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중에 얼마 전에 졸업을 하고 대학원을 준비하는 넘(?!)이 하나 있다. 대학원 입학 전까지 알바로 학원에서 일하고 있는 그녀. 방학을 틈타 들어온 나는 그녀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녀는 용돈 벌기 힘들다는 푸념을 늘어놓으면서도 한국인의 자랑(?!)이라 할 수 있는 한턱을 발휘하고자 했다. 영화를 보여주든지 밥을 사주겠다는 것이다.

너무 과하지만 않다면  나는 이 한턱 문화에 반대하지 않는다. 나 역시 사주고 싶어서, 혹은 과시(?!)하느라, 때로는 예의 상 이렇게 소위 "쏘는" 경우가 종종 있다.(나의 경제적 능력은 잠시 별개로 하고 말이다...^^;; 내 사회적 위치-학생, 직업현황--백수) 그러나 나는 이런 말에 그렇게 매달리지는 않는 성격이다. "돈버는 입장이니 한턱 쏜다"는 말은 나로 하여금 미소 짓게 할 수는 있어도 기대를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

주중에는 그녀가 피곤할까봐 특별히 다시 연락을 하지는 않았다. 주말 쯤에 슬슬 다시 전화를 걸어 만날 약속을 정할 예정이었다. 그러던 중에 그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는 그녀가 바쁘기 때문에 먼저 전화를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예상 밖의 전화에 놀랍고 고마웠다. 언제 만나냐며 내 시간을 묻던 그녀는 자신이 영화를 보여줄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내게 확인시켜주었다. 약속 날짜는 어제인 30일이었고, 약속 장소는 서울 삼성의 코엑스였다.

이쯤되니 나도 무슨 영화를 볼까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29일에 개봉한 <친절한 금자씨>가 가장 먼저 떠올랐지만, 겨우 하루가 지난 30일에 그 수많은 인파와 경쟁을 뚫고 관람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었다.

30일, 나는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30분 일찍 약속 장소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약속 시간보다 한시간 늦게 도착하였다. ...ㅡㅡ;;.. 죽을 죄를 지었다며 점심까지 쏠테니 봐달라는 그 넘의 애교에 화가 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걸 빌미로 그녀로 하여금 점심을 사게 할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설사 지금 그녀가 돈을 벌고 있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임시직일 뿐이며 그녀가 대학원에 들어간다면 그녀는 다시 학생 신분으로 돌아갈 터, 영화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하고 또한 고마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점심값은 그렇게 각자 계산하였다.

그렇게 늦은 점심을 먹고 영화표를 사러 갔다. 주말인 탓인지 시장터마냥 사람들이 북적거렸고 영화상영시간과 예매상황을 알리는 TV를 보니, <친절한 금자씨>와 <아일랜드>라는 영화는 조조부터 밤 12시 정도의 시간까지 전부 매진이었다. 공포 영화는 그녀 쪽에서 질색하는 터라 선택대상이 될 수 없었고 강혜정이 나오는 영화 <웰컴 어쩌구~.. >는 4시 몇 분 상영이 곧 매진될 예정이었다. 한가한 것은 <로봇> 등의 애니메이션 뿐이었다.  <웰컴 어쩌구~.. >는 너무 늦는다며 그녀는 별로 내키지 않는 기색을 보였다. 애니메이션의 경우, 평소 나의 생각에 있어서 영화관에서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만큼 돈낭비도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강남에 가서 다시 알아보자는 제의를 하였고 그녀는 동의하였다. 다시 돌아가는 길에 그녀와 나는 그 삼성 지하길을 둘러보면서  윈도우쇼핑을 하였고 그녀는 옷을 한 벌 구매하였다. 그렇게 쇼핑을 하고 그곳을 나오니 시간은 3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갑자기 그녀 왈, "지금 이 시간에 강남에 가는 건 좀 늦은 것 같으니까 그냥 여기서 개기는 게 어때?!"... 나는 저녁에 그녀에게 다른 일이 있는 줄 알았다. 또한 이 말은 영화관람을 포기하자는 말이기도 했다.  나는 순순히 동의하였고 그녀는 나를 끌고 현대백화점으로 직행하였다.

또다시 쇼핑... 그리고 잠시간의 대화... 그런데 대화 중에 우연히 그 날 저녁 예정이 어떠한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알고보니 그녀에게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 그걸 안 순간, 영화를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화가 나 버렸다...

...

아직 어둠이 내리지 않은 오후를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처음부터 그냥 오랜만에 만나서 밥먹고 영화나 보자~라는 식으로 말했던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기대를 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내가 영화 보여달라고 울며불며 매달린 것이 아니라 그녀가 자진해서 꼬옥 보여주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것을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취소해버리는 그녀의 태도에 화가 났다. 가족들 때문에 혹은, 피곤해서 일찍 집에 들어가고 싶다는 말만 했어도 화가 나지는 않았울 텐데...하는 생각이 계속 머리를 때렸다.

또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아무리 돈이 없고 백수상태일지언정 영화 한 편 볼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다른 사람도 아닌 친구에게 왜 이렇게 기분이 나빠야 하나?... 내가 그렇게 속좁은 인간이었나?...하는 자학감도 들었다. (그 영화 제작을 위해 혼신을 다했을 감독에게는 미안한 말투지만)"그깟" 영화 한 편에 이렇게 신경쓰는 나는 결코 좋은 인간성의 소유자는 아니라는 생각이 머리를 휘저으며 집에 가는 내내 나를 괴롭혔다.

기대를 했던 게 문제인 걸까?!... 이렇게 가정할 경우, 나는 처음부터 그녀를 신뢰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게 옳은 결론인건가?! 누군가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말은 곧 그 사람의 행동에 문제가 있다는 말인 동시에 그 사람을 바라보는 내 시각도 처음부터 편파적이라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나는 왜 그녀에게 그런 시선을 보내야 하나? 그녀에게 그런 시선을 던지는 나 자신에게는 문제가 없는 건가?!...

...

결국 어떤 식이어도 나는 나쁜 인간이 되어버리는 꼴이었다...뭐 이런 뭐같은 상황이 다 있는지......

...

물론 이 감정이 오래가지는 않았으며, 지금 타자를 치는 이 순간에는 이미 아무런 느낌도 없다. 약속은, 물론 지키라고 있는 거지만 살다보면 실수할 수도 있는 법이라는 것쯤이야 어린 애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나 역시 지금 이 순간까지 모든 약속을 다 지키며 살아온 것은 아니니까... 그녀의 약속은 정말 사소한 것이었다. 절대로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는 그 무언가가 아니었다. 그러나, 사소한 일에 기분상한 나는 분명 인격상 문제가 있는 사람이겠지만, 만약 나도 나같은 사람을 만나 사소한 실수를 한다면 꽤나 골치아픈 일이겠지...

인격 수양이 필요하다는 반성과 더불어 자신이 한 약속에 대해서, 완벽하게 지키지는 못한다면 지켜려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하겠다는 다짐을 잠시 해 본다. 자기 관리란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쩝~...ㅡㅡㅋ...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05-08-08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상황이 다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어느정도는 이해가 되네요. 제 생각에는요.
님이 영화를 보고, 안보고.와는 별개로 그 친구가 님을 존중하고 님의 의사를 먼저.
물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표가 매진되었어도 충분히 다른 극장
으로 가서 영화를 볼 수 있는 상황이었잖아요. 아마 그 친구분은 그렇게 해서까지.
영화를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나봐요. 쇼핑을 더 하고 싶었겠죠. -_-;
저라면 영화를 보려고 만났으니 다른 곳에 가서 보자고 말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친구의 입장이라면 님의 의사를 물어보았겠죠. 다른 곳에 가서 볼까?
하구요. 님이 의사 표현을 확실하게 해주셨으면 하는 부분도 있지만서도. 그 친구분
이 너무 일방적으로 제안을 한 것 같다는 느낌이 더 크네요. 다음에는요..
확실하게 말해보세요. 약속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요. 그리고..
영화를 보자고 제안하는 것 자체가 그냥 형식적인 멘트 정도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지요. 꼭 영화를 보지 않아도 얼굴 보고 밥먹고 이야기하면 됐지 뭐. 이런 식이죠.
아마 사람은 늘 자기 입장에서 생각을 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타인을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태도가 상당히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잘 안될 때도 많지요.
저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 그것이 바로..
님이 만% 공감한다고 하셨던 머리에서 가슴으로 이르는 길이 힘들다는 증거겠죠.

포도나라 2005-08-08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시장미 님 말씀이 맞아여...
그런데요...
뭐랄까...
뭐든 금전이 관계되는 일은 여러가지로 불편한 것 같아요... 의사 표현을 하고 싶어도... 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해 더 신중히 생각하게 되네요...

제가 문제겠죠...
ㅡㅡ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