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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수치심 - 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감정들
마사 너스바움 지음, 조계원 옮김 / 민음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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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사고에 담긴 감정 - 평등한 인간성에 대한 공적 신화

혐오와 수치심 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감정들,

마사 너스바움 저, 조계원 옮김, 믿음사, 2015.

 

이성의 힘을 믿는 자, 당신은 근대적 인간이다.

 

인간의 사고(思考)에는 감정이 담겨있다. 과거 상처 준 사람을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회피했던 적이 있다. 좋아했던 사람을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호감을 불러일으킨 사람도 있다. 똑같은 행동을 해도 호의를 가지고 바라보면, 달리 보인다. 감정을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성이 동원된다. 나름대로 근거를 만들어 감정에 치우친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한다. 이러한 과정은 무의식적 선택으로 이루어진다. 사태를 의식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감정에 호소하는 경우, 누군가에게 상황은 불공정해질 수밖에 없다. 나를 현재 분노하게 하는 대상은 과거의 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대중의 마음을 움직여 수치심과 혐오를 불러일으키면 죄 값은 얼마든지 커질 수 있다. 집시, 유태인, 장애인에게 느끼는 감정이 그들을 아우슈비츠로 내몰았다. 이때 침묵은 암묵적 합의다. 그들은 혐오의 대상, 공공의 적이었다. 루소와 밀은 모두 공정한 제도가 안정되려면 시민의 심리상태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보았다(40). 무사무욕적인 판단으로 사태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누구도 없다. 3자의 시선으로 보편적인 가치를 기준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회는 인간을 서열화해서 특정 계층을 오염되어 있고 혐오스러운 집단으로 단정(159)한다. 특정 집단(계층)은 다른 집단과 구별되는 혐오의 대상이다. 혐오는 주체와 대상을 구분 짓는 기준이 된다.

 

마치 자신은 죄인을 처벌할 기준을 말할 수 있을 만큼 도덕적인 것처럼 스스로를 기만한다. 법이 마치 사회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인류 보편의 가치를 담고 있는 것처럼 착각한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실정법은 시대의 패러다임을 반영한다. 법은 취약한 집단의 사람을 낙인찍는 일에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정상성으로 포장된 사람들의 수치심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그들의 인권은 사라진다. 이십대 여성을 잔인한 살해한 오원춘, 의붓딸을 성추행하고 살해한 남자는 피의자 신분에서 모든 매체에 얼굴이 공개되었다. 그들은 피의자임과 동시에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법적 판단에 감정이 실리고 양형 선고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법 윤리학자인 저자 미사 너스바움(Martha C. Nussbaum)은 심리, 철학, 역사를 가리지 않고 전 방위적으로 혐오와 수치심을 탐색한다. 정치적 자유주의 관점에서 도덕 수준의 타당한 불일치를 인정하는 것이 훨씬 평등하다고 주장한다. 롤즈의 정의론이 전제하고 있는 이성적인 사람 사이에서 불일치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법은 양형에 혐오와 수치심을 활용한다. 낙인과 구별 짓기가 팽배한 사회에서 혐오와 수치심이 법적 잣대에 영향을 미친다면 이것은 감정이 아니라 특정 집단을 배척하는 사회적 무기가 된다.

 

서문에 저자가 책을 쓴 의도가 잘 나와 있다.

 

내가 원하는 사회가 완전히 성취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이 인간성을 인정하고, 인간성을 감추거나 회피하지 않는 사회다. 또한 자신이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취약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전능함과 완전함을 추구하는 것이 공적, 사적 측면에서 인간의 많은 불행을 초래해 왔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를 과도하게 추구하지 않는 시민들로 이루어진 사회다(42).”

 

너의 힘으로 날아올라 봐. 그리고 약점을 감추는 법을 배워.(317)“

 

합리적 주장이라고 믿는 밑바탕에 혐오와 수치심이 깔린다. “우리가 올바르다고 여기는 것을 위반했음을 논증 없이 바로 직관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정상으로 수용되는 행동을 벗어났을 때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이성으로 강제하지 않는 한, 불결한 상황을 보면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감정이 일어난다. 빈곤, 장애인, 성적 소수자와 같은 취약한 계층에 있는 이들과 마주칠 때, ‘정상인이라는 지배적 위치에서 존재를 들어 낸 그들에게 불쾌함을 느낀다. 암묵적으로 그들이 눈에 띄지 않게 존재를 숨기기를 원한다. 의식적으로는 인권이 선택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심정적으로는 수치심을 떠올리게 하는 대상과 마주치고 싶지 않은 숨길 수 없는 감정이 있다.

 

너스바움은 롤즈의 정치적 자유주의에 입각하여 감정이 어떻게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다양한 역사적 사실과 판례를 바탕으로 사회적 소수자가 법 적용 감정에서 감정을 활용한 이중처벌을 받고 있음을 증명한다. 다수의 가치가 소수의 가치보다 정당하다고 말하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너스바움의 입장에서 사회적 동질성을 추구하기 위해서 다양성과 자유를 희생해야 한다는 것은 다수의 폭력이다. 수치심과 혐오가 법적 규제의 근거가 된다면 상호 존중을 헤치게 된다. 개개인이 동등하게 존중받는 사회에서 혐오와 수치심이 법적 잣대로서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603). 두 감정으로 낙인찍지 않고 인간의 존엄을 보호하는 품격 있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1. 범죄 혐의자의 개인적 권리에 대한 윤리적 딜레마

 

혐오와 수치심은 사유애에서 나타나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철학적 측면에서 누군가는 앞서 가고, 누군가는 뒤 따르고, 누군가는 후퇴한다. 완전한 인간성은 신화에 불과하다는 마사 너스바움의 주장에 동의한다. 반면 개개인의 도덕성의 편차가 누군가를 범죄의 희생양으로 만드는 케이스와 마주할 때,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누구도 피해자의 심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 점이 저자의 주장을 100% 지지하기 힘들게 한다. 범죄 혐의자의 개인적 권리가 침해당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문제는 늘 딜레마를 야기한다. 물론 저자 또한 그 점을 간과하지 않았다. 윤리학적 딜레마에서 인간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섬세하게 분석한다. 죄인을 다루는 방식에서 수치심과 혐오가 어떻게 활용되는지에 대한 충분한 통찰을 제공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평등한 인간성에 대한 공적 신화(42)”가 죄에 대한 형벌에 결정적인 변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2. 아이 수준의 평등 담론

 

평등만큼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기본권이 없다. 자유권, 참정권, 사회권 등 모든 기본권은 평등하지 않고 실현 불가능한 필요충분조건이다. 자유와 평등은 대척점에 있거나, 충돌하는 가치가 아니다. 평등하기 위해서 자유는 필수 조건이다. 모든 사람이 자유롭기 위해서 평등은 전제 조건이 된다. 소극적 자유 & 적극적 자유로, 국가로부터의 자유 & 국가에의 자유가 함께 공존하는 것은 둘 관계가 상보적이기 때문이다. 롤스의 주장처럼, 어떤 상태에 놓이게 될지 모르는 탄생 이전의 상황이라면, 최소 수혜자에게 유리한 사회를 구성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 것이다. 누구나 장애를 가지고 있고, 잠정적 장애인이며, 불행을 통제할 능력이 없는 인간임을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약자를 고려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불행을 대비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사족 1 > 식욕과 성욕이 별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한다. 그 둘의 비교가 흥미롭다. “성욕은 식욕보다 감정과 유사한 면이 많고, 관념적이다. 이런 점에서 성적 포르노는 사회적 삶에서음식 포르노보다 상대적으로 큰 영역을 차지한다(65).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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