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 범우문고 2
법정스님 지음 / 범우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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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쌀밥을 입에 넣고 오래 씹으면 단맛이 난다. 좋은 글도 그렇다. 한 번 또 한 번 자꾸 읽을 때 마다 활자들이 사탕처럼 내 영혼에 녹아내리는 경우가 있다. 이 작품도 그렇지 않다고는 감히 말할 수 없다. 흔히들 종교의 타성에 빠져들고 나면 신앙 측면에서 매우 보수적이고 비협조적인 측면이 타 종교에 대해서는 여지없이 부각된다고들 한다. 세상의 어떤 종교도 한 진리에 대한 탐구 방법에 있어서 다양하다는 차이밖에 없음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는 마치 산 정산은 한 곳 뿐이지만 그 곳에 이르는 길이 각양각색인 것처럼 말이다. 물론 절벽을 향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불교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자비는 어느 정도 추월적인 경우를 규정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행위로 인한 해탈이냐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이냐의 차이라고나 할까?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희생, 곧 내 이웃에 대한 헌신과 같이 뿌리까지도 내어 주려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같은 묵언의 진리가 내포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태어날 때 무엇을 쥐고 태어난 사람은 없다. 살아가면서도 마찮가지다. 단지 내 것인양 빌려다 쓰고는 죽을 때 되 돌려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무소유는 그래서 더욱 자유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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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문열 / 아침나라(둥지) / 199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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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 조선 후기의 풍류 시인이자 민중 작가였던 기구한 운명의 달관자. 김병연이라는 인물과의 개인적 만남은 단지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 아니라 인간과 체제와의 만남, 더 나아가 인간과 한의 만남이라고 감히 표현하고 싶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기는 과거에서 조부에 대한 질책을 시로 표현하여 장원 급제하나, 집에 돌아와 어머니께 자초지정을 듣고 심히 부끄러워 삿갓을 쓰고 방랑 생활을 했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본 작품에서는 이미 모든 사실을 알고도 대역 죄인으로 치부된 조부에 대한 증오로 인해 붓을 들었던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사회가 만든 희생양이었던 그는 천재적인 자질이 있는 문인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체제의 냉정한 외면과 괄시를 세상의 풍류로써 극복하려 했던 점을 깨달케 되면 묘하게 져미어 오는 아픔을 공감하게 된다.


작가는 설화적인 바탕에서 출발한 이야기 골격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는 객관적 시각을 통하여 시인의 정신적 충격과 고뇌의 승화, 성숙 의식으로의 도약이라는 내용 및 흐름의 경향에 따라 세가지로 구분하여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주로 조부의 정치적 결단이 당시 홍경래의 난과 맞물려 어떠한 위치를 차지했었는가에 대한 부정적 견해, 긍정적 견해 및 절충적 견해로 구분짓는 새로운 논문식 역사 소설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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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의 기술 - 머리보다 손이 먼저 움직이는 (양장본)
사카토 켄지 지음, 고은진 옮김 / 해바라기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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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일본은 세계적 수준의 실용서 대국이다. 심지어는 자살을 도와주는 서적도 있다니 말이다. 그것은 어쩌면 일본인들은 매우 실용주의적 삶과 직결되어 있는 현상인지도 모른다. 사카토 켄지의 글은 메모만큼이나 매우 간결하면서도 실사구시하기에 알맞다. 부제로 붙은 '머리보다 손이 먼저 움직이는'이라는 표현이 그렇게 적절할 수가 없다. 최종적인 결론은 메모란 습관이라는 명제로 귀결될 수 있다.


각각의 장은 목차에서 부터 핵심적인 주제어를 제시하고 있으며, 책장마다 매우 요긴한 수준의 요약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실제 생활에서 우리들이 쉽게 범하기 쉬운 망각의 늪을 아주 쉽게 벗어 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내용에서 부터 자신의 팔 범위 내에 필기도구를 마련함으로 메모할 환경을 조성하게 해주는 지혜도 아울러서 제시하고 있다.


메모의 우선순위에 따라서 분류하는 기준도 좋았지만, 형식에 치우치기 보다는 정보 전달
에 주력한다는 의미에서 각종 기호 또한 활용하는 자세를 강조하는 것이 특히 좋았다. 메모는 잊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기본 논리는 현대 사회의 복잡한 일상 문제를 효율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결국 잊어야만 할 내용이 어느 순간에는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내용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예시를 통해서 메모의 기술을 전개하면서 특히 눈여겨 볼 만한 사항은 각자의 개인
별로 응용해 낼 수 있는 틈새를 확보해 준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에 대한 확신에 찬 결행과 활용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최우선적으로 메모의 생활화가 된 사람이 얻게 되는 것은 단지 두뇌를 대신하는 비서로서의 메모가 아닌 자기실현의 좋은 도구로서의 메모로 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메모는 다양한 삶의 흔적과 인생의 소중한 파편들로  구성된 모자이크로 지나온 과거의 발
전적 토대를 구성해 낼 수 있도록 해준다. 실용서는 모두 얕은 수준뿐이라는 편견만 지워낼 수 있다면 이 책은 그 어떠한 심오한 도서보다도 풍요로운 미래를 제시해 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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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의 슬픔 - 1992 제16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박일문 지음 / 민음사 / 199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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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강한 자만이 살아 남는다. 그래서 나는 내가 미워졌다. 브레히트의 시명과 같은 이책의 내용은 80년대의 역사의 소용돌이와 갈등을 그리고 있다. 나, 라라, 디디, 어머니가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전부이다. 심한 강도의 갈등 구조도 없으며, 극적 전환도 없다. 문체는 매우 산만하지만 통속적인 소설 형식을 탈피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신선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색깔을 가지므로 그 선명함과는 관계없이 구별되어지는 개성이 있다. 이는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조화를 이루며 사회를 이루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불협화음은 마치 진리처럼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임을 역사는 증명한다. 그 소용돌이에 라라는 희생되었고, 주인공과 디디는 피해자라고 오히려 말 할 수 있다.


갈등은 방황을 낳았고 결국 성숙으로 열매 맺게 되지만 그때까지의 고통은 불가피하다. 강한 자만이 살아 남는다는 약육강식의 비정성에는 사랑이 있을 수 없다. 인간은 사랑으로 살아 갈 때에만 죽음에서 조차 희망적인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너무 많이 똑똑하다는 착각만으로도 세상살이 여러 장애를 체험한다.


작고 둥근 돌은 덜깍이는 법! 우리네 인생살이 또한 그러하지 않은가? 살아있다는 그 이유만으로 내 자신을 미워 할 수 있다는 것은 결코 겸손도 역설도 아니다. 단지 삶이 그렇게 만들어 줄 뿐이다. 어떠한 모습으로 남든지 웃을 수 있어야 한다. 죽은자의 몫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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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수수께끼 - 마빈 해리스 문화 인류학 3부작
마빈 해리스 지음, 박종렬 옮김 / 한길사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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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왜'라는 질문없이 받아들여지는 상식이 많다. 그러다 보면 일종의 선입관이 새로운 지식에 대한 수용능력을 철저하게 말살시켜 버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데 결과적으로 이러한 속단이 초래한 지식화의 부산물은 기형적 가능성이 크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들과는 거리가 먼 진실이 원래부터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면하게 되면 아주 배타적으로 거부하려는 반작용을 보인다. 그러다보면 객관적 진실은 사라지고 자신의 설명체계가 만들어낸 껍데기를 알맹이로 오인하는 불상사가 반복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마빈 해리스의 <문화의 수수께끼>는 문화적상대주의를 통해 본래의 진실을 복원시켜준다는 의미에서 남다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이책을 통해서 마빈 해리스는 우리들이 너무도 간단히 속단하거나 상식선에서 비교적 쉽게 마침표를 찍어버리는 타문화현상에 대해 '아니오 그것은 정말 아니오!'라며 정수지침을 놓고 있다. 유구한 세월을 통해 인간은 고도의 합리적, 논리적 사고체계를 바탕으로 찬란한 문화양식을 이뤄왔다. 그러나 그중에는 선진문화의 논리라는 편견으로 말미암아 도저히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수수께끼같은 문화현상이라는 문제들이 산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인류학자들은 그 해결점을 일명 '양자택일적 이론'에서 찾으려하고 있다. 그들의 설명체계에 따른다면 열의 일곱은 설명 가능하지만 나머지 세가지의 미제는 여전히 남게 된다. 마빈 해리스는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접근하는 방식은 '역지사지'하는 입장에서 지엽적인 내용보다는 전체적인 거시적 관점을 확보한 이후에 해결책을 모색한다는 설정이다.

그의 관점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의 본성이니 불가사의한 수수께끼니, 신비로운 정신 영역 안에 머물던 문화적 현상들을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근거를 통해 설명됨으로써 눈 앞을 가리던 불투명한 의혹을 말끔히 제거하는 명쾌함을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마빈 해리스가 좀더 중요하게 주장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과학 문명이라 부르는 것이 과학적 객관성을 지닌 올바른 인식을 통해 발전해 왔다기보다는 인간의 무지와 공포, 갈등이라는 의식의 한계를 적당히 이용하면서 변형되었고, 이에 따라 전쟁이나 기아, 남녀차별, 고문, 착취 등을 정당화시켰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가 비판해야할 것은 우리 사회의 비합리적 태도라고 분명히 못박고 있다. 사실 이부분이 그가 과학적 합리주의자의 색채가 너무 강하다고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마빈 해리스는 생활양식의 수수께끼는 결국 과학적 논리로 규명되어야함 역사적인 발전을 꾀할 수 있다고 단정짓는다. 그는 책을 통해서 인간의 선입관이 초래한 문화양식의 난제를 새롭고 다각화된 시각을 통해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그로 인해 확대된 인식의 정립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의 이와같은 주장은 과연 그 합리적 논리를 통한 본질적 접근이 확보하는 객관성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지는 여전한 미제로 남을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시대를 맞아 점점 더 많은 새로운 정보의 홍수속에서 보다 심층적이고도 근본적인 접근을 통한 정보 선별이라는 감각을 일깨워준 마빈 해리스의 공적을 결코 가볍게 치부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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