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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기황후 - 전2권 ㅣ 기황후
장영철.정경순 지음 / 마음의숲 / 2013년 10월
평점 :
끝내 살아남다! <기황후>
월화 드라마가 한참 진행되고 있을 시간. 이리 저리 채널을 돌리며 뭔가 재미있는 것이 없나, 기웃거리고 있을 때였다. 내내 심드렁해하던 나의 눈에 고려의 충혜왕이라는 자가, 나는 이미 여자임을 눈치채고 있으나 그의 눈에는 남자로 보이는 양이를 자신의 처소로 불러 촉촉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장면이 걸려든 것은...
이미 몇 편 진행된 드라마 <기황후>였는데 나는 그제서야 보게 된 것이었다. 양이라는 아이는 충혜왕을 여자로서 연모하는 눈빛이었는데 충혜왕이 양이를 가까이 부르며 술을 청하자 괜스레 혼자 두근거려하는 모양이...내가 보기에 드라마의 초반부이기에 가능한, 아마도 그 “사랑이 싹트는” 장면임이 분명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한 눈에도 불청객으로 보이는 원나라의 황태제 타환이 양이를 부르며 둘만의 공간에 들어섰다.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충혜왕과 양이. 바야흐로 삼각 관계가 시작되려하는 순간인데, 중요한 것은 겉으로 드러난 ‘여자’가 없다는 점.
타환은 양이를 남자로 알고 있음이 분명한데 충혜왕은 양이를 여자로 알고 그러는지, 모르고 그러는지가 그 때 그 시점에 무지 궁금해졌었다.
급 호기심에 불타올랐던 나는 기어코 드라마 <기황후>를 1편부터 ‘다시보기’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꼬박꼬박 매주 월 화요일을 목빼고 기다리게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이렇게 책까지 챙겨 읽게 되었다. 드라마와 시기를 맞추어 드라마 작가이기도 한 장영철, 정경순의 책으로 <기황후>가 나왔던 것이다. 이 책은 장영철, 정경순 작가가 집필한 유일한 원작 소설이라고 한다. 그런데 또 얼마 안 있어 다른 작가의 <기황후>도 출간되었다는 소식이...<기황후>가 역시 요즘의 대세이긴 한 모양이었다.
총 50부작이었다는 걸 몰랐을 때에는 드라마가 20부가 다 되도록, 두 권으로 끝나는 책의 1권에도 못 미치는 내용이 전개되고 있어서 의아해 했었다. 책의 내용을 다 잘라내는 거야? 하면서^^
역시 기황후라는 인물은 쉽게 만나고 금방 헤어질 인물이 아님을 알겠다.
50부작이라니...
역사 소설이 드라마가 되어 막상 인물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고 거기다 그 드라마가 인기를 얻기라도 하면, 꼭 역사왜곡에 관한 시비가 붙기 마련이다.
그러나 기황후는 워낙에 자료가 변변찮고, 흔적이 없는지라 과연 역사왜곡 시비가 붙을 거리가 있을까? 라고 생각했건만,,,,역시나...
드라마를 통한 올바른 역사 인식을 기대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 역사적 사실 자체를 뒤집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지요. 가령 드라마 <기황후>에서 고려에 대한 기황후의 정치적 악행을 미화하거나, 문제가 많았던 충혜왕에 대해 ‘진취적’ 이미지를 덧씌우는 것은 명백한 역사 왜곡이며 이러한 왜곡은 자라나는 다음 세대의 바람직한 가치관 형성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입니다. 제아무리 창작의 자유가 필요한 영역이라도 역사를 대하는 기본 소양과 책임감에서까지 자유로워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지요.
[출처] [미디어 속 교육]역사 속 기황후와 사극 속 기황후 사이에서|작성자 천재이야기 일등쌤
책 속에서 작가들의 “작가적 상상”을 덧입은 기황후와 충혜왕은 거의 ‘영웅’으로 그려지고 있어 역사적 사실과는 많이 다를지 모르나, 드라마 속 인물로서는 가히 최고의 카리스마를 뿜어내고 있다. 일단 드라마로든 책으로든 기황후에 관한 사람들의 관심을 얻어내는 데는 성공한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나 ‘여성’에 대한 역사의 편향된 서술 태도, 혹은 ‘이긴 자들’이 누리는 왕관을 옹호하는 역사 서술 테두리 안에서 단 몇 줄의 혹평이나마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기황후를 당당히 주인공으로 내세운 점에 있어서 점수를 주고 싶다.
“고려의 국호를 포기하고 원나라의 성이 되는 것이 백성들의 고통을 줄이는 일일 터.”
순간 충혜왕은 타환의 뺨을 힘껏 후려쳤다. (...)
“경각에 달린 네 목숨을 고려가 구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고려가 지켜 주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그리고 정녕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원나라로 돌아가서 죽어라. 절대 고려 안에서 죽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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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여부를 떠나서 가슴이 후련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힘없는 조국 고려에서 원나라에 공녀로 끌려가게 된 한 여인이 대륙을 뒤흔든 황후가 되기까지...비록 팩션이긴 하나 책, 혹은 드라마를 보는 동안 나는 이 여인에게 완전히 매혹되고 말았다. 기황후는 지금 이 시대에 태어났다 해도 충분히 천하를 호령할 만한 여인이 아닌가. 역사의 재해석인가, 왜곡인가를 따지기 이전에 걸출한 인물로 다시 태어난 한 여인의 이야기에 속절없이 물개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순제는 기황후를 제1황후에, 아들 아유시다라를 황태자로 책봉했다. 그리고 자신의 환후를 치유하기 위해 기황후에게 섭정을 맡겼다. 이로서 기황후는 마침내 천하의 주인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첫 번째 조당회의가 있던 날, 기황후는 용상에 앉아 교서를 내렸다.
“더 이상 원나라 조당에서 고려의 입성론을 논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또한 고려의 공녀와 환관을 차출하는 것을 금할지어다!”
(...)
그 후로도 약 30년 동안 대원제국은 기황후의 실질적인 통치를 받았다. 그녀는 공녀로 끌려와 세계 최대의 영토를 다스린 유일무이한 여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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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호령하였으나 서태후나 측천무후 또한 그들의 업적을 제대로 평가절하 당하긴 마찬가지였다. 기황후 또한 그렇게 묻혀갈 뻔한 것을 작가의 펜에 힘입어 오롯이 살아난 것이 다행스럽다. 파란만장한 삶을 포기하고 싶은 적도 많았을 터인데 끝내 살아남아 이름 석 자를 남긴 기황후. 논의는 뒤로 하고 지금은 기황후의 모든 것에 흠뻑 빠져들고만 싶다.
마음의 숲 리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