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현대인.
쟈크 엘룰, 윤종석 역. 도서출판 두레시대. 1993
Prayer and Modern Man, 1970, 1973
두레공동체에서 출간하고 전문 번역가인 윤종석씨가 번역한 엘룰의 1970년 저작이다.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에서 엘룰이 제시한 기술사회에 대한 대안은 [다른 삶] 그리고 [기도] 였다. 손에 잡히는, 뭔가 왕창모여서 으싸으싸하는 대안에 익숙한 나로서는 오잉~하는 표정을 짓게 만드는 대안이 아닐 수 없었다. 기도가 내가 아는 그 기도가 아닌가부지?
그 기도가 아니었다(!) 그래서 엘룰은 책 머리를 [이 책은 경건서적이 아니다]로 시작하고 있다. 기도는 자연적 기반이나 동기를 갖지 않는다. 종교적 기반도...아니다(!) 언어로서는 설명불가능에 빠진다. 그는 기도해야 할 이유를 계명에서 찾는다. 율법이 아닌 우리 각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음성으로서의 계명, 기도는 그 응답이다. 커뮤니케이션은 계명에 대한, 즉 말씀에 대한 순종, 자유로운 순종으로 시작된다. 그분이 계신 것과 그분을 찾는 자에게 응답하심을 알고 부르는 믿음위에 기도가 가능하고 기도는 나머지 모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하나님께 가능하게 한다. (말씀, 기도, 믿음이 하나이다)
현대 기술사회, 유기(버려짐)의 시대에서 이 믿음은 극단적 신뢰를 요구한다. 그래서 현재 우리에게 기도는 전투가 된다. 산만한 마음, 효용가치(하나님은 높은 수준의 소비거리인가?), 소유(우리 손에 쥐어지는 것은 뭐냐?)가 우리 자아 안에서 기도를 불가능케 한다. 종교적 기도의 틀이 혹은 비종교적 탈기도의 틀이 우리 기도를 어리둥절한 것으로 만든다. 순종하여 기도하는 것은 치열한 전투다. 그래서 차라리 기적이다. 결과를 모르고 기도한다. 결과를 확인할 수 없어도 한다. 내가 기도로 살아있게 되는 것만을 안다.
우리는 그분의 약속을 붙든다. 하나님의 나타나심... 아버지로 부른다. 총력전이다. 그분이 없으면 내 존재는 無로 돌아간다. 하나님께 우리 현실에 온전히 가담하라고 부른다. 그 일은 우리의 자기헌신을 요구한다. (여기부터 힘들다) 하나님과 대면하여 자기를 걸고하는 기도는 나에게 너는 끝까지 나와 같이 갈 수 있는지 묻는다. 기도는 위험하다. 하나님을 움직이려 한다. 내가...겁도 없이... 정작 가만있을거면서...
그러나, 우리는 기도를 한다.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해...국가의 평안을 위해(국가가 하나님 역할을 않도록), 운명과 어리석음에 처한 사회를 위해, 우리는 하나님앞에 순종하고 충성한다. 기도는 종말의 하나님나라가 오늘이라는 시간으로 들어오게 한다. 기도할때 우리는 이 상대적 현실과 성취될 궁극적 목표 사이에서 깨어있게 된다. 오염될 수 밖에 없는 행동은 기도로만 진정한 행동이 된다. 상대를 상하게 하는 폭력으로 밖에는 행동은 결말지워질 수 없지만, 폭력의 대치물은 기도이외는 없다(얼마나 많이 경험하는 일인가). 이런 미약한 순종(기도)과 그 결과의 행위로 그분은 우리와 역사를 만드시고자 한다. 파스칼의 [숨겨진 말씀]이 드러나고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과 연결된다. 행동은, 기술은, 애씀은 無다.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 우리를 그분의 계획과 의미로 부르신다.
이 책을 읽고 요즘 새벽에 주기도문만해도 눈물이 쏟는다. 눈물에 휩싸여서는 안되겠지만, 그분 향한 내 마른 마음이 녹는 건 사실이다. 아버지시다. 나를 사랑하신다. 그리고 내 존재의 의미를 그분 앞에 느낀다. 한편 두렵고 떨리는 일이다. 기도를 알게 된다. 그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