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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
전민식 지음 / 북폴리오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13월 당신은 안녕하신가요?
"몇 해 전 여름, 동네 지인들을 만나 술 한잔 걸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흥겹지만은 않았던 술자리였습니다......
그러곤 담배 한 대 태우고 들어갈 요량으로 집 앞 나무 벤치에 앉아 있었습니다.
담배를 꺼낸 후 막 북을 붙였는데, 덥지도 않은지 검정색 양복을 차려입은 남자 셋이 제 앞에 딱 서더군요.
사내들은 제 이름을 말한 후 맞느냐고 물었습니다." - 361page 작가후기
"이 시대에 사는 한 이런 감시 속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경계하지 않으면 제가 제 자신조차 믿지 못하게 되는 끝없는 구렁텅이로 떨어지게 되겠지요,
그게 가능해진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미 이런 일이 흔하게 되어 버렸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안녕하신가요?" - 364page
책을 읽기 전에 작가후기에 눈이 갔습니다. 그리고 그가 들려주는 실제 이야기에 소름이 끼쳤습니다.
어느 날 동네 지인들과 술 한잔 걸치고 있는 차에 왠 남자 셋이 나타나 저자를 잡아채 차에 태웠습니다.
안대로 눈을 가리고 수갑을 채운채 끌려간 곳은 영화 속에서나 봤던 취조실이었습니다.
왜 끌고 왔는지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이유모를 심문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협밥도 곁들어집니다.
그들은 저자가 언제 통화를 했는지, 어떤 말을 나누었는지, 어디서 만났는지, SNS의 글들까지도
소소한 것들 하나하나를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방금 전 TV 속 CF문구가 눈에 들어옵니다.
커피를 몇명이 마시고 있고 어떤 걸 몇명이 하는지 알고 있다는 말.
당신이 뭘 좋아하는지 알고 있다는 말.
그런 것들이 갑자기 선명해지면서 뒷통수를 사정없이 때리고 마는데요.
누군가 맘만 먹으면 내 생활 패턴이나 일상은 여지없이 드러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범죄가 일어났을 때 용의자의 지난 행적을 스마트폰을 통해 알아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메신저의 내용들도 알 수 있다고 하는데요.
내가 무심코 남기고 다니는 기록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것도 참 무서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아직까지 악용하지 않고 있기에 외면하고 있지만 가까운 미래에 또 어떤 식으로 무서운 현실로 자리잡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13월 이 책은 작가의 그런 실화를 바탕으로 당신은 안녕하신가요?라는 물음을 던집니다.
당신이 모든 것을 낱낱이 지켜보며 관찰하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수인은 재황이라는 남자를 일년째 관찰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정부산하의 비공식 기관에서 일합니다. 재황이라는 남자에겐 위치 인식기가 체내에 이식되어있습니다.
위치 인식기를 통해 대상의 위치를 파악하고 수인은 24시간 재황이라는 남자를 관찰하고 기록만합니다.
재황에게 들키지않게 거리를 두고 제 3자의 입장에서 관찰만합니다.
재황은 고아원에서 자랐지만 공부를 열심히 해서 명문대에 들어갔습니다.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남는 시간엔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며 겉보기엔 아무일 없는 성실한 하루를 보냅니다.
그 무료한 일상을 관찰일지에 쓰고 연구소로 보내는 단조로운 일상을 수인은 보내고 있습니다.
수인이 재황을 관찰하기 훨씬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그를 관찰했다고 합니다.
일년을 채 못채우고 그만 둔 사람도 있고 삼년을 채우고 떠난 사람도 있습니다.
수인은 관찰대상자에게 감정을 갖지 말라는 전 관찰자와 상부의 지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게 재황이라는 남자에게 관심을 갖게 됩니다.
24시간 그의 모습을 관찰하게 된 수인은 재황을 그 누구보다도 가깝게 느끼게 됩니다.
어느 순간 그의 일상이 자신의 일상이 되고 그가 느끼는 것이 그녀가 느끼는 것이 되버리고 맙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어두운 과거를 기억하는 친구 광모가 찾아옵니다.
광모는 고아원시절 같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친구입니다.
하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어린 시절을 함께한 친구이기도 합니다.
PC방 간판을 걸고 불법 성매매를 하고 있는 광모는 명문대 여대생을 연결시켜달라며 재황에게 명함을 돌리라고 협박합니다.
재황은 어떻게든 어두운 현실을 벗어나려고 노력하지만 그럴수록 그에겐 시련이 닥쳐옵니다.
벗어나려고하면 할 수록 점점 광모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 계속됩니다.
관찰자인 수인이 점점 무너져가는 재황을 위해서 뭔가를 할 것 같았지만 끝까지 제 3자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에 안타까웠습니다.
결국 현실은 어쩔 수 없다는 뜻일까요.
재황이 관찰대상자가 되야했던 비밀과 그 결말이 정확하게 언급되지 않아서 아쉬운 점이 남습니다.
수인과 재황의 연결고리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고 허무함으로 남아서 더욱 그런 느낌이 듭니다.
선명한 끝을 보여주지 않고 아직도 진행중 인 것 같은 느낌에 섬뜩함이 남아있습니다.
고아원에서 자란 재황과 광모의 과거 이야기는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의지할 곳없는 아이들을 왜 그렇게 모질게 대하는 것인지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모든 고아원이 그렇게 운영되는 것은 아닐테지만 가족의 품에서 자라는 것만큼 따뜻하진 않다는 것은 분명할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접할때마다 정말 안타깝기만합니다.
개인정보 수집에 동의하시겠습니까?라는 문구에 이제는 함부로 YES라는 버튼을 누르기가 망설여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