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음향과 분노
윌리엄 포크너 지음, 정인섭 옮김 / 민족문화사 / 2000년 1월
평점 :
절판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종종걸음으로 하루하루를 기어,
기록된 시간의 마지막 음절까지,
그리고 우리의 지나간 날들은 우매한 자들에게
먼지뿐인 죽음으로 가는 길을 비추어 왔도다. 꺼져라, 꺼져, 덧없는 촛불이여!
인생이란 기껏해야 걸어다니는 그림자,
자신의 시간 동안 무대 위에서 뽐내고 안달하다가
그리고 영영 사라져 버리는 가련한 배우.
그것은 백치가 지껄이는 이야기, 헛소리와 분노(sound and fury)에 가득 차,
아무런 뜻없이. [맥베드]
부서지는 가정, 부서지는 가치, 혼돈의 세계. 그것은 남부의 몰락이고 인간사회의 몰락이며 근본적으론 서구 도덕과 가치의 몰락이다. 아무도 이런 가치의 전복과 까발려진 더러움을 수습하지 못한다. 여기서 인생은 이제 헛소리와 분노에 찬 외침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벤지의 통곡 앞에서 작가는 깊은 절망과 연민을 느낀다고 말한다. 서구의 몰락한 가치 위에 사는 이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으나 그리 살 수 밖에 없다. 그 앞에 서서 시간을 부정할 수도, 양심을 부정할 수도, 심지어는 동료인간의 모든 면을 저급한 것으로 몰아부칠 수도 있다. 포크너가 본 것은 그 시초와 종말의 모두였고 깊은 연민을 느낀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직도 구원의 가능성을 가진 이 서구의 전통 가치를 보존하고 있는 것은 이 사회의 억압받으며 노동을 부당하게 요구받는 흑인노예들이다. 백인의 사회가 거부하며 섞이려 들지 않는 존재. 아직도 백인들은 백인 이민들을 통한 백인들끼리의 근친상간만이 그들을 지킬 길이라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백인의 자멸을 불러올 것이다. [나는 처음과 끝을 모두 보았다.] 이제 포기하거나 악착같이 살아가거나 멍하니 응시하거나...끝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가치를 잃은 존재들이다.
어쩌면 결국 백인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지옥이다. 벤지의 후각과 관련된 슬픔, 아버지의 냉소적 불가지론적 알콜중독, 어머니의 도피적 무기력증, 퀸틴의 자의식적 고통과 자기정죄와 자포자기, 제이슨의 현실적 이기주의적 비양심적 처세술. 이제는 무기력한 그러나 잔인한 이 세상의 일상이 된 모습들이다. 그 무엇도 이 가족의, 남부의, 이 나라의, 또 세계의 파멸을 저지하지 못할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딜시는 [나는 시작과 끝을 모두 보았다.]고 말한다. 깊은 연민으로 챙겨주는 일 밖에 남지 않은 세상. 우리도 이미 그 길에 들어서 있다. 들어선 자에게 파국적인 끝은 불가피하다.
이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일하는 사람과 일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일하지 않아도 됨이 저주라면 누가 믿을까? 나 자신에 대한 심한 모멸감을 느낀다. 일하지 않고 사는 삶에 대한 벌거벗겨짐...노예를 부리는 자는 스스로의 타락과 스포일링을 막을 수 없다. 만약 자신이 하여야 할 일들을 하려들지 않는다면 그 댓가를 각오해야 한다. 나에게 책임이 주어진 직업과 관계로 짜여진 역할들. 부모, 가족, 선생, 제자, 아들, 인간으로서의 일들은 사실은 축복이었다. 노동하지 않아도 되는 삶, 그 이면에는 노동하는 자의 고통이, 나의 스포일링이 있었다. 그대로 둔다면 끝은 파국이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포조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안락을 댓가로 한 생명이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