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terview with decca 님

Q. 추리소설을 읽는 이유/추리소설 읽는 즐거움은?

A. 재미있기 때문이죠. 추리소설은 인간의  두 가지 욕망(범죄와 지적 탐구)를 모두 만족시키는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장르와도 비교할 수 없는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어서, 다양한 취향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죠. 요즘같이 책이 활발하게 출판되는 시기라면 뭐 고르는 족족 신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내 인생의 추리소설' 5권을 꼽는다면.

A. 
1) <셜록 홈즈 시리즈>, 아서 코난 도일지음
운 좋게도 시리즈 전작을(심지어 주석본까지) 국내에서 볼 수 있습니다. 셜록 홈즈라는 캐릭터는 너무나도 유명하고 엄청나게 재생산됐으며 한 세기 전의 작품들이라 ‘굳이 읽지 않아도’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장르의 원형을 접하고 당대의 풍속을 읽을 수 있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단순한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문학의 고전 반열에 오른 작품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2)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비공식적이지만, 우리나라에 소개된 번역 추리소설 중 최초의 밀리언셀러일 겁니다. 고립된 섬에서 한 명, 한 명 노래에 맞춰 죽어 나가는 플롯은 추리소설 사상 최고의 발명품이 돼 수천 번 변주됐습니다. 네 명쯤 죽었던가? 섬 안의 투숙객들이 두려움에 떨며 밤에 각자 문을 잠그는 장면에 몹시 감동을 받았던... 어린 시절, 인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봤던(?) 잊지 못할 추리소설입니다.

3) <십각관 살인사건>,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한 번 절판된 후 재출간됐습니다. 추리소설의 여러 쾌감 중 독자에게 가장 매력적인 요소라면 역시 ‘경이감’을 들 수 있겠죠. 이 작품은 제게 경이감을 안겨 준 최초의 작품입니다. 세계가 혼란에 빠지고 읽던 페이지가 사라진 듯한 놀라움. 추리소설 마니아 출신이었던 작가는 독자를 멋지게 농락합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을 테마로 삼은 멋진 변주곡으로, 신본격의 시작이며 고전으로 남아 있습니다. 

4) <우부메의 여름>, 교고쿠 나츠히코 지음
역사적으로 보면 이 작품은 라이트 노벨의 시조 격에 해당하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으로 인해 추리소설(적어도 일본 추리소설)은 고리타분한 인습을 벗어 던지고 각 편마다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우부메의 여름>은 토론하기 좋은 작품입니다. 사람마다 취향이 분명하게 갈릴 요소를 가지고 있지요. 화려한 스타일에 현혹되고 머릿속에 공동을 만드는 한 방을 지닌 작품입니다.

5) <열흘간의 불가사의>, 엘러리 퀸 지음
절판된 시그마북스 리스트에 포함돼 있어 구하기 다소 어려운 작품입니다. 다 읽고 “엘러리 퀸!”을 연호했던 즐거운 추억이 있는 작품입니다. 엘러리 퀸 3기에 해당하는 라이츠빌 시리즈 중 최고 아니 엘러리 퀸 전작 중에서도 최고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거장의 힘을 보여 준 작품으로 모든 요소가 질서 있게 배열되는 마지막 부분은 추리소설의 진정한 즐거움을 느끼게 해 줍니다. 또 잘난 척 탐정 엘러리 퀸이 허물어지는 특별한 작품이기도 하지요.

Q. '올해 여름, 필독을 권하는 추리소설' 5권은?

A.
1) <아웃>, 기리노 나쓰오 지음
심연을 들여다보는 어두운 여류 작가, 기리노 나쓰오의 1998년 작품입니다. 동양인 최초로 MWA 후보(2004년)에 오르기도 했던 작품이죠. 네 명의 주부가 시체 처리를 하게 된다는 잘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책장을 넘길수록 잘 이해되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독특한 구성, 흡인력 있는 글 솜씨, 살아 움직이는 듯한 캐릭터 그리고 사회를 관조하는 힘까지. 매력적인 범죄소설의 모든 면을 지니고 있는 작품입니다.

2) <레이븐 블랙>, 앤 클리브스 지음
2006년 CWA 던컨 로리 대거 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영국 서북단의 작은 섬, 이웃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한정된 용의자 그리고 숨겨진 관계가 드러나면서 떠오르는 범죄. 겨울을 배경으로 한 작품의 선명한 이미지는 잠시 여름의 더위를 잊게 할지도 모릅니다. 세계 제1차 대전을 전후한 영국 황금기의 전통이 어떤 식으로 현대에 변용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작품입니다.

3) <살육에 이르는 병>, 아비코 다케마루 지음
신본격 추리소설의 1세대 작가 아비코 다케마루의 대표작입니다. 강렬한 장면 묘사와 깜짝 놀랄 만한 반전이 너무나도 충격적입니다. 범인, 추적자 그리고 범행을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 여인. 세 사람의 시선이 교차해서 서술되고 마지막에 이르면 독자는 서둘러 첫 장을 다시 읽어야만 하지요. 여름,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는 경험을 하고 싶다면 무조건 선택하시길. 단, 19세 미만 구독불가입니다.

4) <필립 말로 시리즈>, 레이몬드 챈들러, 북하우스
추리소설을 읽다보면 역사적 전개에 호기심이 생기고, 하드보일드라는 서브 장르를 만나게 됩니다. 뭐 잡다한 설명은 그만두고 하드보일드는 하나의 스타일입니다. 그것도 폼 나는 멋진 스타일이지요. 레이몬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 시리즈 6권은 이 스타일의 완성을 보여 줍니다. ‘고전 필독’이라는 흔한 말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시리즈입니다. 필립 말로를 만나면 추리소설을 보는 시선이 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5) <모방범>, 미야베 미유키, 현대문학
3권 분량의 <모방범>은 사실 원고지 6000매, 문고본 5권 정도의 분량입니다. 서점에 가서 살펴보면 어마어마한 분량이라 기가 질리시겠지만 막상 손에 쥐면 술술 읽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 최고의 대중작가라고 할 수 있는 미야베 미유키의 역작으로, 그녀 특유의 범죄, 인간,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느낄 수 있습니다. 독자를 쥐락펴락하는 글을 맛보면 과연 미야베 미유키, 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됩니다.

Q.내 인생의 '첫' 추리소설은?

A. 운 좋게도 시조격인 작품이 첫 추리소설이었습니다. 아동판이기는 했지만 에밀 가보리오의 <르콕 탐정>이었죠. 후에 국일미디어에서 출간됐습니다. 


Q. 재출간을 바라거나,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길 바라는 추리소설/작가가 있다면?

A. 도로시 세이어스, 마저리 루이스 엘링엄, 나이오 마시로 이어지는 황금기 고전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보고 싶습니다. 또 엘러리 퀸과 존 딕슨 카 등도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됐으면 좋겠습니다.

# 자기 소개

중학교 시절부터 추리소설을 읽어 온 이래, 사람이 죽지 않는 책은 잘 읽지 못하는 황폐한 인간으로, 1999년부터 나우누리 추리문학동호회 시삽을 5년간 역임했다. 이후 지나친 독재로 시삽에서 축출된 후 howmystery.com이라는 사이트를 운영중이다. 독자로서 기획한 도서로는 <셜록 홈스 걸작선> <브라운 신부 시리즈> <레이몬드 챈들러 전집> 등이 있으며 다양한 매체에 추리소설 관련 글을 기고했다. 현재는 시공사에서 장르 쪽 소설을 담당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추리소설 시장에 번역된 ‘고전’을 채워넣으려고 고심하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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