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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 유동하는 근대 세계에 띄우는 편지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조은평.강지은 옮김 / 동녘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배제와 과잉, 그 역설의 세계에 관한 사회학 보고서,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지그문트 바우만, 동녘, 2012. 8.

 

커피 전문점에서 커피를 사이에 두고 두 남녀가 앉아서 스마트 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다. 한 사람이 커피를 가지러 간 사이에도 남은 한 사람은 기척이 없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식당에 어린 아이 세 명이 앉아 있다 부모님이 음식을 가지러 간 사이에도 세 아이는 색색의 닌텐도 기기를 들고 게임에 집중해 있다. 부모가 운전하는 차의 뒷좌석에 앉아서 아이들은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겼으리라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나는 지난 주 금요일 출장을 갔다가 세미나실 서랍에 핸드폰을 두고 왔다. 주말과 주일의 스케줄은 하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만나기로 한 약속이 취소되었다는 문자를 받지 못해서 두 시간을 약속 장소에서 기다렸고, 누구도 만나지 못한 채 급한 연락이 올까 염려스러워서 조바심으로 이틀을 보냈다. 앞서 이야기한 이 모든 사례가 모두에게 낯설지 않으리라. 우리를 연결하는 접점이 사람과 사람이었다면, 이제는 사람과 기기를 사이에 무수한 (익명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 반유대 캠페인의 여파로 국적을 박탈당한 채, 영국에 정착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Zygmunt Bauman)은 “무료함 속에서 결실을 일구는 법”을 잃어버리고, 지루함과 지속적인 것을 참지 못하는 현대인에게 지극한 마음으로 마흔 네 통의 편지를 보낸다. 몇 년 후면 구순이 되는 노학자는 여전히 촌철살인의 언어로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모순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저마다 개성 있는 삶을 살고 꿈꾸지만, 경쟁은 평준화를 조장한다. 전 지구적인 자본의 낚시질에서 자기 세계를 주장하며 주체로 살아남기에 개인은 너무도 무력하다. 현대인은 가볍게 공간을 넘나들며 유목하며 살아가는 듯하지만, 그것은 자본이 기획하는 마케팅에서 한 발작도 나아가지 못한 선택일 때가 대부분이다. 홈 패인 공간을 벗어난다는 것은 비행기에 탐승해서 국경을 넘나들며 세계 곳곳에 발자국을 찍는 일이 아니다. 시대를 지배하는 에피스테메(epistēmē),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담론을 위반하며 자기 길을 가는 것이다.

 

감정 소모 없이 외로움을 극복하는 필살기 - <인 디 에어>(Up In The Air, 2009)

 

제이슨 라이트먼트가 연출한 영화 <인 디 에어>(Up In The Air, 2009)에서 주인공 라이언 빙햄(조지 클루니)은 1년 365일 중에서 43일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공항에서 보낸다. 미국 전역을 여행하는 미국 최고의 베테랑 해고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양육하기 위해서 한 곳에 정착하는 것은 그의 인생 설계도에 표시되어 있지 않다. 지상에 천척하지 않은 채 그가 가진 유일한 목표는 항공사에서 발급하는 탑승 시간 마일리지 카드의 천만을 채우고, 세계에서 일곱 번째 - 금으로 만든 - 플래티넘 카드를 받는 것이다. 허공을 딛고 사는 듯한 이 황당한 삶의 목표를 가진 라이언의 모습은 유동하는 현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메타포다. 뜨겁게 부딪히는 핫(hot)한 구체적인 삶을 거부하고, 감정 소비를 비난하는 태도를 비난하는 쿨(cool)한 삶을 추구한다. 철저하게 보여줄 것과 감출 것을 구별하고, 감정 소비 없이 인스턴트 관계와 방법으로 외로움과 고독을 잊고자 하는 유동하는 사회의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다.

 

 

정치가 점유했던 권력이 자본으로 이동하면서, 국가는 감시와 처벌 평가 기구로 전락했다. 1997년 IMF와 이후 ‘88만원 세대’의 성장을 우리 사회가 경험했듯이 국가가 감당해야 할 책임은 개인에게 전가되었고, 모든 실패의 책임이 개인의 어깨에 떨어지고 있다. 바우만은 액체 근대는 삶의 실제에서 시간과 공간이 분리된다고 본다. ‘가속’의 개념으로 공간과 공간 사이를 가로 지르며 둘 사이의 거리감이 사라진다. 시간이 공간 보다 우위를 점하면서, 공간에 따라서 경계를 이루었던 견고한 삶은 무너지고, 이동의 속도와 이동의 수단은 권력과 지배의 가장 주요한 도구로 격상되었다. 더 값싼 노동력을 있는 - 권리 주장을 덜 하는 - 지역으로 이주하려는 다국적 기업과 자본은 국경의 경계를 넘어 가볍게 돌아다니는 것이 힘의 자산이 되었다. 이윤 창출은 견고한 관계 속에서 오랫동안 유지했던 신뢰가 아니라, ‘생산품의 순환과 재활용, 노화와 폐기와 대체 과정에서의 경탄할 만한 속도“에 있다. 오래된 것은 혐오의 대상이 되었고, 신상(품) 소비는 능력을 입증하는 중요한 의례가 되었다.

 

불확실성으로 유동하는 사회

 

사랑이 넘실거리던 자리에는 욕망이 자리를 잡았다. 인터넷이 매개가 되면서 욕망을 해소하는 일회성 만남이 잦아진다. 신용카드는 소비의 자유를 가능하게 만들었고, 여성의 몸은 성형외과 의사의 경작지가 되었으며, 의사들은 질병의 치료자가 아니라 - 약을 필요로 하도록 잠정적 환자를 만드는 - 질병 홍보 역할을 맡게 되었다. 건강은 복지 정책이 아니라, 부의 소유 여부와 비례 관계를 형성했으며, 문화는 백화점의 상품처럼 소비재로 취급되었다. 배우는 일은 즐거움이 아니라, 삶 그 자체의 생존방식이 되었다. 교육은 급속한 변화에 뒤처지면 안 될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 “책상 앞에 앉아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사무직원이 화장실을 청소하는 미화원 보다 거의 열배 가까운 임금을 받고, 키보드를 만드는 제3세계 노동자보다 “백배나 많은 임금”(194쪽)을 받고 있다. 공동체의 버팀목이었던 탄탄한 유대는 전지구적인 자본의 힘으로 해체되고 있다. 유동의 시대는 과잉이기도 하지만, 배제이기도 하다. 새로운 직업과 일자리가 창출 되고 있으나 실업이 급증하고, 영세 기업은 사람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SNS는 국경을 해체하고 세계를 단일 공간의 무정부주의로 만들었으나, 바로 옆에 살고 있는 이웃과의 관계를 단절시켰다. 프리랜서 고소득자가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반면, 많은 사람들이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고 있다.

 

여전히 미완인 근대의 기획

 

근대가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발전을 통해서 개인을 평등한 상태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근대는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 바우만은 그러한 근대를 지연하고 있는 것이 ‘유동하는 사회’라고 얘기하고 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유동하는 액체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을 낯설게 보는 것이고, 자기 안의 또 다른 자아와 독백 형식의 대화를 나누는 일상의 회복이다. 깃털처럼 가벼운 외투를 벗고, 견고한 강철 전투복이 필요한 시간이다.

 

고독을 회복해야 할 시간

 

바우만의 편지는 테이블과 찻잔을 앞에 두고 마주 보고 앉아서, 삶의 끝자락에 더 가까이 가 있는 노(老)학자의 말씀을 듣고 있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아마도 가까운 지인을 앞에 두고 얘기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의 사적 삶과 취향쯤으로 가볍게 지나쳐도 괜찮을 것 같은 생활 세계에 대한 심도 있는 통찰은 우리가 일상을 얼마나 섬세하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만든다. 사회학적 토대에서 만들어내는 적절한 은유가 빛이 나는 책이다. 우리와 다른 공간에서 쓰인 책이라고 볼 수 없는 깨알 같은 즐거움도 있다. 헐리웃 대중영화처럼 치부할 <블레어 워치>와 <로니의 침묵>을 유동사회의 텍스트로 가져온 점은 거장과 함께 동시대에 같은 것을 경험하는 유쾌함을 선물한다.

 

아쉬움은 편지 형식에서 필연적으로 수반할 밖에 없는 문제점이다. 2년 동안 2주마다 썼던 편지 모음이다 보니 주제가 다양할 수밖에 없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겪고 있는 문제와 쟁점이라는 측면에서 거대 담론이 바우만 개인의 생활 세계와 중첩하면서 간결한 글쓰기는 사실상 불가능했으리라 짐작한다. 44통의 편지는 방대한 주제에 걸쳐 있기 때문에 장과 장의 연결이 매끄럽지 않아서 구조화가 되어 있지 않다. 파편화된 글들은 ‘고독’이 필요하다는 하나의 주제로 묶이기에는 다소 산만하다. 책 제목은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 까닭에 결실을 생산할 수 없는 현대인의 삶에 대한 핵심 메타포로 받아들이는 것이 타당하겠다.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은 『액체 근대』(강, 2009)를 읽었던 독자라면,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바우만과 담소하며 사색의 길을 함께 산책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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