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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ㅣ 한길그레이트북스 58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지음, 이기숙 옮김 / 한길사 / 2003년 12월
평점 :
이 책에서 19세기 독일의 사학자 부르크하르트는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의 문화, 예술, 종교의 모습을 제시하여 그것에 나타난 근대성의 뿌리를 밝히고 있다. 경제적 안정 위에 고대 로마 문화를 모델로 각 개인의 자존심이 성장한 것이 이 시기를 그 전 중세와 이후 서양근대를 구획짓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자아확장에 대한 열망과 윤리적 제약을 벗은 인간의 모습은 예술과 문화에 대한 관심의 증가와 사치와 쾌락에 대한 세련된 경쟁을 시작하게 한다.
아름다움과 멋에 대한 현대적 가치가 여기에서 시작된다. 실용이 아닌 패션적 관점의 옷과 집, 매너와 말솜씨. 인간은 각 개인으로서 이 세상에서의 인생에 집중할 때 이러한 부분들을 발전시켜 가는 존재인것을 다시 드러낸 것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발전하다 전쟁으로 밖에는 그 재정적 소모를 지탱할 수 없어 붕괴할 수 밖에 없었던 이런 경향이 경제적 부의 산출과 무역과 자본의 축적이라는 전쟁 이외의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지탱할 수 있게 되면서 또 다시 비약적 발전의 계기를 갖는다.
르네상스의 의미는 이런 자본과 인간 본래의 성향이 결합된 문화의 형태가 이 시기 이후 지금까지 왕정과 근대 식민국가, 현대 기업국가에 이르기까지 한번도 그치지 않고 이어져 세계로 파급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적 미술 음악 무용 조각에 대한 이해와 그것에 주어지는 예술적 경제적 사회지위적 가치들이 이 시기에 만들어지고 다듬어지며 기틀을 마련했다. 요리의 세련됨, 축제의 계급압력의 카타르시스, 국가지원 사업, 공동체 만들기, 국가간의 경쟁과 광기들이 이 시기에 이르러 그 모양이 세련되고 의미를 갖게 되는 이유는 각 개인이 갖는 특성들이 천재적으로 표출될 기회가 주어진 이 시대의 분위기 때문이다.시대는 천재를 필요로 하고 천재는 시대 안에서만 꽃피울 수 있었다. 그들은 거친것을 아름다움으로 제련하는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 시기의 여성의 자아가치가 성장하는 것은 국가의 경제적 발전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각 개인이 중요하고 가정에서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여성의 지위는 상승하며 여성의 지위가 보장된 곳에서만 지속적 경제 발전의 모티브인 안락과 아름다움과 세련됨에 대한 수요는 지속된다. 여성적 가치의 증가는 자본주의의 유지와 확장에 필수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르네상스적 문화의 등장이란 힘이 아닌 비폭력적 비남성적 인간 가치의 등장이다. 법과 경제 규범과 자본 증식과 유행과 사회적 수준이란 그래서 여성적 성격을 갖는 가치들이며 그 여성이란 사회적으로 용인된 힘을 갖는 여성성을 의미한다. 안정된 체계는 스스로 내분을 일으켜 내부폭력에 희생되지 않고, 또 다시 로마를 멸망시켰던 외부 야만족의 폭력으로부터도 보호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여성적 힘이란 정치력이며 외교력이다.
이 체계 아래에선 종교는 더 이상 그 원래의 가치를 갖지 못하는 자리에 선다. 즐거운 인생, 멋있는 사교에서 종교는 대중 권력 획득의 수단이나 생계를 위한 도구가 되어간다. 잘 살게 되고 좋은 지위가 주어지며 유쾌한 사람들이 떠들석하게 하지만 난잡하지 않게 놀아준다면 우리는 자연스레 친구들과의 관심과 오락에 더 마음이 가는 존재다. 명분이 필요한 종교 밖에는 남지 않는다. 종교자체를 위한 포교와 명분을 위한 세 늘리기. 아니면, 되도 않는 자기 신격화이다. 고행적 분리적 종교를 통해 남과 다름을 종교 안에서 찾으려는 노력으로 다른 옷 다른 집, 다른 문화를 가지려 한다. 우리 신앙의 타락이 벌어지는 자리. 종교가 직업이 되거나 나의 포장을 위한 틀로만 극단적 형태를 취하는 것이다. 종교개혁의 기치는 이런 부분들을 다소나마 극복하려 했지만 나중에는 결국 르네상스적 기치 위에 선 현대 문화 앞에 또 다시 똑같은 반응들을 보인다. 칸트가 말하는 이성의 한계 내의 종교도 낯 부끄럽지만 이런 초월적 종교로의 도피도 창피한 일이다.
인간이 각 개인으로 존중받을 가치를 갖는 것을 그 외양이나 치장으로 여긴다면 그리고 그런 토대 위에 자신을 이해한다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종교란 삶의 전반과는 분리된 세련된 사교활동, 봉사활동이 아니면 극단적 자기 희생 행위나 외양적 분리 행위로 밖에는 드러나지 않는다. 르네상스적 가치가 아닌 인간 본래의 아름다움, 장식하지 않아도 되는 깊은 아름다움을 각 개인 안에서 발견하고 그것을 타인에게서도 찾으려하는 방법은 어쩌면 꽤 큰 반란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인간을 외모로 보지 않는다는 것. 너무 힘든 반란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