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해제·사면복권 이후 서울에서의 최초 대중집회 연설 (1987.9.10 홍사단 금요강좌)

민족발전을 위한 나의 정치철학

우리민족의 위대한 스승이었던 도산 안창호(安昌浩)선생! 이 민족을 그토록 뜨겁게 그토록 열렬히 사랑하셨던 우리들의 애국자 安昌浩 선생! 이 분은 독립투사였을 뿐만 아니라 민족의 진실한 교육자였습니다. 이 분은 독립만이 목적이 아니라 민족의 발전이 목적이었습니다.도산선생의 정신을 계승한 ,또 선양시키는 이 흥사단(興士團)에 와서 불초 이사람이 감히 민족발전을 위한 나의 생각을 말씀드린다는 것은 외람되기도 하지만,한편 생각하면 지극히 의의가 큰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러분께 양해구할 것은,너무 열기를 내서 말하는 이사람이 좀 더운데 저고리를 벗어도 됩니까?(네)


우리민족을 생각할 때,아시아 대륙의 동쪽에 조그만 혹같이 붙어있는 한반도를 생각할 때 ,우리는 참으로 기적같은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중국을 보십시오.지금부터 4천년 전에 중국에서 일어났던 오늘의 한(漢)민족,이들이 양자강 이남까지 ·서쪽까지 ·동쪽까지 동화시켜왔습니다. 한 때 이민족들이 중국을 점령해서 많은 제국을 세웠지만,특히 원나라를 세워서 100년을 지배한 몽고족의 징기스칸이 했던 것, 동·서로 그 판도를 넓혀서 아시아 대륙의 최대패자(覇者)였던 몽고족,이 몽고족이 오늘날 모두 중국에 포함되어 버리고, 몽고인민공화국에는 150만 밖에 사람이 없습니다.또 1616년에 만주족이 청나라를 만들어 청조 300년을 통치했습니다. 중국을 지배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만주족은 한사람도 없이 증발했습니다.

그런데 기원전 108년,한무제가 우리나라를 쳐들어 왔던 이래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종교적으로 모든 분야에서 압도적인 중국의 영향을 받아온 우리 한민족! 우리가 어떻게 하여 중국사람되지 않고 ,몽고사람·만주사람 다 중국사람됐는데 ,어떻게 우리만 되지않고 ,아시아 동쪽이 한반도가 오늘날 6천만 대민족이 -여러분 ! 6천만이면 얼마나 큽니까? 세계 160개 나라 중에 12번째 대민족입니다.영국보다 불란서보다 이태리보다 큰민족입니다.이런 대민족이 ,세계에서 가장 똑똑하고 가장 교육수준이 높고 가장 부지런하고 가장 성취동기가 높은 이 민족이 여기 엄연히 있다,절대 중국사람되지 않는다,이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기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민족을 생각할 때 과거 사대, 열등적인 역사관을 배제한다면,우리 조상들이야말로 이 어려운 지경에서 ,그 압도적인 영향속에서,우리 조선민족, 한민족의 자주성과 우리의 본질을 지켜온 우리조상들이 얼마나 위대한 조상들인지 새삼스럽게 감사하지 않울 수 없다 이거예요.만일 위대한 민족이 이웃나라를 함부로 강탈하고, 지배하고, 착취하고, 빼앗고 이런 민족을 위대한 민족 이라고 한다면 우리민족은 절대 위대한 민족이 아닙니다.

그러나 힘이 있어도 남을 침략하지 않고 그러나 내 주체성은 꼭 지키고 ,어떠한 경우에도 나의 본질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독자적인 문화,독자적인 의식구조,독자적인 정치·경제·학문, 제도를 유지해 가는 그러한 평화적이고 자주적인 민족이 위대한 민족이라면 ,우리 한민족은 위대한 민족임에 틀림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겁니다.(박수)

여러분! 독립운동의 역사를 보십시오.여기 안창호선생도 독립운동가의 한 분으로서 옥중에서 병을 얻어가지고 돌아가셨지만 세계에서 나라가 망했는데 근 40년동안,그 이상 이웃나라를 이리저리 방황하고 다니면서 독립군을 만들어 가지고 끝까지 투쟁한 그런 민족이 있습니까? 많은 식민지 민족이 있었지만 없습니다. 3·1운동이 나자마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워서 불과 9년전에 있었던 제국제도를 폐지하고 국왕제도를 폐지하고 민주공화제를 만든,이러한 진취적인 민족,그래서 고난속에서 ,박해속에서 ,천대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간판을 짊어지고 상해에서 중경으로 옮겨다니면서 끝내 해방되는 날까지 우리의 명맥을 유지하려고 했던 이런 민족이 세계에 있느냐 이거예요.

이를테면 나는 지난번에 헌법 전문(憲法全文)을 만들때,이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고,또 그것이 다행히 넣어졌습니다만,나는 이런것을 생각할 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우리의 해방은 미국의 승리 연합군의 승리 덕택이라는 말은 말은 안된다 이겁니다.만일 그렇다면, 카이로 회담에서, 포츠담 선언에서 한국 독립이 특별히 규정됐겠느냐? 한국의 독립이 그렇게 특별히 규정된 것은,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의 선열들이 만주에서, 시베리아에서, 중국대륙에서 목숨을 걸고 황야에서 이리떼의 밥이 되면서도 싸운 그 덕택이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의 해방이 외세에 의해서 이뤄진 것이라는 사대주의적인 역사관을 단호히 버려야 한다 이말이에요.(박수)

이렇게 쟁취한 해방이었는데, 해방 이후 42년은 우리 민족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한마디로 말해서 민족발전이 저해된 그런 42년이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조국이 둘로 갈라져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아무 책임도 없이 미·소 강대국이 멋대로 줄을 쳐가지고 우리를 두 동강이로 잘라놨어요. 그래가지고 북쪽은 공산주의 , 남쪽은 자본주의 또 이렇게 점령군의 영향을 받게 됐어요. 이러한 우리의 본의 아닌 분단, 통일신라 이래 1300년 동안 유지해왔던 우리의 통일국가가 이와 같이 외세에 의해 분단됐다는 그 사실뿐만 아니라, 역대 남북을 지배한 정권 배후에서는 이 외세 강대국들이 자기들의 체제를 강요하고, 백성을 무시하고, 소수자에게 권력을 집중시키고, 이렇게 해서 자기 나라에 굴종하고 추종하는 그런 체제를 강요하고,(박수)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우리 민족의 발전을 저해한 최대 요인은 외세의 간섭이었다고 단언하면서, 그러한 외세의 간섭에 대해서 이것은 자기네들이 사적인 동기를 위해 여기에 영합하고 아부한 사대주의자들이 이 나라 민주발전을 망쳤다고 이 자리에서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옳소!", 박수)

남한 내부적인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우리의 민족발전을, 국민발전을 망친 것은 하나는 친일정권이요, 다른 하나는 군사정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승만 박사, 명색이 애국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는 사람이 정권을 잡기 위해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친일파를 주위에 집결시켜 가지고 대한민국을 처음부터 친일파 일색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래서 군에는 광복군이나 독립군에 참가했던 사람을 제외되고, 만주군·일본군에 나갔던 일제의 고등계 형사들이 다 잡았고, 관리는 총독부 관리들이 다 잡았어요. 경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해서 애국자들은 전부 소외되었을 뿐만아니라 김구선생의 경우에서 본바와 같이, 우리의 절대 애국자인, 일본놈들도 감히 죽이지 못했던 그 분이 친일파들 손에 의해서, 李承晩정권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것이 얼마나 민족반역적인 것인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박수)

나는 지금도 그렇게 억울하게 돌아가신 김구선생, 황량한 벌판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떨다 돌아가신 애국자들, 아버지 때문에 일제시대에 박해받고 공부도 못하다가 해방 후도 여전히 고통에 휩쓸려 교육을 못받은 그 후손들, 반면에 친일파의 자식들은 전부 고관대작, 부자 아버지 덕에 외국 유학도 가고 고등교육을 받으면서 대대로 잘사는 그 사실, 이것이 현실인 것입니다. 李박사 치하의 현실인 것입니다. 李박사의 신념은 친일파적이었습니다. 그런데 李박사 시대가 끝나고 나니까 박정희라는 진짜 친일파가 등장했습니다.(웃음)

오늘의 정권이란 것도, 이 친일정권 박정희씨가 친일파의 후계자들이요, 이 정권의 교관들이나 이 정부 이 사회의 소위 지배층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아버지가 친일파였고, 그 돈으로 외국 유학갔던 사랍들이요. 이런 자들이 이 나라를 계속 지배하고 있으니, 민족정통성이 서지 않는, 정의가 서지 않는, 올바르고 정직하고 양심적으로 사는 사람이 성공하지 못하는, 조국을 위해 몸바친 사람들이 버림받는 이런 사회야말로 민족발전을 근본적으로 저해하는 사회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입니까?(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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