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을 잠시 제쳐두고 글 한 편을 적고 싶은 마음이 들어 자판 좀 두드려 본다.
오늘 서재에 들어왔더니 재미있는, 아니 어찌보면 아주 보편적인 현상을 발견하였다.(가끔 내가 자주쓰는 이 "재미있는"이라는 표현 속에는 상황에 따라 다른 뜻이 들어있다. 문득, 자제하거나 기타 설명을 첨가해야 마땅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ㅡㅡㅋ...) 다름아닌 "마태우스"라는 아이디의 분과 "매너리스트"라는 분, 두 분이 쓰신 상반된 의견의 글이 일종의 토론의 장을 마련한 것이다. 그 토론의 장에 참여할까 하다가 두 분의 주제에 관해 생각하기 전에, 이 글을 먼저 쓰고 싶어져서 이렇게 내 개인 서재 홈으로 돌아와 있는 중이다. 두 분 중 한 분은 이 글을 보시게 될 수도 있다. 이 얼굴 없는 공간에서 그 분과 나는 얼마 전에 일종의 친분있는 관계를 맺었으니까... 이 "알라딘"이라는 사회가 공식적으로 통용하는 언어로 표현하자면, 그 분과 나는 "즐겨찾는 서재"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분께서 왜 토론에 참가하지도 않았으면서 뒤에서 상관없는 말이나 늘어놓는거냐라고 따지시리라고는 생각치 않는다. ^^;;... )
일반적으로 생각해 볼 때, 인간 개개인이 모이는 곳에는 "사회"라는 것이 형성된다. (물론 영국의 수상이었던 대처 여사같은 사람은 1989년 2월에 사회란 없으며 오로지 남녀 개인과 가족만이 있을 뿐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사회란 무엇이고 그것은 과연 존재하는가"...라는 식의 주제를 논하기엔 개인적으로 능력이 상당히 떨어지니 그 문제는 잠시 제쳐두기로 하자. 언제까지 제쳐두고자 하는가는 묻지 말라. 나도 알 수 없으니까...^^;ㅋ)
그런 의미에서 이 알라딘이라는 사이트 역시 일종의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사회라는 것이 때로는 따뜻한 온정과 협력, 격려 등의 하에 굴러가는가 하면 때로는 갈등과 다툼, 반목 등 보기에 그다지 편안하지는 않은 현상 등이 나타나기도 한다. 사회는 이 양자와 이 양자의 중간에 속하는, 혹은 이 양자와 전혀 관계없는 상태들로 점철되어 상당히 복잡하기 그지없는 산물인 것이다. 오늘 문득 이 알라딘이라는 이름의 공동체 또한 그 복잡함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이 알라딘이라는 사이트 속에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경험하고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사회와 명백히 다른 점은 얼굴이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 뿐이다.(물론 서재 이미지에 본인의 사진을 넣는 분들도 계시지만, 상대방에 속하는 사람들은 그 분의 모든 표정을 알지는 못한다.) 또 하나 생각해야 할 부분은 '글과 인격의 일치'에 관한 것인데, 김형경 씨의 최근 소설<성에>에 의견을 따르자면 그건 일종의 금기에 속하는 부분이며, 생각하기 시작하면 복잡하기 그저 없어지기 때문에 이 역시 잠시 제쳐두고자 한다.(물론 내가 글 쓰시는 분들과 그 분들의 인격이 일치하지 않을수도 있다고 특별히 의심이 드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럴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기에 언급하는 것일 따름이다.)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마태우스 님이나 매너리스트 님, 그 외 이분들의 서재를 즐겨찾는다고 추측되어지는 몇몇 분들-건디기 님이나 깍두기 님, 바람구두 님, 물만두 님 등등. 그 외에도 아주 많다. 흑백 TV 님이나 평범한 여대생 님 등등 -과 이 집단(?!)에 속하지 않고 다른 영역에서 이 비스무레한 집단을 형성하고 있을 분들은 상당히 대중적이며, 이 알라딘 사회에서 그 명성이 알려진 분들이다. 반면에 매니아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분들도 계신데, 그 분들은 자신들의 서재에서 개인적인 부분은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대부분이 학술적이거나 전문적인 지식을 수반하고 있다. 사마천 님이나 이방인의 눈 님, 천왕성의 궤도 님, 도요재 님 등은 (내가 보기엔)이런 쪽에 속한다고 판단된다. 이 알라딘 사회 속에는 위의 두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에서야 알았지만)이런 분들의 글을 그저 소위 "펌질"을 통해 가져다가 자신의 서재를 꾸미는 사람들이 있으며, 마지막으로는 나처럼 그저 적당히 놀다 가는(?!^^;;) 사람들이 있다.
알라딘이 제공하는 기본 서비스, 즉 책의 구매와 배송 등과 5000원 적립금 및 각종 이벤트들은 일종의 사회제도들이다.
이렇게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의 대화, 그들 사이의 협력관계와 갈등, 그리고 제공되는 제도들, 이 모든 것들이 알라딘이라는 사회를 구성하고 돌아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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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혼자서만 살아갈 수 있을까?... 다니엘 디포우의소설 <로빈슨 크루소>의 결론은 그럴 수 없다이며, 나 역시 그럴 수 없다는 쪽에 더 공감이 간다. 물론 이영도 씨의 소설 <폴라리스 랩소디>에 등장하는 "오스발"이라는 캐릭터처럼 완벽한 자유를 누리는 존재라면 다른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수 있는 인간이 과연 있는가에 대해서 는 개인적으로 회의가 든다. 이 서재에 방문제도라는 것이 없다면, 과연 서재를 운영할 사람이 있을까?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홈페이지를 만들지만, 그 홈페이지 개설의 목적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며, 보여주는 것 자체가 일종의 양자사이의 상호작용이다. 인간과 사회는 따로 생각할 수 없는 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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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 말이 길어졌다. 이젠 결론을 내야할 것 같다. 좋은 사회를 구성한다는 건, 어찌보면 너무나도 원론적인 말이겠지만 인간 개개인의 의식 개선과 서로에 대한 이해 그리고 제도적인 차원의 개선이 동시에 이루어져야만 가능한 일이다. 문득 오늘 내가 속한 이 알라딘이라는 사회가 띠는 복잡한 면들을 바라보면서, 꼭 이 알라딘이라는 사회 뿐만 아니라 인간이 모이는 모든 사회에서 모두가 유익하고 즐겁게 살아가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고찰을 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