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의 충격 - 책은 어떻게 붕괴하고 어떻게 부활할 것인가?
사사키 도시나오 지음, 한석주 옮김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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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대략 1000권 정도의 책이 있는 듯하다. 책을 모아놓은 서재는 비록 물리적으로는 크지 않지만, 1000가지의 세계관이 농축된 형태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의미의 크기로 보면 꽤나 큰 방이 아닐 수 없다. 산 지 10년이 훌쩍 넘은 책들은 이제 햇볓과 습기, 책벌레 등에 의해서 낡아간다. 아버지가 대학교 다니실 때 사셨던 책들의 책장은 이제 비스킷처럼 딱딱하게 굳어져서 손만대면 바스라지는 것도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종이책의 물리적 상태가 낡아진다고 그 책이 가진 의미들도 함께 사라지느냐하면 그렇지는 않다. 영문과를 다니셨던 작은 고모가 원서로 산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 원서는 낡고 초라해 졌지만, 그의 생각들은 여전히 읽히고, 공유되는 생명력을 지녔다. (사회평론사에서 나온 2000년대 번역본이 1퍼밀의 농도로 책장에 존재하긴 한다.) 

종이책의 매력은 대단하다. 알록달록한 책등이 저마다의 이름표를 달고 들쭉날쭉한 크기로 책장을 장식하고 있는 아름다움은 어느 우아한 벽지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읽지 않은 책들의 책장에서 읽은 책의 책장으로 옮겨 놓을 때의 뿌듯함과 흐뭇함은 아는 사람들만 아는 리추얼의 즐거움이다. 서로 다른 작가들이 지은 책들이 때로는 서로를 지지하고, 때로는 서로 으르렁거리는 모습은 서재를 가진 사람들만이 아는 재미다. 가방 속에서 누군가를 너그러운 마음으로 기다리게 해주고, 교통수단을 더 이상 이동 수단으로서가 아닌 의미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주는 마법을 부리는 것도 종이책이다. 이러한 종이책들은 짐승의 가죽이나 나무에 글을 적는 죽간 등의 형태를 거쳐 만들어진 이후에 몇천년간 인간에게 지적 만족을 주어 왔다. (중국 후한 시대의 환관이었던 채륜이 종이를 만든 것은 약 2000년 전?)

하지만.... 우리가 종이책에서 얻는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구매하는 책은 궁극적으로 종이가 아니라 활자화된 저자의 생각이다. 종이는 양의 가죽이나 얇게 만든 대나무보다 훨씬 효율적인 미디어의 물리적 형태였을 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수많은 사람과 기업들이 인터넷과 무선통신망 등이 일반화되면서 책이 Atom에서 Bit로 전환될 것을 예측했다. 이 세상의 정보는 모두 정리해 버리겠다던 구글은 십수년 전부터 도서관의 엄청난 책들을 코딩해왔고, 음악을 디지털화해서 유통시키는 플랫폼을 성공시킨 경험을 가진 애플도 아이패드라는 단말기를 선보이게 된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의 빠른 전개는 인터넷으로 종이책을 팔던 아마존이 전자책 플랫폼인 킨들을 훌륭하게 성공시켰기 때문에 가능했다고도 할 수 있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는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정작 어려운 것은 그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것이다."라는 이야기로 자신의 도전이 성공하는 것이 단지 아이디어의 발상이 아니며, 그 아이디어를 성공시키기 위해서 수많은 장벽을 넘어섰다는 것을 암시했다. 실제로 출판이라는 것은 수많은 이해당사자들이 존재한다. 저자, 편집자, 제본, 인쇄, 유통, 독자 등등. 이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전자책의 모습은 모두 달랐을 것이다. (전자책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은 부피에 비해 무겁고, 책주인들이 논리에 따라 정리해 놓은 책들을 마구 옮겼을 때 생기는 불평에 짜증이 났을 이삿짐 센터 아저씨들 뿐?)

킨들과 아이패드라는 가시적인 단말기와 출판과 관련된 여러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잘 조율해내고 있는 미국의 움직임을 분석하고, 향후의 책의 미래를 예측한 책이 사사키 도시나오의 '전자책의 충격'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전자책에 대해 호의적이다. 과거 생성, 유통되는 정보와 지식이 적었을 때, 출판사(혹은 다른 미디어 종사자)가 가졌던 "우리가 정보를 쥐고 나눠준다"라는 완고함은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이다.  이제 누구라도 자가 출판이 가능한 시대에서 아직까지 과거의 권력에 향수를 느끼고 있는 일본 출판계를 비판하고 있다. 

그는 미국의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는 출판 플랫폼을 비교적 상세하게 분석하고 있다. 한발 앞서 간 음악의 생성과 유통, 소비하는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미래의 책을 예측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미래에는 물리적인 형태의 책을 제작하는 인쇄나 제본 등의 회사들은 점차 힘을 잃게 되며, 매스 미디어가 주도하는 마케팅 방식도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한다. 미래의 책은 마이크로 인플루언서(Micro Influencer)들이 소셜 미디어나 블로그 등을 통해 독자들에게 영향을 줄 것이라는 예측 등이다.  

사실 이 책에는 크게 새롭거나 대단한 내용은 없다. 하지만, 전자책이나 미디어 등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생각의 단초들을 많이 제시하고 있다. (전자책 등 출판계의 에코시스템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을 정리해서 별도의 포스트를 써 봐야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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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4 16: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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