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자 김기호 인터뷰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서
인터뷰 : 강지희
등단 후, 문단에서 작가들을 만날 때면 가끔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글이 사람을 닮는 걸까, 아니면 사람이 글을 닮는 걸까. 맞은편에 앉아 있는 작가의 얼굴과 몸짓, 목소리에서 그 사람이 썼던 문장들이 지나갔다. 그후로 글을 읽고 매혹을 느낄 때면, 작가가 더 궁금해졌다.
제15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인 『피리 부는 사나이』는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한 남자가 대학에 들어서며 호된 입사식을 거치는 이야기였고, 불수의근처럼 어찌할 수 없는 사랑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였으며,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테러와 실종되는 사람들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타로카드를 선택했을 때, 선택자의 질문이나 함께 뽑힌 다른 카드와의 맥락에 따라 그 카드의 의미가 무수히 달라지는 것처럼 소설은 다각도로 다가왔다.
‘피리 부는 사나이’에 대한 전설을 매력적으로 재해석한 21세기 판본 『피리 부는 사나이』는 얼핏 세계의 굵직한 테러의 배후를 찾아가며 이들을 문제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 동안 어떤 테러에도 무감했던 우리를 질책하며 들이받는다. 어떻게 당신은 사람들이 사라져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왔지? 이 세계는 이상해. 어쩌면 당신도 이상할지 몰라. 박진감 있게 서사를 끌어나가면서도 명쾌한 결말로 쾌감을 주기보다는 피리 부는 사나이의 존재를 다시 감추기를 선택한 신중한 이 이야기가 최근에 읽었던 어떤 작품보다 더 많은 말을 걸어왔기 때문에 나는 황홀하게 어지러웠다.
인터뷰를 하기로 한 날은 낙엽의 쓸쓸함과 단풍의 화사함이 적절하게 교차하는 11월 초였다. 약속시간은 세시였지만 그보다 빨리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어야 할 것 같아 버스정류장에 내리자마자 종종걸음을 쳤다.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구두 옆에서 낙엽이 춤을 추며 맴돌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휙 돌아보자 멀찍이서 멋쩍어하며 걸어오고 있는 한 남자가 왠지 그일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예감은 맞았다. 알고 보니 우리는 같은 버스를 타고 왔던 것이다. 약속장소에 다다르기도 전에 우연히 마주쳤다는 데서 피어난 따뜻한 공감으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문학동네소설상’이라는 커다란 관문을 통과하신 걸 축하드려요. 어릴 적부터 꿈이 소설가가 되는 것이었나요?
그렇지는 않았구요. 오히려 중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때까지 친구들과 밴드를 하고 기타를 쳤기 때문에 음악에 대한 생각이 더 많았어요. 꽤 오랫동안 고민했던 것 같아요. 음악과 문학의 길 사이에서요.
―총 들고 찍은 어린 시절 사진을 보니까, 장난꾸러기였을 것 같아요. 유년 시절은 어땠어요?
초등학교 시절에는 애들을 끌고 다니는 골목대장 스타일이었어요. 그런데 철이 들면서부터는 좀 조용해진 것 같아요. 고등학교 올라갈 때, 같은 중학교를 나온 친구들이 거의 없었어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어울리기보다는 뒤쪽에 앉아서 자는 편이 되었죠. 그래도 시험을 보면 점수는 잘 나오니까 아이들이 의아해했어요. (웃음) 아, 그냥 뒤쪽에서 같이 자던 친구들보다는 조금 더 잘 나온 거예요.
―대학을 들어가기 전에도 문학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을 것 같아요.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이었어요. 어머니께서 책을 즐겨 읽으셔서, 가끔씩 헌책방에 가시면 당신 책 외에 제 책도 한 아름씩 사들고 오시곤 했죠. 어린이용으로 나온 명작집 같은 것들도 많이 읽고. 그런데 작가들 인터뷰 보면 고등학교 때 세계문학전집을 독파했다는 식의 이야기도 많잖아요? 책을 좋아하긴 했지만 제가 고등학교 때 읽은 걸 생각해보면 그런 것에는 한참 못 미치니까 문학에 관심이 있었다고 말하기는 좀 부끄럽죠. 그렇다고 관심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그때 읽었던 책 중에서 유달리 좋아했던 작품이나 동경했던 소설가가 있었나요?
그때 읽었던 작가는 아니고요. 대학 들어오고 나서는 동아리 밴드 활동을 하느라 매일같이 연습하고 공연 준비하고 공연하고 술 마시는 생활을 계속했어요. 그때는 아마 일 년에 책을 세 권도 안 읽었을 거예요. 수업에 내야하는 과제도 제대로 안 냈으니까. 성적도 완전 엉망이고. 그때는 당연히 이런 게 멋진 거다, 생각을 하고. (웃음) 그렇게 보내다가 스물세 살 때 공익근무를 하면서 다시 책을 많이 읽기 시작했어요. 이때부터 문예지도 보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소설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죠. 아무것도 모를 때라 오히려 뭘 읽어도 나도 이만큼은 쓸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그때 처음 보르헤스를 읽고 감탄을 넘어서 충격을 받았죠. ‘아, 이건 도저히 누구도 흉내낼 수가 없겠구나’ 생각했어요.
―사실 프로필을 보기 전에 작품을 먼저 읽고 있던 중이었는데, 문학이나 철학을 전공하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 속에서 인물들이 문학과 철학을 가지고 설전을 벌이는 장면이 있지요. 대학에 들어갈 때 어떻게 전공을 선택하시게 됐나요?
저는 경제나 경영학과에는 관심이 없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인문학부를 지원했어요. 솔직히 말하면, 별생각 없이 국문과를 선택한 거였는데 나중에 돌아보니 잘한 선택이더라구요. 무심코 선택했는데 제가 흥미 있어하는 분야였던 거죠. 그리고 제2전공은 원래 철학이 아니라 신문방송학이었어요. 그런데 철학수업을 듣다보니 국문학이나 신문방송학에서 나오는 얘기들이 상당 부분 철학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실용학문인 신문방송학에 비해 철학이 좀더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얘기한다고 느꼈죠. 그게 좋아서 제2전공을 철학으로 바꿨어요.
―문학과 철학을 전공하면서 제일 크게 느꼈던 즐거움은 어떤 것이었나요?
누구나 내가 왜,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고민을 하잖아요. 그리고 삶의 자세나 가치관을 가질 때, 그것을 설정하기 위해서 어떤 근거가 있어야 하구요. 그 근거를 찾기 위해서는 뭔가 알아야 하는데, 그 앎에 가까이 갈 수 있게 도와줬던 것 같아요.
―그런 즐거움 이면에 인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가지는 고민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예. 저 자신은 수업을 들으면서 즐거웠는데,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해주더라구요. 지희씨도 그러지 않았어요? (함께 격하게 동감) 하나 정도는 실용적인 전공을 하라는 충고도 많이 하고. 그래도 별로 그런 말들이 신경쓰이진 않았어요. 부모님도 속으로는 걱정을 하셨을지 모르지만,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저를 신뢰해주셨고.
―작품 속에 미디어 아트 전시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고흐의 <까마귀가 나는 밀밭>에 대해서도 여러 번 언급됩니다. 미술에 대해 평소에 관심이 많으신가요.
오히려 미학 쪽에 관심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것은 왜 아름다운 것이고, 이건 아닐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고, 그래서 책을 읽고 수업을 듣기도 했죠. 그 미디어 아트 전시는 당시에 실제로 보러 가서 경험했던 거예요. 고흐는 다들 좋아하는 화가고……
―기존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자들과 비교해보면 어린 나이에 등단한 편이신데, 등단작이 천 매가 넘는 장편소설이라는 것이 놀랍습니다. 아주 긴 호흡이 필요한 일이었을 텐데요.
학생일 때는 수업도 있고 과제다 시험이다 해서 흐름이 끊길 때가 많았죠. 몇 달 방치해놨다가 나중에 다시 보면 이건 뭐지,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 그럼 지우고 다시 쓰고, 뭐 그랬죠. 졸업하면 좀 나아질까 했는데 별로 그렇지도 않더라구요. 그래도 이 작품을 마무리해야 뭐든 다른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작년 말부터 올해 8월 말까지는 계속 여기에만 매달렸어요. 그런데 제가 한번 꽂히면 끝까지 가는 버릇이 있어서…… 우연히 보게 된 드라마도 앞뒤 줄거리가 궁금할 정도로 흥미로우면 찾아서 처음부터 다 봐야 되거든요. 그런 게 소설 쓰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하죠.
―주로 어디에서 글 쓰는 동력을 얻으시나요?
글 쓰는 일이 즐거울 때는 별로 많지 않아요. 오히려 도망치고 싶을 때가 훨씬 많아요. 그래도 다른 사람에게 좋은 반응을 듣거나, 드물게 스스로 만족스러운 기분이 들면 힘이 나죠.
―소설을 쓸 때 제일 신경쓰는 것은 어떤 부분인가요?
독자로 하여금 그럴듯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현실을 그리든 환상을 그리든. 그러기 위해서는 디테일한 요소들을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사건의 인과관계를 분명히 하는 것이나, 인물에게 일관된 성격을 부여하는 것, 등등. 말로 하자면, ‘이건 말이 안 되잖아’라든가 ‘얘 갑자기 왜 이래’ 같은 말을 피하고 싶은 거죠.
―사실 작품의 주인공이 저와 같은 04학번이라, 2004년에 대학에 입학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이야기할 때 그 당시를 떠올리며 감정이입이 많이 됐었어요. 이 소설 속에서 특별히 애착이 가는 인물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읽어본 주위 친구들은 소설의 주인공에 저를 많이 대입시키려고 하는데, 저는 소설 속 인물들 대부분에 제 모습이 조금씩 투영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주인공이나 우진은 물론, 이반, 수연, 정현 같은 인물들 속에도 모두 저의 일부가 존재해요. 그래서인지 특별히 애착이 가는 인물 하나를 꼽기는 어렵군요.
―소설을 읽으면서 예기치 않게 오해를 사거나 아니면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강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도덕의 차원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제가 생각하는 건 굉장히 상식적인 거예요. 내가 상처를 받고 싶지 않은 만큼, 다른 존재에게도 그러고 싶지 않다는 것. 그런데 이 세계에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그런 일이 생기잖아요. 그걸 깨달았다가도 잊어버리고. 그러기를 반복하면서 회의를 느끼고…… 아마 그런 고민들이 무심결에 많이 표현됐던 것 같아요. 하지만 결국 요즘도 마찬가지예요. 깨닫고 잊어버리고, 또 후회하고……
―그런데 실제로는 00학번이신 걸로 알고 있는데, 어째서 소설에서는 2004년으로 시간을 옮겨놓으신 건가요.
9·11테러 이후 제일 크고 중요한 테러 사건이 마드리드 열차 테러와 런던 지하철 테러 사건이에요. 그중에서도 런던 지하철 테러 사건은 9·11 테러 이후 자본주의의 중심이라고 할 만한 도시가 또 한번 대규모 자살 테러의 표적이 된 사건이었고, 범인들이 같은 영국 시민이었다는 사실 또한 큰 충격을 주었죠. 소설의 시간적 배경을 2004년부터 2005년으로 설정한 것은 주인공이 런던에서 이 사건을 겪게 하기 위해서, 라는 이유가 커요. 2004년은 우리나라에서도 충격적인 사건이 많이 벌어진 해이기도 했고요. 실제 런던 지하철 테러는 2005년 7월에 일어났는데, 소설상의 날짜는 조금 달라요. 마드리드 열차 테러도 그렇구요.
―소설 속에도 나오지만 2004년에는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탄핵소추안 가결이 있었고, 유영철 연쇄살인사건을 비롯한 강력범죄들이 난무했지요. 악의에 찬 광기와 분노 그리고 공포와 의심이 도시의 대기를 가득 채우고 있던 시기라고 쓰셨는데요. 이 사건들에 대한 충격도 있지만, 그것보다 그럼에도 아무렇지 않게 진행되는 일상에 대해 일종의 괴리감과 분노를 느끼셨던 것처럼 느꼈어요.
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2004년이 다른 해보다 특별히 문제가 많았던 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우리가 모르는 동안에도 사건들은 끊임없이 발생하니까요. 어쩌면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을 수도 있고……
―조금 조심스러운 이야기가 될 것 같은데, 200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들은 고통스러운 역사를 직접적으로 경험한 세대는 아닌 것 같아요. 전쟁이나, 민주화투쟁과 같이 한 시대를 묶어주는 깊은 상처를 체감했다고 보기는 힘들죠. 실제로 젊은 작가들 중에는 극도로 추상적인 세계를 구현하며 실험적인 작품을 쓰는 작가도 있고요. 이번 당선작을 읽으면서 사회역사적인 맥락을 재현하겠다는 욕구가 뚜렷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글을 쓰면서 그런 고민을 많이 하셨나요.
작가도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인 이상 현실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죠. 표현방식에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아까 말씀드렸던 9·11테러나 런던 지하철 테러 같은 것들은 먼 곳에서 발생했지만 전 세계가 동시적으로 충격을 경험한 사건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사건이 언제라도 이곳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 규모는 다르지만 유사한 폭력들이 지금 바로 옆에서 자행되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요즘 관심을 갖고 바라보고 있는 문제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논리로 사람을 설득하는 것의 어려움, 불가능성 이런 걸 많이 생각해요. 제가 옳다고 믿는 것을 아무리 이성적으로 근거를 대서 이야기해도, 누군가를 설득하기란 굉장히 힘들다고 느꼈어요. TV에서 하는 <100분 토론> 같은 것들을 봐도, 사실 나와서 각자 자기 이야기만 하다 끝나잖아요. 그 사람들만의 문제는 아니고, 친구들과 모여서 이야기할 때도 밤새 어떤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도 결국 서로 다르다는 것만을 확인하고 끝날 때가 많죠. 그러니까 논리가 아니라 감정, 마음에 와 닿는 뭔가를 통해서만 사람을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고민이 프롤로그에서도 드러나고 있는 것 같아요. 어느 날부터 귀마개를 하지 않았을 때도 소리가 사라지기 시작하는데, 그때 주인공은 사람들이 내게 들려주기 위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떠들고 싶기 때문에 이야기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하잖아요.
그렇죠. 지금 말한 설득의 문제, 여기에서 더 나아가면 소통에 대한 문제겠죠. 소통에 대한 문제도 그렇고, 소설 속에서 피리 부는 사나이를 찾으려는 것도 그 가능성이 열려 있을 뿐 그것이 정말 이루어질지 어떨지는 확신할 수 없는 것인데, 중요한 것은 그것을 하려는 의지라고 생각해요. 물론 의지와 결과는 대개 아무 상관이 없지만, 그래도 그에 대한 의지나 희망마저 없다면 우리 인생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잖아요.
―친구가 축제에 초대해줘서, 제가 일학년 때 실제로 서강대 축제에 가서 타로카드점을 본 적이 있었어요. 작품에서 주인공 ‘나’와 수연이 학교 축제 때 타로카드점을 보는 장면은 굉장히 중요한 전환점으로 나오죠. 타로카드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끼셨나요?
사실 타로카드를 잘 알거나, 거기에 특별히 관심이 많은 것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점이라든가 꿈 같은 초현실적인 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재미있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순 속에서 살아가죠. 예를 들어 기독교를 믿으면서도 점 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저 자신도 소설 속에 나오는 말처럼 논리와 과학을 더 신뢰하면서도 꿈을 꾸면 그 꿈의 의미가 무엇일까 생각하거든요.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럴 거예요. 그렇게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닌 막연한 모순 속에서 살아가다가도, 때때로 지극한 우연의 일치나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선명한 깨달음이 올 때가 있잖아요. 그 꿈이 이런 뜻이었구나, 그 점이 이런 의미였구나 하고 말이에요. 물론 실제로 그런 의미가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죠. 그 역시 의미 부여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만으로도 뭔가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인생에 드물게 찾아오는 순간이니까.
―그럼 운명 같은 것에 대해서 믿는 편이신가요?
기본적으로 절대자나 신에 대한 믿음은 있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과연 내가 누구에게 기도를 하는 것인가’ ‘내가 운명을 믿는다면 이 운명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하는 생각도 해요. 엄밀히 말하면 믿을 수 없으면서도 믿고 싶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작품 속에서 인물이 런던에 가는데, 왠지 작가의 경험이 반영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국으로 여행이나 어학연수를 가신 적이 있나요?
그렇게 느끼셨다니까 굉장히 기분이 좋은데, 사실 가본 적은 없어요. 여행도 많이 다녀보진 않은 편이에요.
―작품명이 ‘피리 부는 사나이’인데, 우리가 알고 있는 독일 전설에서 모티프를 따오신 건가요?
피리 부는 사나이 자체가 굉장히 기묘한 이야기잖아요. 그런데 이 피리 부는 사나이 전설에 대해서 아베 긴야라는 사학자가 연구한 책이 있어요. 그 책을 보면 이 전설이 역사적인 근거가 있는 이야기이며 사료도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리고 그 사료들을 가지고 여러 학자들이 각기 다른 학설들을 내놓은 걸 정리해놓았더군요. 전설 자체보다, 거기에 대해 사람들이 다양한 추측을 하는 것이 흥미로웠어요. 그래서 저도 생각해보게 된 거죠. 사라진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다음에는 이렇게 생각이 연결되는 거죠. 오늘날 도시에서 실종된 사람들 중에 끝내 찾아내지 못하는 실종자 수가 적지 않다는데, 그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1212년 수천 명의 독일 어린이들을 이끌고 어린이 십자군에 참가했던 인물인 니콜라스를 ‘피리 부는 사나이’에 비유했다는 주장이 있더라구요. 소설 속 ‘니콜라스’도 혹시 이런 맥락에서 가지고 오신 건가요?
맞아요. 만나기 전에 조사를 많이 하셨구나. (웃음)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는 마을 사람들에게 구원이자 재앙이었잖아요. 소설에서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모든 테러와 사건 들이 ‘파괴’로 나아갈 것인지 새로운 ‘창조’가 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어떻게 보면 작가의 세계관을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도 있는 부분이었는데요.
예.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가 그 마을의 구원이자 재앙이었다면 소설 속의 피리 부는 사나이는 구원인지 재앙인지 알 수 없는 존재죠. 피리 부는 사나이를 바라보는 각기 다른 시각들만 존재하고 그것들 또한 어느 편이 옳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어요. 결국 명확한 판단은 유보되고 그것을 찾기 위한 의지만을 확신할 수 있다는 게 어쩌면 작가의 세계관일지도 모르겠네요.
―주인공의 경우에는 결국 런던에서 발생한 테러로 인해서 가장 소중한 친구를 잃게 되잖아요. 그리고 주인공이나 친구나 전혀 테러의 원인이 될 수 없는 무관한 사람들이구요. 그 부분에서는 테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거든요.
우선 그 말이 중요할 것 같아요. 그들이 전혀 테러의 원인이 될 수 없는 무관한 사람들이라는 것. 테러뿐 아니라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폭력 사건들은 대부분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키죠. 즉 누구라도 희생자가 될 수 있고 그것이 무차별범죄의 무서운 점이잖아요. 그런데 니콜라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근본적인 폭력이 존재하며, 폭력을 통해서 폭력으로 가득 찬 세계를 바꾸겠다고 말하고 있는 거죠. 주인공은 그 이야기에 어느 정도 감화되었다가, 눈앞에서 친구를 잃자 다시 혼란에 빠진 거라고 생각해요. 머릿속으로는 니콜라스의 생각을 이해하지만, 가슴속에는 친구를 잃은 슬픔이 분명히 존재하니까요.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고 어떤 느낌이나 반응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시나요?
기본적으로는 재미있다는 말을 듣고 싶죠.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이 소설로 인해 독자들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면 좋겠고, 그들의 삶에 어떤 작은 영향이라도 미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작품 속에서 ‘시간의 흐름을 증명하는 것들’과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들’에 대해 쓴 부분이 있었어요. 요즘 본인의 시간의 흐름을 증명하는 것들에 대해서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아무래도 육체적인 변화에서 그런 걸 많이 느끼죠. 똑같은 일에 예전보다 더 피곤함을 느낀다든가. 초췌한 얼굴, 늘어나는 뱃살…… (함께 폭소)
―사실 조금 추상적인 이야기를 들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럼 질문을 좀 바꿔서, 요즘 어떤 책들을 읽으세요?
독서가 많이 부족한 것 같아서 얼마 전에 나름대로 읽어야 할 세계문학작품 리스트를 작성했어요. 그걸 따라서 하나씩 읽어나가고 있죠. 가장 최근에 읽은 건 조지프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이었어요. 다음으로 존 쿠체의 『야만인을 기다리며』를 조금 읽었는데 연락이 와서 아직 그 상태예요.
―이십대를 너무나 멋있게 마무리하시게 됐는데, 삼십대에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이십대 때는 좋아하는 몇 가지 것들에 몰두하느라, 다양한 것들을 경험해보지 못한 것 같아요. 삼십대 때는 좀더 많은 것을 보고, 겪고, 그러면서 분명한 인식이나 시각을 가지고 스스로의 삶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 과정을 통해 좋은 소설을 쓸 수 있다면 바랄 것이 없겠죠. 저는 이제 시작하는 소설가니까 아무것도 확실한 건 없지만, 적어도 소설을 쓸 때마다 조금씩이라도 나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글과 삶이 하나가 됐으면 좋겠구요.
―상금 받으신 걸로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신가요? 어디론가 여행을 가신다거나.
아직 계획은 못 세웠는데, 여행이라면 크레타 섬을 언젠가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 있어요.
―와, 멋져요. 안 그래도 무인도에 갈 때 가지고 갈 세 가지를 물어보고 싶었는데, 크레타 섬이 무인도는 아니지만 슬쩍 물어봐도 되죠?
일단 의식주가 해결되어야 할 것 같은데…… (웃음) 그걸 제외한다면, 오랫동안 읽을 수 있도록 아주 길고 이상한 책 한 권과, 뭔가 쓸 수 있는 도구,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나를 이해해주고 나 역시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같이 있다면 좋겠죠. 사실 이런 사람은 무인도에 가지 않는다 해도 절실히 필요해요. 만나기 쉽지 않다는 게 문제죠.
사실 직접 만나기 전에 그의 수상 소감에서 ‘나는 이미 해놓은 말들을 자주 후회하는 사람이다.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을 후회하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보고 지레 겁을 먹었다. 인터뷰어에게 가장 무서운 사람은 말을 아끼는 사람이 아닐까. 하지만 실제로 만나본 그는 지적일 뿐만 아니라 푸근하기까지 했다. 인터뷰 후에 식사를 하면서 그는 ‘낮술의 효용론(밤늦게 술을 마시면 다음날 하루를 날리게 되지만, 낮에 술을 마시면 저녁때 깨서 하루를 번 것 같은 기분이 된다는)’을 설파해 우리를 정신없이 웃게 만들었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에게서 잘못 온 문자에도 친절한 답장을 해주어 생긴 일화들도 이야기해주었다. 어떤 질문에도 차분하고 조리 있게 말을 잘하는 그가 말을 후회한 적이 많다면, 그것은 아마도 소통에 대한 회의 때문이 아니라 소통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였을 것이다.
만나기 전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서, 나는 그의 걸음걸이가 무엇보다 궁금했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처음에는 ‘고개를 조금 숙이고, 되도록 발소리를 내지 않으며, 팔도 거의 움직이지 않고 좁은 보폭으로’ 걷지만, 나중에 어느 순간부터는 ‘거리의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사방을 둘러보며 성큼성큼’ 걷는다. 그는 걸음걸이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었다. “그것은 몸이 기억하고 있는 역사였다. 걸음걸이에는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시간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나는 그런 식으로 걸어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렇게 걸어갈 것이다.” 내가 훔쳐봤을 때 그는 천천히 사뿐사뿐 걸었다. 세상에 절대로 서둘러서 해결될 일이란 없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세렝게티 초원의 평화로운 기린들처럼 그렇게 걸었다. 그래서 어쩐지 그 걸음을 믿고 따라가고 싶어졌다. 피리를 부는 대신 기타를 치는 이 작가가 한 발자국씩 걸으면서 우리를 홀려 모르는 세계로 데려간다면, 기꺼이 매혹되어 그 길을 따라가고 싶었다. 그곳이 어딘지는 알 수 없지만, 리듬과 우연과 소통을 사랑하는 그가 데려갈 곳은 어쩐지 따뜻한 곳일 것만 같아서.
* 김기홍 : 198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강대에서 국문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 강지희 : 이화여대 국문과 졸업, 동대학원 석사과정 재학중. 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평론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 자료제공 : 문학동네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