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로토닌의 비밀 - 불안과 우울을 치유하는 행복호르몬
캐롤 하트 지음, 최명희 옮김 / 미다스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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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심리학 전공자다. 심리학은 '인간의 이해'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인간은 심리학자들에게 잔인할 정도로 복잡한 존재이다. 하긴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다면, 심리학은 이미 임무(=인간의 이해)를 완성하고 사라졌을 것이다. 

인간은 그렇게 복잡하기 때문에 여러 각도에서 연구가 가능하다. 
사회심리학, 문화심리학과 같은 심리학이 있는가 하면, 분자생물학의 단위에서 사람을 연구하는 심리학도 있다. 

소비자심리학, 인지심리학, 조직심리학, 광고심리학, 동기심리학, 학습심리학, 성격심리학, 지각심리학, 발달심리학, 성인노인 심리학.....

심리학의 분야는 연구대상과 연구 방법에 의해 끝도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그런 수많은 심리학 중에서 가장 명쾌한 심리학은 아마도 인간을 생물학적으로 이해하는 생물(생리)심리학일 것이다. 밝히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이미 밝혀진 인간의 생물학적 이해는 정말이지 너무나 선명하고 인과관계가 분명하니까 말이다. 

생물심리학에서 인간의 몸과 마음을 연결해주는 고리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호르몬이나 신경전달물질이다. 바로 이 책 '세로토닌의 비밀'의 세로토닌과 같은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생존과 항상성을 위해서 신경전달물질을 이용하여, 몸에 명령을 한다. 다양한 종류의 뇌가 그런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고? 그렇다. 바로 뇌가 그런 역할을 하는데, 그 전달자가 바로 신경전달 물질이다.  

그리고, 모든 신경전달 물질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세로토닌이다. 저자는 세로토닌을 모든 신경전달 물질의 지휘자라고 표현하고 있다.

세로토닌은 뇌와 소화기에서 작용한다. 뇌에서는 10%가 쓰이고 소화기에서 90%가 쓰인다고 한다. 이 신경전달물질의 지휘자는 정말 범용적인 쓰임새를 가지고 있다. 다양한 증상 뒤에는 모두 세로토닌이 작동하면서 조절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예전에 인터넷 덧글중 어떤 사건이 일어나도 "이게 다 OOO 때문이다."라는 웃지 못할 덧글이 생각날 정도였다.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의 행동과 기분? 이게 다 세로토닌 때문인가? 싶을 정도로.

세로토닌은 정말이지 너무나 광범위하게 쓰이고, 범용적인 역할을 하고 있어서...  책을 읽는 내내 세로토닌의 역할을 단 한가지 기능으로 정의해 보고 싶었는데... 얕은 식견이지만, 세로토닌은 우리 몸과 정신의 "긴장과 이완"을 담당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지나친 긴장과 지나친 이완 모두 좋은 것은 아니다. 그 균형을 잡기 위해서 세로토닌은 오늘도 부지런히 뇌와 소화기에서 열심히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지휘하고 있다.  


그럼 이 책을 펼쳐서 가득 검은 색연필로 친 줄을 대략 살펴보자. 

- 항우울제에서 마약까지 기분을 상승시켜주는 약품은 모두 두뇌에 공급되는 세로토닌의 양을 증가시키는 효력을 가진다고 한다.  : 그런데 항우울제는 두통이나 식욕이상, 알코올 중독에도 처방된다. 

- 세로토닌은 기분과 식욕, 통증, 수면을 조정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 두뇌 세로토닌 활동 수준이 낮아지면, 기억능력이 손상되고 판단력과 결단력도 낮아진다.

- 세로토닌은 정지상태에서 동작을 시작하게 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운동후 느끼는 상쾌함은 세로토닌의 방출 덕분)

- 세로토닌은 특수화된 분자로서 신경세포들이 서로 반응하고, 접촉할 수 있도록 조정을 하는 역할을 한다. : 이게 없으면 우리는 생각도 운동도 살아갈 수도 없다. 

- 세로토닌의 가장 중요한 원료는 트립토판이라고 불리우는 아미노산이다.   : 트립토판은 음식으로 섭취하므로, 적절한 시간의 탄수화물 식사나 간식이 필요하다.

- 세로토닌의 10%만 뇌에서 나머지는 위장기관에서 활동한다.

- 세로토닌은 기분을 좌우하고, 의욕을 결정하고, 충동과 공격성을 조절하고, 반사회적 행동을 억제하며, 태아를 형성하고, 식욕과 알코올, 니코틴, 약물에 대한 집착, 혈류와 혈압, 수면과 각성을 조정한다. 게다가 온갖 두통들은 세로토닌 시스템의 이상이다.

- 세로토닌 부족은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많단다. 여성호르몬의 영향인데 두뇌 세로토닌은 남성이 여성보다 52% 더 높게 합성한단다. : 위장에서 분비되는 세로토닌은 뇌로 못들어간다. (입자가 커서 혈뇌장벽을 통과하지 못함.) 

- 세로토닌이 지나치게 많으면 마르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폐증과도 연관되어 있다. 
- 낮에는 세로토닌(각성), 밤에는 멜라토닌(수면, 어둠에 의해 생성)이 우리를 지배한다. 
 : 불면증이 있다면, 아침에 강한 빛을 받으며 산책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우울증에도 효과) 


 - 세로토닌이 부족하거나 지나치면... (보통은 부족할 경우)
 : 기분이 나빠지고, 편두통, 과민성대장증후군, 섬유조직염, 만성적인 통증, 소화불량, 불안, 강박, 스트레스, 공포, 공황장애, 과음, 여러것에 대한 중독들, 거식증, 폭식증...(이게 다 세로토닌 때문?) 

- 이 모든 것이 세로토닌과 관계가 있는데, 세로토닌은 음식, 움직임과 많은 관계가 있다고 한다. 고탄수화물, 운동

- 우리는 세로토닌의 생성을 위해 음식물을 섭취하고, 운동을 해야 한다. (껌이라도 씹으란다.)

물론, 세로토닌은 정보를 전달하는 물질이다. 전달 수단이 목적으로 바뀐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로토닌이 없으면 정보를 전달할 수 없는 것은 확실하다. 

전체적으로 재미있는 책이었지만, 초판 1쇄였던 내 책은 오탈자가 너무 많아 아쉬웠다.
(아마도 교정하는 사람의 멜라토닌 수치가 높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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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김혜남 지음 / 갤리온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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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라는 책의 저자인 정신과 의사 김혜남씨의 2002년도 책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를 읽었다.

중고샵에서 구입했는데, 06년 23쇄로 인쇄된 책이다. 길게 많이 팔렸고, 검색해 보니 출판사를 바꾸어 재출간 되기도 하였다.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라는 책은 43쇄였던 걸로 기억한다. 이제 작가로 더 유명할 김혜남씨의 책은 어떻게 이렇게 많이 팔릴까?

그녀의 두권의 책을 보니, 정신과 전문의답게 "공감과 치유의 글쓰기"에 굉장한 재능을 지니고 있는 듯 하다.

게다가 사람들이 해결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인생의 발달과제를 친절하게 다루고 있으니, 그 독자층은 끊임이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계속 나이를 먹으니까....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도 서른살만을 위한 책은 아니다. 잠재적으로 끊임없이 나이먹어 서른이 되고 비슷한 고민을 할 사람들을 고려한다면 말이다.)

 

정신분석학은 의학에서도 심리학에서도 더 이상 주류는 아니다. 아니, 한번도 주류였던 적이 없었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과학적인 검증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네오프로이디언들의 이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프로이디언들의 이론은 이미 상식의 영역으로 진입했다. 일단 상식의 영역이 된 이상 그들의 이야기는 힘을 갖는다.

세르주 모스코비치는 정신분석학의 용어와 생각들이 어떻게 일반인들에게 퍼져가는지에 대해서 연구했다.

"사회적 표상(Social Representation)"의 과정을 통해 일상의 영역으로 스며든 것이다.

정신분석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도 무의식, 퇴행, 투사, ego, id, 리비도, 외디푸스 컴플렉스와 같은 단어들을 쓴다.

이런 개념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잘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실용적인 가치가 인정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혜남 작가는 이러한 정신분석학적 무기를 가지고, 책을 통해 아마도 잠궈 놓았을 독자들의 방문을 두드린다.

누구나 가지고 있을 상처와 당면한 어려움을 '드라마'나 '영화', '임상사례' 등을 통해 드러내고, 상처를 어루만져 준다.

나만 이런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니구나, 보편적인 문제구나만 확인해도 안심이 될 터이니 독자들이 많이 찾을 수 밖에....

 

하지만, 이런 '공감과 치유'의 책의 내용이 꼭 정신분석학일 필요는 없다.

정신분석학의 '결정론'은 드라마틱하고 매력적이긴 하지만 그것만이 단 하나의 원인이 아닐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랑'이 어려운 사람들은 이 책을 읽어보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사랑에 대한 다른 책도 읽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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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 그림자 - 2010년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민음 경장편 4
황정은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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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 바다로 간다. 

그럼, 시간은?
시간은 흘러 대체 어디로 가는 것일까?
언제나 현재만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
지나간 시간이 어디로 사라지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시간은 존재하는 모든 곳에 스며든다. 

기억 속에, 기록 속에, 건물에, 나이테에, 조가비의 껍질에, 눈가의 주름에, 이가 빠진 빈 공간에, 요람에, 무덤에, 산에, 들에....
 

작가 황정은의 소설 <백의 그림자>에는 무척 많은 시간이 켜켜이 쌓여있는 건물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시간은 '개발'이라는 흉기에 의해 산산히 흩어져 버린다.
 

그 속에는 은교와 무재의 아주 담담하고 평범한 사랑이 서려있고,
개발을 둘러 싼 소음에 씨발씨발하는 여씨 아저씨의 아날로그 앰프 고치는 기술도 있고,
오무사 할아버지의 수많은 작은 전구와 몇개를 사든 +1개를 주는 배려도 있고,
유곤 씨가 싫어하는 쥐며느리도 있고, 유곤 씨가 던져서 쥐며느리를 잡는 성경책도 있었다.
 

어느 날인가 쌓인 시간을 파괴하는 포크레인이 오면, 모든 것은 사라진다.
스며든 시간과 추억이 채 쌓일 사이도 없이 부셔 버리는 나라에 살고 있다.
우리는.
 

그래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자신만의 시계가 멈추는 그 날까지.
모두가 그렇게 살듯이 평범하게.

이 글을 쓰는데 언니네 이발관의 '산들산들'의 들려온다.
뭔가 이 책과 통하는 것이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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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산들.

                                     - 언니네 이발관 -

 

그렇게 사라져 가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네
잊을 수 없을 것만 같던 순간도 희미해져 갔어

영원히 변하지 않는건 세상 어디에도 없었지
하지만 잊을 수 없는게 어딘가 남아 있을거야

나는 이런 평범한 사람
누군가의 별이 되기엔
아직은 부족하지 그래도 난 가네
나는 나의 길을 가
소나기 피할 수 없어
구름 위를 날아 어디든지 가
외로워도 멈출 수 없는 그런 나의 길

다가올 시간 속의 너는 나를 잊은 채로 살겠지
하지만 잊을 수 없는게 조금은 남아있을 거야
새로운 세상으로 가면
나도 달라질 수 있을까
맘처럼 쉽진 않겠지만 꼭 한번 떠나보고 싶어

나는 이런 평범한 사람
많은 세월 살아왔지만
아직은 부족하지 그래서 난 가네
나는 나의 길을 가
소나기 두렵지 않아
구름 위를 날아 어디든지 가
외로워도 웃음지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고 싶네
그게 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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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는 힘
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 / 사계절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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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의 제목(?)인 <세모난 바퀴의 자전거>는 귀여운 어린이들이 타는 자그마한 <세발 자전거>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세모난 바퀴의 자전거"는 아이들이 넘어지지 않고 안전하게 탈 수 있는 "세발 자전거"와는 완전히 다른 무시무시한 자전거다. 바퀴는 본래 '원'이어야 한다. 그래야 지면과 닿는 면을 줄여서 편안하게 움직일 수 있다. 그런데 바퀴가 삼각형이라면... 그 자전거는 한번 페달을 밟을 때마다 죽을 힘을 다해야 하고, 지나간 길은 바퀴의 뾰족함에 여기저기 파여서 엉망진창인 비효율적인 존재일 것이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바퀴가 원이 아니라면 그것은 이미 자전거(스스로 굴러가는 수레)가 아닌 셈이다.  

(왜 이런 단어를 조합했는지는 http://eastdew.blog.me/140000356843 ← 포스트에 나와있다.) 

<세모난 바퀴의 자전거>와 가장 가까운 책 제목을 꼽으라면 강상중 교수의 <고민하는 힘>이 아닐까 싶다. 재일 한국인으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지고 태어난 강상중 교수는 이 자그마한 책에서 참 커다랗고 답을 내기가 쉽지 않은 고민거리들을 다루고 있다. 성찰없는 솔직함이 미덕이고, 진지함은 그 자체로 지루함인 요즈음 시대에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다. 목차를 통해서 그의 고민들을 살펴보자.

- 나는 누구인가?  - 돈이 세계의 전부인가? - 제대로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청춘은 아름다운가? 

- 믿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 -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가? -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을까? 

- 왜 죽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이 대단한 고민 거리들을 보고 혹자들은 이렇게 이야기 할 것이다. "답없는 고민을 하는 것은 낭비"라고 말이다. 고민하는 시간에 자기 개발을 하여 스펙을 쌓아 올리고, 더 높은 위치에 올라,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것이라고 말이다. 한편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 사람의 삶의 기초가 되는 철학과 가치관이 '부'와 '안락함', '권력'과 '지배' 등에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위와 같은 근본적인 고민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기초가 되는 탄탄한 철학과 가치관을 갖추기가 어렵다는 것이 문제이다. '물질적 부유함'을 인생의 제 1가치로 여기고 추구하는 사람이 "돈이 세계의 전부인가?"와 같은 질문에 대한 '고민'의 시간을 갖지 않았다면, 설령 그 사람이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된다고 할지라도 결국에는 허망함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고민'이라는 벽돌로 인생을 투자할 일인지에 대한 사상적 기초를 쌓지 않으면 결국 무엇이든 그 위에 쌓인 결과물은 와르르 무너지게 되어있다. 이것이 바로 고민이 갖는 본질적인 '힘'이다. 

강상중 교수는 100여년 전에 살았던 일본의 작가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를 '고민'의 선배로 삼고 있다. 이들은 답이 없는, 그러나 인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질문들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한 사람들이다. 삶의 후배들은 이러한 고민의 결과물들을 참고하면서 시행착오를 줄이거나, 고민을 심화시킬 수 있다. 또는 고독한 고민의 과정에서 위로를 받고, 일종의 즐거움까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가 그렇게 일방적인 가치로 숭상하는 "경제적 가치"는 사실 수단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인류가 가진 진정한 자산들은 끊임없이 골몰하고 고민한 흔적들이다. 돈으로 만든 것들은 길어야 100년 안에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치열한 고민의 결과들은 인류가 사라질 때까지 전승될만큼 소중하고 힘이 있는 법이다.

"진지하게 생각에 골몰한 끝에 뻔뻔해진다."
강상중 교수는 이런 말을 하며 작지만 힘있는 이 책을 마무리 짓고 있다. 진지한 고민을 거친 후에는 자신이 하는 행동에 뻔뻔할 정도로 자신감이 생긴다는 뜻일게다. 진지하고 깊은 고민은 그 고민의 주체를 '자유'로 이끄는 힘까지 지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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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의 충격 - 책은 어떻게 붕괴하고 어떻게 부활할 것인가?
사사키 도시나오 지음, 한석주 옮김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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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대략 1000권 정도의 책이 있는 듯하다. 책을 모아놓은 서재는 비록 물리적으로는 크지 않지만, 1000가지의 세계관이 농축된 형태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의미의 크기로 보면 꽤나 큰 방이 아닐 수 없다. 산 지 10년이 훌쩍 넘은 책들은 이제 햇볓과 습기, 책벌레 등에 의해서 낡아간다. 아버지가 대학교 다니실 때 사셨던 책들의 책장은 이제 비스킷처럼 딱딱하게 굳어져서 손만대면 바스라지는 것도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종이책의 물리적 상태가 낡아진다고 그 책이 가진 의미들도 함께 사라지느냐하면 그렇지는 않다. 영문과를 다니셨던 작은 고모가 원서로 산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 원서는 낡고 초라해 졌지만, 그의 생각들은 여전히 읽히고, 공유되는 생명력을 지녔다. (사회평론사에서 나온 2000년대 번역본이 1퍼밀의 농도로 책장에 존재하긴 한다.) 

종이책의 매력은 대단하다. 알록달록한 책등이 저마다의 이름표를 달고 들쭉날쭉한 크기로 책장을 장식하고 있는 아름다움은 어느 우아한 벽지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읽지 않은 책들의 책장에서 읽은 책의 책장으로 옮겨 놓을 때의 뿌듯함과 흐뭇함은 아는 사람들만 아는 리추얼의 즐거움이다. 서로 다른 작가들이 지은 책들이 때로는 서로를 지지하고, 때로는 서로 으르렁거리는 모습은 서재를 가진 사람들만이 아는 재미다. 가방 속에서 누군가를 너그러운 마음으로 기다리게 해주고, 교통수단을 더 이상 이동 수단으로서가 아닌 의미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주는 마법을 부리는 것도 종이책이다. 이러한 종이책들은 짐승의 가죽이나 나무에 글을 적는 죽간 등의 형태를 거쳐 만들어진 이후에 몇천년간 인간에게 지적 만족을 주어 왔다. (중국 후한 시대의 환관이었던 채륜이 종이를 만든 것은 약 2000년 전?)

하지만.... 우리가 종이책에서 얻는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구매하는 책은 궁극적으로 종이가 아니라 활자화된 저자의 생각이다. 종이는 양의 가죽이나 얇게 만든 대나무보다 훨씬 효율적인 미디어의 물리적 형태였을 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수많은 사람과 기업들이 인터넷과 무선통신망 등이 일반화되면서 책이 Atom에서 Bit로 전환될 것을 예측했다. 이 세상의 정보는 모두 정리해 버리겠다던 구글은 십수년 전부터 도서관의 엄청난 책들을 코딩해왔고, 음악을 디지털화해서 유통시키는 플랫폼을 성공시킨 경험을 가진 애플도 아이패드라는 단말기를 선보이게 된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의 빠른 전개는 인터넷으로 종이책을 팔던 아마존이 전자책 플랫폼인 킨들을 훌륭하게 성공시켰기 때문에 가능했다고도 할 수 있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는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정작 어려운 것은 그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것이다."라는 이야기로 자신의 도전이 성공하는 것이 단지 아이디어의 발상이 아니며, 그 아이디어를 성공시키기 위해서 수많은 장벽을 넘어섰다는 것을 암시했다. 실제로 출판이라는 것은 수많은 이해당사자들이 존재한다. 저자, 편집자, 제본, 인쇄, 유통, 독자 등등. 이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전자책의 모습은 모두 달랐을 것이다. (전자책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은 부피에 비해 무겁고, 책주인들이 논리에 따라 정리해 놓은 책들을 마구 옮겼을 때 생기는 불평에 짜증이 났을 이삿짐 센터 아저씨들 뿐?)

킨들과 아이패드라는 가시적인 단말기와 출판과 관련된 여러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잘 조율해내고 있는 미국의 움직임을 분석하고, 향후의 책의 미래를 예측한 책이 사사키 도시나오의 '전자책의 충격'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전자책에 대해 호의적이다. 과거 생성, 유통되는 정보와 지식이 적었을 때, 출판사(혹은 다른 미디어 종사자)가 가졌던 "우리가 정보를 쥐고 나눠준다"라는 완고함은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이다.  이제 누구라도 자가 출판이 가능한 시대에서 아직까지 과거의 권력에 향수를 느끼고 있는 일본 출판계를 비판하고 있다. 

그는 미국의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는 출판 플랫폼을 비교적 상세하게 분석하고 있다. 한발 앞서 간 음악의 생성과 유통, 소비하는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미래의 책을 예측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미래에는 물리적인 형태의 책을 제작하는 인쇄나 제본 등의 회사들은 점차 힘을 잃게 되며, 매스 미디어가 주도하는 마케팅 방식도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한다. 미래의 책은 마이크로 인플루언서(Micro Influencer)들이 소셜 미디어나 블로그 등을 통해 독자들에게 영향을 줄 것이라는 예측 등이다.  

사실 이 책에는 크게 새롭거나 대단한 내용은 없다. 하지만, 전자책이나 미디어 등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생각의 단초들을 많이 제시하고 있다. (전자책 등 출판계의 에코시스템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을 정리해서 별도의 포스트를 써 봐야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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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4 16: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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