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뭐 영화볼 때 '이건 데자뷰겠거니' 생각하시면 아무 문제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것멋 잔뜩 든 화면발에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토니 스콧'이란 감독 이름이 어쩐지 어울리는 것 같더니만, 아니나 다를까, 톰 크루즈가 똥폼으로 먹고 살던 시절의 '탑 건' 감독이었다. 두꺼운 안경을 쓴 외톨이 우등생들이나 좋아할 만한 쟝르인 SF와 비보이나 익스트림 스포츠맨같은 멋쟁이 근육맨 젊은이들의 영화에 어울릴 것 같은 토니 스콧의 만남이라니... 근데, 요즘은 이런 잡탕 퓨전이 그리 신기할 것도 없다. 특히나 완구와 SF, 액션, 그리고 마이클 베이의 경악스러운 만남인 '트랜스포머'에 비한다면야...
SF 자체만 놓고 보자면, 꽤나 허술하다. 어떻게 웜홀 너머의 광경을 그저 중계만 해 줄뿐인 스크린에 레이저 포인터를 쐈다고 그게 과거 사람들을 놀라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칼린이 과거로 가서 손대는 많은 것들(이를테면 'u can save her')이 영화 전반부의 현재에는 그대로 남아 있으면서도, 쿠체버의 시신은 도대체 왜 있는 거지? 뭐, 이런 불만들이 심심챦게 떠오른다.
나는 웜홀을 통한 과거 관찰은 가능할 것이라고 보지만 과거로의 여행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큰 이유는 '에너지보존의 법칙'.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로의 여행이 가능하다면 그게 말이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하나는 과거로의 여행이 현재에 이미 반영되어 있다는 것으로, 이 영화의 중요한 설정 중 하나다. 또 하나는 과거로 가는 순간 또 하나의 평행우주가 형성되면서 '바로 그' 현재와는 다른 현재가 형성되리라는 것. 이 역시 영화의 중요한 설정이다. 그런데 잠깐, 이 영화는 양립하기 힘들어 보이는 두 가지 설정을 필요에 따라 편리하게 적당히 얼버무려서 써먹고 있다. 치졸한 기회주의적 플롯이다.
어쨌거나 평행우주론을 생각해 보면 칼린의 목숨건 과거로의 여행만치 허무한 것도 없다. 그가 과거로 가서 자신의 사랑과 해군 군바리 및 그의 가족을 영웅처럼 구했기로서니, 그가 출발했던 현재는 어쨌거나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의지를 가지고 과거로 뛰어들어 간 진짜 칼린은 죽고, 진짜 칼린 때문에 살아난 가짜 여자와 진짜 칼린의 희생으로 미녀를 얻게 된 가짜 칼린만 좋게 된 것이다. 음, 그러고 보니 '바로 그' 진짜 현재는 칼린을 잃게 되었으니, 오히려 손해라고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