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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신자들 - 대중운동의 본질에 관한 125가지 단상
에릭 호퍼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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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하고 위험한 책 『맹신자들』- 대중운동의 본질에 관한 125가지 단상
 

                                                                                                                 에릭 호퍼, 이민아 옮김, 궁리(2011. 11)

  샌프란시스코의 부두 노동자이자 철학자인 에릭 호퍼의 책 『맹신자들』은 개인이 광신자가 되는 과정을 드러냄으로써, 대중운동의 공통적인 속성을 잘 보여준다. 이 책은 1951년에 쓴 것이지만, 2011년 오늘의 한국 상황에도 무리 없이 적용되는 통찰을 담고 있다. 대중 운동에 참여하는 다수의 행동을 추동하는 심리를 잘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퍼는 초기 기독교, 아시아의 부흥을 가져 온 민족주의, 유럽과 전 세계 많은 지역에서 승리한 공산주의와 오늘날 대중운동이 가지는 하나의 절대적인 공통점이 있다고 본다. 바로 신을 믿지 않는 시대의 맹신자들이라는 것이다.  

  호퍼의 무수한 단상을 하나로 엮는 키워드는 ‘희망’이다. ‘희망’에 설득당한다면, 대중은 계급과 이념에 상관없이 욕망과 광기에 의해서 변화를 갈망한다. 기득권자 뿐 아니라, 비참하게 가난한 사람들은 변화에 호의적이지 않다. 빈민층 역시 특권층처럼 사회 질서를 영속하는 하나의 요인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좋았던 시절의 기억’을 가진 사람이거나, 희망을 가질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변화에 대한 욕망으로 피가 끓는다. “대중 운동을 개척하는 것은 지식인, 실현하는 것은 광신자, 굳건히 다지는 것은 행동가다(214쪽). 

  철학적 분석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얻어낸 125가지의 ‘단상’을 책으로 엮는 것은 호퍼의 대단한 용기다. “자기를 책망하고 자기의 결함을 인정하게 하는 이 진실에 대해서 극도의 증오심을 품게 되기 때문이다.”는 파스칼의 『팡세』를 인용한 것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 저자가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 진보와 대립각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사회의 시민운동과 변혁을 위한 투쟁은 희망을 원하는 다중(!)의 움직임이지만, 이것을 맹신자들이라고 규정한다면 이것은 이성적 자기 성찰을 모두 부정하는 결과가 된다.  

  호퍼의 주장 대부분을 수용하는 것은 불온하고, 무의미하다. 시민단체가 주관하는 대중 강연에서 한 청중이 조국 교수에게 “당신도 콤플렉스가 있는가?” 라는 질문을 했다. 그는 “엄친아인 삶의 이력이 콤플렉스”라고 답했다. 그것은 계급적 한계를 인정한 참으로 진솔한 답변이었다. 알튀세르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의식은 곧잘 우리의 존재를 배반한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적 통치기구가 헤게모니를 장악했을 때, 우리의 의식은 존재를 배반한다. 때문에 희망과 욕망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지고, 과장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한계상황에서 능동적으로 자유의지를 실천한다. 건강한 사회는 모든 사람이 진보주의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궤적과 사회적 위치에 위배되지 않는 의식을 갖는 다중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다.  

  맹신자들』은 우리에게 ‘일정 정도’의 성찰을 요구한다. 세상의 변화를 추구하며 자신의 계급적 위치와 삶의 궤적을 메타적으로 성찰하는 많은 사람들은 호퍼의 생각에서 ‘일정 정도’의 동의와 함께 대안을 만들어가는 해법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호퍼의 책을 ‘충고’로 받아들이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독재정권과의 투쟁 경험을 계급과 무관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대중운동을 추동하는 여러 변인 중의 하나가 ‘희망’을 걸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대중운동은 초기 기독교, 나치즘, 민족주의와 다른 성격을 가지는 것이 분명하다. (희망에 들뜬) 맹신자는 아니지만, 자신의 계급에서 떨어져 나와 소수자의 시선으로, 언어를 갖지 못하는 대중의 입이 되어 역사 발전의 한 점으로 남는 많은 실천가의 무수한 얼굴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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