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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어른이 되었습니다 - 마스다 미리 산문집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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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만 사용하고, 아이는 사양할게요.[어느 날 문득 어른이 되었습니다]

 

 

30대에서 40대로 갈 때에는 어떤 기분이 들까?

10대에서 20대, 30대까지 나이 먹는다는 것에 그다지 큰 의미를 두고 살아오지 않았기에 40을 코앞에 둔 지금, 이 질문을 한다는 것이 조금은 낯간지럽다.

20대가 인생의 꽃이라는 둥, 그래도 30일 때가 아직은 청춘이라든 둥. 나이 드신 분들이 조금이라도 젊은 사람들에게 항상 그 젊음을 부러워하며 아쉬움을 토로할 때가 종종 있다. 먼 훗날의 일이려니 하고 흘려들었던 것을 요즘은 새삼 꼭꼭 씹어삼키게 된다.

40이 될 때의 기분? 꼭 나이 40이 될 때는 어떤 의례라도 치러야 할 것처럼 밀어붙이는 거창한 질문이기도 하지만, 예전엔 하루만 콜록거리면 나았던 감기가 일주일 이상의 몸살로 이어지고 금방 한 말도 까먹고 다시 메모를 들여다보아야 하는 때가 잦아지면서 나이 40이라는 것이 커다란 관문처럼 내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섰다.

나이 40을 진지하게 생각해볼 것인가, 그냥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쿨 하게 넘겨버릴 것인가.

 

 

나이를 지칭하는 말들은 많이 있어 왔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동양의 성인 공자께서 일찍이 나이를 들어 한 말이 격언처럼 전해져 내려오고 나이를 일컫는 다른 이름이 되고 있다.

15세는 지학, 20세는 아예 거론되지 않고 있다. 30은 이립, 40은 불혹, 50은 지천명, 60은 이순, 70은 종심이라 했던가...

30에 나름대로의 뜻을 세워 40에는 더 이상 미혹되지 않는 나이가 되어야 한다는 뜻.

공자의 나이 계산법에 비춰보면 나는 아직도 마음은 여물지 않은 이팔청춘인데 그리고 귀도 얇은 팔랑팔랑 팔랑귀인데, 흔들림 없이 내 자리를 지키고 섰을 만큼 마음자리가 아직 단단하지 않은데...

그래서 40을 앞두고도 마냥 맥없이 가는 세월만 바라보며 시간을 까먹고 있을 뿐이다.

 

마스다 미리는 40대 초반에 이 책을 썼고, 아마 이 책이 발간될 즈음에는 44살이 될 거라고 했다. 독신이라서인지 아직은 일과 자기 자신에 많은 것을 할애한 듯이 보이고, 그러한 집중이 이런 독특하고 감성 넘치는 에세이를 탄생시키는 데 많은 힘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그녀의 감성 에세이를 읽으면서 든 생각은...

똑같은 병뚜껑이라도 재활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딸라 쓰임새가 달라지듯이 똑같은 나이 40을 재료로 글을 쓰는데도 그녀의 에세이는 뭐랄까, 재기발랄하고 통통 튀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흔한 생수병의 뚜껑은 그냥 닫아서 재활용 할 때 같이 휙 버리면 쓰임새가 거기까지이지만, 손끝 야무지고 독창적인 생각을 한 사람 손에서는 예쁘게 색을 입고 멋지게 빙그르르 도는 팽이가 되어 다시 태어날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빙글빙글 도는 예쁜 병뚜껑 팽이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할 수 있는데...’하고 나라면 이길 수 있다는 듯이조용히 말해보지만, 독창적인 센스를 지닌 사람에게 진 것은 진 것이다.

마스다 미리의 에세이도 물흐르 듯 소소한 일상의 에피소드들을 엮어나가 마치 한 사람의 내밀한 일기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누구나 그런 일기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부럽다면 부럽다고 말하자.

그래, 나는 마스다 미리처럼 그림도 잘 그리고 평범한 문장도 반짝반짝 빛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부럽다!!

 

 

 

 

마스다 미리가 창조한 ‘수짱’의 일상에는 무수한 나의 하루들이 녹아 있었다. 그리고 수짱은 지금 40대를 건너고 있는 중이다. '여자 아이에서 여자만 사용하고 아이는 사양할게요.' 라는 이 문장에 오랫동안 시선이 머물렀다.

차마 떠나보내기 싫은 내 마음 속의 어린 아이를 이제는 떠나보내고 ‘여자’만을 사용할 때가 되었다는 말.

 

마음으로는 알고 있었으나 직접 깨닫기는 정말 어려운 말이었는데, 이렇게 글로 씌어진 문장을 한 번 읽으니 그 말이 실제로 다가온다.

 

식사 모임을 제안하고 레스토랑을 고르고 코스 요리 가격을 정하고, 최종적으로는 얻어먹고 말았다. 이건 어른으로서라기 보다 인간적으로 어떻게 보일까...돌아오는 길에 너무 창피해서 길바닥에 주저앉고 싶어졌다. 아직 멀었다. 나는 아직 한참 멀었어, 하고 비관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28

  나도 조만간 저런 생각을 하면서 내가 가장 연장자일 식사 모임을 제안하고 훌륭히 치러야 할 때가 분명 올 텐데...그 때 가서 호스트 노릇을 제대로 못 하고 얻어먹는 꼴이 된다면...그 때의 나도 수짱처럼 창피하다고 느낄 것이다. 기모노가 잘 어울릴 수짱의 동그마한 어깨를 감싸안으며 위로해주고 싶어졌지만 나 역시도 비슷한 성격일 것이기 때문에 쿨한 척 “괜찮아~”하고 다독여 줄 수가 없다. 함께 길바닥에 주저앉는 것은 해 줄 수 있으려나.

 

 

아무리 그래도 팔자 주름 같은 건 남 일처럼 생각하고 싶은 ‘여자 마음’이다. -10

어쩜 이렇게 여자 마음을 단 한 줄로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나이를 담담하게 바라보지 않으면 저렇게 팔자 주름을 부처님 손바닥 안에 놓고 여유작작하게 말할 수는 없으리라.

 

실컷 놀았다. 실컷 놀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다음 날에는 마사지 예약을 해둔 용의주도함. 당연하지, 이제 열일곱이 아닌걸. 열일곱 살로는 돌아갈 수 없다. 어른으로 지내는 것도 즐거워서 별로 돌아가고 싶진 않지만. -85

어른으로 지내는 것도 즐겁다, 라...이 부분은 좀 동의하기 어렵지만 열일곱이 아니라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아! 슬프다.

 

 

아, 그렇다. 포장마차 하니 생각나는데 내가 축제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어른들이 군것질하는 모습이다.

누구에게나 이런저런 걱정이 있을 테지만, 그런 것을 잠시 옆에 내려두고 어른들은 야키소바를 후루룹후루룹 먹고 있다. -105

어쩜, 마스다 미리는 축제에서 군것질하는 하나의 에피소드마저도 흘려버리지 않고 글의 소재로 쓴단 말인가.

무언가를 먹을 때의 표정이라니...

나 같으면 먹는 데 있어서는 맛을 느끼는 데 집중을 해서 예전엔 심심했는데, 요즘은 짜게 느껴지네. 건강에 신경쓰고 있을 나이인가...라고 표현했을 텐데 말이다.

 

캐릭터 설정이 달라지지 않도록 작가와 함께 체중관리에 주의해야지 하고 배 둘레를 쓰담쓰담 하는 날들이다. -146

  나이 들어 어쩔 수 없이 고민하게 되는 나잇살. 마스다 미리는 수짱과 함께 하니, 자신이 뚱뚱해지는 것을 수짱에 빗대어 말할 수도 있겠구나~ 하며 잠시 부러워졌다.

배둘레를 쓰담쓰담 하는 것은 또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40대의 일상적인 모습이 되려나...

 

 

[어느 날 문득 어른이 되었습니다]을 읽으며 적어도 나이 40을 바라보는 일에 그다지 큰 고민을 해야하는 게 아니라는 것은 알았다. 여자아이에서 ‘아이’ 하나만 떼면 된다는... 그저 그 정도의 일을 해내는 것으로 생각하면 좋겠다.

무작정 천진난만한 “아이”를 떼어낸다는 것이 실은 가장 큰 아픔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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