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상의 토론에서 흥미로운 안티 테제를 발견했다. 그 안티의 대상은 바로, '일제가 조선의 정기를 막기 위해 민족의 명산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주지의 사실(?). 이에 대한 오 마이 뉴스의 기사 하나를 옮겨 온다. 사견임을 전제하고, 꽤 설득력있는 의견이다. 언제 한 번 읽고 싶어지는 책이다.

 

 

  이윤기(ymcaman) 기자   

2005년 한국인의 반일의식을 가장 자극하는 사건은 무엇이었나?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역사교과서 왜곡문제,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최근에는 한센병 환자 보상 문제 그리고 재일교포 문제에 관심 있는 이들은 우토로 문제를 떠올릴 수 있겠다.

그런데 <반일 민족주의를 넘어서>의 저자인 박유하는 우리 국민의 일상의 반일의식을 자극하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일제가 민족의 정기를 누르려고 전국 방방곡곡의 명산마다 박아놓은 '쇠말뚝'이라고 보았다.

오마이뉴스 기사를 검색해보니 올 해만 하여도 지리산(10월 3일 오마이뉴스)과 남한산성(11월 6일 오마이뉴스)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서 일제의 쇠말뚝을 뽑아내고 민족정기를 바로세우는(?) 성대한 행사가 개최되었다. 쇠말뚝을 제거하는 사람들은 "일제가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명산마다 한민족의 정기를 끊으려고 아울러 명산으로부터 시작되는 민족의 정기를 누르려고 쇠말뚝을 박았다"고 한다.

박유하는 '일제 쇠말뚝 사건'을 왜곡되고 맹목적인 반일 이미지 확대의 대표적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우리의 반일 담론이 항상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이고 논리적이기보다는 비약적이었으며 심지어는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허상을 둘러싼 비판"이었으며,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민족정기를 말살하는 일제의 쇠말뚝 뽑기'라는 것이다.

쇠말뚝 뽑기는 '일제가 쇠말뚝을 박았다'는 사실(事實)에 대하여 史實(사실)검증을 하지도 않고, 국민 모두가 사실(史實)로 믿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국의 산에서 쇠말뚝을 뽑을 때마다 반일의식과 적대감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독립기념관에도 전시되었다가 지금은 수장고에 보관된 일제의 쇠말뚝에 대하여 박유하는 "문제는 쇠말뚝이 박혀 있었다는 점 자체보다도 누가 어떤 목적으로 박았는가?"를 규명하여야 하는데 이 일을 하는 사람들도,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역사적 검증을 시도하지 않고 기정사실로 받아드리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이다.

해방 60년이 된 올해에도 '쇠말뚝 제거운동'은 정말로 일제가 박은 것인지, 무슨 목적으로 왜 박은 것인지에 대한 진실은 규명은 뒷전으로 밀어두고, 최초의 증언인 백운산 산장 할머니의 증언(열여섯 살 때 일본인이 박는 것을 보았다는 증언)에만 근거하여 국가적 '운동'이 되고, 공무원들의 '실적'이 되었으며 유수한 신문과 방송매체를 타고 안방으로 전해져서 시청자들의 반일의식과 적대감을 키웠다는 것이다.

전국의 명산마다 발견되는 쇠말뚝 제거를 "한국은 '민족정기'라는 이름의 망령에 씌어 '역사바로세우기'라는 이름으로 전설과 소문을 사실(事實)화하여 사실(史實)이라는 '역사 새로 만들기'에 나서고 있었던 셈"이라고 비판하였다. 또한 밝혀지지 않은 일본의 '의도성'을 조장함으로써 반일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박유하는 풍수설에 휘둘리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풍수설을 믿는다면, 수 센티미터 지름의 쇠말뚝보다도 산등성이 자체가 파헤쳐져 끊임없이 아파트로 변하는 상황부터 걱정해야"하며 "그 중에 '명산'은 없는지, 혹여 민족정기가 서린 '정수리'를 잘라내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하라"고 한다.

이이화와 같은 역사학자 역시 "민족정기 말살론에 대하여 근거가 없는 말이며 지도나 해도를 작성하기 위한 것"이었을 거라고 하였다는데, 근거 없는 풍수설에 현혹되어 더군다나 풍수설 자체를 믿지도 않으면서 아무런 의심 없이 반일 민족주의에 편승하여 분노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책을 읽는 도중에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심지어 "경부선 철길을 놓을 때도 평지 대신에 일부러 산허리를 끊어 철길을 놓았다"며 분노하던 풍수론자들이 전국의 산허리를 잘라서 만드는 고속도로와 고속전철을 왜 반대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스님이 생명을 걸고 천성산 터널공사를 반대할 때에 '민족정기'를 걱정하는 풍수론자들은 왜 아무 말도 없었을까? 천성산의 민족정기와 관련이 없는 산이었을까? 고속전철을 타고 서울로 가다보면 수도 없이 많은 터널을 지나가게 되는데, 그 많은 터널은 '민족정기'와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일까?

풍수설을 믿지 않은 많은 사람들과 나 같은 사람도 언제부터인가 일본이 우리나라의 '정기'를 끊으려 했다는 설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것이다. "일본을 부정적으로 보는 몇몇 지식인, 그들의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왜곡을 확인하거나 의심하는 일 없이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고 확대 재생산해온 언론매체, 그리고 그런류의 보도들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인 우리 자신이었다." 나 역시 이러한 과정에 편승하여 민족정기를 말살하는 일본의 음모에 분노하며 내 안의 반일 민족주의를 키워왔던 것이다.

투철한 반공교육과 반일교육을 받아오면서 자라서 반공교육의 굴레는 힘겹게 벗어났지만, 반일교육의 틀을 벗어나보지는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반일 민족주의를 더욱 공고히 하였던 것이다. 한 번도 의심해보지 않고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를 역사바로세우기를 받아들였고, <일본은 없다>를 보며 쾌감을 느꼈으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읽으며 민족의 자긍심을 느껴왔었다.

박유하의 <반일 민족주의를 넘어서>를 읽고 나서야 '민족정기 말살'하는 쇠말뚝과 철심제거를 바로 볼 수 있게 되었고, 오래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읽으면서 느꼈던 쾌감에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분풀이 소설'같은 끔찍한 일이 생기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박유하의 <반일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원래 <누가 일본을 왜곡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2000년에 출간되었던 책을 2004년에 제목을 바꾸어 다시 출간한 책이다. 평론가 김규항은 작가 박유하에 대하여 "이따금씩 괜찮은 학자를 만나면 그것처럼 반가울 수가 없다. 관점이나 의견에 차이가 나더라도 세모를 세모로 네모를 네모로는 보는 눈만 있다면 충분히 기쁘다"고 평가하였다.

<반일 민족주의를 넘어서>를 읽다보면 일본에 대하여 세모를 세모로 네모를 볼 수 있는 눈을 키울 수 있다. 일제의 쇠말뚝 문제뿐만 아니라 총독부 건물 철거에 얽힌 '진실 혹은 거짓'(?)과 <노래하는 역사>의 허구성을 <일본은 없다>의 왜곡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황당무계함과 일본문화에 대한 편견과 오해와 무지를 깨닫게 되었다.

지난달 강제철거의 위기에 처한 재일동포 마을 우토로를 다녀오면서 만약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같은 '통쾌한' 일이 현실에서 일어난다면, 70만 재일교포에게는 얼마나 '끔찍한'일이 일어날까를 상상하면서 몸서리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은 박유하의 말처럼 미래를 위한 책이며, 타자와의 공존을 모색하는 책이며 지금도 반일교육과 민족주의 교육을 받고 있는 젊은이들을 오만과 편견에서 벗어나 지혜의 눈으로 타자를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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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뭐 영화볼 때 '이건 데자뷰겠거니' 생각하시면 아무 문제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것멋 잔뜩 든 화면발에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토니 스콧'이란 감독 이름이 어쩐지 어울리는 것 같더니만, 아니나 다를까, 톰 크루즈가 똥폼으로 먹고 살던 시절의 '탑 건' 감독이었다. 두꺼운 안경을 쓴 외톨이 우등생들이나 좋아할 만한 쟝르인 SF와 비보이나 익스트림 스포츠맨같은 멋쟁이 근육맨 젊은이들의 영화에 어울릴 것 같은 토니 스콧의 만남이라니... 근데, 요즘은 이런 잡탕 퓨전이 그리 신기할 것도 없다. 특히나 완구와 SF, 액션, 그리고 마이클 베이의 경악스러운 만남인 '트랜스포머'에 비한다면야...

SF 자체만 놓고 보자면, 꽤나 허술하다. 어떻게 웜홀 너머의 광경을 그저 중계만 해 줄뿐인 스크린에 레이저 포인터를 쐈다고 그게 과거 사람들을 놀라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칼린이 과거로 가서 손대는 많은 것들(이를테면 'u can save her')이 영화 전반부의 현재에는 그대로 남아 있으면서도, 쿠체버의 시신은 도대체 왜 있는 거지? 뭐, 이런 불만들이 심심챦게 떠오른다.

나는 웜홀을 통한 과거 관찰은 가능할 것이라고 보지만 과거로의 여행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큰 이유는 '에너지보존의 법칙'.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로의 여행이 가능하다면 그게 말이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하나는 과거로의 여행이 현재에 이미 반영되어 있다는 것으로, 이 영화의 중요한 설정 중 하나다. 또 하나는 과거로 가는 순간 또 하나의 평행우주가 형성되면서 '바로 그' 현재와는 다른 현재가 형성되리라는 것. 이 역시 영화의 중요한 설정이다. 그런데 잠깐, 이 영화는 양립하기 힘들어 보이는 두 가지 설정을 필요에 따라 편리하게 적당히 얼버무려서 써먹고 있다. 치졸한 기회주의적 플롯이다.

어쨌거나 평행우주론을 생각해 보면 칼린의 목숨건 과거로의 여행만치 허무한 것도 없다. 그가 과거로 가서 자신의 사랑과 해군 군바리 및 그의 가족을 영웅처럼 구했기로서니, 그가 출발했던 현재는 어쨌거나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의지를 가지고 과거로 뛰어들어 간 진짜 칼린은 죽고, 진짜 칼린 때문에 살아난 가짜 여자와 진짜 칼린의 희생으로 미녀를 얻게 된 가짜 칼린만 좋게 된 것이다. 음, 그러고 보니 '바로 그' 진짜 현재는 칼린을 잃게 되었으니, 오히려 손해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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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이 빙글빙글 소용돌이를 이루더니 허리케인으로 변하는 그림... 하나의 이미지로 훌륭하게 정리된 엘 고어 출연 환경 다큐멘터리 영화의 스토리다. 그러나 주연이 빠져 있다. 1900년대에 걸쳐서 아래로 꺾이거나 위로 치솟아 오르는 각종 시계열도가 그것. 주연은 알래스카에서 땅이 얼어서 트럭이 지나다닐 수 있는 연중일수의 감소를 아주 침울하게 연기하다가도, CO2 농도의 최근 변화를 연기하는 대목에서는 폭발적으로 에너지를 분출하며 관객을 놀라게 한다. 결국 이 영화 포스터는 매우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 주며 관객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던 주연을 싣지 않는 실수를 범한 것.

조연들의 연기는 더욱 인상적이다. 경악스러운 양의 빙하를 다이어트했음을 화면분할을 이용한 비포 & 애프터 비교를 통해 실감나게 보여 준 세계 각지의 산, 계곡 들. 그들의 다이어트 수기는 '지구 사우나'가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눈물겹도록 처절하고 비참하게 보여준다. 이어지는 특수 효과는 아이슬란드나 남극 일부의 얼음이 완전히 녹았을 때 상하이, 네덜란드, 방글라데시, 맨하탄이 해수에 가라앉게 되는 상황을 시뮬레이션하는데, 이건 전통시절 평화의 댐 운운하며 국회의사당이 물에 잠기는 상황을 연출했을 때의 공포 정도와는 그 스케일이 다르다.

주연, 조연 배우들의 맹활약과 큰 돈 들이지 않았을 것 같지만 효과는 굉장한 특수효과에 비해, 나레이션을 맡은 고어는 약간 실망스럽다. '환경운동가'하면 떠오르는 호리호리한 체구와는 거리가 먼 전형적인 정치인 스타일의 거구에, 툭하면 전용 리무진에서 생각에 잠기는 모습은 이런 환경 다큐멘터리와는 양립하기 힘든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심지어는 핵잠수함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도 있으니... 화석연료를 이용하는 자동차는 절대 타지 않고 자전거만을 이용한다는 영국의 어떤 운동가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밟으며 생각에 잠긴 모습을 한 번만이라도 보여주었더라면 이런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진정성'에 흠결을 주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긴, '한 때 대통령이 될 뻔한 인물'이라는 '가오'가 중요하기는 했겠지...

대선 홍보용 프로파겐다 영상물 냄새가 썩 개운치는 않지만, 그리고 '불편한 진실'을 너무 '편하게' 보여준 것 같다는 느낌도 있지만, '불편한 진실'은 그냥 추천하는 정도가 아니라 꼭 한 번쯤은 봐야하는 영화다. 그리고 사실을 말하자면, 프로파겐다 냄새가 풍기고 편하게 볼 수 있는 이 영화의 특징이야말로 다른 환경관련 저작이나 영상물에서 찾기 어려운 이 영화만의 미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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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7-06-22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봐야겠군요. 그런데... 어디서 볼 수 있지요?

딸기 2007-06-22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사서 봐야 하는 것이로군요

전자인간 2007-06-22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것이 이 영화의 '불편한 진실'중 하나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사지 않고는 보기 어렵다는 것. (아, 사기도 쉽지 않더군요!) 다행히도 저는 회사 도서관에서 500원에 빌려서 보기는 했습니다만... ^^;;
 

'찰리와 초콜렛 공장'으로 유명해진 로알드 달의 단편집. '찰리...'를 볼 때도 느꼈던 바, 로알드 달의 기괴한 새디즘이 곳곳에 드러난다. (그래서 드는 생각은 어째서 '찰리...'가 '가족영화'로 인식되고 있을까이다. 이건 마치 '판의 미로'가 어린이용 판타지처럼 선전되는 것에 비견될 수 있다고 본다.)

로알드 달은 거의 모든 단편에 걸쳐 마지막 페이지에서 극적인 반전을 꾀하면서 주인공을 한없이 떨어지는 롤러코스터에 태운다. 예외는 '정복왕 에드워드'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 정도인데,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면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정복왕 에드워드'의 경우에는 예외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아무튼 굉장히 치밀한 마술을 보는 듯한 단편들이어서, 매일매일의 양식으로 삼기보다는 간혹 디너쇼에 간다는 생각으로 일주일에 한 편 정도 소화하면 될 듯하다. 매일매일 같은 형식의 반전을 경험하다 보면 반전되지 않는 일상생활이 더 기묘해 보일 수도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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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8-07-26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지금 <정복왕 에드워드> 읽다가 이해 안가서 서재에 뭐 올라온 거 있나 찾으러 왔는데.. 뭘까요?

전자인간 2008-07-29 10:38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하이드님..
<정복왕 에드워드>의 비밀을 알게 되시면 꼭 알려주시길... ^^
 

1995년작 독일 저예산 영화... 최신 헐리웃 블록버스터와 대척점에 있는 듯한 이런 영화를 이제야 보게 된 것은 최근에 DVD가 출시되었기 때문. '짝퉁 바톤 핑크'라는 오해를 살 수도 있겠지만, 'Keiner liebt mich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가 원제다.

여성판 '서른 즈음에'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쓸쓸하고 씁쓸한 인생전환기의 우울을 그린 짙은 회색 영화인 것처럼 시작되지만, 파니 핑크와 오르페오와의 우정-사랑이 무르익어 갈 무렵에는, 특히 오르페오가 해골로 분장하고 에디트 피아프의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를 립싱크하며 파니 핑크의 생일을 축하할 무렵에는, 화사한 핑크색이 도드라져 보이는 무지개색 영화로 탈바꿈한다. (사실 주인공 이름 '핑크'의 철자는 Pink가 아니라 Fink다. 그냥 그렇단 얘기. 그리고 '무지개색'을 언급한 것은 의도적이다. 이것도 그냥 그렇단 얘기. ^^)

부가영상을 보면서 처음에는 이 영화의 감독이 여성이란 사실에 놀랐지만, 찬찬히 다시 생각해 보면 여성이 아니라면 만들기 힘든 영화가 아닐까 한다. 핑크를 귀엽고 사랑스럽게 그리기는 했어도 '욕망의 대상'으로 설정하거나 하지는 않았으니까. 30대 초반에 봤으면 흠뻑 반했을 법한, 묘하게 쿨하면서 사랑스러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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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7-18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20대 후반에 이 영화 본 것 같은데요.
여성은 남성처럼 서른 즈음을 어렵게 보내지는 않아요.
저만 그런지는 몰라도 오히려 마흔 즈음이 훨씬 힘들었어요.
지금도 약간은 흔들리고 있지만 서른 아홉 살 가을에 서른 즈음에를 계속 끼고 살았을 정도니까요.

저는 이 영화가 그다지 와 닿지 않았어요.
아마도 님께서 말씀하신 부분을 이제서야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요.
지금 이 영화를 다시 본다면 에디뜨 삐아프의 노래를 같이 흥얼거리며 흠뻑 빠지지 않을까 싶네요.
영화는 언제 보느냐도 많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재미는 정말 철저히 주관적이어서 남이 재밌다고 나도 재밌다는 보장이 없다는 거에요.
그냥 그렇단 얘기.

전자인간 2008-07-22 18:26   좋아요 0 | URL
다소 의외네요.. 여성이 남성보다 서른 즈음이 훨씬 힘들거라 생각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아직 오지 않은 마흔이 너무 두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