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도교수가 우리학교에 출강을 나오는 날.
그냥 오시라 하면 되지만
워낙 지극정성인 나는 모교에 가서 교수님을 모시고
다시 모셔다 드리는 일까지를 한다.
그래야 가고 오는 데 선생님이 심심하지 않고 교통비를 포함한 경비를 내가 내드릴 수 있다.
물론 그건 꽤 피곤한 일인데,
오늘은 안좋은 일마저 겹쳤다.
1. 복사기
내가 낸 논문이 외국잡지에 실렸다.
그걸 내 업적으로 등록하기 위해서는 논문과 목차를 복사해 학교에 내야 하는데
우리 학교엔 그 잡지가 없다!
오늘 모교에 간김에 그걸 빌려다 복사를 하려고 했는데,
두페이지째 복사를 하는데 사무실 복사기에 종이가 걸렸다!
사무실 아가씨는 내가 고장냈다고 눈을 흘기고-억울하다!-
자기가 고쳐 보려고 하다가 안되겠다며 수리센터에 사람을 부른다.
할수없이 도서관 복사실까지 잡지를 들고가 복사를 했다.
2. 친구
해부학 전공인 친구와 난 공동연구를 하는데
오늘 아침 9시에 그 친구와 만나서 샘플을 받기로 했다.
근데 친구의 방문이 닫혀있고 전화도 안된다.
10시 20분 차를 타려면 9시 40분엔 나가야 하므로
친구에게 열심히 휴대폰을 걸면서 친구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9시 38분, 극적으로 친구와 연락이 됐는데
늦잠 잤다고, 지금 가고 있단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흘린 내 땀은 지금도 복도에 말라붙어 있다.
3. 변소
친구를 찾아 헤매는 와중에 급한 일이 생겨 화장실에 갔다.
별 생각 없이 물을 내렸는데...
막혔다. 올 들어 두번째다.
네번 다섯번 물을 내려봐도 허사기에
뚜껑을 닫고 잽싸게 밖으로 나왔다.
아는 친구한테 이 얘기를 했더니 혀를 차면서 이런다.
"막는 놈 따로 있고 뚫는 사람 따로 있냐? 니가 뚫었어야지."
말은 맞지만 좀 억울하다.
난 시간이 없었고
더 중요한 이유로 지난번 사태 땐 내가 과식을 한 책임이 있지만
이번엔 그런 것도 아니라는 거다.
우리나라 변소들, 진짜 문제가 많다.
영양이 좋아진 지가 언제인데 우리나라 변기는 우리가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그 시절에 맞춰져 있다.
그 정도도 내려보내지 못한다면 강호동 같은 사람이 와서 이용하는 경우
어떻게 감당하려는가?
잠깐 흥분했다.
오늘 일은 통산으로 따지면 스물한번째다.
4. 비
수업이 끝나고 서울로 가려는데 지도교수가 이런다.
"비가 올 것 같은데 우산 있나?"
"오늘 저녁부터 온다니까 괜찮을 거예요."라고 말하며 그냥 가자고 했다(사실은 우산이 아까워서...).
가는데 택시 안에서 이미 비가 온다.
역에 도착했을 땐 더 많이 온다.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우산을 챙길 걸 그랬지...할 수 없지. 사야지."
달랬다. "서울은 비 안올 거예요."
서울역에서 선생님과 헤어졌는데 거기도 비가 온다.
선생님이 우산을 샀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홍대역에서 집까지 비를 맞으며 왔다.
저녁까지만 기다리다 오지, 왜, 도대체 왜 4시 반에 비가 오는 거야?
할머니 생신이라 몇명이 모여 저녁을 먹으러 나간다.
오늘의 액운은 여기까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