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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하와이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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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에는 바다가 있고, 파도 소리가 있다. 훌라가 있다. [꿈꾸는 하와이]

 

훌라춤이라 하면 크고 화려한 꽃을 머리와 가슴에 달고 커다랗게 나풀거리는 치마를 흔들며 손을 꼬아 하늘 위로 사뿐히 말아 올리는 동작을 하는 댄서가 떠오른다.

건강미 넘치는 구릿빛 피부에 커다란 검은 눈망울을 한 하와이 원주민 여성이 하와이안 음악에 맞춰 살랑살랑 몸을 흔들면 절로 따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음악에 취해 훌라 아가씨의 상큼함에 취해 허리를 살짝 움직여 보고 손을 위로 빙글 올려 보지만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움찔움찔, 꿈틀꿈틀 일 뿐이다.

아아, 절망.

 

하와이가 훌라춤에 어울린다면, 우리 나라 안에서 훌라 춤 추기에 가장 적합한 곳은 제주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쩌다 그렇게 생각이 가 닿은 것이 아니라, 우연히 어떤 노 여배우가 제주 바다에 맨발을 담그고 훌라 춤을 추는 장면을 봤던 장면이 책을 읽으면서 오버랩 되기에 하는 말이다.

훌라를 6년이나 배운 요시모토 바나나가 하와이의 바람을 이제는 몸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한 말이 그 기억을 불러왔다.

 

노 여배우는 시골 아낙들이 입는 일바지를 헐렁하게 입고 가벼운 웃옷을 걸치고 머플러를 살짝 두른 상태였다. 발에는 검정 고무신을 신고 있었더랬다. 제주도 바닷가의 울퉁불퉁하면서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을 고무신 차림으로 능숙하게 디디고 내려온 뒤 고무신을 벗어던지고 그 맑은 바닷물에 맨발을 쏘옥 담갔다. 제주의 바람이 그 아니 세찬가!

두르고 있던 머플러를 머리 위로 두르니, 여신 같은 우아함이 배어나왔다. 가녀린 몸에 자칫 잘못하면 초라한 행색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녀는 왠지 작은 체구에서도 당당한 아름다움 같은 것이 흘러넘쳤다. 점점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휘청거릴까 불안했는데, 맨발로 우뚝 서서 맑은 눈으로 카메라를 응시했다.

그러더니 훌라춤을 보여주겠다며 나선다. 제주 바다에서 하와이의 훌라춤이라니. 너무 요란한 것 아닌가?

음악도 멋진 코스튬도 없이 수수한 차림 그대로 서더니 바람 소리에 몸을 맡기고 손을 뻗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유롭게 뻗어올린 손이 리듬을 만들어내고 부드러우면서도 날카로운 눈빛에서 뿜어나오는 카리스마가 보는 이의 시선을 잡아 가두었다.

하늘과 만나는 무녀의 기원을 담은 듯, 제주의 바람과 물과 대화하는 듯한 그녀의 몸짓을 보자 왠지 모르게 몰입하게 되었다.

내가 알던 화려한 훌라의 번잡스러움을 빼고 담백하고 자연스러운 훌라의 정수만을 보여주는 그녀의 훌라춤은 하와이를 제주에 그대로 옮겨온 듯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아. 손짓 하나라도  저렇게 자연과 감응하는 것이 바로 훌라구나!

그 때 깨달았다.

 

바다로 향하는 길 양옆에 알록달록 생명의 찬란함을 뿜어대는 부겐빌레아가 있는 곳이라는 소개는 하와이의 모습 중 일부만을 보여주는 것이다.

부드럽고 천국 같은 바람이 불고 그 바람을 수화와 같은 훌라로 표현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하와이다. 할아버지 서퍼들이 아침 6시면 보드를 들고 나가 두런두런 얘기하면서 파도를 기다리고 저녁 때가 되면 모두의 얼굴이 살짝 로맨틱해진다는 와이키키 해변도 품고 있는 곳.

언뜻 관광지로서의 하와이만을 생각하고 상상하며 어떤 구경거리가 있을까에 집중해서 책을 읽어나가고 있었는데 바나나는 뜻밖의 면모를 발견해서 얘기해주었다.

하와이의 유명하다는 곳 하나우마베이에도 가보고 스테이크도 먹고 비숍 뮤지엄에도 갔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그저 친구네 집까지 걸어갔던 일이었다고.

 

열심히 지도를 보면서, 조금은 불안했던, 뜨끈한 바람 부는 밤길. 나무들은 사락사락 흔들리고 풀 향기가 났다.

갑자기 예쁜 건물들이 줄줄이 나타났고, 그 창문에는 거기 사는 사람들의 평화로운 저녁 한때의 분위기가 비쳐 있었다. 으악이 흐르고, 요리하는 소리도 나고, 얘기 소리도 들리고. 여기는 호텔에 묵는 곳이 아니고, 해수욕을 하는 곳도 아닌, 사람들이 사는 섬이구나, 처음 그렇게 생각했다. -122

 

우리는 여행을 떠나서 새로운 것을 보고 즐거워하지만 결국 그 여행지라는 곳도 똑같이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깨달음.

누군가에게는 생활의 터전이 누군가에게는 심신의 활력을 되찾아주는 충전소의 역할을 할 수도 있고, 뜬금없는 그리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보지 않고서는 쉽사리 할 수 없는 발상의 전환이 아닐까.

 

바나나는 하와이라는 섬을 어떻게 느꼈을까.

 

정작 나는 아무 애도 쓰지 않았는데, 너그럽게 품어주는 듯한 느낌. 하와이는 그런 섬이었다.

처음부터 친근하게 뭐든 다 보여 줄게, 하고 말하는 것처럼. -123

 

관광지로서의 하와이가 아닌 색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 있는 하와이 여행 에세이다.

바나나의 연륜이 묻어나는 신선한 글쓰기가 하와이를 더욱 이채롭게 빛냈는지도 모르겠다.

건강한 느낌의 훌라 댄서가 아닌 가녀린 몸의 우아한 노 여배우의 훌라 춤이 자꾸 생각나는 밤이다.

푸른 제주의 밤바다에 맨발로 우뚝 서서 그날의 바람을 느낀대로 표현하는 카마카니 손동작에 맞추어 이리저리 유연하게 몸을 움직이고 있을 것만 같다.

 

하와이에는 바다가 있고, 파도 소리가 있다. 훌라가 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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