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하는 힘
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 / 사계절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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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의 제목(?)인 <세모난 바퀴의 자전거>는 귀여운 어린이들이 타는 자그마한 <세발 자전거>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세모난 바퀴의 자전거"는 아이들이 넘어지지 않고 안전하게 탈 수 있는 "세발 자전거"와는 완전히 다른 무시무시한 자전거다. 바퀴는 본래 '원'이어야 한다. 그래야 지면과 닿는 면을 줄여서 편안하게 움직일 수 있다. 그런데 바퀴가 삼각형이라면... 그 자전거는 한번 페달을 밟을 때마다 죽을 힘을 다해야 하고, 지나간 길은 바퀴의 뾰족함에 여기저기 파여서 엉망진창인 비효율적인 존재일 것이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바퀴가 원이 아니라면 그것은 이미 자전거(스스로 굴러가는 수레)가 아닌 셈이다.  

(왜 이런 단어를 조합했는지는 http://eastdew.blog.me/140000356843 ← 포스트에 나와있다.) 

<세모난 바퀴의 자전거>와 가장 가까운 책 제목을 꼽으라면 강상중 교수의 <고민하는 힘>이 아닐까 싶다. 재일 한국인으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지고 태어난 강상중 교수는 이 자그마한 책에서 참 커다랗고 답을 내기가 쉽지 않은 고민거리들을 다루고 있다. 성찰없는 솔직함이 미덕이고, 진지함은 그 자체로 지루함인 요즈음 시대에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다. 목차를 통해서 그의 고민들을 살펴보자.

- 나는 누구인가?  - 돈이 세계의 전부인가? - 제대로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청춘은 아름다운가? 

- 믿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 -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가? -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을까? 

- 왜 죽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이 대단한 고민 거리들을 보고 혹자들은 이렇게 이야기 할 것이다. "답없는 고민을 하는 것은 낭비"라고 말이다. 고민하는 시간에 자기 개발을 하여 스펙을 쌓아 올리고, 더 높은 위치에 올라,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것이라고 말이다. 한편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 사람의 삶의 기초가 되는 철학과 가치관이 '부'와 '안락함', '권력'과 '지배' 등에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위와 같은 근본적인 고민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기초가 되는 탄탄한 철학과 가치관을 갖추기가 어렵다는 것이 문제이다. '물질적 부유함'을 인생의 제 1가치로 여기고 추구하는 사람이 "돈이 세계의 전부인가?"와 같은 질문에 대한 '고민'의 시간을 갖지 않았다면, 설령 그 사람이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된다고 할지라도 결국에는 허망함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고민'이라는 벽돌로 인생을 투자할 일인지에 대한 사상적 기초를 쌓지 않으면 결국 무엇이든 그 위에 쌓인 결과물은 와르르 무너지게 되어있다. 이것이 바로 고민이 갖는 본질적인 '힘'이다. 

강상중 교수는 100여년 전에 살았던 일본의 작가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를 '고민'의 선배로 삼고 있다. 이들은 답이 없는, 그러나 인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질문들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한 사람들이다. 삶의 후배들은 이러한 고민의 결과물들을 참고하면서 시행착오를 줄이거나, 고민을 심화시킬 수 있다. 또는 고독한 고민의 과정에서 위로를 받고, 일종의 즐거움까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가 그렇게 일방적인 가치로 숭상하는 "경제적 가치"는 사실 수단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인류가 가진 진정한 자산들은 끊임없이 골몰하고 고민한 흔적들이다. 돈으로 만든 것들은 길어야 100년 안에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치열한 고민의 결과들은 인류가 사라질 때까지 전승될만큼 소중하고 힘이 있는 법이다.

"진지하게 생각에 골몰한 끝에 뻔뻔해진다."
강상중 교수는 이런 말을 하며 작지만 힘있는 이 책을 마무리 짓고 있다. 진지한 고민을 거친 후에는 자신이 하는 행동에 뻔뻔할 정도로 자신감이 생긴다는 뜻일게다. 진지하고 깊은 고민은 그 고민의 주체를 '자유'로 이끄는 힘까지 지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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