기 전 마지막 몇 달 동안 그린 미완의 <수련>에도 모든 색의 결여이자 모든 색의 혼융인 검은 색만은 빼고 그렸다는데...자신의 죽음을 알아챈 그는 그 죽음을 불멸의 그림 <검은 수련>으로 남겼다고 했다. 전설과도 같은 그 이야기가 아마도 이 소설의 뼈대가 되지 않았을까.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려 기를 쓰고 줄다리기를 하며 읽었건만, 어딘가에 분명히 속임수가 있을 것이야, 하고 눈에 불을 켜고  찾았지만, 결국은 완벽한 플롯에 패하고 말았다.

심술궂은 노파처럼 진실을 등뒤에 숨기고 결코 손안의 패를 보여주지 않는 작가를 대상으로 수수께끼를 푸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마지막에 독자가 할 일은 이 황홀한 미스터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한 번 되돌려보기 하는 일.

지베르니라는 한정된 공간에서도 얼마든지 마법을 부려 독자를 옴짝달싹 못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고전의 향취를 흠뻑 머금은 아름다운 미스터리라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덮어버리기에 아깝지 않은 이야기여서 용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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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3-06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의 이름으로 나를 용서하세요..테스 인가요?..^^ (인용대사가...테스에서..온듯하여)

남희돌이 2015-03-06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지러운 이야기가 사실은 사랑에서 기인한 것이 테스의 비극과 닮았다면 닮았달까요~미스터리인 점은 확연히 다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