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예수는 없다 - 기독교 뒤집어 읽기
오강남 지음 / 현암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예수는 없다' 그 옛날 유럽 중세시대였다면 오강남 교수는 돌에 맞어 시신 위로 돌무덤이 생겼을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가 아직 개발도상국이라는 닉네임이 항상 따라 다니던 70~80년대 개신교 부흥기 때 였더라도 복날의 개처럼 잡혀 질질 끌려다닐 정도의 파격적인 책 제목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유연한 신앙심이 부족한 시대에 원로 비교종교학자는 우리게게 무엇을 알려주고자 했을까? 여기에는 어쩌면 '예수를 믿는 것보다 훨씬 더 문제인 것은 잘못 믿는 것이다. 예수를 바로 믿지 않는다면 차라리 믿지 않는 게 낫다.'라는 그의 말이 어느 정도 답이 되어주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1 부는 맹목적인 신앙관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한국인들의 사회심리학적 기질 중에 하나로 지적되는 '모' 아니면 '도'라는 극단적 입장론을 분명히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종교에서 감성은 성화 단계까지 이르게 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요소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계몽주의 시대에 걸쳐 진일보한 이성의 기능은 우리를 더이상 신비주의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과학적 세계관을 심어주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종교에 대한 믿음 방식이 옳은 것인가 아닌가는 분명히 이성의 잣대로 제단되어져야 한다.
2 부는 오늘날 대부분의 개신교에서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성경의 '축자영감설'에 대한 경계 메세지를 보내고 있다. 성경 저자들이 성령의 감화되어 오탈자 없이 성경을 기록하였다는 '축자영감설'은 특히 외국어 번역가들에게는 아주 어처구니 없는 맹신 중에 맹신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바벨탑 파괴로 부터 시작되었다는 언어 단일성의 파괴는 오늘까지도 무수히 많은 언어로 퍼지고 있다. 국가와 민족간의 지적 교류에 하나인 번역 과정을 들어다 보자. 그 과정에 참여하는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빠질 수 밖에 없는 번역상의 오류를 늘 존재한다. 성경 또한 같은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성경에 대한 옳바른 이해는 결코 오탈자가 없다는 믿음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생명의 말씀을 지금, 바로 여기에서 어떻게 적용해 나가면서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 나갈 수 있느냐 하는 진지한 성찰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다.
3 부는 우리가 은연중에 믿고 있는 잘못된 신관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다. 실제적 다신론, 실제적 무신론, 부족신관, 율법주의적 신관, 조건부 신관 등 각 개인의 주관성이 녹아 있는 신념에 따라서 얼마나 변질된 신관을 갖을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묻고 있다. 기독교 신자라면 누구나 '하느님 아버지' 라고 기도 중에 많이 부르고 있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러나 성을 결정 지을 수 없는 신에게 과연 걸맞는 호칭인지 분명히 따져보고 넘어갈 문제다. 개인적으로 신의 존재에 대해서 한 때 '불가지론'에 깊이 빠져들 때가 있었다. 개념이 가지는 초월성을 생각한다면 신은 분명 언어로 표현되어질 존재도 아니고, 사유의 영역을 넘어 설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 깊은 좌절에 빠질 때도 있었다. 그러나 반대로 신은 증명 되어져야만 믿을 수 있는 존재인가를 생각해 보면 오히려 그것은 더 어리석은 짓임을 깨달았다.
4 부는 이 책의 주제에 관한 이야기로 되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에 대한 잘못된 선입관과 편견을 하나 하나 예를 들어 설명하면서 원래는 다른 진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다. 종교는 오랜 시간을 걸쳐 오는 동안 그 시대의 가치에 따라서 다양한 변화를 겪어 온다. 문제는 그러한 변화가 해당 종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경우로 종교가 갖는 원형의 가치가 손상될 가능성이 증가한다는 점이다. 그 누구도 독학으로 공부해서 믿고 싶은 종교를 선택하지는 않는다. 거의 대부분의 종교는 도제교육처럼 선경험자가 얘기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기독교의 목사나 사제의 입을 통해서 전해 듣는 이야기는 신자들에게 매우 강력하게 작용한다. 회의적 자세가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다. 언제나 의심하고 그 의심의 한계를 끊임없이 넘어설려고 노력하는 신앙인의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마지막 5 부는 지금, 여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제시하고 있다. 어느 시대 어떤 종교든 사회구성원들에게 심리적, 사회적 기능이 작용하고 있다. 종교는 대중이 원하는 바를 충분히 충족시키면서도 사회적 윤리에 역행해서는 안된다. 기독교의 가장 큰 미덕은 신이 인간을 사랑하여 믿는 누구에게나 구원을 베풀어 준다는 점이다. 오해의 여지가 있기도 하는데, 구원이 너무 내세지향적이면 현실적 가치를 너무 쉽게 평가절하할 수 있고, 반대로 구원이 아주 현세지향적이면 기복적 신앙관에 빠져버릴 위험이 커져버린다. 더블어 종교적 제국주의자의 자세도 분명 경계해야 한다. 하느님의 나라를 실현한다는 일념으로 전도에만 신경을 쓴다는 의도는 좋지만 지하철에서 '예수불신지옥'이라고 쓴 빨간띠를 두른 열혈신자때문에 최소한 눈살을 찌푸리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기독교 뒤집어 읽기'라는 부제가 붙은 오강남 교수의 '예수는 없다'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기독교인이라면 한번쯤 읽어보아야 할 수작임에는 분명하다. 내용적 깊이를 유지하면서도 일반 대중들의 관심을 유발하는 도발성도 적당하니 말이다. 의식있는 신앙인이 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별다르게 발칙한 내용이 없는 교양 수준으로 알고 넘어가야할 기독교론이라는 점을 꼭 이야기하고 싶다. 하나님은 성경만 주신 것이 아니다. 자신의 신앙 좌표를 점검케 도와주는 책도 읽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