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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
김형경 지음 / 푸른숲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을 멀리 한 지 1년 6개월만에 손에 든 책이 바로 이 책 <성에>였다.
6개월 전에 처음 구입했을 때는 개인적인 이유로 읽어나가기가 너무나도 힘들었는데, 지금은 순순히 읽혀졌다.
글에서 공감가는 내용 및 문장이 상당히 많아 마음에 와 닿는 책이다.
성도 사랑도 결국은 환상이라는 것, 누구나 환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 환상은 결코 완성될 수 없다는 것, 그러나 사람이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결국은 이 환상을 추구할 수 밖에 없다는 것 등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공감이 들었다.(읽는 동안 영화 <2046>이 생각났다.)
그러나 바스티유나 마르쿠제,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 성과 죽음을 통한 유토피아의 완성 등 학술성이 짙은 부분들에 대해서는 개인적 역량부족으로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글 중 연희와 세중이 세 구의 시체를 발견한 후에 섹스 행위에 몰두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도 알 수가 없다.) 아직 나이에 이르지 않아 이해할 수 없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고, 개인적으로 작가와 의견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특히 성의 억압이 그 승화로서 예술의 창조와 이어진다는 것, 아프리카 등에 사는 소수민족들은 성이 자유롭기 때문에 문명의 발달을 이루지 못했다는 내용 등에 대해서는 그다지 찬성하고 싶지 않다.
읽는 내내 왠지 연희와 세중의 관계가 불공평하다고 느껴졌던 이유는 독자인 내가 사랑이 섹스보다 고귀한 행위라고 교육받아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환멸이라는 상황은 양자 모두에게 공평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참나무와 박새, 청설모 그리고 바람 등 인간이외의 이 세상을 구성하는 생물 및 무형물을 의인화하여 그들의 특성과 행위에 대해 자세하게 표현한 부분들에서, 글을 쓰기 위한 작가의 세심한 노력을 엿볼 수 있으며, 우리 인간이 얼마나 자의적인가에 대해서도 공감할 수 있다.
오랜만에 좋은 소설 한 편 읽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