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아리아 조아하우?   -응  

회사에서 만난 후배(수 년전에 퇴사했지만)인데 가끔 이런 문자를 한다. 특별한 날이라고 부러 챙기거나 정기적으로 만나는 친구는 아니지만, 저렇게 맥락없이 선호를 물어오고 또 물어보곤 한다. 그래서 좋다. 그래서 관계가 더 자연스럽고 자유롭달까. 그리고 나는 이렇게 뜬금없이 물어오는 근황과 관심이 더 반갑다. 무튼 그이는 나보다 훨씬 더 집요하고 끈기도 있어서 뭐 하나를 좋아하면 파고드는 깊이가 나랑은 차원이 다르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서로 중첩되는 부분이 많다. 감정이 공감하는 자리도 비슷해서 크게 무리하지 않아도 기쁘게 나눌 수 있다. 이렇게 친한 사이인데도 어이없이 생일을 꼭 한달 후로 착각해, 딴엔 생각한답시고 축하인사를 보내는 그런 사이. 그런데 또 그 어이없는 짓에 서로 박장대소하며 깔깔댈 수 있어 좋다.   

어쩌다 다른 얘기가 길어졌다. 그래서 한다발의 아리아를 보내면서, 메일 끝에 박완서님의 부고를 들으니 문득 그이의 소설들이 다시 읽고 싶어졌다고 했다. 왠지 나도 아련하고 가슴이 아려 집에 돌아와 책장을 살펴본다.  

'너무도 쓸쓸한 당신'의 단편들을 다시 읽어봤다. 지금에사 다시 곱씹어보니 읽는 내내 가슴이 저릿저릿하다. 노년의 삶에 관한 이야기들이었구나. 지지리궁상의 노년의 삶을 그려놓은 게 아니다. 노년만의 당당한 삶이 있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또 한편으론 원래 사는 게 그런 거라고 다독거려주는 듯하다.  

예전엔 자식의 심정에 더 감정이입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제는 그 부모된 이에게 더 맘이 기운다. 이제 겨우 6살, 4살 아이를 둔 엄마인데도 그렇다. 자식가진 부모로서의 맘이라는 게 아이가 크고 내가 더 나이 먹더라도 크게 다를 것 같지가 않다. 나도 나이가 들면 저렇겠거니. 소설에 등장하는 자식이 특별히 불효자식이라 그런게 아니라 자식입장에선 이해할 리가 없는, 이해할 수가 없는 저런 감정들을 나도 겪겠거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식으로서의 내 모습도 같이 오버랩됐다. 엄마에게 다다다다..해대던 '직언형' 동생에게 '그러지 말지'라고 충고하던 큰언니의 말이 조금 이해되려고 한다.  

박완서님을 글을 읽으면 가슴 속에 잔잔한 출렁임이 인다. 문학적인 감동은 떼어놓더라도, 오랜 세월을 잘 살아낸 어른에게서 베어나는 연륜과 능숙함에 대한 감탄이랄까 인간됨에 대한 경외심이랄까 그런 것들 말이다. 내가 저 나이 됐을 때 저이처럼 따뜻한 시선으로 편견없는 마음으로 환하게 웃고 있을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왔느냐를 나타내주는 징표. 얼굴. 환하게 웃고 있는 박완서님의 얼굴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문득 이 세상에 그이가 없다는 게 안타깝고 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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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1-02-16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완서 선생님의 <너무도 쓸쓸한 당신>을 읽으며 저도 연륜과 능숙함에 대해 감탄했었어요. 경외심도 생겼구요. 박완서 선생님의 작품이 우리 곁에 남아 다시 또 읽을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싶은 마음이 들더라구요.^^


북극곰 2011-02-16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반갑습니다. / 그렇죠? 새삼스럽게 요즘 다시 읽고 있어요. <그 남자네 집>을 보고 있는데, 예전엔 몰랐던 시댁과 며느리의 심정까지도 온전히 공감하고 있다지뭡니까? ^^

꿈꾸는섬 2011-02-17 01:30   좋아요 0 | URL
시댁과 며느리의 심정, 앗, 그런 부분도 있었군요. 저도 집에 있으니 다시한번 찾아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